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안락사 위기 유기 동물… “반갑게 맞아주고파”

[20대 리포트] 그들은 왜 연고 없는 동물 임시보호자 자처하나

  • 오인균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koing7492@gmail.com

    입력2024-04-2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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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기견 생명 연장하고 입양까지 연결

    • “모든 유기 동물 살릴 수는 없지만…”

    • ‘임보’를 대하는 한국과 미국의 차이

    • “구조자·임보자·입양자 역할 구별해야”

    강진주(27) 씨는 밴쿠버, 토론토, LA, 뉴욕 세계 각지에 조카들이 있는 ‘이모’다. 구조된 유기견들이 해외 입양을 가기 전에 ‘임보’했던 강아지들을 강 씨는 자기 조카라고 불렀다. 임보란 임시보호의 줄임말로 유기 동물이 구조된 이후에 입양 가족을 찾기 전까지 그 중간을 이어주는 과정이다. 해외 입양이 확정된 후라도 해외 이동 봉사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강 씨 같은 임보자들이 필요한 셈이다.

    강 씨는 유기견이던 솜이가 입양 가족과 함께 밴쿠버 풀밭에서 뛰어노는 영상을 보면서 솜이가 강 씨 집에 처음 왔던 지난해 5월을 떠올렸다. 사람이 무서워서 벌벌 떨고 담요에서 나오지도 않던 강아지였다. 강 씨와 지낸 지 한 달 뒤, 하루도 산책을 빠뜨리지 않고 동네 강아지들과 안면을 텄다. 강 씨는 “기본적인 보살핌도 중요하지만 입양 가정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사회성을 길러주는 것도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몇 차례 임보를 겪어 이별이 괜찮을 줄 알았던 강 씨는 한 달 뒤 솜이를 공항으로 데려다주는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솜이를 직접 입양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내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입양하는 것은 솜이를 위한 일이 아니고 솜이를 살리는 데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하고 싶다”고 답했다.

    솜이가 강진주 씨 앞에서 누워 있다. [강진주]

    솜이가 강진주 씨 앞에서 누워 있다. [강진주]

    입양 공고 기간 지나면 안락사가 원칙

    솜이 사례처럼 입양이 확정된 상태에서 짧은 기간 임보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입양자가 정해지지 않은 채 일단 맡아 생명을 살리는 임보자들도 있다. 동물 보호소에 들어온 동물에게 주어지는 입양 공고 기간은 최장 10일이다. 이 기간이 지난 뒤에 안락사가 원칙이다. 그러나 안락사 되기까지 기간은 보호소 수용 가능 규모에 따라 다르다. 유기 동물은 평균적으로 보호소에 들어온 지 30일 이내에 생을 마감한다. 이때 보호소가 감당하지 못하는 유기견의 생명을 연장하고 입양까지 연결하는 일이 임보인 셈이다.

    서은지(29) 씨는 보호소를 거치지 않고 유기묘를 구조해 임보자와 연결한 경험이 있다. 지난해 11월 27일, 서 씨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 떠도는 고양이를 발견하고 계속 마음이 쓰였다. 품종묘인 데다 씻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말끔해서 집고양이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당근마켓’에 떠돌이 고양이의 사진과 함께 주인을 찾는다는 글을 올렸으나 2주 동안 연락을 받지 못했다. 집고양이는 길고양이와 달리 길에서 살아남기 어려우므로 고양이를 임보해 줄 지인을 찾기로 했다.



    김효진(28) 씨는 유기묘의 임보처를 급하게 구한다는 서 씨의 개인 메시지를 받고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오기로 했다. 우선 동네 동물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담당 의사는 심장병이 의심된다며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말했다. 그는 갑작스럽게 생긴 가족을 위해 평소에 하지 않던 지출을 했다. 필수 용품과 장난감에 50만 원, 병원비만 70만 원을 썼다.

    김 씨는 “계속 키우지 않을 동물을 위해 병원에서 큰돈을 써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면서 “임시라고 해서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물적·심리적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김 씨에게 괜한 부담을 짊어준 것 같아 서 씨는 미안해했다. 그럼에도 고양이 임보처를 적극적으로 찾은 것은 임보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기 때문이었다. 그는 현재 임보견이던 강아지(인삼)를 입양해서 함께 살고 있다.

    인삼이는 2020년 10월 13일, 전남 영암의 인삼밭에서 구조됐다. 입양 공고 기간이 지나고 안락사 위기에 놓인 인삼이를 데려온 이는 허새롬(40) 씨였다. 반려견 비스킷과 함께 살고 있어 입양하지는 못하고 일단 임보라도 하기로 했다. 서울 서대문구 연남동의 원룸으로 인삼이를 데려와 놓고 보니, 새끼 세 마리를 임신하고 있다. 방 한 칸에서 강아지 다섯 마리를 감당할 수 없어 작은 마당이 있는 현재의 파주 집으로 이사했다. 인삼이 때문에 완전히 다른 생활을 하게 된 허 씨는 자기 인생이 이렇게까지 ‘개 중심’으로 돌아갈지 몰랐다며 웃었다. 그는 “세상 모든 유기 동물을 살릴 수는 없지만 마침 여력이 있을 때 내게 찾아오는 동물을 반갑게 맞아주고 싶다”고 했다.

