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호

‘악’과 ‘깡’으로 동유럽·러시아 들어올리다

전자저울 메이커 (주)카스의 해외시장 공략기

  • 글: 이형삼 hans@donga.com

    입력2003-03-24 18:0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러시아와 동유럽 일대에서는 ‘카스’가 곧 ‘저울’이라는 뜻으로 통한다. 카스는 이들 지역의 저울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국내 한 중소기업의 이름. 오는 4월 창업 20주년을 맞는 카스는 우수한 품질과 가격경쟁력, 공격적인 마케팅, 끈끈한 한국식 고객관리를 무기로 해외 시장의 장벽을 무너뜨렸다.
    ‘악’과 ‘깡’으로 동유럽·러시아 들어올리다

    카스는 러시아(아래)나 폴란드(위)의 대형 슈퍼마켓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저울이다.

    대형 할인매장이나 슈퍼마켓, 정육점 등에서 계산을 치를 때면 으레 눈에 띄는 세 글자가 있다. 녹색 불빛으로 수치를 표시하는 전자저울 한 모퉁이에 선명하게 새겨진 영문 로고 ‘CAS’가 그것이다. CAS(카스)는 맥주 이름(Cass)과 발음이 비슷하지만, 물론 맥주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카스는 국내 전자저울 시장의 80%를 장악한 독보적인 한 중소기업의 사명(社名)이자 제품명이다.

    (주)카스는 가정용 및 상업용 전자저울, 그리고 각종 산업용 전자저울을 포함한 산업용 계량·계측 시스템 전문회사다. 디지털 체중계, 청과·육류·수산물 등의 무게를 재는 데 주로 쓰이는 일반 유통형 저울과 매달림 저울, 1000가지 상품의 무게와 단가를 기억시켜 라벨 스티커에 가격정보를 인쇄해주는 라벨 프린터, 미세한 전자부품이나 화학약품 계량에 쓰이는 마그네틱 밸런스, 트럭에서 화물을 내리지 않고도 무게를 달 수 있도록 바닥에 설치하는 로드웨이어 등 300여 종의 전자저울을 생산하고 있다. 실험실에서 0.001g 단위의 분자 무게를 다는 저울에서부터 선박, 항공기 등 수백 톤짜리 ‘쇳덩이’를 재는 저울에 이르기까지 구색이 다양하다. 지난해 매출은 680억원으로, 회사의 외형도 단연 업계 1위다.

    카스는 해외에서도 탄탄한 입지를 굳혔다. 120여 개국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는 카스는 세계 상업·산업용 저울시장의 25%를 점유, 세계 4위권의 저울업체로 부상했다. 특히 러시아를 비롯한 CIS(독립국가연합) 지역과 동유럽 국가들에서는 ‘카스’가 곧 ‘저울’이라는 뜻으로 통할 만큼 인지도가 높다. 기업 이름인 ‘제록스’가 복사기를 통칭하는 일반명사로 쓰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도 그럴 것이 러시아가 수입하는 저울의 90%가 카스 제품이다. 폴란드의 경우 그 수치가 60%, 체코와 루마니아 등에서도 50%가 넘는다.

    확대일로의 저울시장

    ‘스타니엠 드루지아미(친구가 됩시다)’는 러시아 모스크바 중심가의 스몰렌스크 지역 등에 점포를 갖고 있는 대형 슈퍼마켓 체인. 이 체인은 일본인 소유인데도 5년 전 개업 당시 카스 저울을 들여놨고, 지금도 40여 개의 카스 제품을 쓰고 있다. 일본 제품보다 가격경쟁력에서 앞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체인 스몰렌스크점(店) 지배인 바리스 니콜라예비치는 “다른 저울회사들이 좋은 조건을 내걸며 저울을 바꿔보라고 권하지만,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저울을 사용한 지 5년이 지나 겉은 좀 낡아 보여도 성능은 그대로다. 또한 카스는 하찮은 문제가 생겨도 금방 달려와 해결해주기 때문에 아주 만족스럽다. 이런 수준의 애프터서비스는 아무 회사나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더구나 이제는 카스 저울을 중심으로 상품 정보를 전산 네트워크화했기 때문에 사무실에 앉아서도 언제 어느 매장에서 어떤 물건이 얼마나 팔리는지를 실시간 파악할 수 있다. 저울을 바꾸면 이런 네트워크를 다시 깔아야 하는데, 멀쩡한 저울을 놔두고 왜 그렇게 하겠는가.”

    카스는 지난해 러시아 등 CIS 지역 13개 나라에 800만달러어치의 저울을 팔았다. 카스 전체 수출의 3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모스크바의 300여 개 대형 슈퍼마켓 체인 중 200개 정도가 카스 저울을 사용하고 있다.

