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특별기획 한중수교 25년 新東亞-미래硏 연중기획 中·国·通

북한, 대만 따돌린 25년 전 ‘동해 사업’ “이제는 부상한 中이 韓에 힘 투사하려 해”

한중수교 주역 신정승 전 주중대사

  • 이문기 |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북한, 대만 따돌린 25년 전 ‘동해 사업’ “이제는 부상한 中이 韓에 힘 투사하려 해”

2/4

한국, 대만의 ‘아Q정전’ 

일본은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에 특사를 보내 설명했으나 한국은 처지가 달랐어요. 대만이 북한에 알려 방해할 수 있었기에 특사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8월 21일 대만에 한중수교 사실을 통보하면서 보안 사항이니 8월 24일까지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는데 이튿날 언론에 공개한 것을 보면 특사를 보내지 말자는 판단이 옳았습니다.” 

대만 사회 기저에 흐르는 반한 감정의 뿌리가 3일 내로 나가라는 통보에서 비롯했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한국과 대만이 서로 착각한 측면이 있어요. 대만은 자신들이 중국의 정통(正統)이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한국을 도왔다고 여깁니다. 자기네가 형이고 한국이 동생이라는 시각을 가졌더랬죠. 반대로 한국은 중국 대륙이 큰 시장인 데다 국제 무대에서 대만보다 중요하다고 봤고요.”

덩샤오핑은 한중수교 10개월 전인 1991년 10월 베이징을 방문한 김일성에게 한중수교 계획을 시사했다. 첸치천 외교부장이 1992년 7월 15일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에게 “한중수교 시기가 성숙했다. 북한의 이해와 지지를 구한다”는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메시지를 전했다.

서울은 보안을 유지했는데 베이징은 북한에 알렸습니다.
“베이징이 약속을 어긴 것입니다. 북한에 통보하겠다는 얘기를 한국에 한 후 평양에 알려야죠. 저한테는 중국에 대한 첫 경험 비슷한 일입니다. 이후에도 중국 관계 일을 하면서 ‘아, 중국과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92년은 탈냉전 시대의 초입으로 한국과 중국뿐 아니라 북한도 변화하는 국제 환경에 적응해야 할 중대 기로였습니다. 노태우 정부는 북방외교를 통해 중국, 소련과 수교했는데 북한은 미국,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에 실패했습니다. 1991년 한국과 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것을 1단계 교차 승인으로 본다면 한국은 2단계 교차 승인에도 성공했는데 북한은 실패한 격입니다. 북한이 미국,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에 실패한 게 북핵 문제의 역사적 근원이라고도 하겠습니다. 한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북한을 끌어안아 2단계 교차 승인을 도왔으면 어땠을까요.
“교차 승인의 실패가 북핵 문제의 원인이라기보다는 북핵 문제로 인해 교차 승인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사실에 가깝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1988년 7·7선언에서 한국의 우방국이 북한과 관계 개선에 나서도 된다는 취지로 말합니다. 공산권 국가의 올림픽 참가,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북방정책을 추진하고자 7·7선언이 나온 측면도 있으나 북한과 미국, 일본의 관계가 개선돼도 좋다고 본 것은 한국의 진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핵 문제의 기원 

1989년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가 미국 대통령이 됩니다. 부시 행정부의 방침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관계 개선을 검토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련, 동구권이 붕괴하면서 국제정세가 완화한 1991년 미국은 한반도에 배치한 전술핵을 철수합니다. 1991년엔 남북이 비핵화 공동선언을 발표했으며 이듬해 1월에는 팀스피리트 훈련 중지가 결정되고요.

이렇듯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일련의 조치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1992년 7월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결과와 북한의 신고 내용이 일치하지 않으면서 특별사찰 문제가 대두합니다. 북한이 1993년 3월 국면을 전환하고자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라는 강수를 두면서 미국,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어려워진 것이죠.”

베이징은 교차 승인에 어떤 태도였습니까.
“중국이 미국에 한중수교, 북·미수교 동시 추진을 제기했으나 워싱턴은 북한이 먼저 핵 개발을 포기하고 IAEA 사찰을 받아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일본도 북·일수교 교섭 3차 본회담에서 미국 요청에 따라 북핵 문제를 의제로 제기합니다. 이렇듯 핵 개발을 포기하는 게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의 전제조건이었죠. 또한 한중수교, 한소수교는 동서 냉전체제 붕괴 이후 중국과 소련의 실용주의적 고려에서 비롯한 것으로 교차 승인이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중국은 북한이 미국,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에 관심을 표했으나 그것이 한중수교의 전제는 아니라고 언급했고요.

한중수교 전후는 냉전 체제가 와해하면서 세계가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 때입니다. 거의 모든 나라가 경제 우선의 실용주의로 나아갔습니다. 베이징은 그 같은 흐름에 올라타 오늘날의 중국을 건설했고요. 요컨대 교차 승인 불발이 북핵 문제를 야기한 게 아니라 북한이 시대의 흐름을 무시하고 핵 개발로 나아간 것이 지금 겪는 문제의 기원이라고 봐야 합니다.”



더 큰 당근, 더 큰 채찍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구상’은 1992년 상황과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한미 군사연습의 축소 등을 검토하면서 핵 동결을 출입구로 삼아 핵 폐기 및 평화협정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인데요. 
“그때와 분명하게 다른 점이 있습니다. 북한 핵, 미사일 능력이 1992년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발전했습니다. 1992년에는 핵, 미사일 능력이 초보 수준이어서 포기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달라요. 북한이 핵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려 할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평화 구상을 실현하기가 굉장히 어려울 거예요. 제재와 대화를 병행해 당근보다 더 큰 당근, 채찍보다 더 큰 채찍으로 북한을 다루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접근 방식은 전적으로 옳은 방향이라고 봅니다. 찔끔찔끔 줘봐야 고마워하지도 않아요. 확실하게 줄 건 주되 진짜 아프게 제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6월 30일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 통일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어서 대한민국의 주도적 역할을 지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주의적 사안을 포함한 문제에 대한 남북 간 대화를 재개하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열망을 지지했다’는 문장이 나옵니다. 이를 두고 북한 문제 해결 과정에서 한국이 운전석에 앉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한국이 운전석에 앉았다는 얘기가 언론에 나오는데 실제로 그런지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에 맡기겠다는 것인지, 말치장(rhetoric)일 뿐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아요. 북핵 문제가 북한 문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 대북 정책이던 ‘전략적 인내’가 끝났다고 말합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서도 더욱 강력한 제재를 시사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 미국이 한걸음 물러서 북핵 문제에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을 지켜볼까요.

설령 미국이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했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한국의 제안에 호응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변수입니다. 북한은 핵, 평화협정 등은 미국과 협상할 문제라는 일관된 견해를 오랫동안 견지해왔습니다. 북한이 지금껏 우리의 의도대로 움직인 적이 없어요. 안타깝게도 그간 한반도 문제에서 북한이 운전석에 앉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2/4
이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목록 닫기

북한, 대만 따돌린 25년 전 ‘동해 사업’ “이제는 부상한 中이 韓에 힘 투사하려 해”

댓글 창 닫기

2020/04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