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핵 ‘트로이카 드라이브’ 사업
신재생에너지, 자원순환은 모두 본업(本業)
‘공격적 투자’로 성장했는데…‘75년 지기’ 영풍의 공격
“‘이그니오’ 인수는 장형진 고문 동의…갑자기 문제 삼더라”
배당금·카드뮴 처리 문제로 조금씩 ‘다친’ 감정
감정 상했다고 외부 자본까지 끌어들일 줄은…
“지배구조 개선은 영풍부터…MBK 측에 묻고 싶은 게 있다”
MBK의 고려아연 인수에 대한 우려
유상증자라는 ‘실책…“주가 요동치는 걸 보니 두려웠다”
“성장 위해 어려움 극복…응원하는 국민 위해 최선”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고려아연]
그의 말처럼 그동안 영풍에 고려아연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영풍그룹 전체 매출의 77%는 고려아연에서 나왔다. 2024년 상반기 기준 종속기업을 제외한 영풍의 영업손실은 5억8499만 원이었지만 고려아연으로부터 받은 배당금 263억 원으로 반기순이익은 253억 원을 기록했다.
고려아연과 영풍은 3대째 영풍그룹 안에서 동업을 이어오던 사이다. 영풍그룹은 1949년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세운 영풍기업사가 모체다. 석포제련소(경북 봉화)를 운영하는 영풍 및 전자계열은 장 씨가, 온산제련소(울산 울주)를 운영하는 고려아연은 최 씨 일가가 경영해 왔다. 분리 경영체제를 택하긴 했지만 상대 일가 계열사 주식은 상호 보유했다.
70년 넘게 이어오던 평화는 한순간에 깨졌다. 영풍과 고려아연은 2024년 2월부터 강하게 대립하기 시작했다. 당시 보도를 종합하면, 문제는 배당금이었다. 고려아연 1대 주주 영풍은 고려아연 측에 배당 확대를 요구했지만 고려아연은 이를 거절했다. 이에 영풍은 고려아연의 신사업 투자로 인한 배당금 감소를 이유 등을 이유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했다. ‘75년 지기’ 영풍의 공격은 본격적이었다. 부족한 자금력을 보충하기 위해 그해 9월 동북아 최대 규모 사모펀드라는 MBK파트너스(이하 MBK)와 손을 잡았다. 1대 주주자리도 MBK에 내줬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최 회장을 몰아내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갈등의 핵 ‘트로이카 드라이브’ 사업
2024년 12월 9일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에서 최윤범 회장이 ‘신동아’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려아연]
‘신동아’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2024년 12월 9일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집무실에서 갈등의 중심에 선 최 회장을 직접 만났다. 최 회장은 “나도 왜 이런 다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며 “배당이나 신사업 문제는 이미 과거 주주총회에서 영풍 측도 동의한 사안이었다”며 입을 열었다.
인터뷰는 영풍과 고려아연 사이 갈등의 핵으로 부상한 ‘트로이카 드라이브’로 시작했다. 이 사업은 최 회장이 2021년 고려아연 경영을 맡으며 시작한 신사업 프로젝트다. 신재생에너지, 2차전지 소재, 리사이클링(자원순환) 3가지 사업을 육성해 고려아연의 미래 먹거리로 삼겠다는 게 최 회장의 구상이었다.
영풍 측은 ‘트로이카 드라이브’ 사업 추진을 문제 삼는다. 영풍은 이미 이 사업에 투자하는 데 동의했다는 건가.
“그렇다. 당연히 이미 동의했다. 이사회를 통해 동의를 얻은 문제다.”
그렇다면 영풍은 왜 갑자기 신사업에 반대한다고 생각하나.
“내가 (영풍에) 물어보고 싶은 말이다. 영풍 측은 투자금이 너무 많다는 점을 지적하는데, 고려아연은 과거에도 적극적 투자를 통해 성장한 회사다. 비철금속 제련 분야는 혁신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시장이다. 고려아연은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미래를 위한 투자에 나섰을 뿐이다.”
그는 과거 고려아연이 DRS(Direct Redox Smelter) 공정을 도입하던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 공정은 광석 상태인 아연을 추출할 때 나오는 기타 금속까지 제련해 낼 수 있는 기술로, 고려아연은 이 공정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해 국내 최고 기업이 됐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이다.
