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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섹스’를 통한 깨달음의 세계

‘요가섹스’를 통한 깨달음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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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소개>
  • 산부인과 전문의인 조현두씨는 부산대병원 수련의 시절 선의(船醫)로 근무, 일본 대만 필리핀 괌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여행 편력을 시작했다. 91년에는 산부인과 과장으로 재직하던 마산성모병원을 사직하고 60여 일간 중동과 유럽지역에서 배낭여행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96년에 인도 밀교인 탄트라 구도(求道) 여행을 다녀왔다. 여기에 소개하는 글은 그가 인도에서 직접 체험한 탄트라 수행 여행기로 일반인은 좀체 체험하기 힘든 세계다. 조씨는 요즘도 틈틈이 세계의 고대 유적지를 찾아 여행을 하고 있다.
[ 제 1 부: 비밀의 고대도시 카쥬라호 ]

중국을 여행하는 동안 시골에 있는 한 절에서 나는 큰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자비롭게 중생을 내려다보고 있는 대웅전의 불상을 비롯해 절을 구석구석 구경하고 다녔는데, 한 방에 이르니 불상을 모두 천으로 가려두었다.

나는 호기심에 그 천을 벗겨보고는 깜짝 놀랐다. 여자를 껴안고 있는 불상이 아닌가! 젖가슴을 드러낸 여자는 그 입술로 부처님(불교에 대해 문외한인 필자로서는 그 불상이 부처님인지 보살인지 수도승인지는 분명히 알 수 없었음)의 입술을 빨고 있었고, 한 팔은 부처님의 목을 감은 채로 그 엉덩이를 부처님의 ‘중요한 부분’ 위에 얹어놓고서 요동치고 있는 아주 생동감 있는 조각상이었다.

그런데도 부처님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수도(修道) 중인 것 같았다. 부처님의 표정과 자세는 전혀 섹스를 즐기는 것 같지 않았고 오히려 섹스를 멀리서 관조(觀照)하는 듯했다.

부처님은 섹스를 통하여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동안 수행해 오던 법력(法力)을 시험하는 것일까. 나는 거기서 뭐라고 형언할 수 없지만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한 것을 친구들에게 말해도 믿지 않을 것 같아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그때 카메라 불빛을 봤던지 한 스님이 뛰어와서 마구 화를 내며 나를 제지했다. 나는 왜 막느냐며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그 스님은 중국말로 뭐라고 소리쳤는데, 오직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탄트라’뿐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탄트라라는 말을 백과사전에서 찾아보았는데 아무리 읽어보아도 이해할 수 없는 불교용어로 적혀 있었다. 그리고 나는 병원 일이 바빠 더 이상 탄트라에 대해 깊이 들어가지는 못했다.

또다시 만난 탄트라

비가 오는 어느날 저녁 퇴근 무렵, 병원 응급실에서 나를 급히 찾는 전화가 왔다. 한 외국인이 교통사고로 다쳤는데 말이 통하지 않아서, 말은 잘 몰라도 곧잘 의사소통을 하는 나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나는 병원 전공의 시절 선의(船醫)로 근무하면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하간 부랴부랴 응급실로 뛰어가 보니, 환자는 뱃사람으로 봄베이(지금은 뭄바이로 개칭) 출신 인도인이었다. 가슴을 벗겨보니 흰 끈이 어깨에서 허리까지 걸쳐 있기에 “당신은 고귀한 신분 브라만이군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눈을 번쩍 뜨더니 나의 손을 꽉 잡으며 “Hare Rama Krishna!(라마신이시여, 크리슈나신이시여, 정말 감사합니다)”고 말했다.

그는 봄베이 해양대학을 졸업한 1등항해사 바가바나였다. 그는 다리에 골절상을 당했는데 나는 그를 많이 도와주었다. 그도 나에게 신과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 등 인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바가바나는 젊었을 때 힌두교의 시바 교단에 들어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년간 수행했다고 한다. 힌두교에서는 남녀의 육체적 결합, 즉 성적 기쁨을 단지 감각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실재(實在)하는 신과 일체가 되는 종교적 의식으로 승화시킨다고 했다.

