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호

신격호 꿈 ‘B2B 롯데’, 손자 신유열이 꽃피울까

‘껌 파는 회사’ → 글로벌 종합기업

  •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

    입력2024-05-0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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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빈·신유열 父子 ‘판박이 행보’

    • ‘껌’ 이전 ‘화장품’ 있었다… 化工 지향한 신격호

    • 유통·식품 토대 위 석유화학 쌓아올리다

    • 신동빈, 공격적 M&A로 ‘글로벌 롯데’ 노려

    • 경쟁사 대비 변화 느려… 재무구조 악화도 부담

    • 올해가 롯데·신유열 전환점, B2B 新사업 적응이 관건

    3월 30일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겸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 전략실장(전무)은 생일을 맞으며 만 38세가 됐다. 이 나이는 의미가 있다. 올해부턴 신 전무가 한국 국적을 얻는다고 해도 병역을 이행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국내 병역법에 따라 국적 회복자는 38세부터 병역의무가 면제된다. 이 때문에 재계에선 그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경영 승계 작업을 시작하고, 기업가로 활동하기 위해 한국 국적을 회복할 것이라는 전망이 꾸준히 나왔다.

    이런 추측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신 전무와 그의 아버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이력이 판에 박은 듯 비슷하기 때문이다. 1955년생인 신동빈 회장은 과거 한국과 일본 이중 국적자로 지내다가 ‘외국 국적 취득자는 자동으로 한국 국적을 잃는다’는 법에 따라 1996년 한국 국적을 상실했다가 같은 해 회복한 바 있다. 당시 신동빈 회장의 나이는 41세였다.

    신 회장은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았다. 노무라증권과 일본 롯데상사 등을 거쳐 35세에 1990년 롯데케미칼의 전신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했다. 신유열 전무도 일본에서 대학을 나와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고 노무라증권 싱가포르 지점을 거쳐 2020년 34세에 일본 롯데와 일본 롯데홀딩스에 부장으로 입사해 아버지와 똑같은 경로를 밟고 있다.

    신 회장 부자의 경영 수업 방법도 비슷하다. 롯데그룹은 창업자 신격호 회장이 줄곧 식품과 유통업을 중심으로 일군, 전통의 B2C(기업 대 소비자) 중심 회사다. 그럼에도 신 회장 부자는 경영 수업의 시작을 B2C가 아닌 B2B(기업 대 기업) 사업부에서 했다. 신동빈 회장이 1985년 호남석유화학에서 시작했고, 신유열 전무도 일본 롯데 입사 이후 롯데케미칼 일본 지사에서 근무를 시작했으나 본격적 경영은 B2B 사업 성격이 강한 롯데바이오로직스에서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롯데는 주력 분야를 유통·식음료에서 배터리 소재를 포함한 화학, 바이오 제조, 헬스케어 등 B2B 사업 쪽으로 옮기고 있다. 신 전무가 주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롯데그룹]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로부터 시작한 롯데 ‘B2B 본능’

    롯데지주가 발표한 ‘2022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롯데그룹 전체 매출액은 84조8000억 원가량이다. 이 가운데 화학군이 차지하는 비중은 33.8%(28조6594억 원)로 25.5%의 유통군(21조6606억 원) 비중을 앞질렀다. 2021년 사상 처음으로 화학군 매출이 유통군 매출을 앞지른 데 이어 2년 연속 나타난 현상이다. 실적이 아직 최종 집계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실적에도 이러한 기조가 지속한 것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화학 중심의 B2B 사업 전환은 신동빈 회장 때 도드라지게 나타났지만 그 시작은 창업주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 때부터다. 일제강점기이자 제2차 세계대전이 절정으로 치닫던 1942년, 문학을 사랑한 21세 ‘청년 신격호’는 부산에서 일본 시모노세키로 향하는 관부연락선에 몸을 실었다. 당시 손에 쥔 것은 83엔(현재 가치 약 870만 원)과 책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한 권이 전부였다.

