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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송 퀴즈 PC 게임이 최고의 영어공부였다”

최우수 영어학습교로 뽑힌 대전 대신고

“팝송 퀴즈 PC 게임이 최고의 영어공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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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전 대신고등학교는 올해 초 교육부가 실시한 99년 교과교육연구활동 평가에서 전국 초·중·고 2000개 연구팀 가운데 최우수팀으로 뽑혔다. 이 학교는 영어 수업시간에 교과서를 덮고 팝송·컴퓨터 게임·영화·연극·퀴즈를 다양하게 이용했다. 게다가 이 멀티 미디어 수업 시간에는 영어만 사용하도록 했다. 학교 영어 교육의 심각한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는 지금, 이 학교의 영어 교육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독특한 수업 방식을 알아보았다.》
오늘은 팝송 수업 시간이다. 송경주 교사(31)가 교단에서 영어로 간단하게 인사한다. “This is pop song class. Do you like pop song?”“Yes!” 하고 학생들이 소리쳤다. 곧이어 컴퓨터로 조작되는 54인치 파워포인트 모니터가 교단 왼쪽에 켜진다. “Look at the monitor. we have two aims.” 송교사의 말이 끝나자, 파워 포인트 스크린에 첫번째 학습목표가 영문으로 떠오른다. 「Through pop song, students are able to develop listening, writing, reading, speaking skills」 두 번째 학습 목표가 곧이어 떠오른다. 「Through pop song, students are able to have a lot of interest in English.」

파워 포인트가 꺼지자 송교사는 학생들을 향해 돌아선다. “Let me introduce one excellent team. This team is battle cruiser.” 송교사의 말이 끝나자, 교실 한 복판에서 몇몇 학생들이 엉거주춤 일어설 준비를 한다. “Are you ready?” “Yes.”“Really?” 웃음이 터져나왔다. 학생들은 박수를 치고 4명의 학생들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앞으로 나온다.

이들이 나오자 송교사는 “This team prepared for one fantastic pop song”이라고 말한 뒤 옆으로 빠졌다. 앞에 나온 학생 가운데 리더격인 학생이 나서서 수업을 진행한다. “I introduce my team member. I’m leader. My name is ○○○ . This is ○○○. This is ○○○ ….” 소개가 끝나자, 리더는 노트북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학생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러자 곧 교단 왼쪽 파워포인트 스크린에 영문 자막이 뜬다. 「Please enjoy yourself.」

자막이 꺼지자 박신양과 전도연이 주연한 영화 ‘약속’의 뮤직비디오 ‘Good bye’가 흘러나온다. 이 곡은 지난해에 영화 ‘약속’ 삽입곡으로 크게 히트한 팝송이라 모르는 학생이 없다. 교실 안의 모든 학생이 파워포인트 스크린에서 눈을 뗄 줄 모른다.

뮤직 비디오가 끝나자, 스크린에는 영문 질문 하나가 떴다. 「I can see the ( ) living in your eyes.」 조금 전에 들었던 뮤직비디오 가사 가운데 일부분이다. “Who can answer this question?”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손을 든다. 한 학생이 일어나 “Pain.”이라고 답한다. 정답이다. 진행자는 노트북 컴퓨터를 조작하던 팀원에게 “Can you show me some example?”이라고 물었다. 다시 파워포인트 화면에 영문이 오른다. 「He has a lot of pain in his back.」 진행자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Who can translate this sentence?”….



팝송 ‘Good Bye’로 영어 수업을 발표한 이 팀 리더는 진행자다. 팀원들은 각각 할 일이 정해져 있다. 컴퓨터를 조작하는 팀원, 심지어 팝송을 직접 부르는 학생도 있다. 이런 식으로 어휘 공부가 끝나면 구문 공부가 이어진다. 팝송 수업을 발표하는 팀이 미리 준비한 단답형 문제를 학생들이 푼다. 팝송 가사를 바탕으로 한 영작 공부도 이어진다. 영작의 경우 7명씩 묶인 한 조가 협동으로 푼다. 이처럼 이 학교 영어수업에서는 학생끼리 서로 배우고 가르친다. 어휘·구문·독해·영작 등 팝송을 통한 멀티미디어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은 ‘Good Bye’를 노래부르며 전과정을 마무리한다. 물론 교단 옆의 파워포인트 스크린에는 음악에 맞춰 영문 가사가 자막으로 오른다.

팝송팀의 수업 발표가 끝나자, 이 광경을 지켜보기만 하던 송경주 교사가 나섰다. Review Time이다. 그는 팝송 ‘Good Bye’에 나온 단어·숙어·구문 등을 학생들에게 복습시킨다.

그 다음 팀은 10대뿐 아니라 젊은이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끈 컴퓨터 게임 ‘스타 크래프트’로 수업을 진행하는 학생들이다. 선생님이 그동안 그렇게 하지 말라고 주문하던 컴퓨터 게임이 수업 시간에 교재로 등장한 것이다. 이 팀은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게임의 현란한 전투 장면을 스크린에 재생하며 학생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사실 모든 학생이 영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고등학생치고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는 없다. 그러니 수업 집중도를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모두가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3분 정도 전투 장면이 진행되다 꺼지자, 팀 리더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 게임에 출연하는 six unit의 이름을 묻는 것이다. 물론 영어로 묻고 대답한다. 팀원들이 번갈아가며 각 unit의 생김새와 행동 양태를 영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면 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들은 손을 들고 이를 알아맞히는 것이다. 또 게임에 나오는 다양한 명령어를 통해 듣기 훈련도 하고, 다양한 생활영어 표현도 공부한다.

