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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집 얹혀사는 어른’ 10년 새 91% 증가

3040 캥거루족 천태만상

‘부모 집 얹혀사는 어른’ 10년 새 91%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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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해 일가를 이룬 뒤에도 부모와 함께 살거나 부모에게 각종 물적·인적 지원을 받는 이가 늘고 있다. 아예 독립을 포기하고 부모의 집에 머무는 30, 40대 미혼자도 증가했다.
  • 자녀가 부모를 ‘봉양하는’ 시대는 끝나고, 바야흐로 부모가 자녀를 ‘모시고’ 사는 시대, 늘어나는 캥거루 대가족의 실태를 취재했다.
‘부모 집 얹혀사는 어른’ 10년 새 91% 증가

중년 자녀와 손주를 돌보며 사느라 각종 부담에 시달리는 노년층이 늘면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40대 중반인 김모 씨 부부는 결혼 직후 분가해 살다 몇 년 전 중·고생 두 자녀와 함께 부모 집으로 들어갔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이다. 칠순의 김 씨 어머니는 맞벌이하는 아들 부부에게 아침 밥상을 차려주고 손자·손녀 뒤치다꺼리까지 하느라 힘이 부친다. 택시기사로 한 달 120만 원 남짓 버는 김 씨 아버지도 손자·손녀가 “피아노 사주세요” “스마트폰 사주세요” 할 때마다 “할아버지한테 사달라고 해”라며 노골적으로 부담을 떠안기는 며느리가 곱게 보이지 않는다.

내일모레면 쉰을 바라보는 미혼의 아들과 함께 사는 이 모 할머니는 “아들 장가보낼 꿈을 접은 지 오래”라고 했다. 대학 졸업 후 연극판에 뛰어들어 지금껏 무명배우로 살고 있는 아들의 수입은 1년에 200만~300만 원. “결혼은 둘째치고 따로 나가 살 형편이라도 됐으면 좋겠다”는 게 할머니의 솔직한 심정이다.

7월 초, 한국은퇴자협회(KARP) 사무실에서 만난 60, 70대 회원 10여 명은 하나같이 ‘다 커서도 부모에게 손 벌리는 자식’ 이야기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시집, 장가갔다고 부모한테 손 안 벌리는 자식이 어디 있나” “아들 녀석이 스마트폰 제품이 새로 나올 때마다 바꿔달라고 손을 벌린다. 100만 원씩 하는 걸 안 사주면 짜증내고 성질을 부리는데 어떡하나.” “어릴 때부터 말 떨어지면 다 들어주며 키웠더니 어른이 돼도 떼만 쓰면 다 해준다고 생각한다. 다 자식 잘못 키운 내 탓”이라는 푸념과 한탄이 쏟아졌다.

최근 부모에 기대어 사는 30, 40대, 이른바 ‘캥거루족’이 늘고 있다. ‘캥거루족’은 어머니의 배주머니에서 사는 캥거루처럼 어른이 된 뒤에도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고 부모 품을 떠나지 못하는 자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서울시가 지난 6월 발표한 ‘통계로 본 서울의 가족구조’에 따르면 2010년 현재 가구주인 부모와 동거하는 30~49세 성인은 48만4663명으로, 2000년의 25만3244명보다 91.4% 증가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어린 시절처럼 지금도 부모의 보호와 양육을 받는다. 60세 이상 부모를 대상으로 자녀와의 동거 이유를 물은 결과 “자녀가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독립생활이 불가능해서(29.0%)”, “손주 양육 등 자녀의 가사를 돕기 위해서(10.5%)” 등 ‘자녀 부양’을 위한 것이라는 응답이 39.5%에 달했다. 반면 “경제·건강상의 이유로 본인(부모)의 독립생활이 불가능해서”라는 응답은 32.3%였다.

팍팍한 세상살이의 탈출구



김효정 한국노인의전화 연구원은 “요즘 자식들은 형편이 되면 가능한 한 분가해서 살려고 한다.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는 대부분 부모의 경제력이나 도움에 기대기 위해서다. 과거처럼 부모를 봉양하며 자식의 도리를 다하려는 자녀가 별로 없기 때문에, 3대가 함께 사는 가족의 경우 속을 들여다보면 부모가 자식과 손주를 부양하는 형태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런 탓인지 서울시내 60세 이상 노인 중 향후 자녀와 함께 살고 싶다고 답한 이의 비율은 2005년 49.3%에서 2011년 29.2%로 6년 새 20.1% 포인트 감소했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이처럼 캥거루족이 증가하는 이유로 ‘노동시장의 악화’를 꼽는다. “1960년대 산업화 이후 지속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던 한국 경제가 활기를 잃은 지 오래 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높은 성장을 기대할 수 없게 되면서 지금의 30, 40대는 부모 때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 최근 사회문제가 된 결혼 기피 현상과 저출산은 사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개인의 대응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캥거루족 증가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실업, 경제곤란, 자녀 양육의 어려움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부모와의 동거를 선택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자식에게 애프터서비스?

한국 특유의 가족문화도 캥거루족이증가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자식을 명문대에 보내고 번듯한 기업에 취직시킨 뒤 보란 듯이 결혼시키는 걸 부모의 의무이자 자랑으로 삼는 문화 때문에 부모가 죽을 때까지 자식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김효정 연구원은 “지금의 30, 40대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 아래 태어난 세대다. 부모는 양육 과정에서 이들에게 ‘올인’했고, 결혼시킨 뒤에도 ‘애프터서비스’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식 역시 어른이 된 뒤에도 부모에게 의존적이다. 이 때문에 경제적으로 부유하든 그렇지 않든 부모라면 자식을 챙기는 문화가 형성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70대 김모 씨도 그중 하나다. 부부에게 나오는 기초노령연금 18만 원으로는 생계를 꾸리기 어려워 폐지를 주워 생활비를 버는 그는 2년 전까지만 해도 부족하지 않게 살았다. 3층짜리 다가구주택을 월세를 놓아 다달이 180만 원씩 받은 것. 그런데 아들이 사업에 실패한 뒤 목돈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월세를 모두 전세로 돌려 아들의 사업자금을 마련해주고 나니 당장 생활비가 없었다. 김 씨는 “처음엔 집을 아예 내놓았는데 팔리지 않아 그나마 우리 부부가 길에 나앉는 상황은 면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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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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