    이 가난한 청년은 발명가가 되겠다는 꿈으로 와세다 고등공업학교(현 와세다대 이학부) 야간부 화학과에 입학했다. 신 명예회장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함경도 명천군에서 머물던 17세 무렵 한 공장 기술자로부터 “(이곳은) 석탄액화 공장이오. 갈탄에서 타르, 파라핀, 메탄올, 휘발유를 추출한다오. 그런 기술을 화학공학이라 하는데, 앞으로는 화공(化工)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오”라는 말을 듣고 화학공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2학년으로 진급한 1944년엔 처음으로 투자를 받아 커팅오일(절삭유) 제조 사업을 시작했다. B2B사업인 군수용 커팅오일(기계를 갈고 자르는 선반용 기름) 제조 공장을 운영하려 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일본 본토가 미군의 공격을 받으며 공장은 제대로 가동 한번 해보지 못한 채 두 번이나 폭격을 맞아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그의 첫 번째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전쟁이 끝나자 신 명예회장은 1946년 허물어진 군수공장에서 그의 전공을 살려 비누 제조 사업에 뛰어들었고, 곧 ‘히카리 특수화학연구소’를 세워 크림, 포마드를 만들며 화장품 사업도 시작했다. ‘롯데’라는 브랜드 라벨을 제품에 붙이기 시작한 시기도 이 무렵이다. 사업은 성공을 거뒀다. 살아생전 그는 당시를 회고하며 “그 시절 롯데 상표를 붙인 화장품이 불티나게 팔렸다”고 말한 바 있다.

    가히 롯데그룹의 초석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는 ‘껌 사업’ 역시 당시의 시대 변화를 꿰뚫어 본 신 명예회장의 혜안에서 나온 선택이다. 그가 롯데를 창업할 시기 일본에서 껌은 서구 문명의 상징으로 비판받는 대상이었다. 당시 껌은 일본에 주둔한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당연히 전후 일본 기성세대는 껌 씹는 것을 비난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신 명예회장이 껌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전후 어린이들이 껌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이것이 ‘식품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할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 데 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초콜릿·사탕·과자를 만드는 종합 제과 기업을 일궜다. 주력사업을 화학공학에 기초한 B2B 사업에서 B2C인 식품 사업으로 전환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신격호 회장은 B2B 사업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았다. 롯데를 창립하면서도 사업 목적에 ‘화장품·화학약품류·합성수지 등의 제조·판매’를 빼놓지 않았다. 식품업으로 마련한 자금을 1959년 롯데상사, 1961년 롯데부동산, 1967년 롯데아도, 1968년 롯데물산, 주식회사 훼밀리 등 사업 다각화에 쓰며 일본 10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신격호 B2B 사랑 결실 ‘호남석유화학’

    1965년 한일수교로 양국 간 경제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신 명예회장은 조국으로 눈을 돌렸다. 1967년 한국으로 돌아와 롯데제과를 설립하며 한국 ‘롯데그룹’의 시대를 열었다. 자본이 부족하던 당시 우리나라에 롯데의 진입은 단비와도 같았을 것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해외자본으로 국내 산업을 일으키고자 했다. 신 명예회장으로서는 최적의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은 외국인투자기업에 최소 5년간 취득세·소득세·법인세 등을 면제해 주는 외자도입특례법을 제정했고, 롯데 역시 파격적 특혜를 제공받았다. 1973년 롯데가 호텔을 짓기 위해 당시 반도호텔과 국립중앙도서관 부지를 매입할 때도, 1980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자리에 있던 산업은행 부지를 사들일 때도 정부는 롯데를 적극 밀어줬다. 1988년 부산 부전동 롯데호텔 부지 5800평(약 1만9174m2) 구입 건에도 자본금 99.96%가 일본인 소유란 이유로 외국인투자촉진법을 적용받아 혜택을 얻었다.

    롯데제과에 이어 롯데그룹은 1970년대에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현 롯데푸드)을 통해 국내 최대 식품기업으로 발전했다. 또 롯데호텔과 롯데쇼핑을 설립해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유통·관광산업 분야에 현대화 토대를 구축했다.

