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30일 북한의 화폐개혁 소식이 전해졌다. 북한은 1992년에도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당시 상황은 남한에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북한관련 단체와 연결된 북한의 휴대전화들이 총 가동됐다. 지금 이 순간도 무수한 전파가 북한에서 남한으로 날아오고 있을 것이다. 17년 만의 변화다. 북한의 정보통제가 탈북자 1만8000명 시대에는 맥을 못 추고 있다.
북한화폐신권.
이런 이유로 기자는 화폐개혁이라는 용어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생뚱한 용어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언론에 보도됐던 관례대로 이 글에서는 그냥 화폐개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려고 한다.
이번 화폐개혁은 1992년의 화폐개혁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1992년 7월 북한 당국은 한 가정당 북한 돈 300원만 새 화폐로 바꾸어주고 나머지는 저금하라는 지침을 갑작스럽게 하달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화폐개혁이었다.
도청 소재지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새 화폐가 살포됐다. 이 화폐는 북한에서 찍은 것도 아니었다. 동유럽에서 몇 달 전에 찍어 몰래 북한에 들여온 것이었다. 나중에 이 화폐가 체코에서 인쇄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화폐를 싣고 평양에 도착한 비밀열차는 다시 각 도 소재지로 엄격한 보안조치 속에 흩어졌다. 화폐가 외국에서 들어온 순간부터 화폐개혁이 선포될 때까지 보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이 기간 화폐 수송에 참가한 사람들은 보안 유지라는 명목으로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수감 생활 같은 통제 하에 움직여야 했다.
북한 당국이 300원만 교환해주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큰 반발은 없었다. 당시 노동자 월급이 평균 100원 정도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는 석 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때는 북한 화폐가 어느 정도 가치가 있을 때였다. 직장에 출근하면 배급을 받았다. 물론 1980년대 말에 북한 북부 일부 지역에서 몇 달씩 배급이 중단된 일도 있었지만 북한 전체로 볼 때는 사람들은 배급소에서 쌀을 1㎏에 8전씩 공급받을 수 있었다. 8전은 국가에서 특별히 할인해서 공급한 가격이고 장마당에 나가면 3~4원 했다. 명절이면 술이나 육류 등도 공급됐는데, 돼지고기 1㎏이 7원 정도였다.
실업자가 없는 북한의 특성상 직장에서 계속 월급과 배급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화폐개혁이 생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북한은 가정당 300원이 넘는 돈은 은행에 저금하도록 했다. 그래서 주민 반발도 크지 않았다. 문제는 나중에 은행에 저금한 돈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국가에 속았음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몇 해 뒤였다.
또 당시에는 장마당이 활성화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엄청난 액수의 북한 화폐를 깔고 앉아 있던 계층은 화교나 북송 재일교포 등 일부에 한정됐다. 숫자로 볼 때 매우 미미했다.
각 가정당 300원씩만 나눠준 화폐개혁은 평등하게 산다는 사회주의식 개념에 충실한 것이었다. 골고루 똑같은 돈을 갖고 시작하게 됐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러저런 이유로 당시 화폐개혁은 큰 반발 없이 조용히 지나갔고 화폐개혁이 북한 경제에 미친 충격도 미미했다.
그런 달콤한 기억이 있어서인가. 북한은 이번 화폐개혁에도 1992년과 마찬가지로 평등주의적 방식을 도입했다. 가정마다 옛 화폐 10만원을 새 화폐 1000원으로 바꾸어준 것이다. 100대 1로 화폐액면절하, 즉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 시킨 것이다. 돈이 많던 집도 없던 집도 국가에서 똑같이 10만원씩을 받게 됐다.
하지만 2009년은 1992년과는 근본적으로 상황이 다르다. 1990년대 중반 국가에서 배급을 주지 못하게 되면서부터 주민들은 장마당에 매달려 살기 시작했고 그때로부터 15년 가까이 흐른 2009년에는 부익부빈익빈에 따른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졌다. 그런데 화폐개혁이라는 날벼락이 떨어지면서 북한 돈 뭉치를 깔고 앉아 걱정 없이 살던 사람들이 졸지에 하루하루 겨우 먹고살던 이웃과 똑같은 돈을 갖게 된 것이다. 북한 당국은 10만원 이상은 저금하라고 했지만 북한 주민들은 이미 은행에 들어간 돈은 찾을 수 없어 자기 돈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을 경험상 알고 있다.
