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법률상담을 실시한 첫날 무려 350여건의 상담이 밀리는 등 1달 내내 매일 100여건의 ‘민원(民願)’을 처리했던 정강법률포럼의 ‘로서브’는 최근 한숨을 돌렸다. 하루 평균 30건밖에(?) 접수되지 않아 담당 변호사들로서는 여유롭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된 것. 정강법률포럼의 조소현(曺沼鉉·43)변호사는 “상담을 의뢰하는 사람의 수보다 성실한 답변을 위해 준비하는 변호사가 더 많으니 자연히 사이트 운영에 여유가 생겼다”며 “이제는 신속성은 물론이고 답변의 질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최근에 무료법률상담에 뛰어든 디지털로는 48시간이 지나도록 답변이 안 될 경우 경고를 주는 등 약간의 ‘강제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상담의뢰는 즉시 처리된다.
그에 반해 제이에스 미디어가 운영하는 로가이드나 청림인터렉티브가 운영하는 콜리스 종합법률정보는 참여변호사의 열의부족과 변호사 수의 부족 등으로 원활한 상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다. 로가이드는 지난 99년 2월 일찌감치 문을 열어 사이버 법률상담에서는 효시(嚆矢)격. 하지만 설립자인 김준성(金浚性)변호사가 작고하면서 11명의 참여변호사가 다소 열의를 잃은 상태다.
형의 유업(遺業)을 이어받은 김진성(金辰性)사장은 “인터넷상에서 질문해오는 것은 대부분 중복되는 것이 많으므로 이미 상담했던 사항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상담 변호사들의 부담을 줄일 것”이라며 “이에 덧붙여 다른 인터넷 사이트들의 운영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으로 상담 변호사를 충원해 상담 기능도 강화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콜리스’의 경우도 고영소(高永昭·45) 변호사 혼자서 밀려드는 상담을 감당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현재 사이버 법률시장을 석권하기 위해 사활을 건 ‘쟁패(爭覇)’를 벌이고 있는 ‘사이버 로펌’들은 그 태생과 성격에 따라 3가지 정도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오프라인 주체와 온라인 주체가 일치하는 형태로 로가이드가 대표적. 로가이드를 매개로 뭉친 변호사들이 중심이 돼 하나의 법무법인을 탄생시키기도 했지만 최근 급속도로 팽창한 사이버 법률상담의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다소 벅찬 느낌이다. 일치하지는 않지만 개인변호사들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법률상담기능을 갖춘 ‘구멍가게’ 형태도 오프라인 주체와 온라인 주체가 일치하는 경우로 볼 수 있다. 개인법률상담소를 운영중인 김명식 변호사는 “사법연수원을 갓 졸업해 나를 알리는 기회로 삼는 동시에 공익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홈페이지를 만들고 무료법률상담을 시작했지만 솔직히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차다”고 말했다.
둘째 유형은 변호사가 주도하는 사이버 로펌형. 최용석 변호사가 주도하는 오세오닷컴이나 조소현, 홍순협(洪淳協·40) 변호사 등 정강법률포럼 멤버들이 이끄는 로서브, 민변출신 변호사가 주축인 디지털로 등이 같은 유형이다. 이 경우는 100여명 이상의 대규모 법률자문단이 참가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데 ‘코어그룹’에 있는 변호사와 주변에 있는 변호사들간에 충성도 편차가 종종 드러난다.
마지막 유형은 비법률가인 인터넷 사업가가 주도하고 변호사는 상담기능을 위해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형태다. 유료로 운영되는 예스로나 콜리스 종합법률정보 등이 그에 속한다. 이 유형은 변호사의 광범위한 참여에 한계를 느끼기 때문에 법령이나 판례, 법률상담사례 등 데이터베이스 확충에 더 치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날로그’변호사가 사이버로 간 이유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지만 ‘사이버 로펌’의 유형이나 특징에 따라 무료법률기능의 중요도에 대한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로서브나 디지털로는 사이버 무료법률상담은 ‘사이버 로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디지털로에서 활동중인 법무법인 한결의 안식(安植)변호사는 “그동안 빈곤층과 지방을 중심으로 법률서비스 대중화에 노력해온 민변에 인터넷이란 공간을 매개로 한 무료법률상담의 시작은 제3차 법률서비스 대중화 운동에 해당한다”며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는 무료법률상담이 법조 정보화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조소현 변호사도 사이버 로펌 성패의 열쇠는 무료법률상담 기능의 활성화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법적 약자인 국민이 가장 원하는 것은 자신이 연루된 분쟁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것이지 법령이나 판례가 아니라는 것. 법령이나 판례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는 일반 국민들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법조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보라는 지적이다.
이에 비해 최용석 변호사는 “인터넷 무료상담기능은 일종의 ‘계륵(鷄肋)’이라고 보는 것이 나의 견해”라며 “오세오닷컴의 지향방향도 무료법률상담보다는 사이버 종합법률정보 포털”이라고 말했다. 수요자들의 욕구가 존재하기 때문에 법률상담을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법률상담에 치중하지는 않겠다는 것.
로가이드나 콜리스도 오세오닷컴과 비슷한 생각. 로가이드의 경우 당사자들이 직접 소송을 수행해 나갈 수 있도록 ▲ 가압류 가처분 등 채권보전 ▲ 각종 소장작성 ▲ 강제집행신청 등 법정출석을 제외한 소송의 전과정에 필요한 법원제출서류의 작성 및 법률자문을 제공하는 사이버상의 ‘도우미변호사’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콜리스도 무료법률상담보다는 탄탄하다는 정평이 있는 판례, 법령, 법조 인명록 등을 찾아보기 쉽도록 정비하고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더욱 치중할 생각이다.