    B2C 사업에서 승승장구하면서도 롯데그룹은 B2B 사업을 버리지 않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일관제철소 건설’이다. 포항제철소 건설에 협력했던 한 일본인 기술자의 회고록에 따르면 1968년 신 명예회장은 당시 후지제철(현 일본제철)의 나가노 시게오(永野重雄) 사장을 찾아가 기술협력을 요청했다. 당시 나가노 사장은 “(나는) 엉뚱한 사람의 별난 생각을 각별히 사랑한다”며 흔쾌히 동의했다. 롯데는 후지제철의 지원으로 사업계획까지 세웠으나 당초 신 명예회장에게 제철소 건설을 권했던 박정희 정부가 국영기업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실현되지 못했다.

    사실 롯데가 한국에 진출할 무렵 신 명예회장이 먼저 투자한 업종도 알루미늄 관련 제조업이다. 한국 롯데의 출발점은 껌 포장지에 사용되는 은박지 및 라면 포장지 등을 제조하는 동방아루미공업(현 롯데상사, 롯데알미늄) 설립이다. 이러한 신 명예회장의 ‘B2B 사업 사랑’의 결실은 1979년 호남석유화학을 인수하면서 결실을 본다. 이때부터 롯데는 본격적으로 석유화학 사업을 키운다.

    호남석유화학은 정부가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의 일환으로 여천석유화학단지를 조성하면서 설립한 국영기업이다. 단지 조성 후 정부는 호남석유화학을 민영화한다고 발표했고, 롯데는 공개입찰을 거쳐 이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아들 신동빈 회장을 그룹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시킬 때 롯데제과가 아닌 이곳에서 일하게 한 것에서 신 명예회장의 석유화학산업에 대한 애정을 알 수 있다. 이후 신동빈 회장은 아버지의 의지를 받들어 롯데그룹의 석유화학 업종 확장을 이어갔다.

    글로벌化 주력한 신동빈 時代

    전남 여수시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야경. [롯데케미칼]

    전남 여수시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야경. [롯데케미칼]

    2000년대 들어 신동빈 회장이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정책본부 수장을 맡으면서 롯데그룹의 석유화학업 확장은 더 가속화됐다. 신 회장은 석유화학산업에서 글로벌 경쟁이 가능할 수준의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계획을 실행한다. 2009년 영국 내 자회사로서 영국 아테니우스사의 고순도 테레프탈산(PTA) 및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 생산설비를 인수해 유럽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한 후 2010년 동남아시아의 대표적 석유화학 회사인 말레이시아 타이탄을 인수했다. 2012년에는 호남석유화학과 케이피케미칼을 합병해 롯데케미칼을 성공적으로 출범시켰다. 2000년 매출 1조 원이던 호남석유화학은 2010년 14배 성장해 매출 14조 원을 기록했다.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롯데그룹은 종합화학회사로 변모를 꾀하기 시작한다. 신동빈 회장은 규모의 경제를 넘어 고부가가치 제품의 수직계열화를 통한 사업 포트폴리오 안정화를 원했다. 2015년 롯데그룹은 삼성 계열사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정밀화학의 지분 31.5%(삼성 BP화학 지분 49% 포함), 삼성SDI 케미칼 사업부문 분할신설 법인의 지분 90%를 3조 원에 양수도하는 빅딜을 통해 경영권을 확보했다. 롯데그룹 창립 이래 최대 규모의 M&A였다. 롯데그룹은 석유화학에 이어 정밀화학 분야에 새롭게 진출함으로써 종합화학회사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롯데케미칼은 합성수지 기초가 되는 원료 사업에 강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생산물이 범용 제품이다 보니 수익성이 좋지 않았다. 정밀화학 분야에 강한 삼성 계열사들을 인수함에 따라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히게 된 것이다.

    신동빈 회장으로선 인수를 통해 ‘경영권 장악력’을 대내외에 천명하는 소득도 있었다. 형 신동주 당시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신 회장의 경영 능력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 빅딜을 무리 없이 성사시키면 그룹 몸집을 더 키운 주역이라는 점을 부각할 수 있었다. 이를 고려한 듯 신 회장은 그해 들어 국내 렌터카 1위인 KT렌탈, 더 뉴욕 팰리스 호텔 등 굵직한 M&A를 단행했다.

