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여러 언론은 군을 질타했다. 군이 정보를 감추고 언론자유를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다른 한편에선 정치권과 언론이 군사기밀을 적나라하게 공개해 안보에 해를 끼치고 있다는 상반된 목소리도 나왔다. 누구의 말이 옳고 누구의 행위가 잘못된 것일까. 천안함 사건은 안보위기 상황에서 군사기밀보호의 한계, 언론자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숙제를 던져주었다. 필자인 조종혁 교수는 국내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은 ‘군대의 언론통제 역사’를 두루 살펴보면서 이 숙제에 심층적으로 접근하는 글을 보내왔다. |
언론자유와 군사기밀보호는 대립적 관계다. 특히 이 둘은 전시(戰時) 상황에서 극명하게 충돌할 수 있다. 전쟁 중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체험하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은 이 둘의 모순이 언제든 심각한 이슈로 불거질 수 있는 중대 사안임을 명증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와 군, 언론은 과연 이 문제에 대해 정리된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나폴레옹, 영국 신문에서 기밀 캐내

침몰 3일전인 4월23일 천안함의 항해모습.
군사기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저 밖의 어딘가에 비밀리에 존재하는 특별한 정보들의 묶음이 아니다. 시간과 상황의 맥락에서 특정 그룹의 사람들에 의해 그렇게 판단된 정보들의 묶음에 불과하다. 군사기밀은 태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후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또한 군사기밀은 상대적인 측면도 있어 언론이 정의하는 군사기밀과 군이 정의하는 군사기밀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군사기밀은 무엇보다 시간과 상황의 산물이다. 이로 인해 어제의 군사기밀이 오늘엔 상식이 될 수 있다. A그룹이 정의하는 ‘사실 정보’가 B그룹에는 ‘역(逆)정보(사실과 정반대의 정보)’에 불과하거나, ‘과(誇) 정보(사실의 과장)’이거나, ‘비(非) 정보(날조된 정보)’로 판단될 수도 있다. 여기에 국가기관에 소속된 개인이나 조직의 정치적 동기가 작용하여 마땅히 국민에게 공개되어야 할 정보에 ‘기밀’의 라벨이 붙기도 한다.
군사기밀의 가치는 불확실성의 경감으로 측정된다. 적이 아군에 대해 느끼는 불확실성을 경감시키는 정보일수록 그 정보는 아군에게 기밀의 가치를 갖는다. 따라서 역설적이지만 무엇이 군사기밀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는 궁극적 잣대는 우리 군도, 우리 언론도 아닌 적이 갖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군의 초계함은 하픈 미사일을 탑재하고 있다’라는 정보는 객관적 검증이 가능한 사실적 정보다. 그러나 그것이 북한군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정보라면 군사기밀이 된다. 군사기밀 누설은 적군을 이롭게 하고 아군의 위험성을 증대시키므로 군사기밀의 보호는 당위성을 갖는다. 동시에 ‘알권리’와 ‘열린 아이디어의 시장’을 추구하는 민주사회의 언론관과는 충돌을 면하기 어렵다.
美 언론의 자율적 보도통제
그러나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미국의 여러 사례에서 군사기밀의 통제를 에워싼 군과 언론의 관계가 반드시 모순적이거나 적대적이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심각한 국가안위 문제가 대두될 경우 미국의 주류 언론이 관행적으로 ‘국가기구’의 기능을 ‘자율’적으로 수행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응하여 군 당국도 무조건적 보도통제 대신 군사기밀에 대한 비교적 명확한 가이드라인의 제시에 동의하여 언론의 자율통제에 명분을 제공했다. 이처럼 언론이 자율적으로 접점을 찾아온 점은 천안함 사건으로 군과 언론 간 불신이 심화되는 우리의 상황과 대비되어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