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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의 적’ 알리와 손잡는 한국 기업, 득실은?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24-04-17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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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의 적은 친구” 쿠팡 견제하려 알리와 협업

    • 알리는 韓 기업들과 협업 통해 이미지 쇄신 기회 얻어

    • 쿠팡-CJ, ‘햇반 전쟁’에 알리도 참전

    • ‘알테무’ 시대 대응하는 韓 기업들 전략과 속내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 등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 돌풍에 대응해 알리와 손을 잡는 국내 기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Gettyimage, 각 사]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 등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 돌풍에 대응해 알리와 손을 잡는 국내 기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Gettyimage, 각 사]

    회사원 이민선(27) 씨에게 ‘알·테·쉬’는 필수 쇼핑 환경이다. 알테쉬란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의 첫 글자를 따 만든 신조어다. 올해 뜨겁게 불어닥친 알테쉬 열풍은 이 씨의 라이프스타일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슈메이커 자리 차지한 ‘알·테·쉬’

    그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알리에 올라온 K베뉴(K-venue·한국 전용 상품관) 상품 정보를 확인한다. 테무를 통해서는 관심 분야의 주얼리와 액세서리 상품을 훑어본다. 패션 신상품을 구매할 때 활용하는 것은 쉬인. 과거에는 2030 여성이 선호하는 패션 트렌드에 부합하는 가성비 높은 제품이 입점된 토종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나 쿠팡에서 쇼핑했지만 이제 알테쉬를 주요 창구로 삼는다.

    “3월 알리 창립 기념일을 맞아 열린 ‘1000억 페스타’에서 쇼핑 보조금에 특별 타임 세일, 100만 원 쿠폰 혜택을 통해 신선식품, 공산품을 국내 상품가의 10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하게 구매한 뒤 알리로 자연스럽게 갈아탔어요. 이를 계기로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에 대한 고정관념이 사라져 테무, 쉬인에도 관심을 갖게 됐죠. 중국에서 의류를 떼어다 판매하는 입점 셀러 비중이 높은 지그재그보다는 중국산 의류를 더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테무와 쉬인이 마음에 더 끌렸어요. 쿠팡, 지그재그는 배송료나 상품 할인 혜택을 받기 위해 이용권 가입 또는 특정 금액 이상 구매해야 할인 쿠폰 사용이 가능한 번거로움이 있는데, 알테쉬는 엄청나게 낮은 가격이 주는 매력이 강해서 이용권, 쿠폰에 크게 연연하지 않게 돼요. 무엇보다 제품이 매우 다양한 데다 상품 하나만 주문해도 무료배송인 경우가 많아 쇼핑하기 편해요.”

    최근 이 씨처럼 젊은 세대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알테쉬로 불리는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이다. 토종 이커머스 플랫폼인 쿠팡, 마켓컬리, 무신사가 쏟아내는 새로운 이슈가 묻혀버릴 정도다. 각종 온라인이 커뮤니티에는 알리가 펼친 행사에서 100만 원, 10만 원, 1만 원 쿠폰을 받았다는 인증 사진이 잇따라 게시됐다. 특히 100만 원 쿠폰에 당첨돼 30만 원 상당 삼성전자 스마트 모니터를 2만 원대에 구매한 인증 사진에는 댓글이 넘쳐났다.

    현재 국내 유통시장에서는 쿠팡이 선두를 달리지만 이슈 메이커 자리를 알테쉬에 고스란히 내줬다는 평가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쿠팡의 3월 기준 월간 활성 이용자수(MAU)는 3010만 명으로 1위를 기록했다. 알리와 테무의 3월 MAU는 각각 약 818만 명(2위), 581만 명(3위). 지난해 같은 달 MAU와 비교하면 알리는 463%, 테무는 581% 증가한 수치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쿠팡과 네이버 양강 체제로 흘러가던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판도가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다. 특히 테무는 지난해 7월 국내 첫 서비스를 개시한 이후 8개월 만에 11번가(736만 명), G마켓(553만 명), 위메프(320만 명), GS숍(314만 명) 등 국내 오픈마켓 MAU를 모두 앞섰다. 2010년대 전후로 쿠팡, 11번가, G마켓의 쇼핑 플랫폼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해외 이커머스 업계의 주목을 받던 것과 180도 달라진 풍경이다.



    삼성전자도 브랜드 페이지 개설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 돌풍에 대응해 알리와 손을 잡는 국내 기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국내 1위인 쿠팡을 견제하는 동시에 한국 소비자의 대거 유입을 꾀하는 것이 그 목표다.

