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생기고, 돈 잘 버는 이른바 톱탤런트인 40대의 K씨는 수없이 망설이다 결국 비뇨기과 문을 두드렸다. 두 아이의 아버지로 단란한 가정의 가장인 그가 서울 강남의 P비뇨기과를 찾은 것은 2001년 초여름.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매니저와 함께 병원에 도착한 그는 진료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과 병원 직원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황급히 진찰실로 들어갔다.
7∼8년 전부터 시작된 K씨의 병세는 2년 전부터는 아예 발기가 안 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K씨는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남성으로서의 자존심은 둘째치고 인기에 치명타라고 생각해 그동안 병원을 찾지 못했다.
병원 갈 때도 눈에 띌까 안절부절
병원을 찾기 전에 비아그라도 먹어보았지만 부작용 때문에 머리만 아플 뿐 별 효과를 볼 수 없었다. 그의 아내도 남편이 유명 연예인이다 보니 섹스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어느 누구와도 드러내놓고 상의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았다고 한다. K씨는 결국 발기부전 때문에 부부 생활이 파탄 직전에 이르자 위기감에 뒤늦게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시기를 놓친 탓에 치료는 더뎠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한국방송연기자협회 지정병원이기도 해 연예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이 병원 원장 장송선(48) 박사는 “K씨가 겉으로 보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이지만 같은 남자로서 동정심마저 들 정도였다. 과도한 스트레스가 발기부전의 원인이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장원장은 “연기자들은 주연·조연 할 것 없이 생활이 불규칙하고 남다른 스트레스 탓에 성기능 장애가 여느 직장인들보다 많이 생기는 편에 속합니다. 밤 새워 촬영하고 술 담배도 많이 하고…. 요즘에도 치료를 받고 있는 연예인이 적지 않아요. 그 중에는 미혼의 젊은 연예인도 몇 명 있어요. 정말 안타까운 것은 연예인들이 일반인에 비해 병이 상당히 악화된 상태에서 병원을 찾는다는 겁니다. 성기능이 20∼30%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태가 대부분”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장원장은 “연예인들은 남들의 눈을 의식해야만 하는 직업 특성상 제때 병원을 찾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여자 연예인들이 산부인과를 꺼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 연예인들은 비뇨기과를 찾는 것을 몹시 두려워한다”고 털어놓는다.
대형 스크린 또는 안방의 브라운관 속을 화려하게 누비는 연예인. 그들은 불안정한 직업의 ‘대표선수’다. 겉보기에는 멋있는 직업이지만 언제 인기가 떨어져 방송이나 업소 등에서 퇴출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잘나가는 ‘스타’들은 광고 출연료 등으로 목돈을 챙기기도 하지만 ‘보통’ 연예인들은 언감생심이다. 목돈은커녕 매달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도 빠듯한 연예인이 태반인 게 현실이다.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불안
한국방송연기자협회 임영식(52) 사무국장은 “현재 회원으로 등록한 연기자가 1400여 명에 이르고 있지만 이 가운데 300∼400명만이 실제 활동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불러주는 프로그램이 없어서 잠정 휴업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들 연기자를 포함해 각각의 협회에 등록된 가수, 개그맨 등 연예인은 총 4000여 명에 이르지만 협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현재 활동중인 연예인은 1000명을 밑돈다.
일반 작장인들은 언제 책상을 비워야 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연예인들은 그와는 다른 형태의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직업은 있지만 ‘정해진 일자리’가 없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 매일매일 그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는 것.
연예인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원인 중에서도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은 ‘불안정한 미래’다. 때문에 대부분의 연예인은 왕성하게 활동하는 중에도 인기가 떨어져 설자리가 없어질 때를 대비해 항상 부업을 염두에 둔다. 연예인의 부업 중 최고의 아이템은 지금까지는 먹는 장사. 하지만 대중들에게 알려진 얼굴을 무기로 창업하여 성공한 사람은 많지 않다.
조정경기장이 있는 경기도 하남의 미사리에서 라이브 카페 ‘김학래·임미숙의 루브르’를 운영하고 있는 개그맨 김학래. 그는 카페 문을 연 4년 전부터 매일 새벽 별을 보면서 귀가한다. ‘이름 값’을 믿고 느슨하게 가게를 운영한 선후배 연예인이 줄줄이 문닫는 걸 옆에서 지켜본 그는 주방에서 쓸 음식재료를 사기 위해 매일 자신이 직접 새벽시장을 돌아다니고 화장실 청소, 음식 맛, 종업원들의 서비스까지 하나하나 챙긴다.
그는 “직장인처럼 매달 정해진 날짜에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고 또 퇴직금이 적립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늘 미래가 불안해 집안의 가장으로서 안정된 수입원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서 부업을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방송 출연료를 모아서 부자가 된 연예인은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씀씀이가 큰 것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고정 수입이 없어 생활인으로 살아가기에는 부적합한 직업”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