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은선씨가 4월27일 안나푸르나 정상에서 태극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이 사진은 등반을 동행한 KBS 정하영 촬영감독이 오은선 대장의 카메라로 촬영한 것이다.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자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저명인사로 급부상한 국내 여성 산악인 오은선(44)씨가 4월27일 마지막 남은 봉우리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해발 8091m) 정상에 오르는 과정은 일반인에게 오히려 이런 생각을 하게 했을 법했다. KBS가 이 과정을 생방송으로 보도한 덕분이다.
오씨가 정상까지 불과 수십 미터를 남겨두고 힘겹게 한발 한발 정상을 향해 내딛는 동안 함께 동행한 셰르파 한 명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카메라 앞을 왔다, 갔다 하지 않았던가. 고산 지대가 원래 삶의 터전인 셰르파들이야 그렇다 치자. 그런데 전문 산악인 출신도 아닌 KBS 카메라맨도 오씨와 함께 정상에 오르지 않았나.
탐욕으로 얼룩진 에베레스트 등정
그럼에도 8000m가 넘는 봉우리를 오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고, 종종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기자는 2년 전인 2008년 5월 산악인 박영석씨를 따라 중국 쓰촨성 간쯔자치주 신싱향의 궁가산 일대 6000m급 미답봉 등반을 따라가 고산 등반의 어려움을 생생히 체험한 적이 있다.
체력적으로나 운동 능력으로나 또래 평균치보단 위쪽에 있다고 자부해왔지만 해발 3900m에 세운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자마자 심한 고소증세로 고생했다. 높은 곳으로 갈수록 공기 중 산소량이 희박해져 신체의 신진대사 능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사람마다 고소증상이 다른데 몸살감기를 앓을 때의 심한 오한을 동반한 두통이 그중 흔한 증상이다. 식욕은 떨어지고 오줌은 전립선 비대증에 걸린 것처럼 찔끔찔끔 나온다. 대사능력이 떨어져 몸 안에 쌓이는 배설물 배출이 어려워진 것이다. 침낭을 둘둘 말고 마냥 누워만 있고 싶지만 몸을 움직이지 않을수록 고소증상이 더 악화되기 때문에 더욱 괴롭다. 고소에 적응하는 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어느 정도 몸이 좋아진 기자는 해발 5200m에 세운 캠프1까지 기세 좋게 따라갔다가 죽는 줄 알았다. 올라가는 동안 호흡이 점점 가빠지더니 나중엔 두 걸음마다 멈춰 쉬어야 할 정도가 됐다. 캠프1의 텐트에서 고통스러운 하룻밤을 보내곤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해가 뜨기도 전에 혼자 설사면을 기다시피 해 베이스캠프로 내려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니 오씨가 최초로 8000m가 넘는 14개 봉우리를 모두 오른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오씨의 14좌 완등으로 한국은 히말라야 14좌 완등자를 4명 보유했다.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 오은선. 세계에서 14개 봉우리를 모두 오른 사람은 20명이고 이 중 한국이 완등자가 가장 많다. 한국 다음은 14좌 최초 완등자인 라인홀트 메스너의 나라 이탈리아로 메스너를 포함해 3명이다. 우리보다 고산 등반을 먼저 시작한 일본은 14좌 완등자가 1명도 없다. 일부 국내 언론은 이런 얘기를 하며 ‘한국이 산악 최강국’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쇼트트랙 강국 한국’이 ‘동계 스포츠 강국’과 같을 수 없듯 14좌 완등자 최다 배출이 곧 산악 강국과 같은 의미일 순 없다.
트로피(trophy)를 위한 고급 관광지
세계 산악계가 히말라야 등정 자체에 큰 가치를 두지 않게 된 것은 이미 오래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는 1977년 고상돈(1979년 북미 최고봉 매킨리봉 등반 중 실족사)이 한국인 최초로 올랐던 당시의 에베레스트가 아니다. 여전히 등정은 어렵지만 그렇다고 일반인에게조차 불가능의 영역이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