물론 잘사는 집은 좋은 주택에 비싼 가전제품, 외화 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옆집과 완전히 평등한 처지에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큰 의미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빈부격차가 줄어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직장인은 환영, 장마당 상인은 불만
이 때문에 이번 화폐개혁은 많은 주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가장 큰 지지자들은 당국에서 시키는 대로 직장에 다니는 계층이다. 노동자, 농민, 지식인 등이 해당된다.
이들은 장마당에 나가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직장에 나가야 했다. 출근하지 않으면 노동단련대에서 강제노동을 해야 하는 등 각종 처벌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장에서 배급을 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 월급은 보통 3000~4000원 받지만 이는 쌀 2㎏도 사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금액이었다. 처벌이 무서워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각종 핑계를 내대고 직장에 나가지 않고 시장에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부럽고 배가 아픈 심정이 될 수밖에 없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같은 노동자였던 사람들이 오늘날 부자와 가난뱅이로 갈라짐에 따라 시장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박탈감은 훨씬 커지고 이는 제도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북한 사회가 자본주의 제도인지 사회주의 제도인지 모르겠다는 불평을 자주 했다.
그런데 이번 화폐개혁은 시장에서 부를 축적한 계층을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열심히 번 돈을 한순간에 날려버린 사람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다. 북한에 강한 불만세력들이 생겨난 것이다. 물론 이들의 분노가 집단적 반발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다.
반면 직장에 다니던 사람들은 이러한 조치에 대해 오랜만에 제대로 된 정책이 나왔다고 쌍수 들고 환영했고 심지어 돈을 몰수당한 계층을 고소하게 생각하는 심리마저 생겨났다.
은퇴한 연금생활자들도 이번 조치를 환영하고 있다. 월 평균 1000원 안팎의 돈을 받던 연금생활자들은 기존에는 이 돈으로 옥수수 1㎏밖에 못 샀지만 이제는 최소한 10㎏ 이상을 살 수 있게 됐다. 구매력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물론 앞으로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짐에 따라 구매력은 떨어지겠지만 지금 당장은 근로자들과 연금생활자들의 구매력이 화폐개혁 전보다 크게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북한 당국은 이런 지지세를 업고 화폐개혁의 2단계 조치로 외화를 보유하고 비싼 집을 사들였던 부유층을 단속하려 하고 있다.
계획경제 부활 노리는 북한
주목할 점은 화폐개혁 직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의 생일인 1월8일을 휴일로 지정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김정은이 통치하면 인민을 위한 시책을 펼 수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것이다. 화폐개혁으로 오랜만에 여론이 우호적으로 돌아선 이 상황은 북한 당국에 있어 3대 후계세습을 주민들에게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는 최선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화폐개혁은 3대 세습을 위한 당국의 고도 전략일지도 모를 일이다.
평등주의 이념 구현과 후계체제 구축이라는 설명을 제외하고도 이번 화폐개혁의 목적은 또 있다. 그것은 계획경제를 부활시키고 장마당에 흩어진 인력들을 조직생활로 복귀시켜 당국의 통제력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표면적으로는 이것이 이번 화폐개혁의 가장 중요한 이유일 수 있다.
지금까지 북한에서는 국가가 화폐를 찍어 발행하면 그 돈이 다시 국가 은행에 들어오는 순환이 이뤄지지 않았다. 아무리 화폐를 많이 찍어봤자 이 돈은 발행되는 즉시 장사꾼들의 장롱 속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물론 이는 은행이 저금한 돈을 돌려주지 않아 주민들의 신뢰를 완전히 잃었던 것이 결정적 이유다. 어쨌거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격으로 계속 화폐만 발행하다 보니 북한의 인플레이션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게다가 사실관계를 확인하긴 어렵지만 중국 범죄조직들이 만든 북한 위조 화폐가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은 화폐개혁을 통해 지금까지 발행했던 화폐를 일거에 휴지로 만들어버렸다.
