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부모 육아교실은 실습 위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육아를 앞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매우 유용하다. 노인들이 실질적인 육아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므로 맞벌이 부부들은 가능하면 예비 할머니 할아버지가 참여할 수 있도록 권유해보는 것이 좋다.
할머니들의 육아 노동을 국가가 인정하고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제도도 생겼다. 여성가족부가 시행하는 ‘아이돌보미 서비스’가 그것이다. 아이돌보미 서비스를 신청하면 돌보미가 만 12세 이하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 집에 찾아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서초구의 경우 시범적으로 손자를 키워야 하는 예비 할머니들이 전국 시·군·구에서 시행하는 소정의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국가에서 지불하는 보육비를 받으며 자신의 손자를 돌볼 수 있게 했다. 보육비는 맞벌이 가정의 수입 정도를 감안해 산정하는데 시간당 2000~6000원 수준이다. 자신의 손자를 돌보며 돈까지 받을 수 있는 꽤 매력적인 조건이라 신청하는 할머니가 점차 늘고 있다.
흔히 맞벌이 부부는 아기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에 사로잡히기 쉽다. 아기가 조금만 아프거나 성장 발달이 늦거나,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면 그 책임을 아기를 돌보지 못하는 자신들에게 돌린다. 하지만 육아에서 중요한 것은 부모의 양육 여부가 아니라 양육 태도다. 하루 종일 아기와 함께 있다고 이상적인 건 아니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으면 좋겠지만 문제는 아기와 보내는 시간의 ‘질’이다. 흔히 전업주부가 아기에게 쏟는 과도한 보살핌과 집착에 가까운 사랑은 오히려 아이의 인성 발달에 해가 된다. 맞벌이 가정의 아기라도 올바른 육아 철학을 바탕으로 균형 잡힌 보살핌과 애정으로 돌본다면 독립심 있고 적응력 강한 아이로 키울 수 있다.
할머니에게 아기를 맡기는 경우 성격이나 교육적 부분에서 부정적인 영향이 없을까 고민하는 맞벌이 부부들이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할머니 손에서 자란 남자아이의 성격은 안정감이 높아지고 여자아이는 안정감과 배려심이 높아진다고 한다. 할머니의 내리사랑은 아기를 정서적으로 잘 자라게 해준다. 정서가 안정된 아기는 신체적으로도 잘 자란다. 오늘날 핵가족이나 맞벌이 가정의 취약성을 할머니의 따스함으로 메울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전통적 가치를 잃어가는 세대에 예의범절과 어른 공경의식을 가르치기에도 좋고 세대 간의 교감을 이룰 수 있다. 육아 경험이 풍부한 할머니의 노련함은 아기 훈육을 둘러싼 모든 상황에서 긍정적 요소가 많다. 아기의 정서적 측면에서 할머니는 가장 훌륭한 조력자임에 틀림없다.
‘할머니=정서, 부모=교육’ 역할 나누기
하지만 할머니가 키운 아이는 사회성이 떨어지고 인내력이 부족해지기 쉽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할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 속에서 아기가 응석받이가 되거나 지나치게 의존적으로 자란다는 것이다. 과도한 사랑은 독이다. 이는 젊은 엄마들도 새겨야 할 대목이다. 요즘 아이들이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의존적 성향이 두드러지는 것은 엄마들의 비뚤어진 자식 사랑과 대신 챙겨주는 습관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되 자기 판단과 자율적 선택을 할 수 있는 분별력을 키워주는 양육 태도가 필요하다.
아무래도 할머니는 교육적 역할보다 정서적 역할에 치중한다는 사실을 고려해 맞벌이 부부들이 교육적 역할을 맡는 방식으로 역할 배분을 해야 한다. 할머니는 이론보다 경험과 관습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최신 육아 지식 정보를 수월하게 얻을 수 있는 젊은 부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요즘 할머니들은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므로 젊은 부부들이 할머니에게 육아 지식을 제공하고 육아법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나누는 것이 좋겠다.
양육 갈등은 보통 육아법에 대한 견해차 때문에 생긴다. 일반적으로 젊은 엄마들은 규칙적이고 원칙적인 육아를 선호하고, 할머니는 풍부한 경험으로 그때그때 아기 욕구에 맞춰 아기를 다룬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지호 할머니(67)는 며느리와의 육아 갈등 때문에 한동안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워낙 잘 안 먹는 애라서 늘 전전긍긍했는데 며늘애가 ‘이유식 때 맞췄어요?’ ‘사탕 먹였어요?’ 하면서 자꾸 체크하는 거야. ‘애 봐주는 공도 모르나’ 싶더라고. 한번은 지호가 옆집 애가 먹는 과자를 탐내기에 줬더니 아주 잘 먹어. 그러다 엄마가 퇴근하니까 이 녀석이 토하고 난리가 났지 뭐야. 졸지에 ‘애기한테 불량식품 먹이는 할미’가 됐어. 며늘애와 한바탕 전쟁을 치렀지.”
지호 할머니와 며느리는 결국 대화로 갈등을 풀었다고 한다. 과자라도 먹이고 싶은 할머니와 아기한테 좋은 식습관을 들이고 싶은 젊은 엄마의 충돌은 흔히 있을 법한 일이다. 육아 과정에서 이런 일은 숱하게 생긴다. 양육자가 친정엄마라고 해도 갈등이 덜하진 않다. 대놓고 요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도리어 친정엄마에게 상처가 되어 큰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문제는 양육을 바라보는 차이에서 오는 마찰이고, 이런 대립은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노력으로 해소할 수 있다. 갈등이 생겼을 때는 즉시 대화를 통해 풀어야 한다.
‘맡기기’ 아니고 ‘공동 육아’
육아 갈등을 줄이려면 서로 지켜야 할 규칙을 미리 정해놓는 것이 현명하다. 아기를 맡기고 데려가는 시간, 집안일의 한계와 배분, 아기 응급 상황 발생 시의 조치 등 역할을 가능하면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좋다.
흔히 육아에 대한 고집이 아기 엄마와 할머니의 양육권 주도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많다. 아기와의 유대를 강하게 하기 위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애정을 쏟는 할머니도 있다. 이런 양상은 아기 엄마도 마찬가지다. 아기를 사이에 두고 힘겨루기를 하는 이런 일은 아기 성장 발달과 정서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