    신동빈 회장의 M&A에 대한 집념은 분명 아버지 신격호 명예회장과 다른 점이다. 신 명예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만큼 보수적이라고 평가받았다. 이를 감안하면 획기적 경영방식 변화가 일어난 셈이다.

    실제 2004년 10월 신동빈 회장이 그룹 컨트롤타워인 정책본부의 수장을 맡아 경영 전면에 나선 뒤 롯데에는 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신동빈 회장은 정책본부장 취임 이후 불과 11년 동안 14조 원을 들여 36개의 M&A를 진행했다. 이러한 적극적 M&A가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의 소지가 된 측면도 있다. 당시 신동빈 회장이 주도한 M&A 과정에서 피인수회사의 가치를 과도하게 높게 책정해 비자금 마련의 창구로 사용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2010년 조세회피지 케이맨제도에 페이퍼컴퍼니인 ‘LHSC’를 세워 롯데쇼핑 등으로부터 출자받은 뒤, 중국 홈쇼핑 업체 ‘럭키파이’를 1900억 원에 인수한 일이 대표 사례다. 당시 신동주 부회장은 “신동빈 회장이 럭키파이 인수 실패를 비롯해 중국 사업에서 1조 원 넘는 손실을 봤다”고 주장했고, 이는 경영권 분쟁의 발단이 된 바 있다.

    신동빈 회장이 이러한 의혹을 받아가면서까지 M&A에 열을 올린 까닭은 사업의 ‘글로벌화’로 분석된다. 롯데케미칼은 이미 국내에서 에틸렌 생산 부문 1위다. 2019년 3조6000억 원을 투자해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셰일가스 기반 에틸렌 생산 공장을 준공하며 글로벌 개척에 힘을 쏟고 있다.

    신 회장은 이를 통해 경영자로서 통찰력과 뚝심을 대내외에 각인시켰다. 셰일 혁명의 향방이 불확실했던 2015년 셰일가스를 활용한 에틸렌 공장을 건설하기로 결정한 것은 쉬운 판단이 아니다. 한때 국제유가가 급락해 셰일 존폐 위기가 거론됐지만 신 회장은 자신만의 감각으로 셰일 기반 유화 공장 건설을 밀어붙였고, 이를 통해 롯데케미칼은 세계 화학기업들을 선도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식품과 유통을 전문으로 성장해온 롯데가 수출 비중이 높은 화학을 새 날개로 장착한 것은 신 회장의 의지로 얻은 결과다.

    신동빈 회장은 석유화학 사업뿐 아니라 호텔 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 역시 핵심은 글로벌화다. 2010년 모스크바 롯데호텔 개점을 시작으로 글로벌 호텔 체인 확대에 매진하고 있다. 2015년 뉴욕 맨해튼에 더 롯데 뉴욕 팰리스 호텔을 개점했고, 2021년 시애틀에 추가로 오픈하는 등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대비했다. 그해 신동빈 회장은 신격호 명예회장 탄생 100주기를 기념해 일본 닛케이 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인수합병을 통해 객실 수를 5년 후 현재의 2배인 3만 실로 늘릴 것”이라며 호텔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롯데그룹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롯데그룹

    앞서가는 LG·SK, 뒤처지는 롯데

    이러한 신동빈 회장의 강력한 의지는 근래 롯데케미칼의 악화된 경영 실적으로 인해 발목이 잡히는 모양새다. 롯데케미칼은 2022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석유화학산업은 국제 경기 가운데 중국의 경기에 매우 의존적이며 유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롯데케미칼은 국내 주요 석유화학사 가운데 특히 기초소재 사업 비중이 높은 기업이다. 지난 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기초소재 사업부 매출 비중이 80%에 달한다. 석유화학 경쟁사인 LG화학의 그것이 30%대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기초소재란 석유화학 기초유분인 에틸렌·프로필렌과 이를 바탕으로 만드는 플라스틱, 섬유·건설 소재를 포함하는 전통적 석유화학 분야다. 국내를 대표하는 굴뚝산업이자 주력 수출 제품으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왔지만 2022년부터 석유 가격 상승으로 인한 원가경쟁력 하락,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부진 등으로 업황이 나빠졌다. 특히 주력 수출 시장인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정책이 결정타가 됐다.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생산되는 석유제품 가운데 40~50%는 중국으로 수출된다.

