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공동기획 | 新東亞 macromill embrain ‘좌절세대’와 중산층

성별이 스펙, ‘성보라’는 없다

더 힘들고 더 불안한 ‘알파걸’들

  • 유설희 | 자유기고가 zorba8251@naver.com

성별이 스펙, ‘성보라’는 없다

2/2

“남자는 8, 9등을 해도 정식 채용될 수 있지만, 여자는 1, 2등을 해야 간신히 붙어요. 실력이나 체력이 남자보다 뒤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려고 일도 두 배로 하고, 술도 제일 많이 마셨어요. 야유회로 등산할 때 가장 앞서 산을 올라갔고요.”

성차별의 ‘벽’을 넘어 취업에 성공해도 20대 여성은 계속 불안감에 떤다. 결혼, 출산 등으로 업무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은 물론, 회사에 위기가 닥치면 ‘구조조정 1순위’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의 본사에서 근무하는 박모(28·여) 씨는 “결혼해도 아이는 안 낳을 것”이라고 한다.

“육아휴직을 쓴 여자 선배들을 보면 모두 원래 일하던 본사로 복귀하지 못하고 매장으로 발령 났어요. 그리고 다시는 본사로 돌아오지 못해요. 제가 본사에 입사하기까지 정말 힘들었거든요. 계속 본사에서 커리어를 쌓고 싶어요. 만에 하나 아이를 낳더라도 절대로 육아휴직은 안 써야 할 것 같아요.”

또 다른 박모(36·여) 씨는 7년 전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공무원시험을 준비해 9급 공무원이 됐다. 진로를 바꾼 이유에 대해 그는 “사기업에서 여성이 정년까지 근속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는 결혼할 생각이 없어요. 내 생계는 나 스스로 책임져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주변을 돌아보니 회사에 나이 많은 여자 상사가 아예 없더군요. 여직원은 죄다 20, 30대였어요.”


성별이 스펙, ‘성보라’는 없다

가난한 집안의 딸 ‘성보라’는 서울대를 졸업해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여성 취업준비생들은 “성보라가 현재를 산다면 로스쿨 진학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tvN

당당한 여직원의 뒷배

김창환 미국 캔자스대 사회학과 교수가 통계청의 2010년 인구 총조사 원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모든 학교교육을 마치고 직장 경험도 쌓아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한 시기인 30, 40대 남성은 86%가 일자리를 갖고 있는 반면, 같은 연령대의 여성은 53%만 일자리를 갖고 있다. 대졸자로 한정해도 별 차이가 없다. 대졸 남성은 90%, 대졸 여성은 57%만 경제활동을 한다(‘여전히 페미니스트가 옳다’, 주간동아, 2015년 978호). 김 교수는 “30, 40대 미국 여성의 노동참여율은 73%로 한국보다 20%포인트나 높다”고 했다.



또한 한국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돈을 못 번다.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 중 꼴찌 수준. 여성은 남성보다 36.6% 적은 임금을 받는다(2014년 기준). 한국 기업의 여성 임원 비중은 0.4%로 역시 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다.

어떻게 하면 경제활동에서의 성차별을 극복할 수 있을까. 20대 여성들은 그 방편 중 하나로 ‘자격증 있는’ 전문직 종사자가 되길 원한다. 그러나 이 또한 ‘금수저’가 아니면 어렵다고들 한다. 로스쿨에 재학 중인 강모(29·여) 씨는 “로스쿨 동기나 선후배 중에는 법조인 자제가 정말 많다”며 “아버지가 지방 공무원인 내가 가장 가난한 것 같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좋은 직장을 가지려면 몇 년씩 스펙을 쌓으며 견뎌야 하는 시대잖아요. 당연히 부모가 용돈 등 뒷바라지해주는 사람들이 유리하죠.”

20대 여성들은 채용 과정에서도 부모의 능력이 곧 자신의 실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제약회사에서 일하는 박모(28·여) 씨는 “입사동기 중 여자는 저를 제외하고 딱 한 명인데, 우리 회사의 중요 거래처 임원 딸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했다.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되진 않았지만, 그 여자 동기는 일을 너무 못해요. 대학도 경기도에 있는, 별로 들어본 적 없는 대학을 나왔어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보다는 부모 배경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합니다.”

조모(32·여) 씨는 두어 군데 ‘작은 회사’를 거쳐 재벌그룹 계열사에 취직했다. 그는 “좋은 부서에 배치받고, 별 눈치 안 보는 여성 직원 뒤에는 든든한 부모가 있더라”고 했다. “자신의 전공과 전혀 맞지 않는데도, 우리 회사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업부에 근무하는 여자 직원이 있어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한 태도여서 신기했는데, 최근에 그녀의 아버지가 다른 계열사 대표이사란 사실이 사내에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현실 때문일까. 이번 신동아-엠브레인 조사에서 과반의 여성이 중산층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경제력, 사회적 배경 등 부모의 능력’을 꼽았다. 이렇게 응답한 여성은 65.3%로 남성(48.8%)보다 16.5%포인트나 높았다. ‘나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한 20대 여성은 10.8%에 불과했다. 반면 남성은 두 배 가까운 22.8%가 ‘나의 노력’이라고 믿었다.


성별이 스펙, ‘성보라’는 없다


성보라가 없다면

기성세대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직장 탄탄한 남성과 결혼해 살림하고 아이 키우며 살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20대 여성들은 이구동성으로 “취업 못 하면 결혼도 못 한다”고 말한다. 취업준비생 한모(28·여) 씨는 “결혼한 친구들 중 한두 명을 제외하곤 전부 직장인”이라며 “요즘은 맞벌이를 해야 어느 정도 먹고사니까 남자들도 직장여성을 선호한다. 취업 못 하면 소개팅조차 기회가 없다”고 했다.  

‘엄마도 때론 사표 내고 싶다’ 저자이자 여성학 연구자인 문현아 서울대 국제대학원 강사는 “여성 국회의원이 ‘여성이 너무 똑똑한 척하면 미움을 산다’는 발언을 할 정도로 한국 사회는 양성평등에 대한 인식 수준이 너무 낮다”고 지적했다. 김영미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의 20대 여성들은 공적 영역에서 성취를 원하도록 고등교육을 받아왔다”며 “그런데 사회에서는 성취욕이 성차별로 인해 좌절되므로 20대 여성이 불만이 높고 미래에 대해 많이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남성 중심 기업문화를 고집한다면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물론 기업의 경쟁력도 약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성장 시대, 양성평등이 없다면 ‘성보라’는 없다. 성보라가 없다면 미래는 더 어둡다.





신동아 2016년 4월호

2/2
유설희 | 자유기고가 zorba8251@naver.com
목록 닫기

성별이 스펙, ‘성보라’는 없다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