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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승려’가고‘부자 승려’ 떴다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 막전막후

‘정치 승려’가고‘부자 승려’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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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조계종 총무원장을 뽑는 선거가 ‘조용하게’ 치러졌다. 1998년 서울 도심의 조계사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패싸움도, 법정 공방도 없었다. 이에 대해 “변화가 시작됐다”고도 하고 “문제가 잠복했다”고도 한다. 조계종 총무원장선거에서 과연 무슨 일이 있었나.
‘정치 승려’가고‘부자 승려’ 떴다

조계종 총무원장선거가 사상 처음으로 잡음 없이 끝났다. 지난 2월24일 총무원장 선거인단의 투표 모습.

‘장교와 사병의 한판 승부’ ‘정치가와 행정가의 대결.’

지난 2월24일 치러진 조계종(曹溪宗) 총무원장 선거의 속명(俗名)들이다. 선거는 상당히 치열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조용히 끝났고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총무원장에 당선된 법장(法長)스님(수덕사 주지)은 전형적인 사판승(행정승)이다. 그는 종단 ‘사병’이 주축이 된 선거운동원들의 치밀한 표심 공략에 힘입어, 중앙 정계 경력이 화려한 종하(鍾夏) 전 불교방송 이사장을 물리쳤다. 선거 직전까지도 종단 중진 승려들의 지원을 받은 종하 전 이사장의 당선이 유력해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179대 140, 39표차. 법장 후보의 ‘압승’이었다. ‘장교’들의 어이없는 패배였다.

조계종 일각에서는 이번 총무원장선거가 지난 대통령선거를 꼭 닮았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보수적 성향의 이회창 후보가 기호 1번, 개혁 성향의 노무현 후보가 2번이었던 것처럼 종하 후보가 1번, 법장 후보가 2번이었던 것도 비슷했다. 선거 전날 종단의 두 원로가 지지후보를 바꾼 것도 대선과 똑같다는 것이다. 전임 총무원장인 정대(正大) 스님과 월주(月珠) 스님이 선거 직전 법장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철회하고 종하 후보를 밀었는데 이는 대통령선거 전날 밤 정몽준 의원이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것과 비슷했다.

두 전임 총무원장은 막강한 영향력에 재력까지 갖춘 인물들이다. 두 사람은 과거 총무원장선거에서도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정대 스님의 총무원장 당선은 월주 전 총무원장의 후원에 힘입은 것이며, 그 이전 고산 총무원장 체제의 탄생도 월주 전 총무원장의 지원에 의해 가능했다.



후임자 밀어주기 관행 깨져

1998년에 대형 분규를 겪은 이후, 총무원장선거에는 전임 원장이 신임 총무원장을 밀어주는 전통이 생겨났다.

그런 새 전통 탓에 ‘한정적인 간접선거’로 치러지는 총무원장선거의 판세는 선거 이전에 일찌감치 결정되곤 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이 전통마저도 깨졌다. 이번 선거는 ‘사상 처음’이라는 관용어가 잘 어울리는 선거였다. 사상 처음으로 선거에 의해 평화적으로 종권이 이양됐다. 또한 사상 처음 비구니(여승) 탁연(卓然)스님이 총무원 최고위직인 문화부장에 임명됐다. 선거 결과가 파격이었던 만큼 선거 이후 종단 운영도 파격의 연속이다.

순조롭게 치러진 총무원장선거를 두고 오히려 파격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조계종의 별난 역사 때문이다. 1962년 조계종은 정치권력에 의해 반강제로 획일화된 조직이 됐다. 자발적으로 총무원장선거를 택한 것이 아니라 박정희 정권이 조계종법에 총무원장선거제도를 두도록 강제했던 것이다. 이 결과, 선거엔 항상 잡음이 뒤따랐다. 선거는 산통(産痛)에 가까운 고행과정이었고 선거 때만 되면 분규가 그치지 않았다.

선거법은 간단했다. 현직 총무원장은 중앙종회 의원 81명이 선출하는데 이 가운데에는 총무원장이 임명한 직능 종회의원 20명이 포함돼 있다. 또 교구본사 의원도 총무원장의 영향권 안에 두도록 해 선거인단을 사실상 거수기로 만들어버렸다. 이처럼 현직 총무원장이 아닌 경쟁자가 도저히 이기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벽을 친 상태에서 총무원장선거가 치러지다 보니 ‘3선 금지’의 규정을 하찮게 보았고 총무원장들은 번번히 연임을 시도했다. 이는 분규로 이어져 심각한 내홍(內訌)을 겪으면서 자동적으로 관권이 개입하는 불행의 역사가 이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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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찬 불교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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