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쩐’ 앞에선 가족애도 실종

경제난에 급증한 ‘상속전쟁’

  • 박은경 객원기자 | siren52@hanmail.net

    입력2014-01-21 10: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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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사하는 자식은 두지도 말라’고 할 만큼 법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해온 사람들이 송사에 휘말리고 있다.
    • 부모자식, 형제자매까지 법정에 나와 다툼을 벌이는 재산상속 분쟁 백태.
    ‘쩐’ 앞에선 가족애도 실종
    #1 일찍이 결혼해 도시로 나온 40대 후반 여성 한모 씨는, 시골 유지로 만석꾼 소리를 듣던 아버지가 함께 농사짓는 첫째와 둘째오빠 명의로 논밭을 사들일 때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큰오빠가 죽자 아버지는 자신의 전 재산을 큰며느리와 손자에게 물려줬다. 이후 아버지가 사망하자 한 씨는 그 많던 재산을 딸인 자신은 한 푼도 못 받은 것에 대해 서운함을 내비쳤다. 하지만 둘째오빠는 “예전에 내 명의로 된 땅을 산 건 아버지 돈이 아니라 내 돈이었다. 돌아가실 때 나도 받은 게 없다”며 여동생을 외면했다. 당시 둘째오빠의 나이는 10대 중반으로 미성년이었다. 올케 역시 “아버님이 재산을 우리한테 물려줬으니 아가씨한테 줄 게 없다”고 발뺌했다. 억울하고 화가 난 한 씨는 둘째오빠와 올케, 조카를 상대로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 40대 남성 윤모 씨는 여동생과 함께 두 형제를 상대로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생전에 사이가 안 좋았던 부모가 이혼하면서 4명의 자식은 각기 두 편으로 나뉘어 아버지와 어머니 편을 들었다. 이를 괘씸히 여긴 아버지는 사망 직전 자신을 끝까지 따랐던 두 형제에게만 부동산 등 전 재산을 나눠줬다. 이에 분개한 윤 씨가 두 형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 윤 씨는 부동산 외에 생전에 아버지가 증여한 현금자산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아버지 명의의 거래 통장 명세 등 각종 증거자료를 수집 중이다.

    유류분 사건 10년 새 8.5배

    세상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적지 않다. 그중 으뜸으로 꼽히는 게 ‘돈’인 세상이 됐다. 부모자식과 형제자매 사이에 상속을 둘러싼 다툼도 날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통계에 따르면, 2011년 상속 관련 상담은 632건. 전년도와 비교할 때 약 3.4배 급증했다. 2012년에도 627건에 달했다. 상담소 분석에 따르면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상대적으로 부모의 재산 상속에 대한 자식의 기대감이 높아져 자신의 상속분이 얼마인지 미리 알려고 하거나, 부모가 사후에 자녀들 간 다툼이 일 것에 대비해 유언 절차나 상속분에 대해 알아보려고 방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연락이 끊겼던 생존 배우자나 형제자매가 피상속인이 사후에 재산 또는 빚을 남기자 상속분과 한정승인, 상속 포기 등의 절차를 문의하는 경우도 많았다.



    지난해 갑작스레 남편을 잃은 50대 중반 여성 김모 씨는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남편이 남긴 재산을 상속하는 문제로 괴로움을 겪었다. 남편 생전에 사업자금을 대준 큰아들과 해외 유학까지 시킨 둘째아들, 돈 잘 버는 남편과 결혼해 아쉬울 것 없는 큰딸까지 자식 4명 중 3명이 자신들의 상속분을 나눠달라고 요구한 것. 김 씨는 남편 사후 남은 재산이라곤 5억 원에 달하는 집 한 채가 전부인 상황에서 자식들 요구로 인해 당장 집을 팔고 전세를 얻어야 할 처지로 내몰렸다. 그는 “아이들과 달랑 집 한 채를 놓고 싸우는 건 못할 짓이다. 평소 재산 명의를 남편 앞으로 해둔 게 후회된다”고 했다.

