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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기자 주성하의 ‘비교체험, 남과 북’

낡은 자전거로 먼지 나는 시골길 달리는 행복을 아십니까?

탈북 기자 주성하의 ‘비교체험, 남과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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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에서 태어나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주성하 기자가 솔직담백한 ‘두 한국’ ‘두 체제’ 체험기를 보내왔다. 2001년 서울에 온 그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2003년 동아일보사에 입사, 현재 국제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 주변에선 그가 남한 사회에 누구보다 잘 적응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험난하고 외로웠던 그의 서울 생활 적응기.
탈북 기자 주성하의 ‘비교체험, 남과 북’
남한사람들은 탈북자에 대한 첫 인상으로 목에 꽃다발을 걸고 두 손을 흔들며 “자유를 찾아왔습네다” 하고 외치는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그럴 만도 하다. 탈북자는 목숨 걸고 도착한 이 땅이 진정 ‘자유의 땅’이라 믿는다. 미래에 대한 기대로 부푼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는 6000명.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 또한 막연한 자유의 환상을 품고 이 땅에 정착한 탈북자다. 한국에서 보낸 38개월, 나는 아침마다 붐비는 서울 지하철에서 ‘불량주부일기’를 보며 출근한다. 퇴근한 뒤에는 집에서 TV를 보다가 잠드는 평범한 직장인이 됐다. 지금 나는 ‘과연’ 자유를 찾았는가.

지금은 나도 최신 가요 몇 곡쯤은 부를 줄 안다. 한국에 온 지 1년쯤 됐을 때 가장 이국적인 느낌을 갖게 한 곳은 노래방이었다. 노래방에서 본 내 또래의 남한 사람은 귀에 낯선, 듣기조차 숨이 찬 노래를 열정적으로 불러댔다.

타임머신 타고 2000년으로

그럴 때면 구석에 가만히 앉아 ‘나는 이방인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내가 부르는 노래는 주로 트로트. 한번은 회식자리에서 노래를 하라기에 ‘바위섬’을 불렀더니 한 선배가 “입사 7년차 이후 처음 듣는 노래”라고 했다. 졸지에 옛 사람이 된 것이다.



한국에서 살면서 북한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반응은 연령대에 따라 다르다. 40대 이하는 주로 흥미롭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40대 이상인 사람과 이야기하면 뭔가 통하는 것이 있다. “아, 우리도 1960년대 초반엔 장거리 전화하려고 우체국에 가던 시절이 있었지” “내가 학교 다닐 때도 달걀은 도시락 반찬용이었어” 이런 얘기를 듣다 보면 남한의 1960년대가 지금의 북한과 비슷한 것 같다.

나는 1960년대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2000년대로 온 것인가. 몇십년 동안 혼수상태에 있다가 갑자기 깨어났다고 치자. 그런 내가 주위 상황에 자연스럽게 적응하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에게는 주위에서 부르는 노래도 다 낯선 것이고, 입고 다니는 옷도 새로운 패션일 것이고 건물도 분명 새로울 것이다.

선군사상, 자폭정신, 수령 아버지

나는 화성에서 날아온 외계인도 아니고 유럽에서 온 이방인도 아니다. 수십 년 전부터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얼마 전에 깨어나 혼돈을 겪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이런 사람에게 누군가 우쭐한 얼굴로 “당신 이런 차 못 타봤지?” 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불쌍한 사람이다. “그때는 이런 차가 없었으니 당신이 모르는 게 당연하지요”라고 해야 맞는 말이리라. 기분 상하게 “이런 것 못 먹어봤지?”가 아니라 “옛날에는 못살아서 이런 것을 먹기가 쉽지 않았죠?”라는 식으로 말한다면 듣는 사람이 편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타임머신을 타고 온 사람 처지에서 보자면 살면서 겪는 모순이 많다. 우리는 분명히 같은 시대를 살았고 같은 사건을 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한 사건을 각기 다른 시각으로 보기를 강요받았다. 남한 사람이 밝다고 배울 때 나는 북한에서 어둡다고 배웠다. 남쪽에서 어둡다고 하면 나는 밝다고 말했을 것이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사람보다 더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이런 혼란을 겪으면서 나는 이 땅에 정착하고 있다.

나는 그래도 조금 나은 축에 든다. 휴전선에 깔린 지뢰밭을 넘어 한달음에 이 땅에 발을 디딘 사람은 어땠겠는가. 나는 한국에 오기 전 중국에 잠시 체류했다. 중국이 한국보다 20년 뒤처져 있다고 하던데, 그렇게 따지면 나는 1960년에서 1980년을 거쳐 2000년에 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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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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