이제부터 당분간 화폐 발행권을 쥔 국가의 권한은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북한은 근로자들의 직장 복귀를 유도하기 위해 월급을 화폐개혁 이전 액수 그대로 새 화폐로 지급했다. 이 때문에 화폐개혁을 통해 주민 통제력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화폐개혁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이번 조치가 북한 경제의 숨통을 터줄 것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화폐개혁을 계획경제의 회복으로 성공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물자의 공급이라는 결정적 조건이 뒤따라야 한다.
북한 당국의 노림수는 주민들을 직장에 복귀시켜 상품을 생산하게 하고 이 상품을 다시 국가 유통망에 공급해 주민들이 구매하게 하는 사회주의식 경제 순환 시스템을 복구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근로자들이 직장에 출근해봤자 자재가 없어 일할 수가 없다. 북한이 공장 기업소에 자재를 얼마나 공급할 수 있을지가 결국 화폐개혁의 성패를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생산 원자재 보장 문제뿐 아니라 장마당이 아닌 국가 유통망을 통해 물품을 어느 정도 유통시킬 수 있는지도 중요한 문제다. 그래야 돈이 장사꾼들의 주머니가 아닌 국가 은행을 거치는 순환구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해 북한 당국은 화폐개혁 직전에 중국에서 엄청난 양의 물품을 들여와 국가 유통망을 통해 팔고 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중국에서 팔리지 않고 쌓여 있는 재고상품들이 원조 형식으로 북한에 들어간다는 주장도 있다.
장마당 ‘큰손’과의 정면승부
하지만 북한이 아무리 물품을 많이 들여와봤자 한계가 있다. 지금은 평양 몇몇 상점에 공급하기에도 버거운 수준이다. 그래서 북한 당국은 지방을 통제하기 위해 기존에 도매시장 구실을 했던 초대형 장마당들을 몇 달 안으로 폐쇄하고 여기서 유통되던 상품들을 국가 유통망을 통해 위탁 판매하도록 강제조치를 취하려 하고 있다.
화폐개혁 이후 기존 시장 세력과의 제2라운드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화폐개혁으로 큰 타격을 입은 상인들은 국가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있다. 경험상 국가가 하라는 대로 해서 시장 세력이 득보는 일은 결코 없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의 생계에 필요한 물품들을 장마당에 공급하던 시장의 일명 ‘큰손’들은 화폐개혁 이후 물품을 깔고 앉아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깔고 앉고 싶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화폐개혁 직후 워낙 물건 가격이 요동치기 때문에 적정 가격을 알 수 없어 지켜보는 이유가 더 크다. 또 시간이 가면 물건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타산이 있기 때문이다.
큰손들이 물품을 조달하지 않자 북한에서는 물품 품귀 사태가 발생하고 있으며 쌀이 제대로 유통되지 않아서 굶는 세대도 나오고 있다. 이를 의식해 당국은 주민들에게 일정한 양의 식량을 배급했지만 일회성에 그치고 말았다. 당국은 또 평양을 중심으로 미리 확보해두었던 상품을 국영상점을 통해 파는 노력도 하고 있다.
결국 시장 큰손들이 하던 역할을 당국이 대신 맡아 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역부족이라는 증거는 벌써부터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당국이 이런 노력조차 몇 달 지속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 북한 큰손은 1월 초 통화에서 “장마당에 물건을 넘길 수 없어 창고 3개에 곡물과 물품을 가득 쌓아놓고 때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아마 북한의 창고마다 지금 이처럼 큰손들이 깔고 있는 상품들이 가득 차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국가가 지쳐 물러나는 순간 가격이 폭등할 것으로 보고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국가가 큰손의 자리를 비집고 차지했지만 국가가 패배하는 순간 이 역할은 다시 큰손들에게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역설적으로 계획경제 회복을 위해 단행한 화폐개혁이 오히려 북한 대외개방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낳게 하고 있다. 북한이 시장 세력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대외관계 회복을 통한 물품조달에 매달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 당국이 시장 세력에게 패배를 당하지 않기 위한 유일한 선택이기도 하다. 이제 패배하면 체제의 존립조차 장담하기 힘들다.
