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23일 도하 언론은 1999년 12월 한국과 미국 간에 ‘범죄인 인도협정’이 체결된 후 처음으로 미국 정부가 한국에서 범행을 저지르고 미국으로 간 미국인을 한국 수사기관에 인도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최초로 한국에 인도된 범죄인이 바로 카렌이었다. 카렌은 2년 전, 그러니까 만 19세이던 2001년 3월17일 새벽 서울 이태원의 K모텔에서 미국 여대생 제시카(가명)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녀를 체포해 한국에 넘긴 것은 미국의 FBI였다.
제시카 피살 사건은 한미간에 외교 현안이 되기도 했다. 이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똑같은 부모의 심정 때문이었다. 딸이 잔인하게 살해되었는데도 범인이 잡히지 않자 제시카의 부모는 각계 각층에 탄원을 했다. 백악관에도 했고 의회에도 했으며 국무부도에도 했다.
그리하여 한국을 방문하게 된 미국 의원들 중 일부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제시카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해 범인을 잡아달라고 청탁하기도 했다.
법정에 선 카렌은 또렷한 영어로 범행을 부인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카렌이 2002년 2월4일부터 6일 사이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주 헌팅턴시에 있는 R호텔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상태에서 FBI와 CID(미 육군 범죄수사대) 요원을 만나 조사에 응하던 중 제시카 살해 사실을 자백했다는 점이다. FBI와 CID측에 따르면 카렌은 “11개월 만에 모든 것을 털어놓으니 속이 후련하다”고까지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 인도된 카렌은 “콜린 파월이 주한미군을 보호하기 위해 나를 한국에 보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 말은 제시카를 죽인 것은 주한미군인데, 이 사실이 밝혀지면 비록 피살자가 미국 여대생이긴 하지만, 미군 범죄의 잔혹상이 알려지기 때문에 대신 자기를 범인으로 붙잡아 한국에 보냈다는 뜻이다. 카렌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FBI까지 개입된 대단한 ‘음모’가 아닐 수 없다. 카렌의 주장은 사실일까.
관련자의 진술 중에 공통된 것과 부검 자료 등 객관성 있는 자료를 근거로 이 사건이 일어난 경위를 재구성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