    러시아의 상권은 아직 재래시장 위주다. 재래시장에서는 여전히 기계식 저울을 주로 쓴다. 하지만 최근에는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현대식 대형 할인매장과 슈퍼마켓 체인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재래상권을 잠식해가고 있다. 이런 업소에서는 신속, 정확한 계량과 효율적인 판매관리를 위해 전자저울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전자저울 시장, 다시 말해 카스의 ‘무대’가 그만큼 확대일로에 있다는 얘기다. 김중호(金重鎬) 카스 CIS법인장은 “지방도시들도 3년 정도면 모스크바의 흐름을 따라잡을 것이므로 이 지역의 시장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내다봤다.

    ‘악’과 ‘깡’으로 동유럽·러시아 들어올리다

    카스 중·동부 유럽지사 판매·영업 매니저 표트르 도브루체크(왼쪽)와 폴란드의 카스 독점 수입사 토렐 루블린 지사장 안드레이 보르코비츠

    저울, 금전등록기, 진열장, 냉장고 등 슈퍼마켓에 필요한 각종 설비를 러시아 전역에 납품하는 ‘로스키 프로예트(러시안 프로젝트)’ 모스크바 본사 매장에는 저울의 경우 카스 제품만 전시되어 있다. 이 회사 저울판매팀장 발레리 수페스는 “러시아산 저울도 몇 대 있지만 구석으로 치워놨다”며 “가격은 카스가 좀 비싸도 품질과 디자인이 월등하기 때문에 고객에게 굳이 다른 제품과 비교할 기회를 줄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 소비자들은 미국 소비자들처럼 ‘애국자’가 아니다. 어느 나라에서 만들었든 요모조모 따져보고 자신에게 유리한 제품을 냉정하게 선택한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슈퍼마켓 저울의 주종을 이루는 라벨 프린터(LP 모델)는 러시아에서 생산되지 않는다. 고객이 찾는 상품을 종업원이 갖다주는 ‘구멍가게’라면 단순한 기능의 저울만 있어도 되지만, 많은 고객이 직접 상품을 골라와서 계산하는 슈퍼마켓에서는 다양한 가격정보를 기억시켰다가 상품의 단가, 무게 등을 스티커에 인쇄해주는 라벨 프린터가 요긴하게 쓰인다. 따라서 슈퍼마켓 업자들로선 카스 제품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김중호 법인장은 카스가 CIS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요인으로 제품 수준, 시장 선점 효과, 충실한 애프터서비스 등을 꼽는다.

    “카스의 주력 제품들은 서유럽 같은 시장에서 리더가 되긴 어렵지만, CIS 같은 이머징 마켓에선 제대로 먹혀들 수 있는 수준이다. 카스는 개혁·개방으로 CIS 시장이 열리던 무렵부터 가능성을 확신, 이런 제품들을 중심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친 끝에 시장을 선점했다. 그 결과 인지도가 꾸준히 높아졌을 뿐 아니라 현지 SI(시스템 통합) 업체들이 카스 제품을 기준으로 스캐너, 금전등록기 등의 주변기기를 프로그래밍함으로써 호환체제가 갖춰졌다. 이제 와서 카스를 다른 제품으로 바꿀 경우 론칭, 인지도 상승, 네트워크 교체 등에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안정된 시장 기반을 유지할 수 있다.”

    판매·AS 겸업체제

    또한 현지 딜러들에게 기술교육을 시켜 판매와 애프터서비스를 겸하도록 했다. 물건을 팔기만 하면 그만인 게 아니라 오히려 팔고 난 뒤부터 고객과의 관계가 시작되는 셈이다. 그만큼 ‘끈끈한’ 고객관리가 가능해진다.

    카스는 러시아 전역에서 40여 개의 서비스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모스크바의 경우 매일 8명의 애프터서비스 요원들이 순회 일정에 따라 카스 제품 사용 업소들을 방문한다. 이들이 워낙 꼼꼼하게 손을 봐주기 때문에 업주들은 무상 보증 기간(판매 후 1년)이 지나면 따로 돈을 내고 일정 기간씩 정비계약을 맺기도 한다.

    카스의 명성은 CIS 및 동유럽 국가들과 인접한 폴란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자국산과 수입 제품을 포함한 폴란드 전체 저울시장에서 카스는 약 30%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이는 결코 낮은 비율이 아니다. CIS보다 개방의 폭과 속도가 빨랐던 폴란드의 경우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유명 저울 브랜드들이 이미 진출해 있고, 여기에 ‘파박’ 등 폴란드 저울회사들까지 가세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이런 시장의 30%를 차지한 카스는 단연 업계 1위이며, 40%에 이른다면 사실상 독점으로 봐야 한다. 폴란드는 카스의 동유럽 시장 거점으로, 카스는 오는 7월 폴란드에 정식으로 동·중부 유럽법인을 출범할 계획이다.