    ‘쩐’ 앞에선 가족애도 실종

    아버지의 재산인 100억 원대 땅을 받기 위한 자식들의 고군분투를 그린 MBC 드라마 ‘백년의 유산.’

    상속과 관련해 가족 간 첨예한 소송을 부르는 바탕엔 ‘유류분 제도’가 있다. 1977년 민법이 개정되면서 신설된 이 제도는 피상속인이 재산상속에 있어 일정한 상속인을 위해 반드시 남겨둬야 할 부분(유류분)이 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은 생전 증여 또는 유증에 의해 상속인이 자신의 유류분을 침해당했을 때 일정 범위 내에서 반환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즉, 피상속인이 자신의 뜻대로 증여나 유언을 통해 배우자와 자식들에게 재산을 나눠주더라도 그 상속분이 공동상속인 중 어느 한쪽의 유류분을 침해하는 경우 소송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것.

    대법원에 따르면, 2002년 69건이 접수됐던 유류분 관련사건은 2012년 589건으로 10년 새 약 8.5배 급증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도 최근 몇 년 사이 유류분 관련 면접상담만 한 해 수십 건씩 몰리고 있다. “부친이 치매를 앓다 1년 전 돌아가셨다. 외아들인 남동생이 아버지가 치매 상태일 때 모든 재산을 자기 앞으로 돌려놨다”는 50대 중반 여성 금모 씨는 “4명의 딸이 상속재산을 찾을 방법이 없는지” 물어왔다. “남편이 사망하면서 유언으로 전 재산을 자기 누나한테 물려줬다”는 70세 여성 김모 씨는 “손위 시누이한테 유류분을 청구할 수 있는지”를 문의했다. 40세 여성 이모 씨는 “아버지가 생전에 어머니와 동생들에게만 재산을 증여했다. 어머니가 나를 달래느라 당신이 돌아가신 뒤 내게 집을 주겠다고 했는데 동생들이 펄쩍 뛰며 집을 똑같이 나눠야 한다고 했다. 너무 괘씸한데 아버지의 상속재산에 대한 유류분 청구가 가능한지”를 상담했다.

    딸들의 ‘권리 찾기’ 늘어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조경애 법률구조1부장에 따르면 유류분 관련 상담건수는 2010년 40건, 2011년 44건, 2012년 48건, 2013년 31건에 달했다. “강의를 나가봐도 유류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과거보다 높아졌음을 느낀다”는 조 부장은 “부모(또는 생존 배우자)를 상대로 소송하는 것보다 형제를 상대로 한 소송이 많다. 또 재산이 많을수록 많이 다툰다. 가족 사이에 분쟁이 생긴 사람들이 주로 상담을 받으러 오지만 ‘특별수익(생전증여)’이 문제가 돼서 오는 경우도 많다. 그 외 부모가 장남 또는 아들만 챙기는 것 같아 앞으로 재산 상속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궁금해서 찾아오는 여성도 많다”고 말했다.

    이처럼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이하 유류분 소송)이 급증하는 이유는 뭘까. 법조계 사람들은 한결같이 “60대 이상 부모 세대에 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 있는 남아선호 사상과 남녀차별 의식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유류분 소송에서 여성 원고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뿐 아니라 자신이 번 재산을 ‘대물림한다’는 생각과 생전에 장남에게 전 재산을 물려주고 노후에 부양을 받으려는 심리도 작용한다.

