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②‘일제시대 ‘당동리 6○○번지’였던 땅의 지번을 다른 것으로 바꾼 환지계획서. 이때도 이미 이 땅의 소유주는 이재극이 아닌 다른 이였다.
③현재의 당동리 6○○번지에 대한 토지대장. 1982년 구획정리로 새로 생겨난 국가 소유의 땅이다. 지목은 구거(溝渠), 면적은 14765㎡로 일제 강점기 토지조사부의 ‘당동리 6○○번지’와는 완전히 다른 땅임을 알 수 있다
토지대장을 보여주자 관련 공무원은 “사정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은 1960년대 토지대장을 복구할 때 일제시대 토지조사부 기록을 근거로 했다는 의미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파주·문산 일대 토지대장이나 등기부등본 같은 정부기록 문서들이 거의 다 멸실됐다. 이후 토지대장을 복구하면서 그때까지 남아 있던 유일한 자료인 토지조사부를 참고한 것이다. 당시 공무원이 일일이 현장을 방문해 조사하는 일도 병행했는데, A씨 이름이 있는 걸로 봐서 당동리 6○○번지 땅을 실제로 그가 점유 또는 사용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문제의 땅에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면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살펴본 일제 강점기의 ‘토지조사부’나 1960년대 작성한 ‘토지대장’에 나와 있는 ‘당동리 6○○번지’ 땅은 현재의 등기부등본에 나와 있는 ‘당동리 6○○번지’ 땅과 전혀 다른 땅이라는 것이다.
“완전히 별개의 땅”
이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1982년 6월 완료된 구획정리 관련 문서다. 김씨가 소송을 낸 당동리 땅은 이때 국가 소유로 등기된 것이다. 반면 토지조사부 기록에 이재극의 것으로 돼 있던 당동리 땅은 구획정리가 완료되면서 지번이 변경된 것으로 드러났다. 구획정리를 통해 국가 소유로 등기된 당동리 6○○땅은 토지조사부상 등재돼 있던 특정 땅의 지번이 변경된 것이 아니라 이때 처음 생긴 지번인 것이다.
지자체 관련 기관 공무원은 “일제 강점기 이재극 소유의 당동리 ‘6○○’은 다른 지번으로 변경되면서 죽은 지번이 됐다. 바로 그 죽은 지번을 현 국가 소유 당동리 땅에 붙인 것”이라고 했다. 즉 이전의 당동리 6○○땅에는 새 지번을 부여하고(새 지번은 개인정보 보호상 밝히지 않기로 한다), 지번이 없던 땅에 당동리 6○○이라는 지번을 부여한 것이다.
일말의 의혹도 남기지 않기 위해 당동리 땅이 1982년 국가 소유로 등기되기 이전의 상태를 추적하기로 했다. 그러나 관련 문서를 아무리 뒤져도 이 땅이 그 전에는 땅이 아니라 수로일 뿐이었음이 거듭 확인됐다. 파주등기소 담당 공무원은 “타 지번에서 변경된 것이 아니고 새롭게 생성된 지번이니까 1982년 이전의 서류가 없는 것이다. 패쇄등기부에도 기록이 없는 걸로 보아 과거에 개인 소유로 등기된 적이 없는 땅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농업시설 관련 담당자는 “농지법 165조에 근거해 도로·관개용수로·배수로·구거·제방·하천 등의 시설은 국유지로 개인이 소유할 수 없다. 설사 1950년대 법 시행 이전에 개인소유였다 할지라도 보상 등을 통해 국가에 강제편입됐을 것이다. 만일 당동리 농수로가 1950년대에 국가에 강제 편입된 땅이라고 가정한다면 그것과 관련한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한다. 그게 없다면 개인소유가 아니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구획정리 당시 죽은 번지를 전혀 다른 땅에 갖다 붙이면서 이번 소송 사건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실소했다.
이는 관련 기관 담당 공무원 네 사람의 의견이 정확히 일치했다. “일제시대 토지조사부에 이재극 소유로 나타난 당동리 땅은 현재 소송 대상이 된 국가소유 당동리 땅과 전혀 다른 땅이며 단지 우연히 지번만 같을 뿐”이라는 것이다. 두 땅의 위치가 상당히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현 국가 소유 당동리 땅에 일제 강점기 이재극 소유의 땅이 일부 편입되었을 가능성도 전혀 없다.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이재극의 손자며느리 김씨는 일제 강점기 시조부가 사정받은 땅과 단지 지번이 동일하다는 이유로 전혀 다른 땅을 대상으로 엉뚱한 소송을 제기한 셈이다. 이에 대한 김씨측 입장을 듣기 위해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담당 변호사 이모씨와 여러 차례에 걸쳐 통화를 시도했다. 취재내용과 질문요지를 정리한 질의요청서를 팩스로 보냈지만 기사 마감시간까지 아무런 연락이나 답변도 없었다. 변호사 사무실 직원을 통해 “오후에 들어온다는 메모를 전하라”는 이 변호사의 말을 전해 들었지만, 이후 접촉을 수차례 시도했으나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