    알리는 한국 상품에 대해 현지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K-베뉴라는 이름의 한국전용상품관을 열어 삼성전자, CJ제일제당, LG생활건강, 롯데칠성음료 등 한국 주요 대기업 브랜드를 입점시켰다. 현재 K-베뉴 입점사 판매 상품에 대한 수수료를 일절 받지 않고 있다. 오픈마켓의 매출 대부분이 판매 수수료에서 나온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알리 측으로선 매출은 나오지 않고 비용만 발생해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알리는 한국 시장에 앞으로 3년간 11억 달러(약 1조4874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상주 직원을 대폭 채용하는 등 한국 전담 조직을 체계화하고 있다. 그러자 쿠팡이 알리 투자금의 2배가량인 3조 원 대부분을 국내 물류망 확대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투자 확대를 통해 전국에 로켓배송 지역을 순차적으로 늘려 2027년까지 전국 인구 100%가 무료로 로켓배송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쿠팡의 투자 발표를 의식한 듯 알리는 K-베뉴 입점사에 대한 수수료 면제 정책을 6월까지 지속할 방침이다. 본래 4월쯤 종료될 것으로 알려졌던 수수료 면제 정책을 연장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알리의 K-베뉴에는 CJ제일제당과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농심 같은 국내 유통 대기업뿐 아니라 삼성전자까지 브랜드 페이지를 개설한 상태다.

    이 중 알리와 협업을 통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곳은 CJ다. CJ ENM은 배우 마동석이 출연한 알리 광고를 제작해 화제를 모았고, CJ대한통운은 알리의 배송서비스 일부를 맡았다. CJ제일제당은 알리의 K-베뉴 입점일인 3월 7일부터 10일까지 ‘전 품목 최대 70% 할인’을 내건 배너를 띄우고 국내 소비자에게 익숙한 햇반과 비비고 만두 베스트 세트(왕교자·통새우만두 각각 2개), 비비고 사골곰탕 500g 18개 묶음(1박스)을 한정 할인 판매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할인 행사가 종료된 후에도 햇반, 비비고 만두, 백설 콩기름, 스팸 클래식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알리 입점은 2022년 11월부터 촉발된 햇반 납품가를 놓고 쿠팡과 갈등을 이어온 CJ제일제당이 고심 끝에 마련한 전략이다.

    알리와 협업을 통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곳은 CJ다. CJ ENM은 배우 마동석이 출연한 알리 광고를 제작해 화제를 모았고, CJ대한통은 알리의 배송서비스 일부를 맡았다. [위키피디아, 알리익스프레스 유튜브]

    알리와 협업을 통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곳은 CJ다. CJ ENM은 배우 마동석이 출연한 알리 광고를 제작해 화제를 모았고, CJ대한통은 알리의 배송서비스 일부를 맡았다. [위키피디아, 알리익스프레스 유튜브]

    CJ올리브영이 주류 사업 확대한 이유

    CJ제일제당 상품은 국내 소비자에게 꼭 필요한 제품으로 등극했다. CJ제일제당의 즉석밥 상품인 햇반이 한 예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햇반 매출이 전년 대비 4.3%포인트 증가한 8503억 원(소비자 가격 환산 기준)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국내 매출은 전년보다 1.4%포인트, 해외 매출은 21%포인트가 증가했다. 햇반의 납품가를 두고 마진율 문제로 갈등을 빚은 2022년 11월부터 쿠팡에서 햇반 등 CJ제일제당 주요 제품의 로켓배송이 중단됐으나 국내외 매출이 모두 신장한 것이다. 지난해 국내 즉석밥 시장에서 햇반 점유율은 68%. 2021년 즉석 영양밥 제품으로 출시한 햇반 솥반이 햇반의 매출 증가를 이끌었다. 압도적 브랜드 파워를 보유한 데다 자가도정 기술, 무균화 포장밥 제조기술, 최첨단 패키징 기술, 솥밥 원리를 구현한 진공가압 기술을 토대로 풍성한 재료의 영양을 담은 것이 햇반 솥반의 장점이다.

    알리와 손잡은 CJ의 속내는 무엇일까. 국내 이커머스업체의 한 임원은 “‘햇반 전쟁’이 CJ와 쿠팡의 갈등 진원지라면 ‘뷰티 및 식품·생활용품 사업’은 두 기업이 앞으로 겪게 될 갈등 본진”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CJ올리브영이 식품 사업을, 쿠팡이 뷰티와 생활용품 사업에 관심을 드러내며 영역 다툼이 불가피한 상황이 전개됐다”며 “CJ가 쿠팡을 견제하기 위해 알리와 손을 잡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CJ올리브영은 2022년 10월 오프라인 매장 70여 곳에서 시범 운영하던 주류 판매를 더 많은 매장으로 확대하고 있다. 서울 강남, 을지로 등 핵심 상권 매장 100여 곳의 음료 매대를 재단장해 주류 매대를 별도로 설치하고 주류 품목도 100여 개로 늘렸다. 2023년 4월 기준으로 시범 사업 기간에 올린 주류 제품 매출은 시범 판매를 시작한 첫 달보다 약 60% 증가했다. 주류 판매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 셈이다. CJ올리브영은 이에 앞서 2022년 3월 정관 내 사업 목적에 ‘주류 제조업 및 도소매업’을 추가했다.

