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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누가 메달을? 가슴 뛰는 올림픽의 밤과 낮

한국 빛낸 ★ 런던 빛낼 ★

오늘은 누가 메달을? 가슴 뛰는 올림픽의 밤과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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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촌 최고의 스포츠 축제에서 가장 볼만한 이벤트는 어떤 것일까? 언뜻 ‘총알 탄 사나이’ 우사인 볼트가 출전하는 남자 육상 100m가 떠오르지만 한국인에겐 ‘우리 선수’가 출전해 금메달을 다투는 경기에 무엇보다도 관심이 갈 것이다. 그간 올림픽에서 한국을 빛낸 별, 런던에서 한국을 빛낼 별을 살펴봤다.
오늘은 누가 메달을? 가슴 뛰는 올림픽의 밤과 낮

손연재가 메달에 도전하는 리듬체조 결승은 8월 11일 열린다.

한국은 그동안 하계올림픽 68개, 동계올림픽 23개, 모두 91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 9개를 더 따면 올림픽 통산 금메달 100개를 달성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이르기까지 획득한 통산 메달 수는 금메달 91개, 은메달 88개, 동메달 81개로 모두 260개다. 7월 28일~8월 13일 열리는 런던 올림픽에서 40개의 메달을 더 획득하면 총 메달 수는 300개에 달한다.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딴 한국인은 양궁의 김수녕이다. 금메달 4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획득했다.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의 전이경은 금메달만 넷을 목에 걸었다. 1994년 릴레함메르, 1998년 나가노에서 각각 2관왕을 차지했다.

그렇다면 그동안 한국인이 따낸 260개의 올림픽 메달에는 어떤 사연이 깃들어 있을까?

올림픽 첫 메달을 딴 선수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해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한 손기정, 남승룡이다. 안타깝게도 올림픽 역사는 지금껏 두 선수를 일본인으로 기록한다. 태극기를 앞세우고 출전해 딴 첫 메달은 1948년 런던 올림픽 역도 미들급 김성집, 복싱 플라이급의 한수안이다. 둘은 동메달을 땄다. 올림픽에서 첫 은메달을 딴 선수는 1956년 멜버른 올림픽 복싱 밴텀급에 출전한 송순천.

“그날 경기는 당신이 이겼소”



오늘은 누가 메달을? 가슴 뛰는 올림픽의 밤과 낮

1956년 멜버른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송순천(맨오른쪽). 멜버른 올림픽에서 복싱 사상 첫 은메달을 쟁취, 영광의 얼굴이 됐다.

송순천은 올림픽을 앞두고 강력한 메달 후보로 꼽혔다. 복싱을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천부적 자질을 갖춘 데다 체력, 기술은 물론이고 투지도 좋아 복서로서 모든 것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송순천에 비견할만한 한국인 복서로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복싱 라이트 웰터급 8강전에서 제리 페이지(미국)에게 우세한 경기를 벌이고도 억울하게 판정패를 한 김동길 정도만이 꼽힌다.

송순천이 복싱을 시작한 것은 멜버른 올림픽이 열리기 불과 1년여 전인 1955년 4월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송순천은 입문하자마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야말로 미친 듯 훈련하기 시작했다. 한국체육관에 입관한 다음 날 그는 초보 복서가 으레 그렇듯 스텝만 밟는 단조로운 훈련을 반복해야 했다. 지루해하는 게 당연할 터인데도 오후 2시부터 밤 11시까지 9시간 동안 쉬지 않고 스텝을 밟았다. 이를 지켜보던 노병렬 사범이 “저 녀석 봐라” 하면서 관심을 가졌다. 노 사범은 송순천이 입관한 지 3일째 되던 날 당시 신인복싱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선수와 그를 스파링하게 했다. 복싱을 배우기 시작한 후 반 년은 지나야 스파링에 나서는 것이 보통이다. 노 사범은 송순천의 담력을 시험해보려고 그렇게 했다고 한다. 스파링을 시작하자마자 송순천은 관자놀이를 얻어맞고 비틀거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하더니 상대를 링 위에 꼬꾸라뜨렸다. 송순천의 소질을 엿본 노 사범은 산삼을 발견한 심마니 같은 기분이었다. 노 사범은 다음 날부터 송순천을 세계타이틀 경기를 앞둔 복서처럼 훈련시켰다. 매일 20라운드의 스파링을 소화했는데, 상대로 나선 선수가 대부분 2라운드를 채 버티지 못하고 나자빠져 하루에 10명 넘는 복서가 그를 상대해야 했다.