    50대 여성 김모 씨를 비롯한 3명의 자매는 오빠 2명을 상대로 유류분 소송을 심각히 고민했다. 수백억 원대 재산가였던 아버지가 유언을 통해 대부분의 재산을 두 아들에게 남기고 딸들에겐 집 한 채를 나눠 가지라고 했기 때문. 김 씨 자매는 “아버지가 생전에 장남과 아들이라고 해외유학을 보내주고 사업자금을 대준 것까진 이해한다. 그런데 유언이 공개되고 우리가 불만을 표시하자 오빠들조차 ‘출가외인이 왜 친정 재산을 탐내느냐’고 몰아붙였다. 그게 더 화가 났다”고 했다. 오빠들과 갈등 끝에 아파트 한 채를 자신들의 몫으로 더 받기로 한 자매들은 “돈도 중요하지만 정당한 우리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 게 더 억울하다”고 했다.

    조경애 부장은 “상속을 많이 받은 자식들이 부모와 형제에 대한 도리를 다 안 하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과거 장남은 부모로부터 재산을 혼자 다 물려받아도 나머지 형제들 집안에 결혼과 이사 등 큰 일이 있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 보태주고 도와줬다. 일반 정서상 많이 가지게 된 쪽이 좀 나눠줄 법한데 그걸 안 하니 소송까지 간다. 형제간 정이나 부모자식 간 사랑보다 자기 손에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많이 쥐는 게 더 중요한 세상이 됐다”며 씁쓸해했다.

    유류분 제도는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남녀차별에 따른 상속 패턴도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져왔지만 10년 전에 비해 소송이 급격히 는 건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는 여성이 늘어났기 때문.

    지난해 유류분 소송 3건을 맡았던 법무법인 세종 최명호 변호사는 “최근 2~3년 새 유류분 소송 상담이 늘었다. 상담 과정에서 소송을 포기하거나 보류하는 경우는 절반 정도다. 이들을 포함해 유류분 소송에서 원고가 되는 이들의 연령대는 대체로 40~50대다. 사망한 피상속인(부모)의 나이가 대부분 70세를 넘기 때문이다. 원고 측은 아무래도 여성이 많다”고 했다. 그는 “장남이나 아들이 부모 생전에 재산을 물려받은 경우 부모를 잘 챙기면 괜찮은데 오히려 딸들 쪽에서 살뜰히 부모를 챙기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사망한 뒤 남은 재산마저 아들에게만 돌아가면 딸들의 감정이 좋을 리 없다”고 했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유류분 관련 사건이 8.5배 급증했음에도 그에 따른 소송물가액은 약 6.3배 증가에 그쳤다. 소송물가액은 원고가 소(訴)로써 달성하려는 목적이 갖는 경제적 이익을 화폐단위로 평가한 금액을 말한다. 과거에 비해 적은 돈이라도 소송을 통해 끝까지 받아내겠다는 사람 수가 그만큼 늘었다는 의미다. 지속되는 경기불황도 소송을 부추기는 데 한몫한다.

    ‘쩐’ 앞에선 가족애도 실종

    지난해 5월 24일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강당에서 열린 상속법 개정 촉구 심포지엄.

    ‘적은 돈도 받아내자’

    황혼재혼, 황혼동거가 늘면서 전처 자식과 계모, 전처 자식과 사실혼 배우자 사이에 상속재산을 둘러싼 분쟁도 덩달아 늘고 있다. 40대와 50대 초반 여성 김모 씨 세 자매는 유언을 통해 아버지가 계모와 이복남동생에게만 재산을 물려주자 두 사람을 상대로 유류분 소송을 제기했다. 김 씨 자매는 “이복남동생은 어릴 때부터 소위 ‘귀족학교’라 불리는 사립학교에 다니면서 온갖 호사를 누렸지만 우리는 계모에게 식모 취급을 받으면서 자랐다. 그런데 왜 아버지 재산마저 그들에게 다 빼앗겨야 하느냐”며 억울해했다.

