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과는 1년 만에 71% 비싸졌는가
기후변화 심화, 기후만큼 변하지 못하는 식성
고려제강‧호반… 농산물 가격 낮출 이유 없는 도매법인 대주주
농민 보호? 중간 상인만 이득 보는데 무슨…
지속불가능 다다른 小農 체제, 이젠 바꿔야
4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사과. [뉴스1]
19일 강원 춘천시 중앙시장을 찾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연단에 오르며 주머니에서 사과와 한라봉을 하나씩 꺼내 들고 한 말이다. 설을 앞두고 한번 치솟은 후 가라앉을 기미가 없는 물가, 특히 농산물 중에서도 과일 가격을 꼬집으면서 정권 심판을 외쳤다.
모든 선거가 그렇다. 경기가 좋으면 여당이 득을 보고, 국민의 생활이 팍팍해지면 야당이 반사이익을 누린다. 하지만 이 대표의 발언은 어딘가 이상하다. 일단 지금은 사과가 나오는 철이 아니다. 사과는 가을에 수확되는데 지금은 봄이다. 우리가 현재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사과는 작년에 수확해 창고에 보관돼 있던 것이다. 또 한 개에 만 원 하는 사과는 제수용이나 선물용으로 분류되는, 원래 비싼 사과다. 1만 원 중반대면 적당한 사과 대여섯 개, 트럭 행상에서 가장 싼 것은 6000원에 네 개도 구입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만 이야기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사과의 가격이 예년에 비해 높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거니와 그 외 여러 농산물 가격 역시 치솟아 있기 때문이다. 이는 6일 통계청이 발표한 ‘2월 소비자물가동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같은 월 대비 사과는 71.0% 비싸졌다. 과일만 값이 뛴 게 아니다. 대파는 50.1% 비싸졌고, 모든 채소 기준으론 12.3%나 올랐다.
이는 대통령 지지율과 총선 국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15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긍정 36%, 부정 57%였다. 부정평가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바로 경제‧민생‧물가(16%)다. 말 그대로 ‘먹고 사는 문제’에 비상이 걸려 있는 상황이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러니 이 대표가 한 손에는 사과, 다른 한 손에는 한라봉을 들고 정권 심판 여론을 자극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현재 국민이 체감하고 있는 물가 상승, 그 중에서도 농작물 가격 상승은 단지 특정 정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보다 더 근본적 이해와 해법의 모색이 필요하다.
유통 잘 작동됐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大亂
1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강원 춘천시 명동거리를 방문해 한라봉과 사과를 들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여기서 우리는 근본적 문제부터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사과 대란의 가장 큰 원인은 생산량 감소다. 사과 생산량 감소는 농사가 잘 안 됐기 때문이고, 지난해 작황이 나빴던 것은 기후변화와 기상이변을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기후변화는 선형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평균기온이 1도 상승하는 것은 매일의 날씨가 1도만큼 골고루 따뜻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오늘은 지난해에 비해 10도가 높고, 내일은 8도가 낮은 식으로, 날씨의 진폭이 커지는 것을 종합해보면 평균기온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농민들로서는 기후변화의 영향을 더 실감할 수밖에 없다. 전반적 기후대가 달라지는 가운데 매일, 매주, 매달 경험하는 날씨의 변동폭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한반도가 점점 온대에서 아열대 기후로 변해가면서 사과 산지가 북상하고 있다. 한때 사과 산지로 유명하던 대구에서는 더는 사과 농사를 지을 수 없고, 이제 강원도가 사과 산지다. 반대로 1980년대 생인 필자가 어릴 때만 해도 “제주도에서 바나나 농사를 짓는다”는 말이 농담처럼 쓰였지만 지금은 제주도가 아니라 전남 해남의 땅끝마을에서도 바나나 농사를 짓고 있다.
우리의 식성은 기후만큼 빨리 바뀌지 않는다. 평생 먹고 자란 농작물을 갑자기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란 어렵다. 날씨처럼 급변할 수 없는 것은 농산물 소비자뿐 아니라 생산자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과일 농사가 그렇다. 나무를 심고 기르는 일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자본력이 부족한 소규모 농민들로서는 대응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유통업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시간적 거리도 해결하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업종이다. 대체로 농산물은 매년 정해진 철에 수확된다. 모든 생산자가 같은 시기에 상품을 내놓으므로 가격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고, 반대로 그 시기를 지나면 가격은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다.
농업 유통에서 농민과 소비자의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농민이 수확한 후 소비자가 소비할 때까지의 시간적 거리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은 바로 그런 뜻이다. 사과 같은 과일은 기호의 영역이므로 안 먹을 수도 있지만 안 먹을 수 없는 것이 더 많다. 가령 우리가 김치를 가을과 겨울에만 먹을 수는 없다. 가격이 다소 오르고 내릴지언정 배추는 1년 내내 공급돼야 한다.