말하기 능력 크게 상승

이 밖에도 퍼즐을 이용하는 팀, 영어 연극을 하는 팀, 애니메이션을 이용하는 팀 등 갖가지 대중문화가 수업에 동원된다. 팀별로 매주 한 번씩 발표를 맡고 수업 준비에 매달린다. 팀들은 영어 실력이 달라 소외되는 학생이 없도록 심화반 2명, 기본반 2명, 기초반 2명으로 팀을 꾸리고 있다. 팀원 6명은 각자 가장 자신있는 분야를 책임진다. 수업에는 교사용 노트북 컴퓨터와 54인치 대형 모니터가 동원된다. 파워포인트와 MP플레이어 같은 멀티미디어도 큰 몫을 한다. 한편 수업을 맡은 영어 교사는 발표가 끝날 때까지 지켜만 보다가 어휘를 재반복해주고 정리해줄 뿐이다. 이런 식이니, 뒤에서 엎드려 자는 학생은 거의 없다.

대신고의 영어 수업이 그 동안의 영어 수업과 크게 다른 것은 말하기 능력을 키워준다는 점이다. 수업의 모든 과정을 영어로 해야 하므로, 말하기 능력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물론 발표식 수업 자체를 통해서 학생들의 능력이 올라가는 것도 있지만, 역시 이 수업의 묘미는 준비 과정에 있었다. 준비 과정 자체가 대단한 공부였다. 팝송 수업을 예로 들면, 수업을 발표하기 1∼2주 전부터 교사와 수업을 진행할 팀원이 모여 수업 계획과 진행 방법을 자세하게 토론하였다. 그 후 학생들은 실제로 곡을 선정하고, 멀티시스템을 이용해서 수업 자료를 제작했다. 준비 과정도 교사는 전체적인 흐름을 잡아주고 조언만 했다. 팝송팀은 한 학생이 전체 진행을 이끄는 리더를, 두 학생이 팝송에 나오는 중요한 어휘나 구문을 요약하고 설명하는 역을 맡았다. 또 한 학생은 팝송을 직접 부르는 가수가 되고, 나머지 한 학생은, 수업시간에 쓸 수 있도록 컴퓨터로 수업 자료를 만들었다. 팀원들은 방과 후에 모여서 자기 역을 연습해서 완벽한 수업 형태를 만들어 나갔다.

송경주 교사는 학생들이 만든 수업 모델과 자료에 감탄하면서, 아이들의 창의성과 상상력이 얼마나 무한한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송교사에 따르면 학생들이 스스로 대본을 써서 연출한 영어 연극인‘Hero’와 ‘Problem and Solution’수업도 아주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그런 탓인지 오히려 영어 수업을 기다리는 학생도 생겼다. 어떤 그룹에서는 준비한 수업을 보여주기 위해 집에 있는 개인 데스크톱 컴퓨터를 학교에 들고오기도 했다. 한 학생은 스타 크래프트 게임 수업을 준비하다가, 99년 2학기 중간고사를 망치기도 했다.

영어는 연습으로 익혀야

지금까지 한국 영어 공교육은 영어를 무슨 복잡한 공식과 단어를 암기하는 방식으로 우리말 어순에 맞추는 독해 교육, 단어 암기와 문법 시험에 치우쳐 왔다. 말하기보다 빨리 읽고 답 찾기가 영어 공부라는 식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학교 2학년 서주형군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서군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10년 동안 살다가 한국에 돌아온 학생이다.

“미국에서는 교과서 개념이 별로 크지 않아요. 한국에서는 독해와 문법을 교과서만 가지고 공부하니까 매우 지루합니다. 또 한국의 영어 교과서에는 미국 실생활에서 쓰이는 단어가 별로 없더군요.”

듣기 능력 시험을 입시에 포함시킨 것도 불과 몇년 전 일이다. 그나마도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말하기 지도는 이보다 더하다. 현재 대학입시 듣기 문항에는 말하기 문제가 5개 들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말하기 문제라고 볼 수가 없다. 정지된 문항이 살아 움직이는 의사 소통 기능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영어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기능이고 기술이다. 이 말은 영어를 학습이 아니라 연습(practice)으로 익혀야 한다는 뜻이다. 학교에서 배운 문법 규칙과 지식 체계로 영어를 배운 사람들은 막상 영어를 쓰려고 하면 배운 규칙이 생각나지 않아 영어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연습을 통해 영어를 익힌 사람들은 규칙을 생각할 필요없이 습관적으로 영어가 튀어 나온다. 지난해 송경주 교사의 영어 수업을 처음 접한 이 학교 3학년 김인환군의 말에서 이 사실은 잘 드러난다. “송선생님과 처음 영어 수업을 할 때는 정말 당황했습니다. 적응이 안 되더군요. 한번도 이런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그저 쓰고 베끼고 외우는 영어 수업이었어요. 새로운 방법으로 하니까, 단어도 속담도 금방 익힐 수 있었습니다.” 3학년 한재균군은 “수능시험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듣기와 말하기는 확실히 많이 늘었습니다. 게임을 좋아하기 때문에 외국인을 만날 기회가 많은데, 새로운 수업을 하고부터는 외국인을 만나는 데 자신감이 생겼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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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 cy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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