지난해 12월17일 김정일 위원장이 북부 나진선봉시를 현지시찰한 데 이어 1월4일 “라선시를 특별시로 한다”는 내용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이 발표된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사실상 기능이 마비된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를 부활시키려는 것은 대외투자를 유치하겠다는 속셈을 내비친 셈이다.
외국인의 투자가 자신들이 원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은 이미 북한이 충분히 학습해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진선봉을 특별시로 만들어 다시 시작하겠다는 것은 북한이 국제사회에 양보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또한 새해 벽두부터 남북 정상회담을 시사하는 듯한 발언들이 북한에서 흘러나오는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북한은 올해 경공업과 농업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제시했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보일 수 있는 성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혼란에 빠진 북한 외환시장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6자회담과 관련된 요구를 수용하고 대규모 원조를 받을 가능성,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파격적인 경제 지원책을 이끌어낼 가능성,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로 막대한 과거사 보상금을 받을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물론 어느 것이나 북한의 통 큰 결단이 있어야 한다.
화폐개혁의 2라운드 조치로 내려진 외화사용 금지령은 지켜질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외화를 갖고 있는 계층은 지금 전부 돈을 깔고 앉아서 환율이 진정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앞으로 외화사용이 불가능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또 다른 북한 소식통은 1월8일 “화폐개혁을 한 지 한 달도 넘게 지났지만 지금도 환율이 하루에도 두 배 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바람에 정확한 환율을 알 수 없다”면서 “3월이나 돼야 북한 돈과 외화의 환율이 제대로 고착될 것이며 지금은 거래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당국의 통제로 인해 외화사용이 가능할지에 의혹을 제기하는 기자에게 그는 “전혀 문제가 없다. 언제는 국가에서 외화를 쓰라고 해서 썼는가”하고 큰소리를 쳤다. 북한에서 외화를 깔고 앉아 있는 부유층의 대다수는 당 간부이기도 하다. 통제를 담당해야 할 간부들이 외화 사용 금지조치의 무력화를 가장 절실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앞으로 북한에서 달러와 위안화의 위력은 여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일간 국제선구도보(國際先驅導報)는 1월7일 북한의 무역결제은행인 조선무역은행이 새해부터 달러와 새 화폐의 환율을 1달러당 96.9원으로 정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북한의 대외 공시용 환율은 의미가 없다.
지금까지 관례로 보면 북한 암시장에서 달러와 위안화의 거래 환율은 중국에서 거래되는 달러와 위안화의 환율과 거의 일치했다. 중국에서 1달러가 6.8위안에 거래되면 북한에서도 그런 비율로 거래되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 당국이 각 지역에서 운용하는 외화 환전소에서도 주민들에게 장마당 환율에 기초해 외화를 바꾸어준다. 장마당에서 1달러가 100원이면 국가 환전소는 98원 정도로 약간 낮을 뿐이다. 그러니 대외 공시용 환율은 그야말로 대외용일 뿐 북한 당국조차 내부에서 그 환율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북한 내 외화 가치가 장마당 물품 가치의 평가 척도가 되는 쌀 가격과도 연동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쌀 가격은 다시 북한 국경과 인접한 중국 지역의 쌀 가격과 연동된다. 계절적 요소가 조금 있긴 하지만 북한 장마당 쌀 가격은 중국에서 통용되는 쌀 가격의 1.2배 정도로 보면 된다. 수송비용이 추가되는 것이다.
이번에 화폐를 100대 1로 액면절하 했지만 이런 조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력화되고 물품 가격은 다시 화폐개혁 이전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실례로 화폐개혁 직전 장마당에서 쌀 가격은 옛 화폐로 1㎏에 2200원 정도 했고, 1달러는 3800원이었다. 화폐개혁의 취지대로라면 새 화폐로는 쌀 1㎏에 22원, 1달러는 38원이 돼야 한다. 하지만 화폐개혁을 한 지 한 달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쌀 1㎏이 벌써 200원 넘게 팔리는가 하면 1달러는 100원 이상에 교환된다고 한다. 외화사용 금지령으로 모든 사람이 외화를 숨기고 있기 때문에 달러나 위안화의 환율은 하루에도 두 배 이상씩 요동치는 실정이다.
