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율사·자문 그룹 대거 국회로
당대표 연임 도전 가능성 솔솔
‘4년간 당 총재’ 이회창의 전례
조국혁신당 약진이라는 돌발 변수
사법 리스크 뺨치는 폭주 프레임
[영상] 매거진동아 총선 리뷰<2>
4월 1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22대 총선 당선인들과 서울 동작구 서울현충원을 참배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이번에 완성된 친명 중심의 의석 구도는 다음 대선(2027년 3월)까지 이어진다. 이것이 이 대표의 정치 인생에서 가진 의미는 작지 않다. 당내 최대 계파를 이끄는 대주주의 위치에서 대선 경선에 나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처음 대선에 도전한 2017년 당시 민주당 경선에서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한 의원은 정성호·김병욱·김영진·제윤경 등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2022년 대선 초반만 해도 이 대표를 따르던 의원은 ‘7인회’로 불리던 7명(정성호·김영진·김병욱·김남국·문진석·임종성·이규민)이 전부였다.
22대 국회에는 이 대표가 성남시장·경기지사를 할 때 손발을 맞춘 측근 그룹이 입성했다. 스피커 구실을 할 친명 원외 인사도 여럿 당선했다. 여기에 대장동·백현동 관련 재판의 변호를 맡은 율사 그룹이 가세했다. 정성호·김영진 등 자문 그룹도 건재하다. 원내대표 선거에서부터 이 대표의 낙점을 받은 후보가 이길 개연성이 커졌다. 국회의장과 부의장, 상임위원장 배분에도 이 대표의 입김이 강하게 작동하는 구조다. 민주당과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이 175석을 확보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대표가 22대 국회 임기 내내 입법 권력을 행사한다는 뜻이 된다.
8월 치러지는 전당대회에서 이 대표가 당대표 연임에 도전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당 당헌·당규에는 대표 연임 불가 규정이 없다. 보수정당에는 전례가 있다. 2000년 5월 열린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이회창 당시 총재가 연임에 성공했다. 이 총재는 전당대회 직전 치러진 총선에서 김윤환·신상우·이기택 등 비주류 중진을 대거 낙천시켰다. 총재 연임 뒤에 치러진 2002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공천권을 행사했다.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하면 2026년 6월 치러지는 전국동시지방선거 공천권도 행사한다.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이 대표가 8월 전당대회에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결코 낮지 않다”면서 “그간의 행동 패턴을 보면, 이 대표는 지난 전당대회에 출마할 때도 비판 여론을 감수하고 출마했다. 이번 전당대회에 임하는 태도 역시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이 대표에게 가장 큰 과제는 ‘사법 리스크 돌파’다. 이 과제를 달성하는 데 당대표직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昌의 실패 모델 vs 文의 성공 모델
4월 10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제22대 총선 개표 상황실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며 환호하고 있다. [뉴스1]
이 대표에게 우호적인 측은 ‘문재인의 성공 모델’을 자주 거론하는 경향이 있다. 문 전 대통령은 2012년 12월 대선 패배 이후 정중동 행보를 하다 2015년 2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됐다. 이후 2017년 5월 치러진 대선에서 승리했다. 다만 문 전 대통령의 경우 친문·비문 계파 갈등으로 1년 만에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또 구원투수로 외부 인사인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영입했다. 같은 대주주 신분이긴 하나,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사례(문재인)와 공천권 및 당대표 인사권을 직접 행사하는 사례(이재명)는 다르다는 반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조국혁신당의 약진은 이 대표가 애초 예측하지 못한 돌발변수다. 조국혁신당은 총선 비례대표 투표에서 24.25%를 얻어 12석을 얻었다. 자세히 뜯어보면 이 대표에게 뼈아픈 대목이 보인다. 민주당의 전통적 텃밭인 광주와 전남, 전북에서 조국혁신당이 기대 이상으로 선전했다. 구체적으로 조국혁신당은 광주(47.72%), 전남(43.97%), 전북(45.53%)에서 비례대표 득표율 1위를 차지했다.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은 광주(36.26%)와 전남(39.88%), 전북(37.63%)에서 2위에 그쳤다.
이를테면 호남 유권자는 정권 심판 전선에서 두 개의 카드를 적절히 섞어 사용했다. 윤석열 정부에 반대하지만 이재명 대표도 마뜩지 않은, 즉 호남 내 반윤·비명 유권자가 조국혁신당으로 결집한 양상이다. 비주류로 분류되는 민주당 관계자는 “조국혁신당이 호남 내 ‘대안론’을 겨냥해 전략적으로 일부 지역구에 후보를 냈어도 당선이 가능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재명 체제의 민주당이 이번 총선을 통해 호남 28곳을 싹쓸이했다는 점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닌 이유다. 이와 함께 부산·세종에서 조국혁신당의 비례대표 지지율이 더불어민주연합을 앞섰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정치학) 교수는 “민주당 바깥에서 조국 대표가 이재명 대표의 경쟁자로서 등장했다. 민주당 지지층에도 조 대표 지지자가 많다”면서 “이들은 향후 이 대표가 독주하거나 ‘사당화’ 모습을 보일 때 호의적으로만 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이 대표의 구심력은 약화했다”며 “이 대표는 늘 조 대표와 비교당할 것이고, 이것은 당내에서 견제 심리가 작동한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巨野의 역설
22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쌍특검법(대장동 클럽 및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이태원 참사 특별법, 노란봉투법 등을 재추진할 계획이다.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 진상규명 특검법과 이종섭 전 주호주대사 임명 관련 특검법도 거론된다. 다른 한편 조국 대표는 “개원 즉시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문제는 ‘거야(巨野)의 역설’이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새로운미래, 진보당을 합하면 189석이다. 200석이 필요한 개헌을 빼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세(勢)다. 자칫 야권에서 나타나는 동시다발적 ‘특검 추진’이 거야 폭주 프레임을 강화할 수 있다. 총선에선 정권 심판 프레임이 거야 폭주 프레임을 가렸으나, 국회가 개원하면 입법 권력을 쥔 야당도 심판의 레이더에 오른다.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과 국정원법 등 숙원 과제를 밀어붙였지만 거여(巨與) 프레임에 휘말려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중도층 민심이 이반한 탓이다.
이것은 이재명 대표에게 ‘사법 리스크’보다도 더 고약한 시험대다. 각종 특검과 숙원 입법 등의 과제를 달성하면서도 중도층에 폭주라는 인상을 줘선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으로는 열성 지지층, 밖으로는 조국혁신당과 진보당이 대여 강공 드라이브를 지향하는 모양새다. 특히 조국 대표의 선명한 반윤(反尹) 어젠다는 야권 지지층을 양분하는 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가 쉽사리 정중동 행보를 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세 번째 대권 도전을 앞둔 이 대표가 고차방정식 앞에 놓였다.
신동아 5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