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7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러시아 볼고그라드 공항에 도착한 뒤 러시아군 관계자가 전통적인 우정의 표시로 건네는 보드카 잔을 받아 마시고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당시 방러 기간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무기도입 협정을 체결했다.
사건 발생 이후 쏟아져 나온 관련 정보의 상당량은 북한의 어뢰 혹은 기뢰 능력에 관한 것이었다. 북한이 과연 버블제트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는지, 구 소련과 중국에서 수입한 것 외에 자체적으로 제작한 은밀한 어뢰나 기뢰가 있는지 등에 관해서였다. 정보당국 역시 이와 관련한 정보를 추적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수집돼온 북한의 어뢰 및 기뢰 수입내역과 해당 무기체계의 성능, 제원에 관한 정보가 핵심이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국가정보원의 군사담당 파트. 천안함 침몰과 관련된 정보가 한창 취합 중이던 4월, 이 조직이 흥미로운 보고서 하나를 작성해 보고했다고 복수의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2006년 무렵 북한이 제3국에 무기를 수출하기 위해 의사를 타진하는 과정에서 작성한 판매가능 무기 목록에 관한 것. 특히 국정원은 북한 군 당국이 베네수엘라 정부에 제시한 ‘쇼핑 리스트’를 주목했다. GPS(위성항법장치) 교란장치와 방사포 등 북한의 군사기술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정밀 무기체계의 제원이나 단가가 고스란히 포함된 리스트였다는 후문이다.
1998년 집권한 이래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미국의 침공을 방어해야 한다’는 명분 하에 대대적인 무기도입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05년 이후 베네수엘라가 러시아로부터 도입한 무기만 해도 수호이-30 전투기와 T-72 탱크 등 40억달러어치에 해당한다는 추산이다. 북한의 무기판매 리스트가 건너간 2006년은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대한 무기판매 금수조치를 내려 군사력 강화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시점이다.
알려진 것보다 진보한
문제의 보고서가 주목한 것은 이 리스트에 천안함 사태 이후 자주 거론돼온 항적추적 어뢰가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함정의 스크루가 바다 위에 남기는 파도를 따라가며 목표물을 타격하는 항적추적 어뢰는 그간 북한의 주력어뢰로 알려져 있던 53-56형에 비해 기술적으로 앞선 것이다. 53-56형이 가느다란 전선을 달고 나가 버튼을 눌러야 폭발하는 선유도(線誘導) 방식인 데 비해, 항적추적 어뢰는 스스로 스크루 자국을 따라가는 무선방식이다.
항적추적 어뢰가 판매 리스트에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은 북한이 이 어뢰를 자체적으로 제작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항적추적 어뢰의 경우 구 소련에서 제작한 53-65KE를 수입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해왔던 그간의 분석과는 사뭇 수준이 다른 정보가 확인된 셈. 베네수엘라에 매물로 내놓은 항적추적 어뢰는 53-65KE를 완전 분해해 설계를 확인하고 같은 방식으로 만드는 이른바 역공학(reverse engineering) 기법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1958년 건설장비 생산부터 시작해 이집트제 스커드 미사일 등 역공학 방식의 성공사례를 반세기 이상 축적해오고 있다.
53-65KE는 목표물에 직접 접촉하지 않아도 자기장을 감응해 폭발하는 근접 신관을 갖추고 있다. ‘비접촉 외부 폭발’이라는 천안함 사건 합동조사단의 4월25일 기자회견 내용과 맥이 닿는다. 천안함의 함수·함미 분리가 어뢰가 일으키는 버블제트 효과에 의한 것이라면 직접타격 방식보다는 근접신관 쪽에 무게가 실리는 까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