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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독살(毒殺)의 나라? 역사 상업주의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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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독살(毒殺)의 나라? 역사 상업주의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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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석차

조선은 독살(毒殺)의 나라? 역사 상업주의는 가라!

세계사를 다 알고 살아야 하나? 다 알 수 있는 대상은 없다. 그래도 유럽 중심의 세계사를 비판하고 오류를 바로잡는 세계사 교과서가 있어 다행이다.

헤겔은 전교 석차가 아니라 역사 석차를 매겼다. 동양, 그리스와 로마, 게르만이라는 역사의 주요 단계를 설정하고, “동방세계는 단지 한 사람이 자유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뿐이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러하다. 그리스와 로마세계는 약간의 사람이 자유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르만세계는 모든 사람이 자유라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들이 역사에서 고찰하는 최초의 정치 형태는 전제정치이고, 두 번째는 민주정치, 세 번째는 군주정치이다”라고 선언한다.

역사의 진보를 인간 자유의 확대 과정으로 인식하는 관념이 여기, 바로 이 헤겔의 발상에서 연유했다. 그는 역사의 궁극적 주체를 ‘세계정신(Weltgeist)’이라고 불렀다. 세계정신으로 나타나는 역사의 법칙은 개인의 뒤에서, 개인의 머리 위에서 저항하기 어려운 힘으로 활동한다. 자본주의의 발달로 상업이 전 지구적으로 확대되면서 사람들은 비로소 세계사(보편사 Welt-Geschichite)의 관념을 갖게 됐다. 세계정신은 그 세계사의 새로운 형이상학적 구성물이다. 이전의 동아시아 사람들에게는 동아시아가 세계였다. 그러나 그들은 세계사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이후 우리는 ‘전체 역사’가 인류사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를 흔히 ‘대문자(大文字) 역사’라고 한다. 싫으나 좋으나 이 그랜드 스케일의 역사철학은 자본주의의 팽창과 함께 우리 머릿속에 ‘이성이 자기를 실현하는 자유의 역사 종점이 곧 근대’라는 관념을 확실히 심어줬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지금까지 철지난 헤겔 역사철학의 전도사로 활동하며 이름을 얻고 있다.

‘우주 일반의 지식’



헤겔의 공로는 크다. 우리가 역사 시간에 ‘세계사’를 배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헤겔 역시 ‘세계사’를 공부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중국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중국이 존재한다는 사실뿐’인 정도의 역사 지식을 가지고 ‘역사철학강의’에서 그토록 용감하게 써댈 수 있었던 데 대해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후 유럽 지성사는 문명, 진보라는 담론을 둘러싸고 매우 과감하고 때론 멋대로의 조작을 감행해왔다. 물론 자본주의라는 물질적 토대가 그 배후였다.

우리는 헤겔의 역사철학 전체를 논의할 이유도, 시간도 없다. 오늘의 주제는 사실의 의미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오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주제에 관해서만 다시 확인해보기로 하자. 러셀이 ‘서양철학사’(최문홍 역, 집문당, 1982)에서 한 말을 먼저 들어보자(936, 939쪽).

“헤겔이나 다른 많은 철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이 우주의 한 부분의 성격 역시, 다른 부분이나 혹은 전체에 대한 관계에 의해 근본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전체에 대한 그 부분의 위치를 설정하지 않고서는 어떤 부분에 대해서도 올바로 진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체에 대한 어떤 부분의 위치란 다른 부분에 의존해 있으므로 전체에 대한 그 부분의 위치에 대한 참된 진술은 동시에 전체에 대한 모든 다른 부분의 위치를 정하게 될 것이다. 이리하여 참된 진술은 오직 하나밖에는 없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전체의 진리 이외에는 진리가 없게 마련이다.”

자, 다 좋다. 그러나 거기에는 시초부터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위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지식이 우주로부터 시작될 수 있는가. 나는 ‘태종은 세종의 아버지이다’와 같은 형식의 명제는 많이 알고 있지만, 전 우주는 모른다. 만일 모든 지식이 우주 일반(the universe as a whole)의 지식이라면 결국 어떠한 지식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헤겔의 말 어딘가에 잘못이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만일 역사학자가 오직 전체 진리만을 말하겠다고 약속했다면 그는 영원히 침묵하겠다고 약속한 것과 같다. 그리고 그는 영원히 전체 진리를 말하지 못하는 자신을 경멸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아니면 헤겔처럼 모르면서 아는 척하든지.

유네스코 역사 프로젝트

그런데 의외로 이런 ‘전체론적 오류’는 역사가들 사이에서 매우 흔하게 나타난다. 원래 모든 메타-역사학자, 즉 헤겔 같은 역사철학자들은 이런 오류의 제물이다. 슈펭글러, 토인비, 콩트, 칸트, 비코 등등(스탈린식으로 해석된 마르크스도 종종 여기에 포함되는데,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마르크스의 역사학은 별도로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일단 ‘신동아’ 2012년 10월호에 실린 글로 대신한다).

하지만 크고 작은 형태의 ‘전체론적 오류’가 이런 메타-역사학자들에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체론적 오류’를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도 낭만적으로나 무의식중에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유네스코 역사 프로젝트(UNESCO History Project)는 ‘탈(脫)중심적’ 방식으로 역사 이해를 증진하고, ‘중심’보다는 ‘주변’이나 ‘현장’의 역사를 주된 대상으로 삼고자 방향을 틀었지만, 예전에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1945년에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당초 “과거를 그 전체로써 다시 캡처하고, 모든 인간의 기억을 종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1965년, 그 프로젝트의 2권에서는, 기원전 1200년부터 기원후 500년까지 고대 사회에 대한 전체 진실을 담아내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37명의 기고자와 자문가가 참여했다. 역사학에서 참으로 놀라운 규모의 연구진이었다.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한 비평가의 말이다.

“정말 드물게도, 그렇게 박식한 사람들이 그렇게 오래 역사에 대해 힘들여 연구한 결과로는 너무 볼 게 없었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했던 것이다. 모든 것을 설명하려던 프로젝트는 거의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 채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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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항녕│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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