    사실혼 배우자와 동거하는 60대 중반 남성 이모 씨는 자식들과의 불화로 인해 상속재산에 대해 고민하다 상담소를 찾았다. “내가 죽은 후 10억 원가량의 재산을 자식들에겐 한 푼도 주고 싶지 않다”는 그는 유언을 통해 자식들을 상속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지, 사실혼 배우자에게 모든 재산을 줄 수 있는지를 궁금해했다. 이 씨 경우와 반대로 재혼한 상대를 못 믿어 부인과 둘 사이의 자식은 외면한 채 전처 자식에게만 재산을 상속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상속재산을 모두 받은 장남이 죽은 뒤 형제들이 장남의 부인과 자녀를 상대로 유류분 소송을 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그 이면엔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가족의 울타리가 좁아지고, 남편 혹은 아내와 자식만 ‘내 가족’으로 여기는 풍토가 깔려 있다.

    이민이나 취업 등을 통해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이 늘면서 국내외에 각기 떨어져 살던 형제자매 사이에 유류분 소송이 벌어지기도 한다. 셋째이자 막내로 부모님을 모시고 건물을 관리하면서 살았던 40대 초반 남성 박모 씨는 “그동안 외국에 살면서 부모님 살아생전 코빼기도 안 보이던 형들이 이제 와서 부모님이 물려준 건물을 내놓으라며 소송을 했다”고 분개했다. 그는 ‘수십 년간 네가 부모한테 얹혀살면서 덕 보고 살았지 모시고 살았느냐’는 형들 말에 더 큰 상처를 받았다.

    드문 경우지만 부부끼리 또는 자식과의 사이가 나빠 전 재산을 제3자에게 기증하거나 기부하는 경우도 소송을 부르는 원인이 된다. 이들은 “미운 자식한테는 땡전 한 푼도 줄 수 없다” “내가 죽은 뒤라도 아내(혹은 남편)에게 단돈 10원도 주고 싶지 않다”며 일찌감치 재산을 처분하는 것이다.

    해묵은 감정도 송사 발단

    재산상속을 둘러싼 갈등이 가족 내에서 끝나지 않고 소송으로 비화하는 밑바탕엔 감정 문제가 깔린 경우가 많다. 50대 초반 여성 유모 씨 자매는 장남인 오빠를 상대로 유류분 소송을 제기했다. 생전에 장남인 오빠에게 토지를 물려준 아버지가 그 땅에 지은 건물마저 오빠에게 넘겼고, 뒤늦게 유언장 공개를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된 유 씨 자매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재판에서 유 씨는 “오빠는 그동안 변변한 직업도 없이 아버지 생전에 나온 건물 임대료로 가족이 편하게 먹고살았다. 이제 그 건물마저 오빠한테 넘어갔고 우리한테 돌아온 아버지 재산은 한 푼도 없다. 부모님이 계실 때 장남으로서 부양도 제대로 안 했다”며 흥분했다. 오빠와 올케가 유 씨 자매를 공격하자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며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급기야 소송에서 한발 물러서 있던 차남과 3남까지 싸움에 휘말리면서 “우리도 소송에 참여해 유류분을 받아내겠다”고 분개했다. 유 씨는 “돈보다 거짓말하는 오빠와 올케가 더 밉고 억울하다. 소송을 통해 끝까지 진실을 밝히고 싶다”고 했다.

    상속에서 감정 문제가 개입되면 쉽게 소송에 휘말리거나 실익이 없는 소송을 부르기도 한다. 70세 남성 이모 씨는 과거 외국으로 가면서 한국에 남아 어머니를 모시는 동생에게 자신의 재산관리를 일임했다. 형의 건물에서 나온 임대료를 다 쓴 동생은 어머니가 사망하자 어머니 재산까지 자신이 물려받은 걸로 해놓았다. 뒤늦게 사실을 알고 동생을 괘씸히 여긴 이 씨는 동생을 상대로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냈다. 어머니 재산에 대한 공동상속인인 자신을 제외하고 동생이 가로챘기 때문. 하지만 자녀들에게 등 떠밀려 소송에 나섰던 이 씨는 결국 “동생을 상대로 싸워 이긴들 내가 무슨 영화(榮華)를 누리겠느냐”며 소를 취하했다.