“1990년대 초 DRS 공정을 도입했을 때만 해도 가동률은 50%를 밑돌았다. 공정 도입 당시에는 무모한 도전으로 보였지만 지금은 이렇게 회사를 키워낸 최고의 투자가 됐다. 고려아연은 매해 수익을 내며 국내 1위 비철금속 제련업체로 자리를 잡았지만 영풍은 최근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나는 이 차이가 투자를 대하는 자세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최 회장의 말대로, 영풍은 최근 3년간 매해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은 2024년 9월 24일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난 10년간 고려아연은 끊임없는 기술 고도화로 평균 영업이익률 12.8%를 달성했다”며 “같은 기간 영풍은 영업이익률이 –1%대를 기록했지만, 고려아연의 배당을 통해 700억~1000억 원을 받아가며 적자를 버텨왔다”고 부연했다.
“신재생에너지, 자원순환은 모두 본업(本業)”
과거의 투자는 ‘본업’인 비철금속 생산과 직결돼 있지만 ‘트로이카 드라이브’는 본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그렇지 않다. 본업과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본업을 잘하려고 벌인 노력이 성과를 내는 걸 확인했고, 이를 사업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신재생에너지와 비철금속 제련은 어떤 관련이 있나.
“비철금속 제련에는 막대한 양의 전력이 필요한데, 이 전력 요금이 거의 매년 오른다. 특히 해외 법인의 경우 전력을 확보하는 그 자체가 어렵다. 과거 고려아연 호주 아연제련소 사장을 맡았을 때 나는 전력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당시 호주 제련소는 5년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었는데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전력 요금이었다.”
어떻게 해결했나.
“당시 잡지를 뒤적이다 ‘태양광발전이 저렴하다’는 기사를 읽었다. 1MWh(메가와트시) 전력을 생산하는 데 55달러가 든다는 기사였다. 이게 실현 된다면 전력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기사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1MWh당 55달러에 전력 생산이 가능한 태양광발전소 개발에 성공했고, 태양이 없는 밤에도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 풍력발전소도 지었다. 전력 문제가 해결되니 제련소는 흑자로 돌아섰다.”
2차전지 소재와 자원순환은 ESG 경영의 정도(正道)로 보이는데.
“2차전지 소재 중 니켈과 동(구리) 생산에 관심을 두고 있다. 고려아연은 비철금속 제련에 특화된 기업 아닌가. 비철금속인 니켈과 동 역시 연구를 통해 충분히 도전할 수 있는 사업 분야라고 생각한다. 말씀하신 자원순환은 ‘도시 광산’ 프로젝트다. 도시에 버려진 (폐가전, 자동차 등의) 폐기물에서 금속을 추출하는 사업이다. 고려아연은 연간 동을 3만t가량 생산하는데, 전부 폐기물에서 재료를 재활용해 만든다.”
금속광물의 99%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로서는 ‘도시 광산’이 중요하겠다.
“물론이다. 동을 생산하는 데 비용도 적게 든다. 광석에서 동을 채취하면 그 함유량이 5~10% 남짓이지만 폐기물의 경우 그 안에 함유된 동의 60~80%까지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폐기물이다 보니 비용도 싸다. 채굴 비용과 비철금속 제련 사업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생각해 보라. 이런 일이 모두 우리의 본업과 연관돼 있는 분야 아닌가.”
고려아연이 인수한 미국의 재활용 기업 ‘이그니오’의 공장 내부 전경. [고려아연]
영풍 측은 ‘이그니오’ 인수가 잘못된 결정이라고 하는데.
“이그니오 투자는 이사회를 통해 의결했고, 장형진 영풍 고문도 동의했던 사안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그니오 인수 괴담’은 영풍이 아니라 일부 황당한 언론보도에서 처음 나왔다. 처음에는 이그니오가 실체가 없는 유령 회사라고 허위 보도가 나오더라. 사실무근이어서 처음엔 따로 대응하진 않았다. 그런데 MBK와 영풍이 적대적 M&A에 나서면서 갑자기 이를 문제 삼았다. 그때부터 고려아연 내부에선 해당 기사들이 의도성을 가지고 쓰이지 않았나 하는 얘기들이 나왔다. 최근에는 인수 금액에 비해 매출이 너무 적다는 식의 기사도 나오더라. 하지만 이는 고려아연의 자원순환 사업과 이그니오가 밸류체인 핵심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왜곡된 주장에 불과하다. 이그니오를 인수하면서 여러 객관적인 밸류에이션 평가를 내외부에서 받았다. 기업의 가치는 단순한 보유 자산 등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데도 사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이그니오는 고려아연이 자원순환 방식을 통해 동을 생산하고, 이를 2030년 15만t까지 늘리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배당금·카드뮴 처리 문제로 조금씩 ‘다친’ 감정이…
그렇다면 영풍은 이미 동의한 사업을 이제 와서 문제를 삼는다는 건데, MBK까지 동원해 경영권 다툼을 벌일 정도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짐작을 해보면 배당금 때문인 거 같다. 영풍은 수년째 적자 경영을 이어가고 있고, 현금이 필요한 상황인데 우리가 (2024년 2월) ‘배당금을 줄인다’는 발표를 하니 답답했을 것이다. 당시 발표 내용은 배당금을 줄이는 대신 자사주를 소각하겠다는 내용이었는데, 배당금을 줄이는 부분이 화근이 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이유를 굳이 생각해 보자면 ‘감정 문제’도 있을 것 같다. 아연 제련 시 발생하는 카드뮴 처리 문제를 두고도 이견이 있었다.”