지금 북한에서 장마당은 화폐개혁 이전과 별다름 없이 열리고 있다. 먹고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장마당에 나오긴 하지만 상인들이나 주민들 모두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를 타는 가격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북한 당국이 근로자들의 월급을 화폐개혁 이전의 액면가 그대로 지급하기로 함에 따라 가격 상승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번 화폐개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들은 장마당 장사꾼들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반대로 가장 큰 수혜를 본 계층은 농민이라고 할 수 있다. 농민 중에는 벼락부자도 생겨나고 있다.
이는 북한 농촌의 분배 시스템 때문이다. 매달 월급을 받는 노동자와는 달리 농민들은 매해 12월경에 ‘분배’ 결산 과정을 통해 1년 동안 일한 대가를 한꺼번에 현금으로 받는데 자신이 일한 ‘노력공수’에 따라 분배 금액이 달라진다. 노력공수는 매일 한 작업을 숫자로 계량화해 표기한 것이다. 노력공수별 분배액은 농장별 생산량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이 때문에 북한 전국적으로 볼 때 농민 세대의 분배금액은 최소 수만원에서 최대 수백만원으로 차이가 난다.
물건 싹쓸이에 나선 북한 주민
분배로 인해 농민들은 일시적으로 노동자나 공무원에 비할 수 없이 큰 구매력을 갖게 됐다. 북한이 화폐개혁 직후 물가 안정을 위해 싼값으로 공산품을 국영상점에 내다풀자 새 화폐로 목돈을 쥔 농민들이 이때라고 생각해 이를 걷어들이고 있다. 반면 노동자들은 월급을 받기 때문에 목돈이 없다.
농민들이 분배를 받은 지난해 12월말은 새 화폐로 환산한 곡물과 물품 가격이 상대적으로 가장 낮은 때였다. 앞으로 인플레이션이 심화되고 물품 가격이 상승할 것을 예상한 농민들은 분배받은 목돈을 모두 털어 물품을 사서 깔고 있으려 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설날 아침 평양 제1백화점에 밀려든 사람들의 모습을 소개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의 3일자 보도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신문에 따르면 백화점은 설날 판매를 위해 지난해 12월22일부터 1주일 동안 440여 품종에 400만개의 상품을 입고시켰다고 한다. 이 정도면 당국이 상당히 무리해서 물건들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새해 아침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백화점은 애초 오전 10시인 개장시간을 앞당겨 오전 7시30분에 문을 열었으며 오전 중에만 TV 155대, 담요 550장이 각각 팔렸다고 한다. 이어 신문은 “이날 백화점은 발 들여놓을 자리가 없을 만큼 손님들로 흥성거렸으며 손님들이 너무 많아 오후 3시에는 한 번 입장제한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소개했다.
신문은 “농민이나 탄부 중에 고수입 세대가 많다”면서 “형제산구역의 농장원 리금옥씨가 새 화폐로 5만원의 분배를 받았고 그의 농장 농장원들이 모두 컬러 TV를 구매하겠다고 한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날 백화점을 찾은 어느 농장원은 온 가족이 농사에 종사해 세대 수입이 145만원에 이르렀다고 한다”는 대목도 눈에 띈다.
농민들은 몇 달 뒤에는 자신들이 사들인 물품의 가격이 몇 배 또는 몇 십 배로 껑충 뛸 것을 확신하고 있다. 실제로 평양의 몇몇 국영상점을 제외하고는 장마당의 물건 가격은 자고나기 무섭게 오르고 있다.
이런 가격 상승의 배경에는 농민은 물론 일반 주민들까지 전부 가담한 사재기가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사재기를 할 수 있는 사람 중에는 화폐개혁의 지지자가 많다. 그렇지만 이들은 당장 삶이 조금 나아졌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좋아질 거라고 기대하진 않는다. 사재기 열풍은 그런 심리의 반영이다. 믿을 수 없는 북한 돈보다는 현물이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큰손들이 물품을 창고에 쌓아두고 있고 거기에 일반인까지 국가가 겨우 마련해 파는 물건들이나 장마당 곡물들을 마구 사서 깔고 있다보니 가뜩이나 물자가 부족한 북한에서 물품 품귀현상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는 가격상승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 당국이 앞으로 개인이 숨기고 있는 현물들을 끌어내는 묘수를 내놓지 않는 한 사회불안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 북한 당국은 장마당을 없애 개인이 사장하고 있는 물품의 유통 고리를 강제력으로 끊으려 하고 있지만 이는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주민들은 물건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거래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지난 10여 년간의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있다.