    최명호 변호사는 “유류분 소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이 ‘10’이라면 당사자는 그걸 ‘20’ 혹은 ‘30’이라고 보기 때문에 소송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우리 법률상 유류분 청구권을 상실하는 경우는 없지만 대신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부모를 방기한 자식인 경우 유류분 청구에 제한을 받을 수도 있다. 이는 현재 하급심 판례만 나와 있는데 우리나라 법 정서상 대법원으로 올라가도 판례가 될 것이다. 법을 제대로 모르고 감정에 치우치면 실익보다 잃는 게 많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유류분에 대한 법적 권리는 얼마든지 행사할 수 있지만 가족 간에 벌어지는 소송이니만큼 사전에 실익이 얼마나 되는지, 유류분 청구에 문제가 없는지 따져보고 가능한 한 소송보다 협의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부모자식, 형제자매 간 파국을 막는 일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문 법률자문 인기 상승

    유류분 소송이 해마다 큰 폭으로 늘면서 ‘유류분 전문’을 내세운 변호사나 인터넷 법률 사이트, 법률사무소도 덩달아 인기를 누린다. 4년 전 ‘유류분상속청구센터’를 개설한 법도종합법률사무소 엄정숙 대표변호사에 따르면, 월평균 유류분 관련 상담건수가 80~100건에 달한다. 엄 변호사는 “앞으로 상속 관련 분쟁이 많을 거라 예상했고, 소송 분야를 특화하면 많은 경험이 축적돼 사건 해결이 쉽고 의뢰인도 만족시킬 수 있어 유류분 소송을 전문화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류분 소송 때 자신이 생전의 부모나 형제자매한테 기여한 게 얼마나 많은지 열변을 토하며 억울해하는 사람이 많다. 기여분은 가족 사이 협의에서나 상속분을 놓고 다툼을 벌일 때 인정받을 수 있지만 유류분 소송에선 원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걸 모른 채 소송을 제기한 뒤 재판에서 강하게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유류분 제도의 취지는 피상속인의 사망 후 남은 상속인의 생활을 보장하고 상속인 간 공평을 도모하는 데 있다. 피상속인이 잔존하는 부양가족의 생계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재산을 타인에게 무한정 증여 또는 유증한다면 이는 법률적 문제이기에 앞서 사회적으로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므로 사회정책적 고려에 의해 도입된 것. 하지만 민법에 유류분 제도가 신설된 36년 전과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피상속인이 사망할 즈음 상속인인 자녀의 나이가 대부분 충분히 독립적으로 삶을 꾸릴 수 있는 성인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 일각에서 “상속법을 개정해 생존 배우자의 몫을 지금보다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동안 꾸준히 이어져왔다. 지난해 5월 상속법 개정을 위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던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소장은 같은 해 6월 ‘주간동아’ 인터뷰에서 “평균수명이 과거에 비해 길어짐에 따라 경제활동이 왕성할 나이인 성인자녀에까지 상속재산을 많이 주는 건 상속법 취지나 상속법이 갖는 사회적 기능에 맞지 않는다. 나이 들어 건강과 일자리를 잃은 생존 배우자의 부양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특히 사회생활을 하지 않아 연금도 없는 여성 노인의 경우 남편이 사망하면 당장 생계대책이 절박한 문제가 된다. 유류분 제도도 완전히 없애버리면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법으로 제한을 좀 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심포지엄에서도 그런 지적이 나왔다”고 했다.