수행자가 수년간 수행을 쌓으면 특별한 종교행사 때 신도들이 모두 제단 앞에 모여 향을 피우고 북을 치고 횃불을 돌리는 가운데 특이한 요가 행법(行法)에 따라 남녀 결합의식을 치른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서 탄트라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탄트라라는 말은 좁은 의미로 쓰일 때는 섹스를 통해 신과 일치하는 과정으로 득도(得道), 해탈(解脫), 열반(涅槃)에 들어갈 수 있는 수행의 비밀스러운 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 얘기에 아주 흥미가 당겼다. 섹스를 통해 해탈할 수 있다면, 섹스를 통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수 있다면 구태여 입산(入山)해 암자나 동굴에서 20~30년 도를 닦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나는 바가바나에게 물었다.

“나와 같이 처자식이 있는 사람도 그런 비법을 배울 수 있을까요?”

“좋은 스승을 만나면 가능하지요.”

바가바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스승(Guru:구루) 한 분을 소개해주었다. 구루 스와미 사라난다(Guru Swami Sarananda)가 바로 그분이었다. 하지만 그분은 이제 성인(聖人)이 돼 바람같이 다니는데 어제는 히말라야, 오늘은 데칸고원, 내일은 라자스탄에 나타난다고 하니 나는 맥이 빠져버렸다.

그러자 실망하는 내 모습을 바라본 바가바나가 내 손을 잡으면서 “친구! 탄트라의 비밀이 고스란히 묻혀 있는 정글 속의 고대도시 카쥬라호에 가서 일단 시작해보게!” 하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난 일단 카쥬라호에 가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바가바나는 병원에서 에이즈(AIDS) 검사를 꼭 받으라고 귀띔했다. 에이즈 검사증이 있어야만 그 비밀스러운 교단에 들어갈 수 있고,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방 터뜨릴 수 있다는 게 그의 조언이었다….

정글의 도시 카쥬라호

96년 어느날, 나는 병원에 장기 휴가를 신청하고 인도로 떠났다. 버스는 인도의 시골길을 따라 먼지를 날리며 달렸다. 인도인의 체취를 맡으며 나는 탄트라의 비밀이 묻혀 있다는 정글 속의 고대도시 카쥬라호로 가고 있던 것이다.

길가에는 원숭이들이 얼씬거렸고, 마을에서는 소들이 인간의 존경과 공양을 받으며 살고 있었고, 힘든 일은 모두 낙타의 몫으로 돌아가는 이상한 체험을 하면서 말이다.

버스 정류장에 내리니 현지인들이 마치 신기한 동물을 구경하듯 나를 둘러싸고 쳐다본다. 나는 사원까지 가기 위해 오토릭셔(삼륜차)를 탔는데 차가 떠났는데도 동네 어린애들이 한참이나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숲속 길을 한참 달렸는데 온갖 새의 지저귐이 들리고 짐승의 무시무시한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운전사에게 물어보니 원숭이 무리가 내는 소리라고 했다.

삼륜차가 달리는데 갑자기 소가 길 길 가운데 들어와 떡 버티고 섰다. 운전사는 깜짝 놀라 필사적으로 브레이크를 잡아 겨우 소 앞에서야 멈출 수 있었다. 그런데 소는 그대로 꿈쩍도 하지 않고 서 있는 것이다.

운전사가 가만히 있기에 성질 급한 내가 차에서 내려 소의 엉덩이를 살짝 걷어찼다. 그러나 소는 끄떡도 하지 않고 두 눈을 부릅뜨며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순간 너무 놀라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운전사는 새파랗게 질리며 “아이고, 우리는 이제 죽었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러더니 곧장 차에서 뛰어나와 소에게 몇 번이나 큰 절을 하며 손발이 닳도록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소가 천천히 길을 비켜 주었다.

나는 소의 그 무서운 눈초리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소는 걷어채기 전에 벌써 도망치는데… 이곳에서는 분명 소가 동네 어르신이고, 소 역시 그렇게 행동하고 있었다. 그 소는 외국의 무식한 한 개 같은 놈을 만나 생전 처음 맞아 보았을 것이다.