무료법률상담 기능을 수행하는 사이버 로펌의 대거 등장은 그동안 변호사가 주도하던 공급자 위주의 시장을 법률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수요자 시장으로 옮기게 하는 촉매 구실을 하고 있다. 좀 심하게 말하면 공개시장이 없어 상품의 질을 검증받지 않고도 잘 나갈 수 있던 변호사들에게 자신의 자질이 공개검증 받을 수 있는 장이 마련된 셈.
그렇다면 태평성대를 누리던 ‘아날로그 변호사’들은 왜 그 좋던 시절을 팽개치고 사이버화하는 것일까? 해답은 역시 디지털 정보혁명과 변호사 시장환경의 급격한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법조계, 특히 변호사업계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미 전국가, 전사회적으로 몰아치고 있는 디지털 혁명의 풍파속에서도 고고하게 무풍지대로 남아있으려고 했다. 하지만 국내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사법시험을 합격한 사람들의 모임인 변호사업계라 해도 디지털 혁명의 영향에서 예외일 수 없음을 변호사 자신들이 절감한 것.
‘젊은피’들의 쿠데타
이와 함께 변호사업계는 지난 3년간 급격한 양적 팽창이 이루어졌다. 수년간 지속돼온 사법시험 300명 시대가 무너지더니 매년 100명씩 합격자가 증가, 올해는 700명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이와 같은 법조인 증가추세는 당분간 지속돼 오래지 않아 사법시험 1000명 시대가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사법시험 합격자의 증가는 판사와 검사 등 ‘재조’의 법조인구 증가로도 연결되지만 대부분 변호사의 증가와 직결된다. 이제는 ‘등받이 높은’ 의자에 편하게 앉아 의뢰인을 기다리고 있어서는 ‘장사’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게다가 IMF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소송까지 연결되는 사건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등 변호사 시장이 급격히 위축됐다. 이와 같은 내우외환(內憂外患)속에서 변호사 업계가 나름대로 활로를 찾아 나선 것이 바로 사이버 로펌화라는 것이다.
사이버 로펌화를 지향하는 법조 정보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그동안 ‘봉’으로 여겨져 왔던 법률수요자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조소현 변호사는 “법조정보화 운동의 가장 큰 순기능은 수요자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공급자의 정보가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공개된 것”이라며 “중간상인을 없애고 법률수요자와 변호사가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체제가 만들어 졌으므로 그동안 고수됐던 고액 수임료 관행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변호사들로서도 직거래 시장이 생기면 사무장이나 법조 브로커에게 지불했던 비용을 절감한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정보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따져보면 변호사 업계를 ‘다 바꿔’보겠다는 신흥세력의 역풍(逆風)도 감지된다. 즉 법원이나 검찰 등 재조출신이나 서울대 법대출신 변호사가 아니면 명함도 내밀지 못했던 ‘여타’ 변호사가 디지털 혁명의 물결을 타고 ‘쿠데타’를 노리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정강법률포럼의 로서브에 참여한 변호사들이나 디지털로에서 무료법률상담을 해주고 있는 변호사 대부분이 이른바 ‘386세대’ 라는 ‘젊은 피’들이다.
변호사들의 공인의식
연수원을 갓 졸업한 신참 변호사들도 개인별 홈페이지를 만들고 무료법률상담을 해주는 등 얼굴 알리기에 열심이다. 올해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곧바로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김명식 변호사도 사이버 법률시장에서는 당당한 ‘스타’다. 김변호사는 “무료법률상담을 하다보니 법률전문가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을 놓고도 쩔쩔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하루에 2,3시간만 짬을 내 상담을 해줘도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상담사이트가 오픈된 지 3개월이 지나면서 질문이 꾸준히 증가해 이제는 신속한 답변을 하는데 한계를 느낀다는 김변호사는 “상담한 내용이 곧바로 수임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지방에서도 나를 안다며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호응이 높다”고 말했다.
‘민초(民草)’들이 인터넷상에 상담의뢰하는 내용은 법리적으로 복잡하거나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는 많지 않다. 그저 일상생활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임대차분쟁, 채권·채무관계 등 소소한 법적 분쟁들이 대부분이다. 법률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면 골머리를 썩히지 않고도 금방 해결점을 찾을 수 있는 경우들이다. 즉 정말로 변호사를 선임해 민사나 형사사건으로 몰고가지 않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의 경우 사이버 무료법률상담에 참여하는 변호사가 성의만 보이면 원만한 합의에 이르도록 유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회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남소(濫訴)를 막는 측면도 있다. 최악의 경우 소송으로 가더라도 온라인상에서 변호사들의 상담을 받고 임한다면 한결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무료법률상담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하늘 아래 똑같은 사건은 없다는 말이 있다. 임대차분쟁, 채권채무분쟁, 특허분쟁, 이혼사건 등 분야를 나누다 보면 유사한 사건은 있을지언정 모든 조건이 같은 사건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에 질문을 올리는 경우 객관적인 조건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은 과장하고 불리한 측면은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단 한번의 상담으로 완벽하게 궁금증을 해소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와 같은 한계를 잘 알고 있는 사이버 로펌들이 시도하고 있는 것이 변호사들과의 1대 1 ‘채팅 법률상담’. 일정한 주제를 놓고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법률상담에 응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시도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송무업무에 바쁜 변호사들이 선뜻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변호사 중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눌 만큼 ‘손(타자가)이 빠른’ 이가 거의 없다는 것. 게다가 서초동 법조타운에 아직 인터넷 전용라인이 깔린 곳이 많지 않아 전화선으로 접속하는 관계로 환경도 열악하다. 더구나 판례나 법전을 수시로 인용해야 하는 특성상 아직까지 직문직답을 해야 하는 채팅법률상담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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