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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5000억짜리 황금벤처’ 새롬기술의 비밀

‘2조5000억짜리 황금벤처’ 새롬기술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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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스닥 상장 5개월 만에 500배의 주가상승률을 기록한 新황제주. 질주하던 새롬기술이 삼성과 제휴하며 날개를 달았다. ‘글로벌 인터넷 브랜드’를 표방한 새롬의 꿈은 현실로 다가설 것인가.》
1월 11일 오전 11시 서울 플라자호텔 덕수홀. 일주일 전 인터넷 무료전화 ‘다이얼패드’의 국내 서비스에 들어간 새롬기술이 모처럼 기자간담회를 마련했다.

오상수(吳尙洙·35) 새롬기술 사장은 다이얼패드의 수익전망, 통화 폭주문제 해결방안 등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11시30분경, 시계를 힐끔 내려다본 오사장은 “지금쯤은 발표해도 되겠네요”라며 화제를 돌렸다. ‘깜짝선언’이 터져 나왔다.

“새롬기술은 글로벌 브랜드를 육성하기 위해 삼성그룹과 제휴하기로 했습니다….”

새롬이 삼성과 지분참여 형태의 제휴 계약을 한 것은 이날 10시. 새롬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 안전한 시간대까지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했다. 기자들도 일일이 신원을 확인한 후에 간담회장에 입장시켰다. 하지만 사흘 연속 하한가로 주저앉았던 새롬의 주가는 이날 9시 증시가 열리자 마자 상한가를 기록했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오사장은 난처한 질문에 대해서는 말끝을 흐리거나 비보도를 전제로 답했다. 그러나 이날 간담회는 한 인터넷 증권채팅 사이트에 의해 주최측도 모르게 생중계되고 있었다. 행사장에 있던 사이트 관계자가 핸드폰을 열어놓고 외부에서 그 내용을 실시간으로 입력해 띄운 것.



며칠 전부터 증권관련 사이트에는 ‘손정의의 소프트뱅크가 새롬에 투자한다’ ‘새롬이 야후와 손잡고 나스닥에 상장한다’는 등의 루머가 떠다녔기 때문에 수많은 투자자들이 PC 모니터를 통해 간담회 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새롬에 쏠리는 관심의 열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주가 너무 올라 부담

지난해 매출액 260억원에 순이익 12억원, 자본금 90억원. 새롬기술의 외형은 아담한 중소기업 규모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주가에 관한 한 새롬은 가위 신화를 창조했다. 지난해 8월11일 코스닥에 상장된 새롬의 주가는 수직 상승을 거듭, 12월6일 코스닥 종목으로는 최초로 주당 100만원(액면가 5000원 기준. 새롬 주식은 주당 500원으로 액면분할됐기 때문에 이 기준으로는 주당 10만원)을 돌파했고, 1월4일에는 257만원까지 치솟았다. 상장된지 5개월이 채 못돼 무려 500배의 상승률을 기록한 것.

최근 코스닥 시장이 폭락하면서 새롬의 주가도 200만원 안팎으로 떨어졌지만, 새롬 주식의 시가총액은 2조5000억원대로 재계 6위 한진그룹의 8개 상장사 시가총액을 합친 것보다 3000억원이 많고, 재계 16위 동부그룹의 6개 상장사 시가총액을 합친 것보다는 4배가량 많다. 지난해 12월 유상증자를 통해 확보한 증자대금만도 3800억원에 이른다. 아무 일 하지 않고 이 돈만 은행에 넣어둬도 연 380억원의 ‘이익’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새롬 임직원들은 스톡옵션과 우리사주를 통해 수억원에서 수백억원대의 시세차익을 올렸지만, 주가가 주체하기 어려울 만큼 폭등하자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 한 예.