이번 북한의 화폐개혁은 남한에도 몇 가지 생각해볼 문제를 던졌다.
화폐개혁 소식이 전해진 직후 남한 언론에는 북한에서 당장 폭동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자극적인 뉴스가 넘쳤다. 하지만 똑같은 시기에 북한을 취재했던 기자는 화폐개혁에 대한 여론이 상당히 우호적이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폐개혁 소식을 전하는 언론들에는 분노한 북한 주민들의 목소리만 담겼다.
물론 이유는 있을 수 있다. 남한과 전화통화를 하는 북한 주민들은 화폐개혁의 피해자들일 가능성이 크다. 휴대전화를 가지고 남한과 연락이 된다는 것은 이 과정에 돈도 많이 전달받았음을 추정케 한다.
계획경제 재건은 ‘미션 임파서블’?
그러나 그런 이유보다 기자는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환영을 받는 일을 절대 할 수도 없고 또 해서는 안 된다”는 선입관이 남한에 예상외로 강하게 퍼져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화폐개혁 소식은 주로 반(反)김정일 활동을 벌이는 북한 관련 단체들을 통해 전해졌다. 정치적 목적을 띤 단체들이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 필요한 정보만 알리는 것은 뭐라고 하기 힘들다.
그러나 언론까지 자극적인 뉴스거리만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자극성만 강하다면 북한과 전혀 연관성도 없을 뿐 아니라 평소에 거들떠보지도 않던 대만의 이름 없는 언론의 보도도 한국 신문의 1면과 방송의 메인뉴스에 인용됐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하나의 시사점은 기존 언론들은 이제 더 이상 북한 관련 뉴스에서 우위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도 블로그 등을 통해 1인 미디어가 될 수 있는 인터넷 시대에는 기존 언론사의 우위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번 북한 화폐개혁은 그런 흐름을 여실히 보여줬다. 북한 관련 단체들은 직접 자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화폐개혁 소식을 쏟아냈고, 기성 언론들은 이것을 뒤쫓아가면서 부지런히 받아썼을 뿐이다.
오히려 속보 경쟁은 북한 관련 단체들끼리 벌였다. 이들 단체들의 속보 경쟁, 언론에 대한 이해와 경험 부족, 정치적 성격 등의 원인으로 편파적이거나 부정확한 정보도 있었지만 남한 언론의 경우 북한 정보의 옥석을 구분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이번에 확연히 드러났다.
또한 화폐개혁 보도는 탈북자 단체들의 존재감을 각인시켜준 상징적 계기가 됐다. 동시에 막대한 예산으로 운용되는 국가기관들의 대북 정보 수집능력에 의문부호를 던져주었다. 탈북자 단체들이 실시간 보도를 쏟아내는 동안 정부는 며칠 동안 확인이 되지 않는다는 말만 반복했다. 국회 정보위에서 대북 정보력 부재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는 보도도 나왔다. 물론 아직 탈북자 단체들의 고급정보 수집능력은 많이 떨어지지만 정보력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자는 이번 글에서 현재 북한의 시장가격을 될수록 적시하지 않았다. 워낙 가격의 널뛰기가 심각하고 지역별 차이도 크기 때문에 공정한 가격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취재 대상이 됐던 북한 주민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지금은 도무지 뭐가 뭔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북한은 지금 북한 주민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혼돈에 빠져들었다. 화폐개혁 한 달이 넘도록 이 혼돈은 진정될 기미가 없다. 그만큼 화폐개혁이 시장경제가 자리잡아가고 있던 북한 사회에 준 충격은 너무나 컸다. 북한 당국이 이 혼란을 수습하고 계획경제를 복구할 수 있을까. 한번 시장경제를 맛본 사람들에게서 그 맛을 다시 빼앗아내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