    유통 전문가들은 CJ올리브영의 주류 사업을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의 확장’으로 해석한다. 최근 주류 소비문화는 취하기 위해 마시는 과거 패턴과 달라지고 있다. 맛과 향, 제로 설탕 및 저칼로리 주류를 즐기는 형태로 변화하며 소비 트렌드 최전선에 올라선 것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주류는 최신 트렌드를 주도하는 카테고리”라며 “CJ올리브영이 지향하는 건강이라는 기존 정체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핵심 고객인 2030 여성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쿠팡과 영역 다툼 불가피

    CJ올리브영은 국내 헬스&뷰티 시장의 절대 강자다. 전국적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보유한 동시에 유일하게 디지털 사업 전환에 성공하는 등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특히 점포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해 2018년 시행한 자체 배송 서비스 ‘오늘 드림’은 CJ올리브영 온라인 사업에 날개를 달아줬다. 오늘 드림은 오후 8시 이전 주문 건에 대해 3시간 내 배송해 주는 빠른 배송이다. 오후 1시까지 주문하면 당일 오후 3~4시 사이 배송해 주는 3!4! 배송, 오후 8시까지 주문하면 그날 밤 10~12시 사이 배송해 주는 미드나잇 배송까지 세 가지 옵션을 제공한다. 온라인 매출이 신장하면서 CJ올리브영은 도심형 물류센터(MFC) 중심 전국 당일 배송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국내 이커머스 업체 관계자는 “CJ올리브영의 MFC는 서울은 물론 경기권 주문량을 소화할 수 있는 규모로 확장된 상태”라며 “전국 당일 배송망이 구축되면 뷰티 영역만큼은 쿠팡의 아성을 위협하는 경쟁자로 떠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주류는 지금의 CJ올리브영이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도약하기에 적합한 사업 카테고리라는 게 그의 평가다.

    올리브영의 다음 기착지는 식품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내 유통사 관계자는 “주류는 단독으로 소비되기보다 음식과 묶여 판매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명분으로 점진적으로 식품 카테고리를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미 CJ올리브영은 음료, 간식은 물론 간편식, 건강식품, 베이비 푸드, 펫 푸드 등을 취급하고 있다. 쿠팡의 핵심 사업인 식품 카테고리와 일부 겹치므로 영역 다툼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이 관계자는 “쿠팡 또한 최근 뷰티 및 생활용품 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 뷰티는 물론 식품, 생활용품 분야에서 CJ와 쿠팡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CJ가 알리 등 유통 채널을 다각화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불공정 이슈 제기될 때마다 CJ 부담 늘어나

    그렇다면 CJ의 목표는 무엇일까. 복수의 유통 관계자는 “알리가 한국에 짓는다는 물류센터 설립 이전 단계에서부터 호흡을 맞춰 향후 제3국 진출까지 협력을 도모하는 데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알리가 최근 관심을 드러내는 분야가 바로 식품과 뷰티다. 두 분야 모두 빠른 배송이 관건이다. CJ는 알리의 뷰티와 식품 품목이 대거 늘어나기 전 입점하면 해당 카테고리 선점에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품질 논란에 휩싸인 알리에 CJ는 든든한 동반자다. 국내 소비자에게 검증을 받은 주요 상품으로 시장을 장악한 대기업과 협업은 알리에 부정적 인식을 지우고 고급 이미지를 구축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관계자는 “알리로서도 이번 기회에 CJ올리브영의 빠른 배송 서비스 ‘오늘 드림’은 물론 물류센터 관련 노하우와 인프라를 참고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섰을 것”이라고 말했다.

    알리와의 협업이 CJ의 중장기 성장에까지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미지수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알리의 국내 진출은 중소 및 소상공인의 생계를 위협하고, 국내 유통·제조업 기반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중국산 수입품이 기반을 잠식할 수 있다. 무엇보다 불공정 이슈 논란이 촉발될 때마다 협력사인 CJ가 감수해야 할 부정적 여론이 생각보다 크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유통업계 종사자는 “중국 플랫폼이 발암 물질 문제 등으로 구설에 올랐다. 알리가 사고를 치면 CJ가 욕을 먹거나 이미지에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 쇼핑 앱 관련 소비자 불만이 날로 급증한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알리 관련 상담 건수는 673건으로 2022년(228건)보다 세 배 가까이 수직 상승했다. 이은희 교수는 “유통업계만 비상이 걸린 게 아니다”라며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이 취급하는 제품군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으니 사업 다각화 측면에서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의 공세를 정부와 기업이 함께 고민해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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