12월 유상증자에서 신주의 10%가 우리사주조합에 배정됐는데, 주당 3만원(액면가 500원 기준) 정도로 예상됐던 발행가가 주가 급등에 따라 7만7900원으로 상승했다. 때문에 직원들이 우리사주 배정분을 모두 청약하려면 1인당 7억∼8억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연봉보다 많은 금액의 우리사주 청약을 할 수 없다’는 증권거래법 규정에 따라 청약가능액은 1인당 수천만원대로 제한됐다. 그 결과 우리사주 배정분의 84%가 실권처리됐다. 2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는 주식을 8만원도 안되는 헐값에 살 수 있는 기회가 눈 앞에서 사라져버린 것.

새롬이 삼성과 제휴를 전격 결정한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새롬의 대주주로 16%의 지분을 갖고 있던 오상수 사장이 이 지분율을 그대로 유지하려면 이번 유상증자를 통해 약 80만주의 신주를 인수해야 했다. 주당 발행가가 7만7900원이니 80만주를 받으려면 600억원이 넘는 돈이 필요했던 셈. 오사장이 비록 3000억원대의 새롬 주식을 갖고 있긴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장부상의 ‘평가액’에 불과했다. 따라서 새롬 연 매출액의 두 배가 넘는 600억원의 현금을 마련하려면 보유 주식을 내다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주주가 이만한 양의 주식을 한꺼번에 처분할 경우 시장에 끼치는 영향으로 보나 상징적인 의미로 보나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오사장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대안은 ‘글로벌 파트너’와 제휴하는 것. 새롬이 먼저 삼성에 제휴를 제의했다.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오사장의 유상증자분 80만주를 주당 ‘7만7900원+α’에 삼성으로 넘기는 조건이었다. 이로써 오사장의 지분율은 11%로 낮아졌고, 삼성은 4.5%의 지분을 확보해 새롬의 2대 주주로 떠올랐다.

MS식 시장 선점 전략

새롬이 벤처 신화의 주역으로 떠오른 데는 몇가지 주목할 만한 요인이 있다.

첫손에 꼽을 만한 것은 탄탄한 기술력. 오사장을 비롯한 4명의 새롬 창업멤버들은 서울대 전자계산기공학과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과에서 동문 수학한 사이다. 누구보다 경영진이 기술을 잘 알고 기술의 흐름을 제대로 짚어냈기 때문에 새롬은 통신 프로그램 분야에서 연거퍼 히트작을 쏟아내며 기술을 축적해왔다.

창업 이듬해인 94년에 출시한 PC용 팩스 소프트웨어 ‘팩스맨’, PC에 자동응답기능을 부여한 ‘보이스맨팩’, 범용 통신 에뮬레이터 ‘새롬데이타맨’ 등이 대표적인 제품들. 98년에 선보인 새롬데이타맨은 당시 95%의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던 ‘이야기’를 밀어낸 후 줄곧 점유율 1위를 달렸다. 새롬은 3개월에 한 번씩,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신제품을 내놓는 기술정책으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자극했다.

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다이얼패드도 ‘VoIP(Voice over Internet Protocol)’라는 첨단 기술을 실용화하는 데 성공한 상품이다. 변변한 기술 하나 갖추지 못했으면서 그저 코스닥 열풍에 편승해 까닭도 없이 주가가 치솟는 ‘무늬만 벤처’들에 비하면 확실하게 차별되는 측면이다.

마케팅 전략도 독특했다. 새롬은 애써 개발한 제품을 저가, 무료 공개, 번들 정책을 통해 ‘살포’했다. 모뎀도 공짜로 줬다. 투자비용을 회수하는 데 급급하기보다는 시장 선점과 인지도 향상에 주력한 것. 이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벤치마킹한 전략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한편으로 박리다매를,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운영체계가 PC업계의 표준으로 정착될 것을 노리고 헐값에 소프트웨어를 팔았다. 일단 대중성을 확보해 시장을 점유하면 나중에 얼마든지 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초기에 시장을 선점하지 못하면 경쟁력을 잃게 된다는 논리다. 소프트웨어는 한번 익숙해지면 계속 그것만 쓰게 되는 중독성을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컴퓨터 칼럼니스트 곽동수씨는 “MS워드가 글을,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넷스케이프를, 나우누리가 하이텔을 꺾지 못한 것도 시장을 먼저 점유한 소프트웨어들의 상품명이 일반명사가 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라며 “이런 소프트웨어를 쓰던 사람들은 새로 나온 제품의 정보나 명령어가 조금만 달라도 좀체 발길을 옮기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업계에선 이를 ‘기존 사용자의 저주’라고 일컫는데, 새롬이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는 것이다.