    석유화학 최대 수입국인 중국이 정부 주도로 석유화학 원료의 자급률을 빠르게 끌어올리면서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은 수요 위축과 공급과잉 리스크에 동시에 노출됐다. 이로 인해 수익성 악화와 점유율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다. 중국이 석유화학제품 자급화를 추진하며 한때 50%에 달했던 국내 석유화학 업체의 중국 수출 비중은 지난해 30%대로 급감했다.

    지난해부터 롯데케미칼은 사업 개편 작업에 본격 돌입했지만 실적에서 추세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급변하는 석유화학산업의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다고 지적받는다. 동종 업계 대표 회사 격인 LG화학, SK종합화학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을 분리한 후 배터리 소재, 친환경 소재, 글로벌 신약 등 3대 신성장 사업에 2025년까지 10조 원을 투자해 매출 30조 원 규모로 키운다는 비전을 발표하며 기존 석유화학 사업에서 최근 여수 NCC(납사분해설비) 2공장 가동 중단과 인력 재배치를 검토하는 등 구조조정에 돌입하고 있다. SK종합화학은 사명까지 ‘SK지오센트릭’으로 고치면서 2020년 SK 울산CLX에 있는 NCC와 합성고무 제조공정(EPDM) 가동을 중단하고 재활용 플라스틱 분야로 사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에 비해 롯데케미칼의 전략은 보수적이고 느리다. 경쟁사들이 변화에 힘쓸 무렵 롯데케미칼은 약 5조1000억 원을 투입해 인도네시아 반텐주에 NCC를 건설하며 초대형 석유화학단지 조성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19년엔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3조6000억 원을 투입해 ECC(에탄분해설비) 등 석유화학단지를 건립했다. 석유 가격이 저렴한 미국에서 원가경쟁력을 확보하고, 신시장으로 성장할 것이 예상되는 동남아시아에서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전략이지만 기존 전략이던 규모의 경쟁에 몰입하는 모습이다.

    물론 롯데그룹도 지난해 2조7000억 원에 인수를 완료한 배터리 소재(동박) 기업 롯데에너지머터리얼즈(옛 일진머터리얼즈)와 자회사 롯데정밀화학을 통해서 수소 사업을 전개하며, 2030년까지 배터리·바이오·재활용소재 사업 매출을 12조 원(전체 매출 대비 비중 24%)으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발표하는 등 사업 포트폴리오 변화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완전한 사업구조 전환을 추진하는 LG·SK와 달리 롯데케미칼은 기존 석유화학 사업에 높은 비중을 할애하는 모양새다. 또 최근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지만 2년간 연속 적자로 현금 창출력이 떨어진 데다가 신사업 성과도 뚜렷하지 않다. 재무구조에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점은 신동빈 회장으로서는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신유열, 4대 신사업 중심 롯데 변화 使命 이뤄야

    신격호 명예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사업 확장 부분에서 극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신 명예회장은 지나치게 보수적이라고 할 정도로 자금운영·사업확장에서 안정성을 선호한 반면 신동빈 회장은 경영에 나선 20여 년을 공격적 확장과 인수합병의 연속으로 보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신격호 명예회장은 조선일보와 인터뷰하면서 한국 경제 회생을 위한 처방을 묻는 질문에 아래와 같이 답했다.

    “잡다하게 벌여놓은 사업을 축소 정리하고, 차입금을 줄이고, 전문화를 통해 기술력과 경쟁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투자를 얼마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투자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하느냐가 중요한 시대입니다.”

    이는 26년이 지난 현재, 신동빈 회장의 롯데그룹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신동빈 회장은 1월 30일 일본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하면서 “호남석유화학을 상장하고 편의점과 타사 주류 사업 등 크고 작은 회사 60곳 정도를 인수했지만 지금은 방침을 바꿨다”며 “몇 년을 해도 잘되지 않는 사업은 타사에 부탁하는 것이 종업원에게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앞으로 몇 개를 매각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롯데그룹의 성장 공식이던 M&A를 당분간 진행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히는 부분이다. 대신 신성장동력 산업에 집중하겠다는 것.