    상속법 개정을 향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국회의원들의 개정안 발의가 잇따르자 2006년부터 상속법 개정을 추진해온 법무부는 지난해 ‘민법(상속편)개정특별분과위원회(이하 개정위)’를 구성해 협의에 착수했다. 새해 들어 몇몇 언론을 통해 상속법 개정 추진 소식이 알려지자 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상속법 개정 논의 모락모락

    1월 4일 서울 종로구의 한 스포츠센터 수영장은 토요일임에도 겨울철이라서 그런지 비교적 한산했다. 그곳 샤워실에서 마주친 50대 여성 3명의 화제는 상속법으로 모아졌다. 한 여성이 “지난 주말에 아들 내외가 오더니 뜬금없이 이사 얘기를 꺼냈다. 돈을 좀 보태줬으면 하는 눈치기에 모른 척했더니 그 뒤로 통화할 때 며느리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고 쌀쌀하더라. 남편 죽고 나면 내가 걔네를 의지해서 살 수 있을까 싶어 절로 한숨이 나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다른 두 여성이 기다렸다는 듯 “이제 곧 상속법이 개정돼서 남편이 죽으면 자식보다 부인한테 더 많은 재산을 준다고 하더라” “남편이 죽더라도 돈만 있으면 무슨 문제야? 앞으로 걱정할 일 없겠네”라며 맞장구쳤다. 그 뒤로도 “부인한테 아무리 재산을 많이 준다고 해도 남은 재산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야?” “자기들보다 재산을 더 많이 받으면 자식들이 가만히 있을까? 유류분인가 뭔가 하는 것도 있다며?” 등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개정위 위원장을 맡은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상용 교수는 “최근 언론에서 상속법 개정안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쏟아내는데 아직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 생존 배우자에게 피상속인의 상속재산 절반을 먼저 떼어준다는 ‘선취분 50%’도 확정된 게 아니다”고 했다. 김 교수는 “개정위 협의 과정에서 생존 배우자의 상속분을 현재보다 더 늘리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다만 ‘선취분 50%’에 대한 부분엔 여전히 논란이 있다. 복잡한 규정을 두지 않고 선명하게 무조건 ‘선취분을 50%로 한다’면 좋긴 한데 법정 분쟁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혼인 기간이나 재혼 여부, 장기 별거 등 예외를 둘 수밖에 없는데 그런 불합리한 부분을 다 포함해 탄력적으로 적용하느냐 하는 부분에서 아직도 협의 중”이라고 했다.

    ‘부모 재산을 탐하지 말라’

    개정위가 의견을 모아 협의안을 제출하면 법무부가 1월 중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각계 의견청취 과정을 거친 뒤 국회에 제출하게 된다. 김 교수는 “아마 그때 공청회가 열리면 논란이 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상속법 개정은 전 국민에게 해당되는 민감한 사안일 뿐 아니라 피상속인이 자신의 재산을 배우자가 아닌 후손한테 물려주는 게 당연하다는 관념이 아직 우리 사회에 팽배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비해 핏줄 의식이 희박한 서구 선진국의 경우 재산상속에 있어 법으로 생존 배우자의 몫을 자식보다 크게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한발 더 나아가 스웨덴과 네덜란드 상속법은 자녀 유무에 상관없이 생존 배우자의 단독상속을 인정한다. 법조계 인사 등 그동안 많은 전문가가 “평균수명 연장으로 유류분 제도의 본래 취지가 퇴색했다. 현실에 맞게 손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지만 개정위 협의에선 그와 관련한 부분이 빠졌다. 이에 대해 “유언에 따른 상속분에 대해서는 유류분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자”고 주장한 김상용 교수는 몹시 아쉬워했다. 그는 “개인적으론 지금도 유언에 따르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유언은 법으로 자기 재산처분권을 인정하는 건데 유류분이 유언보다 앞서는 건 모순이다. 유언 자유의 원칙에 대한 제한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상속을 둘러싸고 늘어나는 가족 간 분쟁을 막으려면 생전의 증여든 유증이든 피상속인이 자식을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재산을 분배해야 한다. 부모로부터 장남 또는 아들이라는 이유로, 혹은 좀 더 예뻐하는 자식이라는 이유로 과분한 재산을 물려받았다면 나머지 형제를 배려하는 것도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자식이 부모 재산을 탐내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자식들이 ‘부모 재산은 내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을 바꾸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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