이 간극을 해소하는 것도 유통의 역할이다. 창고를 만들고 운영하면서 상품의 질을 유지하고, 적절한 시기에 상품을 시장에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론적으로 볼 때 유통업이 정상 작동한다면 소비자는 도매가의 변동에 상대적으로 덜 영향 받고, 생산자는 시장에서의 가격 변동에 관심을 덜 기울이며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제강‧건설사가 농산물 도매시장법인 대주주이니…
5일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한 시민이 사과를 사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농사는 매년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가격 편차가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바로 그런 문제, 즉 생산과 소비의 시간적 격차를 해결하는 분야가 바로 유통이라는 것을 앞서 우리는 확인했다. 그런데 한국의 농산물 유통시장은 가격 안정에 기여하기는커녕 오히려 폭등과 폭락을 부르고 있다.
왜일까. 1985년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이 개설된 후 현재까지 시행하고 있는 농산물 경매제 때문이다. ‘경매’라고 하지만 농민이 직접 경매에 나서는 게 아니다. 도매시장법인이 농산물을 수집하고 농민 대신 경매해, 가장 비싼 값을 부르는 도매상에게 판매한다. 최대 7%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이 구조를 잘 생각해보자. 도매시장법인은 농작물이 비싸게 팔릴수록 이익이다. 농민에게 큰 소득을 안겨주기 위한 구조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비싸진 농산물 가격은 소비자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게다가 경매라는 매매 형식 특성상 가격이 높아지기 시작하면 한없이 높아질 수 있지만 아무도 사려 하지 않으면 가격 폭락을 막을 방법도 없다.
물론 처음 경매제가 도입될 때 취지는 좋았다. 도매상이 농민과 직거래하던 시절 농민들은 농산물의 시장가를 알기 어려웠고, 도매상의 ‘후려치기’에 당하는 일이 허다했다. 모든 농산물을 일단 한 곳에 모아놓고 일괄적으로 도매하는 방식이 적어도 1985년엔 그 나름 합리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한 거래 방식은 오늘날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 경매제는 가격 변동에 취약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경매제 자체가 가격 변동폭을 늘리는 원인이다. 가령 전국에서 가장 유통량이 많은 가락시장은 여전히 단 6곳 도매시장법인의 경매를 통해서만 물건이 유통된다.
가락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6개 도매시장법인 가운데 농업과 직접 관련 있는 곳은 농협공판장뿐이다. 나머지 5곳의 대주주는 고려제강, 신라교역, 코리아홀딩스-사학, 호반건설 등 농업과 전혀 상관이 없다. 게다가 그들에게는 농산물의 가격을 안정시킬 이유도 없다. 오히려 폭등할수록 수수료가 높아져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다. 현재 대한민국의 모든 농산물 가운데 85% 이상이 바로 이런 구조로 짜인 경매를 통해 유통된다. 오늘날 우리가 매년 겪고 있는 농산물 가격 폭등‧폭락의 이유다.
현실로 다가온 농업 기업화
2020년 10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가락시장 공정경쟁 도입 촉구 기자회견’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소비자연맹, 한국마트협회 관계자들이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도매시장법인들의 독점적 운영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가락시장을 운영하는 주체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지만 시장도매인의 참여 여부는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림부)의 결정 사항이다. 농림부의 태도는 확고하다. 1985년 처음 경매제도가 도입될 때와 마찬가지다. 한국의 농민은 여전히 소농이 대다수이므로 도매상보다 정보와 협상력이 부족한 보호의 대상이며, 경매제는 농민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최대한 선의로 해석하더라도 현행 농업 생산 유통 구조는 양면적이다. 소농 중심 자영농을 보호하도록 설계돼 있지만 매년 농작물의 가격이 요동칠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생계 불안과 경제적 곤궁을 달래기 위해 정부는 매년 천문학적 액수의 농가직불금을 지급한다.
정작 그렇게 생산된 농작물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농업과 전혀 상관없는 소수의 도매시장법인이 틀어쥔 경매시장에서 유통된다. 농민은 농민대로 가난과 불확실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중간에 낀 유통업자는 가격의 변동성을 이용해 더 큰 돈을 번다. 이 구조 속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소비자다. 다시 말해 온 국민이다. 심지어 농민이라고 해서 모든 농작물을 자급자족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농민 역시 소비자로서 잘못된 농업 구조 속에서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농림부는 농민 보호를 명분으로 경매제를 옹호한다. 이를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순환논리이기 때문이다. 농민이 도매상과의 협상에서 불리한 처지에 빠지는 이유는 농업 생산자들이 소농에 머물러 있어서다. 그런데 농업 생산자 대다수가 소농에 머물러 있는 것은 통상적 기업 논리로 경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며, 그 원인 가운데 큰 부분을 경매제가 제공한다. 현행 농산물 유통 시스템 하에서 농작물 가격은 예측 불가능하게, 들쑥날쑥할 뿐 아니라 농민 스스로가 가격을 책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농업 생산자 스스로가 충분한 규모와 힘을 갖는 것, 즉 농업을 기업화하는 것이다. 제헌헌법부터 경자유전의 원칙이 명문화돼 오늘까지 유지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선 마치 ‘신성모독’처럼 여겨지는 발상이지만 세계적으로 볼 때 농업의 기업화는 현실이다.
