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 모임에서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분들이 저한테 농담 비슷하게 “대통령이 일을 좀 하려고 하는데 왜 자꾸 헌법을 들이대며 재단하느냐, 그러니 어떻게 일을 하느냐….” 이런 투로 얘기하더라고요. 제가 깜짝 놀랐어요. 제가 “돈 안 받고 헌법 강의해줄 테니 청와대에서 좀 들으라”고 했습니다.
대통령의 개혁정책을 헌법적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다고 보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거라고 봅니다. 대통령의 직무집행 행위 자체가 헌법 집행 행위입니다.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은 헌법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도 없으며 이는 교과서적 상식입니다. 그럼에도 청와대뿐 아니라 여당, 아마 언론계에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모든 정부 정책이나 권력은 헌법에 근거를 두고 헌법의 범위 내에서 행사돼야 한다는 게 기본 상식입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 하나하나가 헌법과 관련 있다고 생각합니다. 헌법의 거창한 통치구조 같은 걸 떠나서라도 말입니다.
오늘 오후에 개인택시 기사들이 찾아와 “개인택시 부제(部制)가 부당하니 헌법소원으로 구제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개인택시는 하루 운전하고 하루 쉬는 부제가 있죠. 오늘같이 비오는 날은 손님이 꽤 많은데 부제 때문에 운행을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범택시, 점보택시, 회사택시에는 부제를 적용하지 않습니다. 개인택시의 안전을 위한다는 근거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이는 헌법상 직업의 자유, 영업의 자유, 평등권, 그리고 행복추구권을 크게 침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헌법은 국민의 생활규범 자체이며, 그 어떠한 법도 헌법과 관련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지금 국내 경제는 큰 침체기를 겪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국가 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31%이며 성장률도 3%대로 내려앉았습니다. 설비투자도 감소하고 있고, 제조업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반(反)기업 정서가 팽배하며 내수는 다시 감소하고 있습니다.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자가 느끼는 체감경제는 굉장히 심각한 수준입니다.
우리 경제가 이처럼 어려워진 요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국가 경제정책에 대한 불확실성, 일관성 결여,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 상실이 주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장경제는 신뢰와 예측 가능성 없이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헌법의 바탕은 개인주의
2년 전쯤 TV에서 노 대통령은 시장경제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시장경제 원리는 정글의 법칙이 아니며 신뢰, 법적 안정성, 예측 가능성을 전제하지 않고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걸 뒷받침해주는 것이 바로 법치주의입니다. 법치주의까지 포괄적으로 전제되는 것이 헌법상 자유시장 경제원리입니다.
우리 헌법 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경제 질서의 기본이 자본주의에 입각한 자유시장경제의 원리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헌법 126조는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긴절(緊切)한 필요로 인하여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그 경영을 통제 또는 관리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 헌법은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유시장경제라는 두 가지 이념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이념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헌법은 적법절차를 핵심으로 하는 법치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물론 의회주의, 사법권 독립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핵심은 적법절차를 내용으로 하는 법치주의입니다. 이런 이념과 수단에 의해서 달성하려는 기본적 가치, 최고의 가치질서는 바로 우리 헌법 10조에 담겨 있습니다. 국민 개개인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추구권이 최대한 확보되는 사회 건설이 그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