인도에서는 동물세계에도 계층이 엄연히 존재한다. 신 아래의 첫째 계층은 소(암소)다. 소는 신들이 타고 다니는 동물로 여겨져 수천년 동안 신성시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들은 항상 자연 속에서 사색하고, 인간들이 바치는 음식을 받아먹고, 또 항상 지그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다. 길 중앙에 소가 걸어가면 차들은 길가로 피해 서행해야 한다.

소 아래 서열로는 인간과 개가 있고, 또 그 아래에 수소와 온갖 동물들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같은 소라고 해도 암소와 수소의 대접은 천양지차다.

인도에서 놀란 것은 마을마다 암소들을 위해 특별히 ‘몸’으로 봉사하는 물건 크고 건강하고 정력 좋은 수소의 집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암소들이 대자연을 거닐며 사색을 즐기다가 성욕(?)이 발동하면 수소들이 24시간 대기하고 있는 집에 가서 밤새 젊은 수소와 즐기고 나온다는 것이다. 암소들은 언제 어느 때나 수소들에게 성관계를 요구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데 비해, 만약 (비천한) 수소가 지나가는 암소를 올라탈 경우 그 수소는 바로 그 자리에서 맞아 죽는다고 한다.

36가지 섹스 테크닉 묘사한 조각상

나는 카쥬라호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는 현지 안내인(힌두교도)을 구하여 본격적인 탐사에 나섰다. 이곳은 요즘 관광지로 개발돼 많은 외국인이 찾아 온다고 한다.

칸다리아 마하 데바 사원!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 달의 신인 찬드라의 자손 찬델라 왕국이 세운 사원이다.

이곳은 시바신을 모신 사원인데, 본당 안에 시바신의 거대한 성기(性器) 링가가 모셔져 있고 모두가 이 링가에 경배한다. 이 링가 주위에는 36가지 섹스 테크닉을 묘사한 조각상이 있어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한다.

나는 어두운 법당 안에서 촛불을 들고 천천히 사랑의 기교를 보았다. 내가 알고 있는 서너 가지의 남녀교합 자세가 얼마나 빈약한 지식이었는지 정말이지 실감했다. 어떤 조각은 ‘six-nine(6-9)’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1000년 전에 벌써 이 왕국에서는 이런 방법이 성행하고 있었다니 놀라웠다.

갑자기 음산한 바람이 불어 촛불이 꺼졌다. 깊은 탑 속의 법당 안은 암흑천지가 돼버렸다. 나는 안내인을 불렀다. 그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져 무서웠다. 겨우 빛을 찾아 밖으로 나오니 안내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거대한 링가 앞에는 낮은 제단이 또 있었다. “무엇을 하는 곳이냐”고 물어보니, 이곳의 젊은 여사제(女司祭)가 이 낮은 제단에 올라와 완전 나체로 춤을 추는 곳이라고 한다. 나는 “혹시 탄트라에 대해 아십니까” 하고 물어보았더니, 그 힌두교 신도는 너무나 반갑게도 그것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정액은 머리에서 만들어져(사실 정액은 머릿속에 있는 뇌하수체의 자극으로 생성된다) 정수리를 타고 내려와 배꼽에 모여 있다가 남녀가 교합할 때 성기를 통하여 방사됩니다. 인간의 정액은 생명의 에너지입니다. 이 에너지가 고갈돼 결국 인간은 죽는 것이죠. 이 에너지를 역회전시켜 다시 머리 속으로, 생명의 근원으로 되돌려 보낼 수 있다면 그때가 바로 해탈의 순간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탄트라입니다.”

“예? 뭐라구요? 그게 정말입니까?”

나는 놀라서 다그쳐 물었다.