영풍은 2019년 5월 석포제련소 인근 하천에서 기준치 이상의 카드뮴이 검출돼 비난 여론이 일자 제련소 인근의 카드뮴 공장을 폐쇄했다. 카드뮴 물질 회수를 위해 설치된 시설을 폐쇄하고 관련 물질을 외부에서 분리 처리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해결책은 미봉책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비철금속 제련업계 관계자는 “아연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카드뮴이 발생하는데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일반적으로 이를 ‘카드뮴 스펀지’로 재가공해 배출한다”며 “당시 영풍은 공장을 폐쇄해 이 공정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이어서 자칫 위탁 배출 과정에서 카드뮴 오염이 더욱 심각해 질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이 사건 이후 석포제련소의 카드뮴을 처리한 업체가 고려아연이었다. 최 회장은 취임 직후 영풍 측에 “더는 카드뮴을 받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이게 ‘감정 문제’의 도화선이 됐다는 설명이다.
왜 갑자기 석포제련소 카드뮴을 받지 않기로 했나.
“처음부터 고려아연은 카드뮴을 받는다고 동의한 적이 없다. 상의 없이 카드뮴 공장을 폐쇄하고 석포제련소의 카드뮴을 처리하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하더라. 동업자로서 황당했다. 이미 다 결정을 해놓고 ‘따르라’는 식의 요구였다. 나는 의사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회장직을 맡자마자 영풍 측 카드뮴을 더는 받지 않기로 했다.”
그 사건이 경영권 다툼의 단초가 됐을 것이라고 보나.
“이 사건 외에도 제련 잔재물인 자로사이트와 황산 처리 거절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렇게 서로 조금씩 ‘다친’ 감정이 지금 싸움의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영풍이 MBK와 손잡을 것이라고는 예상했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배당금 문제는 동의가 끝났고, 감정이 상했다고 해도 외부 자본까지 끌어들일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MBK 측에 질문 하나 하고 싶다”
최 회장이 ‘MBK의 참전’을 생각하지 못한 이유는 또 있다. 오히려 고려아연과 MBK가 ‘원팀’이 될 뻔했다. 2년 전만 해도 MBK는 고려아연의 신사업 ‘트로이카 드라이브’의 재정 지원 후보군 중 한 곳이었다. 2022년 5월 고려아연은 투자 유치 차원에서 MBK에 신사업 관련 내부 자료를 넘겨줬다. 당시 양사는 해당 내용에 대해 비밀유지계약(NDA·Non-Disclosure Agreement)도 맺었다.
고려아연과 MBK가 맺은 NDA 계약 8조에 따르면 “정보수령자(MBK)는 정보제공자(고려아연)의 사전 서면 동의 없이 주식 또는 지분을 매입하거나, 사업 결합 및 합병, 적대적 인수 등을 제안하거나, 경영을 통제 또는 경영에 영향을 미치려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에 동의한다”고 명시돼 있다. 계약기간은 2년으로 2024년 5월 계약이 종료됐다. MBK가 고려아연 인수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2024년 9월이었으니 계약 종료 이후 시점이다.
그러나 최 회장은 MBK와 영풍이 2024년 초부터 적대적 M&A를 논의한 정황이 있다며 계약 위반을 의심한다. MBK 측은 계약 위반 사항이 없다고 맞섰다. 12월 4일 MBK 측은 “고려아연과 NDA를 맺은 곳은 ‘스페셜시츄에이션’ 부문(부서)이고, 고려아연 M&A를 진행하는 곳은 ‘바이아웃’ 부문으로 부문이 다르다”는 입장문을 냈다. 각 부문 사이에는 ‘정보교류차단 장치(차이니즈 월)’가 있어 정보 교류가 불가능하다고 MBK 측은 주장한다.