    허 씨가 SNS에 올린 입양 홍보 게시글을 보고 인삼이를 데려온 이가 바로 서 씨였다. 그는 ‘인삼밭에서 싸움하던 강아지’라는 소개를 보고 강아지의 이름을 인삼이라고 정했다. 허 씨와 작성한 입양 계약서에는 “유기견에게 취약한 심장사상충 치료를 할 것, 중성화 수술을 할 것,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SNS에 올릴 것, 파양할 사정이 생기면 돌려보낼 것” 등 상세한 내용이 담겼다. 서 씨는 “동물 보호소에서 입양할 경우에는 간단한 입양 동의서에 사인만 해도 쉽게 동물을 꺼내 올 수 있다”면서 “임보자가 진심을 다해 유기견을 돌보는 것을 보고 큰 책임감을 느꼈다”고 답했다. 임보자와 입양자가 함께 동물을 위한 길을 고민하는 셈이다.

    마희영 씨가 임시 보호했던 시샘(Sesame)과 드래곤(Dragon)이 담요에 누워있다. [마희영]

    마희영 씨가 임시 보호했던 시샘(Sesame)과 드래곤(Dragon)이 담요에 누워있다. [마희영]

    “임보 커뮤니티, 전국 확산하면 좋겠다”

    한국은 임시보호에 관한 인식이 적은 반면 미국은 체계적인 임시보호 제도를 갖추고 있다. 뉴욕에서 살고 있는 마희영(26) 씨는 2022년 9월부터 월도 동물 구조 센터(Waldo's rescue)를 통해 네 차례의 임시보호를 경험했다. 이 단체는 마 씨가 임보를 하기에 적합한지 알아보기 위해 집과 직장을 방문해 확인했다. 이후 사료와 배변 패드 같은 필수용품은 물론이고 예방접종 비용까지 지원했다. 임보자의 역할은 일주일에 한 번씩 센터에서 주최하는 입양 파티에 임보견과 함께 가는 일이라고 했다. 그때 입양이 성사될 확률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임보자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동물 사진과 영상이 활발하게 홍보되기 때문에 임보는 입양으로 가는 지름길로 통한다. 반면 보호소는 관리하는 동물이 많다 보니 공고에 사진 한 장 올리는 경우가 많다. ‘2022년 반려동물 보호 실태조사’에 따르면 보호소에서 입양이 성사된 동물 비율은 27.5%에 그쳤지만, 임보 동물의 입양 성공률은 그보다 더 높았다.

    임시보호 중개 플랫폼 핌피 바이러스의 장신재(33) 대표는 “임보 동물의 약 40%는 임보자 본인에게 입양되며 나머지도 시간이 지나면서 거의 다 다른 사람에게 입양된다”고 말했다. ‘임보’라는 안전한 굴레에 들어온 이상 다시 버려지거나 안락사 시설이 있는 보호소로 돌아갈 일은 없다고 했다.

    ‘핌피 바이러스’는 2022년 7월 시작한 소셜 벤처기업으로 유기견 구조 책임자와 임보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임보 희망자를 대상으로 1년 동안 1000건의 임보 상담을 진행했고, 100건을 성사시켰다. 임보자에게 과도한 부담이 가지 않도록 병원 검사비와 접종 비용을 지불하는 구조 책임자만 임보자와 주선했다. 또 임보 이후에 입양되지 않더라도 동물을 다시 데려갈 수 있는 구조자만 플랫폼에 등록하고 있다. 장 씨는 “임보자가 입양하지 않는 선택에 죄책감을 심어주면 안 된다”면서 “구조자와 임보자, 입양자의 역할을 명확하게 구별하는 문화가 중요하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유기 동물 임보와 입양 보내기를 목표로 하는 실험이 있다. ‘임시보호를 위한 셰어하우스’ 설명회가 지난해 12월 2일 핌피 바이러스 사무실에서 열렸다. 문에 들어서자마자 가온이는 꼬리를 흔들며 반겼다. 임보 셰어하우스란 청년들이 공동 주거를 꾸리고 그 안에서 구조 동물을 임시 보호하는 프로젝트다.

    설명회에 참여한 김민지(29) 씨는 “이번 셰어하우스를 시작으로 임보 커뮤니티가 전국으로 확산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사람과 동물이 모두 행복한 공간을 만들고자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가온이가 왈왈 짖었다. 가온이도 장 씨가 3개월째 임보하고 있는 강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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