    지금까지 숱한 M&A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온 롯데그룹이 선택과 집중을 위한 매각으로 성장 전략에 대전환을 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바이오와 2차전지 등 신사업 분야와 뚜렷한 시너지를 기대하기 힘든 기존 사업군을 중심으로 사업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이다. 지난해 12월 시행된 ‘2024년 정기 인사’에서 경영개선실 출신 임원이 대거 승진한 점은 이런 예상에 힘을 싣는다. 경영개선실 수장이던 고수찬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주우현 경영개선1팀 상무는 전무로 올라갔다. 각각 부회장과 부사장으로 승진한 이영구 식품군HQ 총괄대표와 차우철 롯데GRS 대표도 대부분 재무통인 경영개선실 출신 임원이다.

    1월 10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정보기술) 전시회 ‘CES 2024’에 마련된 HD현대 전시관에서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오른쪽 첫 번째)이 가상현실(VR) 체험을 하고 있다. [뉴스1]

    1월 10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정보기술) 전시회 ‘CES 2024’에 마련된 HD현대 전시관에서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오른쪽 첫 번째)이 가상현실(VR) 체험을 하고 있다. [뉴스1]

    특히 신유열 전무는 2022년 말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부문 상무로 승진한 지 1년 만에 전무로 승진하며 롯데지주에 신설된 미래성장실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게 됐다. 신동빈 회장이 2004년 정책본부장을 지낼 때 했던 것과 유사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 전무는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 겸 사내이사로 겸직해 바이오 사업 경영에도 참여하고 있다.

    2022년 3월 롯데주주는 제55기 주주총회에서 “바이오, 헬스케어 사업은 롯데지주가 직접 투자하고 육성해 나갈 계획”이라며 바이오 사업을 롯데 신성장동력이라고 공식화했다. 롯데그룹의 바이오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사업 발표 후 기업 출범까지 불과 3개월 만에 모든 것이 진행됐다. 신동빈 회장의 바이오산업에 대한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신 회장은 이 발표 후 미국으로 출장을 떠나 직접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시에 위치한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Bristol-Myers Squibb) 바이오 의약품 생산공장을 둘러본 후 한 달 만에 공장 인수를 의결했다. 통상적으로 신규 공장을 증설해 CDMO(위탁개발생산) 사업에 진출하는 경우 생산까지 최소 5년 이상이 필요하지만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제약사 노하우가 집약된 시러큐스 공장을 인수함으로써 시장 진입 기간을 1년 이내로 단축했다.

    이처럼 바이오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음에도 롯데그룹의 상황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신규 사업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사업 구조개편이 순탄하게 이뤄져야 하지만 롯데가 거느린 자산과 계열사 대부분은 소비재 산업에 속해 있다. 경기 변동성이 높고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으로 최근 M&A 시장에서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향후 사업 구조 재편, 자산 유동화 등을 통해 확보한 현금 흐름을 지렛대 삼아 신유열 전무 주도로 신사업군에서 성장동력을 다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롯데그룹에도, 신유열 전무에게도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롯데그룹은 지난 70여 년간 성장 주력이던 호텔·유통·식품·화학군HQ에 속한 계열사별로 사업 전략 점검과 구조조정 등을 진행하면서 그룹의 4대 신성장동력으로 바이오테크놀로지(BT), 메타버스, 수소에너지, 2차전지를 꼽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순탄하게 이뤄진다면 롯데그룹은 전통적인 B2C 그룹에서 완전한 B2B 그룹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문제는 B2C에 익숙해 있는 롯데그룹의 조직과 조직문화가 B2B로 전환하는 데 얼마나 민첩하게 적응하는지일 것이다. 26년 전 신격호 명예회장 인터뷰 가운데 “한일 양국에서 기업 활동을 해온 사람으로서 우리 경제와 기업의 문제점을 무엇이라 보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을 다시 떠올려본다.

    “세 가지를 꼽고 싶습니다. 과잉 경쟁, 무리한 차입 경영, 기술력 부재입니다. 한국 경제 파탄 원인도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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