MBK 측 해명은 사실이 아니라고 보나.
“적대적 M&A라는 큰 결정을 하는 데 한 부문이 했던 일을 다른 부문이 모를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다. 그래서 규제 당국에 진정서를 냈다. 사안을 조사해 달라고 수사기관에 요청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비밀유지계약 위반 의혹에 더해 미공개 정보를 활용했는지가 관건이다. 해명이 사실인지는 수사기관이 밝힐 문제이지 내가 답할 문제는 아니다. 대신 내가 MBK 측에 질문을 하나 하고 싶다.”
질문이라면?
“일부 언론보도를 보면, 이번 MBK의 고려아연 인수전 개입을 두고 ‘절치부심’이라는 표현을 쓰더라. MBK가 과거 한국타이어 M&A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이번 인수전에 뛰어들었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당시 한국타이어 M&A를 담당한 부문은 고려아연과 NDA를 맺은 ‘스페셜시츄에이션’였다. 한국타이어 실패 교훈을 ‘절치부심’할 정도로 숙고했다면 우리와 NDA를 맺은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을까. MBK는 부문이 다르니 정보 공유는 없었다는 해명을 할 게 아니라 우리가 보낸 자료가 ‘어떤 형태로도 이번 인수전에 쓰이지 않았다’는 확실한 근거를 대야 한다.”
MBK는 2023년 12월 한국타이어 지주회사인 한국앤컴퍼니의 경영권 다툼에 뛰어들었다. 조현범 한국앤컴퍼니 회장과 그의 형제들 간의 다툼이었다. MBK는 조 회장 반대편에 서서 공개매수를 추진했으나 무위로 돌아갔다. 공교롭게도 최 회장과 조 회장은 친분이 돈독한 사이다.
한국타이어 인수전 실패를 교훈 삼아 ‘절치부심’한 MBK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참전 이후 적극적으로 지분 매입에 나섰다. 최 회장 측도 대응에 나섰으나 영풍·MBK 측이 근소하게 앞서고 있다. 2024년 12월 13일 기준, 영풍·MBK가 확보한 고려아연 의결권 지분율은 39.83%로, 최 회장 측 지분율보다 5% 가량 앞선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최 회장 측 지분율은 한화, 현대차, LG 등 우호 지분까지 합하면 35% 수준이다. 고려아연이 공개매수로 매입한 자사주를 소각하면 양측의 의결권 지분율은 영풍·MBK가 44% 수준, 최 회장 측이 39% 정도로 추정된다. 남은 의결권 지분 17% 정도는 국민연금과 기관, 소액주주들이 가지고 있다. 결국 국민연금과 국내외 기관, 소액주주들이 ‘캐스팅보터’인 셈이다.
“지배구조 개선은 영풍부터 해야”
양측은 2025년 1월 23일 열릴 임시주주총회까지 이들을 설득해야 한다. 임시주총에서는 영풍·MBK 측이 제시한 14명의 이사 선임 등을 놓고 다툴 예정이다. 현재 고려아연의 이사는 총 13명. 이 중 장 고문을 제외하면 모두 최 회장 측 인사로 분류된다. 영풍·MBK는 이를 뒤집기 위해 새 이사를 대거 선임하려 하고 있다.
최 회장 측은 임시주총에서 신사업을 통한 고려아연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영풍·MBK 측은 ‘지배구조 개선’을 주요 비전으로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은 고려아연 인수 배경에 대해 “지배구조와 주주 가치가 가장 큰 이유”라고 밝힌 바 있다.
결국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 등 ‘캐스팅보터’에 대한 설득이 승패를 가르게 됐다.
“그렇다. 결국 ‘경영 실적’이라는 성적표와 양측이 내놓은 ‘경영 비전’이 승패를 가를 것이다. 임시주총을 앞두고 성심을 다해 ‘모법 답안’을 만들고 있다.”
MBK는 고려아연의 지배구조와 주주가치를 개선하겠다고 하는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영풍과 손을 잡아선 안 됐다. 영풍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14배다. 기업의 주가가 장부상 순자산 가치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저평가돼 있다는 의미다. 영풍이 보유한 자사주를 매각하고 그 돈으로 배당만 해도 주가는 10배가량 올랐을 것이다. 이를 실행하지 않는 것만 봐도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하는 곳은 영풍이다.”