농업이 고도로 기업화된 미국이나 그와 유사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는 유럽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와 경제가 구조적으로 매우 비슷한 일본에서도 기업이 농업에 뛰어든 지 오래다. 일본은 2003년 구조 개혁특구 제도를 도입하고 2005년 특정법인임대 제도를 시행한 후 2009년부터 기업의 농업 경영을 전국적으로 확대했다. 그 결과 일반 기업의 농업 진출은 2008년 427개 법인에서 시작해 2018년 현재는 3286개 법인까지 늘어났다.
가령 선술식 체인점인 와타미 그룹은 ‘와타미 팜’이라는 별도 법인을 통해 전국 9개소, 143만여 평에 달하는 유기농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농사가 워낙 잘 되는 탓에 일본에서 생산되는 유기채소의 약 6%를 생산하고 있으며, 유기농업사업자 가운데 일본 최대 그룹이다. 그 외에도 지역 건설업체, 식품제조업체 등이 농업에 참가하고 있다.
이렇듯 농업 생산자가 ‘힘없고 약한 소농’에 머물지 않는 것은 농업 전체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85%의 농작물이 경매로 유통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산지농협이 희망 가격을 제시하면 도매법인이 그 값으로 매입하는 정가·수의 거래가 90% 이상을 차지한다. 농민은 그 해의 소득을 예상할 수 있고, 소비자는 보다 더 적은 유통 과정을 통해 농산물을 공급받는다.
농업의 기업화에 대한 부정적 의견과 우려는 이미 충분히 제기된 바 있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일리가 있으며 진지하게 받아들일 만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농자천하지대본’이나 ‘경자유전의 원리’ 같은 구시대의 관념에 사로잡혀 있을 수만은 없다. 오늘날 우리는 기후변화와 인구 소멸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大韓民國 경제 기적 씨앗 뿌릴 때
농업의 기업화는 단지 사과나 배추 가격을 안정화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기후변화 대응책으로서도 절실하다. 점점 더 잦은 기상이변을 수반한 기후변화가 현실로 다가오는 지금,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하려면 농민의 순박한 마음만으론 부족하다. 합리성, 자본력, 노하우가 집약된 기업의 경영이 필요하다.농업의 기업화를 통한 혁신은 저출산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다. 한국의 낮은 출산율은 턱없이 높은 수도권의 인구밀도와 무관하지 않다. 수도권엔 집이 없지만, 지방엔 일자리가 없는 모순이 낳은 결과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방에 일자리가 있다면 알아서 청년들이 터를 잡고 미래를 꾸려나갈 것이다. 문제는 그 일자리를 어떻게 마련하느냐다. 넓은 땅이 있어야 하는 특성상 농업 관련 여러 일자리는 지역 일자리일 수밖에 없다. 청년이나 중장년에게 귀농을 권할 게 아니라 기업을 농촌으로 보내야 한다. 그래야 안정된 일자리가 생기고 청년이 지방에서 살 수 있다.
이승만과 조봉암의 농지개혁을 떠올려 보자. 이전까지 대지주들이 과점하던 토지를 유상몰수한 후 소작농, 자영농에게 유상분배했다. 지주를 위해 농사를 짓던 농민들 스스로 사업가이자 기업인이 됐다. 1950년에 뿌려진 대한민국 경제 기적의 씨앗이다.
이제는 제2의 농지개혁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파편화된 소농 중심 농업으로는 안정적으로 양질의 농산물을 생산할 수도, 점점 더 심각해질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도, 한국을 넘어 세계인이 사랑하는 ‘K-푸드’의 첨단화를 달성할 수도 없다.
해법은 단 하나, 기업을 농촌에 보내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마련할 수 있는 변화의 모멘텀이다. 대한민국이 네덜란드, 덴마크, 이스라엘 등 첨단 농업 강국과 경쟁하는 나라가 되는 미래, 수많은 지방 일자리를 창출하고 수도권 인구 과밀과 저출산도 해결하는 밝은 미래를 떠올려 본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신동아 4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