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8일 김연아가 서울 강남구 역삼동 진선여고에서 교생으로 교단에 섰다.
차범근 감독의 이 절절한 글 속에는 자신과 아들 차두리 선수의 성장 과정에 대한 회고도 나온다. 히딩크 감독이 부임해 한국 선수들의 몸 상태를 점검했을 때, 무릎이나 발목이 온전한 선수는 오직 차두리가 유일했다고 한다. 다른 선수들은 유능한 주전이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혹사’ 당해서 온전치 않았다. 차두리는 중학교 때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차범근 역시 중3 때 축구를 정식으로 시작했다. 유소년의 성장기를 제대로 보낸 후에 선수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무릎이나 발목의 예민하고 섬세한 근육이나 신경이 온전할 수 있었다.
차범근은, 박지성이 맨유에서 겪었던 것처럼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합리적인 시스템을 배우고 돌아왔다. 그 자신은 ‘후배들에게 해준 게’ 없다고 썼지만, 그의 ‘차범근 축구교실’은 하나의 모범이었다. 평일에는 주로 공부를 하고 오후에 한두 시간 정도 훈련을 하며 주말에 리그식 경기를 갖는 방식이다. 반드시 공부를 병행할 것, 성장기의 육체에 과도한 긴장과 무리를 주는 훈련을 삼갈 것, 지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는 토너먼트가 아니라 리그 식으로 전반적인 기술 수준을 향상할 것. 이 세 가지가 차범근 축구교실의 모토였으나 안타까운 것은 그 무렵 그렇게 하는 곳은 그곳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더 널리 확산되지 못했다.
어쨌든, 1988년 시작한 차범근 축구교실은 미래형 모델이었고 해마다 수여하는 차범근 축구상의 제5회 수상자가 바로 1993년 당시 수원 세류초등학교 6학년 박지성 어린이였다. 그렇게 성장한 선수가 서른도 채 못 돼 무릎이 아파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으니 차범근 감독의 참담한 심정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는 것은 물론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은퇴’를 하겠다는 박지성에 대해 ‘진의를 모르겠다’거나 ‘너의 몸은 너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가의 것’이라고 강변하는 축구협회 수뇌부의 ‘비장한 관료적 국가주의’야말로 진실로 퇴행적인 장면이었던 것이다.
‘국위선양’의 신화
자,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2009년 8월 7일, 박용성 대한체육회 회장은 중앙 일간지에 ‘학교 체육과 엘리트 체육’이란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당시 몇몇 국회의원이 ‘학교체육법안’을 발의했는데 이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 스포츠 교육 문화 여건을 개혁하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이 전개되고 있었다. 나 자신도 ‘국가인권위원회’가 전개한 ‘학생선수 인권 향상과 공부하는 학생상 정립’ 프로그램에 참여한 바 있다. 고질적인 비리, 폭력적인 위계질서, 잠재된 채로 만연해 있는 폭력 및 성폭행 근절, 공부와 운동의 병행 등이 프로그램의 주요 골자였다. 나는 전국의 주요 도시를 순회하면서 특강을 했고, 공부와 운동을 병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에도 참여했는데, 국가인권위원회의 전반적인 의욕 저하와 더불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스포츠계의 반발로 인해 의제만 제시한 상태에서 프로그램은 종료되고 말았다. 어쨌거나 그러한 흐름 속에서 스포츠 교육 문화 개선을 위한 법안이 제출됐는데 그 골자는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합숙 훈련을 금하고 훈련도 방과 후와 주말에만 할 수 있으며, 일정 학력 수준에 미달하는 선수는 대회 출전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이를 박 회장은 ‘논란거리’라고 일축했다. 다른 단체도 아니다. 대한체육회의 수장이 학생 선수들의 인권(행복추구권, 신체 결정권, 학습권 등을 모두 포괄한) 향상과 선수 생활 종료 후 정상적인 사회 활동을 해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화 과정에 대한 의견을 논란거리로 일축했던 것이다.
예의 칼럼에서 박용성 회장은 우리 사회가 1970년대 이후 누누이 들어온 ‘선진국’을 여러 번 강조했다. 스포츠 선진국도 태릉선수촌과 같은 시설을 갖고 있으며 그 선진국 선수들도 훈련에 매진한다는 것이다. 이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런 점이 틀림없이 있다. 그러나 예의 선진국에서 모두 하고 있는 일을 우리는 하지 않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학생 선수들도 공부를 하면서 정상적인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는 점이다. 사실 이것은 이 나라의 사람 대부분이 받고 있는 ‘권리’이며 동시에 ‘운동 선수’만이 박탈당한 권리다.
문제의 그 선진국을 보자. 이른바 선진국이 대부분인 유럽연합(EU)에서는 2007년 ‘EU 스포츠백서’를 발간했다. 유럽 전체 차원에서 포괄적인 스포츠 정책 및 전략적 목표를 담은 것인데, 그 안에는 스포츠의 공공성, 교육성, 환경성, 직업성, 소수자 보호 등 무려 41가지 지침이 제시돼 있다. 스포츠는 특별히 유능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가혹한 선물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체가 누려야 할 공공적 권리이며 그 조건 속에서 특출한 재능으로 선발된 선수라 해도 교육의 기회와 직업의 평등성을 누려야 하며 스포츠나 그 시설이 지속가능한 환경과 어긋나서도 안 되며 인종, 장애, 성별 등에 의한 그 어떤 차별이나 배제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백서는 명시하고 있다. 이를 거울로 삼아 우리 스포츠 문화를 돌아보면, 금세라도 그 거울을 깨뜨리고 싶을 만큼, 우리는 후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