그의 말처럼, 자사주 소각은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한 주주환원 정책 중 하나다.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를 소각하면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이 줄어 주당 가치가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 반면 자사주를 매각하지 않고 보유하고 있다면 최대주주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2024년 6월 말 기준, 영풍이 보유한 자사주는 12만1906주로 발행주식총수(184만2040주)의 6.62%다. 2014년 말, 영풍의 자사주는 12만1906주로 동일하다. 영풍이 지난 10년 동안 보유 중인 자사주를 한 주도 소각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영풍의 지분 2%를 보유한 ‘머스트자산운용’도 11월 25일 “영풍이 10년 이상 보유하고 있는 6.62%의 자사주를 소각하라”는 입장문을 냈다.
MBK의 고려아연 인수에 대한 우려
최 회장은 “문제는 또 있다”며 “MBK와 영풍은 양사가 맺은 경영협력계약의 내용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최 회장이 언급한 경영협력계약은 MBK와 영풍이 경영권 다툼에 뛰어들며 체결한 계약이다. MBK는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에 대한 콜옵션(미리 정한 가격으로 지분을 살 수 있는 권리)과 공동매각요구권(자기 주식을 매도할 때 다른 주주의 주식도 같은 조건으로 매도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을 갖는다.
이 계약에 따라 MBK는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가격으로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을 팔 수 있다. 최 회장은 영풍과 MBK가 이 콜옵션과 공동매각요구권의 가격은 물론 권리 행사 시기를 공개하지 않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MBK 측은 2024년 12월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콜옵션의 가격과 권리 행사 시기는 비밀유지 약정과 주가 영향 등을 고려해 밝힐 수 없다”고 했다.
2024년 10월 7일 울산 울주군 온산읍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제2공장 전경. 공장 입구에 MBK의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를 반대한다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박해윤 기자]
물론 MBK 측은 반박했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영풍과 10년짜리 (주주 간) 계약을 맺었다. 오랜 기간 투자할 것이고 ‘먹튀’ 등 논란이 될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024년 11월 28일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인수 시도에 우려를 표했다. [뉴스1]
최 회장도 “10년의 약속은 아무 의미가 없다”며 “국가 기간산업을 경영하려면 평생을 넘어 수대에 걸쳐 책임지고 경영하겠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말로 평가절하했다.
결국 주식 지분율은 영풍·MBK가 앞서지만 경영 실적과 여론은 고려아연에 유리한 형국이다.
유상증자라는 ‘실책’…“주가 요동치는 걸 보니 두려웠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2024년 11월 13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반공모 유상증자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시장 혼란과 주주, 투자자 우려에 대해 겸허한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사과한다”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이날 열린 이사회에서 일반공모 유상증자 결정을 철회했다. [뉴스1]
왜 유상증자라는 결정을 내렸나.
“회사 주가가 요동치는 걸 보니 두려웠다. 거래량이 10만 주도 채 되지 않는데 시장에서는 분쟁이 계속될 거로 판단하면서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렇게 주가가 오르면 시장 불안이 가중되고 유통물량 부족으로 투자자 보호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유상증자를 할 수밖에 없었다. 더 나아가서는 국민주를 통한 국민기업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바람도 있었다.”
유상증자는 결국 고려아연으로서는 ‘실책’이 됐는데.
“이렇게까지 시장이 부정적으로 반응할지 몰랐다. 경영권 분쟁 중이니만큼 비밀리에 일을 진행하다 보니 당연히 시장 반응을 확인하지 못했다. 좋은 의도를 가진 결정이었어도 시점이 나빴다.”
유상증자로 잃어버린 주주 신뢰는 어떻게 만회할 계획인가.
“확실한 행동을 통해 주주에게 용서를 받으려 노력하고 있다. ‘먼저 책임을 지자’는 생각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하고 내가 의장직에서 내려왔다. 동시에 주주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치를 만들기로 했다. 지금 고려아연은 자력으로 승리할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주주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마지막으로 주주들에게 남길 말이 있다면?
“내 관심사는 ‘고려아연의 성장’ 단 하나다. 성장을 위해서는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지금의 경영권 다툼도 어려움 중 하나다. 회사의 성장을 바라는 주주들을 비롯해 고려아연 임직원, 그리고 고려아연을 응원하는 국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경영권 방어에 임할 계획이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고려아연-영풍·MBK 경영권 다툼 ‘막전막후’
“대통령 퇴진 총파업, 근로자 권익 후퇴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