“1000년 전 이 제단에서는 그 성스러운 의식이 행해졌죠. 승려들은 북을 쳤고 신자들은 주위에서 횃불을 돌렸습니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젊은 여사제가 이 제단에 올라와 춤을 추었습니다. 춤이 절정에 이를 때, 여사제는 이 순간을 몇 년이나 기다린 수도자를 데리고 이 제단에서 성적(性的) 교합을 가졌습니다. 그것도 단순한 교합이 아니었고 요가로 오랜 수도 생활을 겪은 사람만이 취할 수 있는 극히 어려운 체형으로 이루어졌죠. 성적으로 월등하게 뛰어난 여사제의 엉덩이 놀림에 대부분의 수도자는 그 피 같은 생명의 에너지를 헛되이 쏟아버리기 일쑤였죠. 그래서 10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란 말이 나왔죠.”

“아 그랬군요. 한국에도 그런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여사제의 혼신의 유혹에도 에너지를 쏟지 않고 여사제가 나가떨어질 때까지 버텨내면 그 에너지는 머리 끝까지 올라가 그 수행자는 열반의 세계, 득도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 부처가 되는 것이죠.”

예술이냐? 외설이냐?

나는 그 설명을 듣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 난 그 비밀의 실마리를 찾은 거야. 안내인은 나를 그 옆에 있는 데비 자그단베 사원으로 안내해 주었다. 거대한 탑의 벽면을 장식한 남녀 교합상들이 살아 있는 듯 생생하고 그 뜨거운 사랑의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적나라했다.

이것은 시바신의 제단에서 벌어지는 성(聖)스러운 성(性)의식의 실제 모습을 조각한 것인데 일부가 파괴되었다. 그중에 서서 교합하는 자세는 아주 어려운 체위법인데, 여사제와 수도자 모두 요가를 통한 오랜 수도생활로만 이런 체위가 가능하다.

여사제는 허리를 깊이 꺾고 다리를 수평으로 들어 남자를 감았으며, 남자 또한 한쪽 다리로만 균형을 잡고 있다. 결국 두 남녀는 한 다리로만 서 있는 격인데 여사제의 격렬한 엉덩이 춤으로 서로 넘어질 수 있기 때문에 좌우에서 두 집사가 팔을 잡아주고 다리를 들어 올려주어 성의식을 도와주고 있다.

이 외에도 나는 조각들을 볼 때마다 찬탄과 놀라움의 비명을 질렀다. ‘아 이럴 수가! 저, 저런 것까지’ 하고 말이다. 조각들은 너무 사실적이고 생동적이어서 도대체 예술인지 외설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환상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한 조각 앞에 서서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안내자의 설명이 필요없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조각이었는데, 안내인은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이 조각 작품에 제목을 붙인다면 ‘하급병사들의 하루’쯤 될 것 같은데, 지루한 생활을 하는 병사들이 끓어오르는 성욕을 참을 수 없어 암당나귀에다 욕구불만을 해소하는 모습이다. 한 병사가 암당나귀를 뒤에서 안고 욕구를 해소하는 동안, 오른쪽 뒤에서 기다리는 다른 병사는 기지개를 켜면서 하품을 하고 있는데 아마도 다음 순번인 듯하다.

그리고 애꿎은 당나귀는 숨을 헐떡거리고 있으며, 당나귀 옆으로는 예쁜 팔찌를 찬 한 여자가 차마 눈뜨고는 못 볼 것을 본 양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지나치고 있다. 또 당나귀 앞의 한 병사는 기다리다 지쳤는지 물건을 꺼내 자위행위를 하고 있다. 그 표정은 마치 부처님의 얼굴처럼 평온한데, 아마 사정한 직후의 얼굴인 듯하다.

나는 어설픈 솜씨나마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러면서 안내자에게 “요즘도 저런 탄트라 비법을 수행하는 교단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여러 곳에서 의식을 행하고 있는데 나 같은 외국인은 접근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나는 다시 물어보았다.

“혹시 스와미 사라난다 스승님이 어디 계신지 아십니까?”

안내자는 그 분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분은 아마 카시(Kashi)에 계실 겁니다. 카시라는 말은 ‘영적인 빛으로 충만한 도시’라는 말인데, 흔히 그곳을 바라나시라고 합니다.”

바라나시(Varanashi)! 그곳은 바로 힌두교의 성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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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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