새롬은 업계에서 ‘당신들이 껌팔이냐’ ‘프로그래머로서 자존심도 없느냐’는 욕을 먹으면서도 이와 같은 사업전략을 고수했다. 덕분에 소비자 인지도를 급속히 높여가면서 ‘표준화 효과’를 얻어냈고,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로 인한 피해도 상대적으로 작았다. 다이얼패드는 이런 전략의 연장선에서 그 범위를 세계로 확대하려는 모델이다.

아웃소싱 경영

엔지니어 출신 경영진의 부족한 경영능력을 아웃소싱을 통해 보완한 것도 이채롭다. 미국에서 중학교를 나온데다 컴퓨터만 껴안고 대학시절을 보낸 오사장은 창업한 후 은행에 돈을 꾸러 갔다가 ‘담보’니 ‘어음’이니 하는 말의 뜻을 몰라 면박을 당했던 사람이다. 다른 창업멤버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경영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는 것을 절감한 오사장은 미국 조지 워싱턴대학에서 MBA를 받은 조성오씨를 95년에 영입, 경영기획실을 만들어주고 이 분야의 전권을 위임했다. 지난해 상장 직전에는 역시 조지 워싱턴대 MBA 출신으로 삼성증권에서 근무하던 김재환씨를 영입해 재무기획 이사를 맡겼다.

김이사는 기업공개 과정과 IR(기업 투자설명회), 해외 프리젠테이션 등에서 새롬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투자자들의 신뢰를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롬은 최근에도 삼성증권 애널리스트 임태성씨를 차장으로 스카웃했다. 새롬의 주가가 눈에 띄게 탄력을 받은 것은 이런 맨파워의 활약에 힘입은 바 크다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오상수 사장도 “그분들이 개발과 마케팅밖에 모르는 CEO를 대신해 참으로 많은 일을 해냈다. 다른 벤처기업가들에게도 이런 인력을 잘 활용하라고 권하고 싶다”고 했다. “벤처기업들은 대개 벤처 캐피털리스트에게 이런 일을 맡기는데, 이들은 기업공개 이전까지는 몰라도 그 후의 상황까지 커버하기는 어렵다고 본다”는 것.

새롬의 주가가 실제 기업가치에 비해 거품이냐 아니냐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새롬은 창사 6년여만에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이제는 주가 상승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업을 통해 돈을 버는 모델을 제시해야 하는 단계에 왔다. 시장 선점 전략의 결실을 거둬들일 시점에 접어든 것이다.

새롬의 궁극적인 사업방향은 그간 확보한 이용자들을 향후 구축될 종합 인터넷 포털 서비스로 끌어들인 다음 이를 기반으로 전자상거래, 광고, 멀티미디어 통신서비스 등 부가가치가 높은 다양한 인터넷 사업을 전개한다는 것. 야후와 비슷한 유형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그런 모델로 나아가는 가교 구실을 하면서 그 성공 가능성을 시험받게 될 사업이 다이얼패드다. 다이얼패드가 지향하는 목표는 두 가지다. 인터넷폰을 이용한 무료전화 서비스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면서 브랜드 사용료와 광고수익을 올리는 것, 그리고 다이얼패드 가입자들을 새롬 포털의 미래 고객으로 확보해 나가는 것이다. 최근 새롬은 다이얼패드에 총력을 기울이는 형태로 사업구조를 개편하고 있다.

따라서 새롬의 미래는 전적으로 다이얼패드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증권가를 달아오르게 하던 새롬의 주가 논란이 일각에서 다이얼패드의 사업성 논란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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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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