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들어 MBC가 공개사과 방송을 한 횟수만도 다섯 차례. 이른바 ‘구찌 핸드백 파문’(2005년 1월)으로 연초부터 체면을 구긴 이래, 오락 프로그램 ‘파워TV’의 촬영기간 조작(1박2일 촬영한 내용을 2박3일 촬영한 것처럼 거짓 방영·6월), ‘생방송 음악캠프’ 성기노출 방송사고(7월), ‘뉴스데스크’의 일본군 731부대 관련 오보(8월), 다수 직원이 연루된 ‘브로커 홍씨 사건’(8월)과 같은 비리사건과 방송사고가 잇따라 터져나오면서 공영방송사로서의 신뢰도가 거듭 추락했다. 이쯤 되면 “‘문화방송’이 아니라 ‘사과방송’이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올 법하다.
그뿐이 아니다. 취재 결과 일부 MBC 직원의 기강 해이 또한 위험수위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었다. ‘신동아’는 MBC의 한 기자 출신 부장급 간부가 절도 등의 혐의로 형사입건돼 경찰의 조사를 두 차례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문제의 간부는 9월2일 MBC 본사 보도본부 보도전략팀에서 보도제작국 소속으로 자리를 옮긴 S부장(47). 그는 지난 7월5일 새벽 2시5분쯤 서울 논현동의 한 재즈바에서 지인(知人)과 술을 마시던 중 근처 테이블에 놓여 있던 한 20대 남성의 지갑을 가져가 그 안에 든 ‘체크카드(check card·직불카드와 신용카드의 중간형태인 지불결제 수단)’로 인근 심야 이발관에서 선불요금 8만원을 결제하려다 피해자에게 발각돼 경찰에 넘겨졌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인 20대 남성은 당시 혼자 맥주를 마시다 지갑을 테이블 위에 놓아둔 사실을 미처 모른 채 평소 안면이 있던 재즈바 주인 옆의 바텐더 의자로 자리를 옮겼고, 이 과정에서 지갑을 손에 넣은 S부장이 카드를 사용했다는 것. 그러나 카드 분실신고를 해둔 덕에 카드승인이 거절됐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받은 피해자는 곧 이발관으로 쫓아가 S부장을 찾아내 실랑이를 벌였고, S부장은 피해자의 신고로 관할 서울 강남경찰서로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S부장의 범죄혐의는 절도, 그리고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강남서 형사과 관계자는 “피의자(S부장)와 피해자가 다투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졌으나 이후 양자가 합의해 폭력혐의에 대해선 ‘공소권 없음’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절도혐의에 대해선 피의자가 줄곧 ‘만취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함에 따라 추가 조사를 벌이고 있으며, 조만간 사건을 검찰로 송치할 것”이라 밝혔다. 한편 이발관 종업원은 피해자의 카드로 요금을 결제하려던 이가 S부장이라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에 대해 S부장은 9월9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술 때문에 ‘필름’이 끊겨 전혀 복기(復棋)가 되지 않는다”며 사건 당시 만취상태였음을 강조했다. 그는 또 “사건이 사내 일부에 알려진 뒤 회사의 명예에 누를 끼친 점을 뉘우치고 윗분들에게 사죄했다. 또 도의적 책임을 지기 위해 보직 변경을 자청, 9월2일 단행된 인사에서 자리를 옮겼다”며 “취중에 저지른 실수”라고 해명했다.
본사 부장급 간부 절도혐의로 형사입건
S부장의 범죄혐의가 그의 직무와 연관된 것이라 보긴 어렵다. 문제는 S부장이 사회적으로 높은 윤리의식과 도덕적 책무를 요구받는 언론 종사자로서, 그것도 공영방송사 간부 신분으로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계된 사실에 대한 MBC의 부적절한 대응에서 찾을 수 있다. S부장은 지난해 17대 국회의원 선거의 출마예상자(강원 속초·고성·양양·인제 선거구)로 한때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한 공인(公人) 신분이다.
그럼에도 MBC의 오모 감사실장은 9월9일 이뤄진 통화에서 “S부장 사건에 대해 MBC 내에서 어떤 조치가 이뤄지고 있냐”는 물음에 “사내에서 그와 유사한 소문이 돌지만, 루머 수준이라 현재로서는 탐문단계일 뿐이다”고 답했다.
과연 그럴까. 경찰은 S부장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이미 MBC 본사측에 사건 내용을 전한 바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MBC의 일부 직원 사이에서도 “S부장이 남의 카드를 취득해 안마시술소에서 사용했다더라”는 등의 소문이 나돈 바 있다. MBC 사내 인터넷 게시판에도 유사한 내용의 글이 오른 적이 있다.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김상훈 위원장은 “S부장 사건에 대해 아느냐”는 질문에 “회사가 본인에게서 경위서를 받은 뒤 합당한 조치를 취하지 않겠냐”고 말해 이미 MBC 내 상당수 직원이 S부장 사건을 알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감사실측의 답변은 최근 잇따라 불거진 MBC 관련 각종 비리·방송사고의 연장선상에서 S부장 사건이 외부로 드러날 경우 다시 한 번 자사 이미지가 심대한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해 쉬쉬하며 내놓은 군색한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취재과정에서 MBC가 국정감사를 앞두고 S부장 사건이 국회 등에 알려지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으려 한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