송순천은 지칠 줄 몰랐다. 체육관 훈련에 만족하지 못해 틈이 날 때마다 발목에 쇳덩어리를 달고 인왕산을 오르내렸다. 송순천은 1955년 가을 열린 멜버른 올림픽 복싱 국가대표 1차 선발전에 나가 1회전부터 결승전까지 5번의 경기를 모두 KO승으로 장식했다. 이후 4차례의 선발전을 더 거쳐 국가대표로 뽑혔다. 송순천이 올림픽을 앞두고 오스트레일리아 현지에서 스파링을 했을 때의 일화다. 당시 올림픽 밴텀급의 상한체중은 54㎏이었는데 송순천이 스파링에서 80㎏ 넘는 선수를 KO로 물리쳤다. 복싱 전문 잡지 ‘링’의 창립자인 네트 플레이서가 현지에서 그 장면을 보고 혀를 내두르면서“올림픽이 끝나면 결과에 상관없이 미국으로 초청해 세계적인 프로복서로 키워주겠다”고 말했다.

송순천은 멜버른 올림픽에서 알베르토 아델라(필리핀), 로버트 바스(오스트레일리아), 카메르 토바실리(아르헨티나)를 판정으로 물리치고 준결승전에 올랐다. 4강전에서 만난 바리엔토스(칠레)를 제압하고 출전한 결승전. 상대는 독일의 볼프강 베렌트였다. 1·2·3라운드 모두 송순천이 우세했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공이 울린 후 한광수 감독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네가 금메달이야!”라고 소리쳤다. 당시 경기장을 가득 메운 2만여 관중도 ‘코리아’를 외치면서 송순천의 승리를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엉뚱하게도 베렌트의 승리였다. 그로부터 7년 후인 1963년 베렌트는 대한체육회를 통해 송순천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날의 결승전, 그리고 당신을 잊을 수 없다. 그날 경기는 당신이 이긴 것이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에서 양정모가 한국 국적자로 첫 금메달을 땄다. 석연치 않은 판정이 없었다면 송순천이 한국의 첫 금메달리스트 양정모의 영광을 차지했을 것이다. 송순천은 은퇴 후 유도대(현 용인대) 격투기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는 은퇴해 경기 용인시에서 여생을 즐기고 있다.

‘미녀 선수 1호’ 변경자

유도의 김재엽은 ‘은메달의 한을 푼’ 금메달리스트다. 1984년 LA 올림픽 때 -60kg급의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LA 올림픽에는 옛 소련 및 동구권 국가가 출전하지 않아 유도 종목은 한국 일본 서독 미국을 대표한 선수가 메달을 놓고 다퉜다.

-60kg급은 호소카와 신지(일본), 리디 에드워드(미국)를 비롯한 네댓 명이 박빙의 승부를 펼칠 것으로 예상됐다. 그중에서도 우승 후보로는 김재엽과 호소카와가 꼽혔다. 예상대로 두 선수가 결승에서 맞붙었다. 김재엽은 그날 컨디션이 매우 좋았다. 공격에 적극적으로 나선 게 오히려 패배의 원인이 됐다. 허벅다리후리기를 들어가다 호소카와에게 누르기 역습을 당한 것. A급 선수에게 누르기를 당하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결국 김재엽은 은메달에 만족하고 4년 후를 기약해야 했다. 승부의 세계에서 4년은 길다. 어떤 강자가 나타날지 모르는 데다, 4년 후에도 기량을 유지하리라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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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영노| 스포츠평론가 younglo54@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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