조금 실례가 되겠지만 여기서는 토를 달아야겠다. 계약금을 낸다고 해서 아무나 현대백화점 내 제과점을 운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전원장은 1994년 경제기획원 기획관리실장을 하다 공정거래위 부위원장을 잠깐 거쳐 수산청장으로 발령받았다. 본래 경제기획원 기획관리실장을 마치면 경제부처의 차관으로 승진하는 게 관행이었다. 그런데 전원장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 것이다. 수산청장 발령을 받고 공직마감 준비를 하라는 신호가 온 것으로 생각했다.
취임 후 인사차 수산청 기자실에 들렀을 때 기자들이 “수산업무와 어떤 관련이 있었습니까”라는 질문을 했다. 그는 “내가 낚시를 좋아하고 수영을 잘 해서 그런 모양입니다”라고 받았다. 뼈 있는 답변이었다.
1996년 그가 수산청장을 그만두자 부인이 현대백화점 내 제과점을 계약했다. 공직생활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생계 방편으로 잡은 것이었다. 그러나 한달 만에 공정거래위원장으로 발탁됐다. 첫 부활이자 후반기 관운의 변곡점(變曲點)이었다.
“공정거래위원장에 취임하면서 재산등록을 했는데 제과점을 계속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마누라에게 계약해지하자고 했더니 인테리어 하느라고 몇 억원을 들였다며 투자자금이나 회수한 뒤에 그만두겠다고 하더군요.
세 번째 아픈 질문은 아들의 재산형성과정에 관한 것입니다. 증여한 것 아니냐는 질문이 이어져 정말 곤혹스러웠습니다.”
삼성전자 과장인 아들(34)의 방배동 아파트(40평형)는 8억원을 호가한다. 그는 국회 청문회에서 “4억원을 대출받았고 아들의 8년치 연봉이 성과급을 빼고도 2억9000만원”이라며 재산증여 의혹을 부인했다.
-며느리가 ‘한라산’소주(제주도) 대표 딸이라서 처가의 도움을 받았겠다는 생각도 들던데요.
“내가 대통령비서실장 할 때 아들 결혼날짜가 잡혔습니다. 기관장을 여러 군데에서 하다 보니 내 비서관을 지낸 사람이 감사원 빼고도 24명이에요. 비서관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았습니다. 일부 신문에 보도까지 되는 바람에 결혼식 장소를 네 번이나 옮겼습니다. 나는 축의금을 안 받았지만 우리 아이는 직장에서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결혼하자마자 MBA 과정을 밟으려 미국유학을 갔습니다. 처가에서 딸에게 가구 사라고 지참금을 준 것도 있나 봐요. 난 잘 모르는데….”
잦은 부처이동과 지역차별로 한직 전전
1966년 행정고시 합격 후 전원장의 관료 경력을 들여다보면 초년운이 박복(薄福)했던 데 비해 만년(晩年)운은 대통했다. 그는 고시에 합격한 뒤 과장으로 승진하는 데 8년9개월이 걸렸다. 다른 사람들은 4∼5년 만에 승진할 때였다. 한두 해도 아니고 거의 두 배의 기간을 채우고 승진을 한 것이다. 한번은 12명의 승진대상자 중 서열 4위였는데 여기저기서 인사청탁이 들어와 순번이 40번으로 밀렸다. 국장이 될 때까지 화려한 보직을 맡은 적도 없다. 왜 이렇게 오래 물을 먹고 한직을 전전했을까.
“고시에 합격하고 교통부 부산해운국 사무관으로 발령낸다고 해서 안 가겠다고 버텼어요. 총무처 직원이 명령을 거부하면 합격을 취소시키겠다고 해서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합격을 취소시키느냐’고 한판 붙었어요. 결국 법제처 서무계장으로 발령나더군요. 국장이 앉는 의자가 부서지면 고쳐주고 운전사들이 기름 달라고 아우성치면 해결하는 자리였습니다.
당시 법제처장이 서일교씨입니다. 이 분이 서울대 법대에서 소송법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서무계장 맡은 지 15일만에 처장실에 들어가 ‘이런 일 하려고 고등고시 합격한 거 아닙니다’ 했더니 서처장이 책상을 쾅 치며 ‘여기가 서울법대 교수실인 줄 아느냐’고 크게 꾸짖더군요. 그러고 나서 어여삐 여겼는지 1주일 만에 법제관실로 발령을 내줘 열심히 법안 심의를 했습니다.
내가 법안심의 잘한다고 소문이 나 농림부의 농촌문제 법안 만드는 것을 거들어주게 됐습니다. 농림부 농정차관보 김용환씨(한나라당 의원)가 국회 농림위원회에서 의원들이 질의하면 내게 답변을 시키더군요. 국회가 태평로 서울시의회 자리에 있을 때입니다. 이 무렵 김학렬 경제기획원 장관이 나를 잘 봤던지 경제기획원으로 불러 공정거래법을 만들게 됐습니다. 부처를 옮긴 것도 승진이 늦어진 이유죠. 두 번째 이유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그는 여기서 잠시 승진이 늦어진 두 번째 이유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하다가 운을 뗐다.
“지역차별도 받았고…. 이런 것 등등이 이유가 돼 8년9개월이 걸린 거죠. 과장을 국장으로 승진시킬 때는 1, 2순위를 정해 총무처(현 행정자치부)에 보내게 돼 있습니다. 2순위가 다음번에는 자동적으로 1순위가 돼서 올라가는 거죠. 그런데 내가 자꾸만 2순위로 밀리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사업을 하면 이런 모욕은 당하지 않을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 그만둘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전남 해남 출생으로 초등학교 때 목포로 전학을 가 유달초등학교와 목포2중학교를 나왔다. 한화갑 의원(민주당)과 목포2중 동창이다.
-한화갑 의원과는 자주 만납니까.
“친구니까 자주 만나지요. 그런데 왜 목포중이 아니라 목포2중에 들어갔느냐고 안 물어요?”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