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급자족하는 시골살이에서는 가족의 협동이 매우 중요하다. 헛간 만드는 일을 거들고 있는 아이들.
1996년 서울을 떠나 산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했다. 산청에서 2년 살다가 지금은 이곳 무주에서 살고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살아왔기에 자연에서 사는 삶이 뭔지를 몰랐다. 부모님 고향이 평안도라 시골에 사는 친척도 없었다. 이런 사람이 자연에서 살아보니 얻는 게 많다. 그 중 하나를 꼽으라면 사람도 자연이라는 믿음이다.
한데 살아가다 보면 자꾸 자연을 잊고 살기 쉽다. 사는 곳이 산골로 옮겨져도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인간사에 휩쓸려 살아가기 십상이다. 그런 자신을 되돌아보며 자연에 가까이 가려 노력했다. 산에 자주 오르려 했고, 귀기울여 듣고 눈 뜨고 본 걸 달력에 빼곡이 적기도 했다.
남편은 찹쌀 방아, 딸은 조청 끓이고
우리 식구는 부부, 그리고 중3 나이 딸과 초등2학년 나이 아들 이렇게 네 식구다. 논밭 농사 골고루 하여 먹을거리 자급하고 집도 새로 지었다. 사는 데 자리가 잡히면서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네 식구가 집에서 함께 일하고 공부하며 살고 있다.
올 봄에도 고추장을 담갔다. 고추장하는 날을 잡고 그 날에 맞춰 재료를 하나하나 꺼내 손질한다. 재작년 겨울에 키운 밀을 지난 겨울 싹 틔워 얼리면서 말린 엿기름, 오리 논에서 가꾼 찹쌀, 새들과 싸우며 키운 콩으로 쑨 메주, 손수 모종을 내 키운 고추…. 이 모두 우리 식구가 가꾸고 갈무리한 것들이다.
고추장 담그는 일도 식구들이 함께 해야겠지. “고추장을 함께 담그자”고 하니 다들 “좋다” 한다. “먼저 고추장 조청을 끓여야 하는데 집 안에서 가스불로 할까, 가마솥에 할까?” 물으니 딸애가 가마솥에 하잔다. 그래 가마솥에 찹쌀과 엿기름을 넣고 삭히기 시작했다. 남편은 찹쌀 방아를 새로 찧고, 중간중간 불을 보고.
딸애는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지듯 조청 끓이는 일을 맡았다. 조청을 끓이려면 불을 은근하게 때면서 가끔 저어주어야 한다. 딸애는 아궁이에서 나오는 매운 연기에 눈이 빨개져 나무주걱으로 가마솥을 저어주고 자기 볼일을 보다 다시 저어주곤 한다. 작은애는 집안일에 보탬이 되고자 노력했다. 그 덕에 나는 가끔 들여다보며 다른 일을 준비할 수 있었다.
드디어 조청이 붉은 빛을 띠기 시작했다. 조청을 만들려면 먼저 삭히고, 그 다음 거른 뒤 끓이고 다시 은근히 달여야 하니 일고 여덟 시간이 걸린다. 한 국자 떠서 맛을 본다. 달달하기가 정신이 아득할 정도다. 온 식구가 조청부터 맛보았다. 조청이 한 김 나간 후 거기에 메줏가루와 고춧가루, 그리고 소금을 넣고 저어주면 고추장이 된다. 온 식구가 나서준 덕분에 고추장뿐만 아니라 쌈장, 토마토 고추장, 거기에 단술, 엿까지 골고루 만들 수 있었다.
다음날 봄나물 몇 가지가 마련됐다. “어제 버무린 고추장을 넣고 비빔밥을 해먹자.” 싱싱한 봄나물을 씻고 밥을 하니 온 식구가 나선다. 큰애가 호두를 까서 잘게 부수고 작은애는 오리알을 네 개 꺼내 부친다. 식구마다 입맛까지 헤아려가며…. 누나는 노른자를 터뜨려서, 엄마는 노른자를 안 터뜨려서, 아버지는 아무래도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