    수도 바르샤바에서 동남쪽으로 200km 떨어진 인구 40만의 루블린은 폴란드 동부지역의 중심도시. 폴란드-리투아니아 공국(公國) 시절 왕궁 소재지로 700년 역사의 고도(古都)이며, 2차 세계대전 후에는 잠깐 동안 폴란드의 수도였다. 카스는 루블린의 전자저울 시장에서 80%에 가까운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주력 모델은 과일가게, 정육점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유통형 저울 ‘엔젤(AP 모델)’ 시리즈. 루블린 같은 지방도시의 슈퍼마켓은 종업원이 소비자에게 상품을 갖다주는 군대 PX형 상점이 주류다. 이런 상점에서는 라벨 프린터보다 엔젤 시리즈를 더 선호한다. 루블린에 80여 개 점포망을 갖춘 슈퍼마켓 체인 ‘스포웸’은 사회주의 시절의 식료품조합이 민영화한 것인데, 모든 체인점이 카스 저울을 사용한다.

    ‘악’과 ‘깡’으로 동유럽·러시아 들어올리다

    러시아 최대의 슈퍼마켓 설비 업체 ‘로스키 프로예트’의 발레리 수페스 저울판매팀장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카스 본사 생산라인과 연구실

    폴란드의 카스 제품 독점 수입사인 토렐(Torell)사 루블린 지사장 안드레이 보르코비츠는 “해외 업체는 물론, 국내 어느 회사도 이만한 제품을 이런 가격대에 공급하지 못한다. 게다가 카스는 물건을 팔고 난 후에도 소비자와 여러 경로로 접촉하면서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려는 기업윤리를 갖고 있어 우리는 판매에만 신경쓰면 된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수입 초기에는 기능 면에서 적잖은 하자가 드러났으나 이처럼 충실한 사후관리를 통해 문제점을 개선, 이내 품질의 안정화를 기하게 됐다는 것.

    지난해 200여 대의 카스 저울을 팔아 루블린에서 최대 판매고를 기록한 토렐사 딜러 야노스 바나흐는 “카스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돈을 버는 회사”라고 조크를 던졌다.

    “엔젤 시리즈는 10년 전에 수입된 모델이나 지금 팔리는 모델이나 기능과 디자인에 거의 차이가 없다. 다른 회사들이 소비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걸핏하면 디자인을 바꾸는 것과 대조적이다. 카스의 디자인은 요즘 감각에도 뒤지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눈에 익은 디자인 때문에 소비자들의 신뢰도가 높다. 워낙 오래 쓰다 보니 카스의 디자인과 기능에만 익숙해진 것이다.”

    카스가 폴란드에서 선전(善戰)한 것도 시장 선점과 적절한 포지셔닝(positioning)에 힘입은 바 크다. 보르코비츠 지사장의 설명.

    “폴란드에는 20세기 초부터 산업용 저울을 생산해온 파박이라는 회사가 있는데, 전자저울을 카스보다 늦게 개발하는 바람에 시장을 선점할 기회를 놓쳤다. 전자저울 회사로는 스페인의 ‘메데사’가 카스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왔지만, 이 회사는 라벨 프린터를 주로 생산한다. 폴란드의 경우 라벨 프린터는 최근에야 수요가 발생하고 있어 메데사도 지금껏 재미를 못봤다. 이에 비해 카스는 우리 시장이 가장 필요로 했던 엔젤 시리즈를 적기에 들여옴으로써 초기부터 주도권을 잡았다.”

    그러나 상점들이 대형화하면서 라벨 프린터의 수요가 증가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다. 폴란드도 예외가 되진 않을 전망. 그래서 카스도 지난해 말부터 라벨 프린터를 들여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독일의 ‘메트로’, 프랑스의 ‘까르푸’, 스웨덴의 ‘이케아’ 등 폴란드에 진출한 유럽 유수의 하이퍼마켓 체인들은 저울을 포함한 설비 일체를 패키지로 들여온다. 그러니 이 분야에는 카스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결국 카스는 대도시 슈퍼마켓 체인을 주 대상으로 메데사 등과 라벨 프린터 납품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데, 카스 중·동부 유럽지사의 판매·영업 매니저인 표트르 도브루체크는 이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폴란드 시장의 현실을 감안, 네트워크 기능을 갖춘 LP-Ⅱ 모델보다는 비교적 기능이 단순하고 수리하기도 편리한 LP-Ⅰ 모델 판매에 주력할 생각이다. 메데사가 라벨 프린터 시장을 선점하긴 했지만, 카스의 인지도가 워낙 높기 때문에 해볼 만한 싸움이라고 본다. 메데사는 카스에 비해 애프터서비스망도 적고 서비스 수준과 가격경쟁력도 낮아 카스가 라벨 프린터 영업을 본격화하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해갈 것이다. 10년 넘게 쌓아온 신뢰가 있어 딜러들에게 굳이 이런 장점을 설명하지 않아도 사라고 하면 사게 돼 있다.”

    온몸으로 시장 개척

    카스가 수입장벽이 높기로 악명높은 해외 저울시장을 뚫고 약진을 거듭한 것은 수출에 앞서 국내 영업과정에서 갖은 간난신고(艱難辛苦)를 다 겪어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렵사리 전자저울을 개발하고도 한 대도 팔지 못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온몸을 던져 시장을 개척한 ‘악’과 ‘깡’이 해외 시장을 들이치는 힘으로 발휘된 듯하다.

    김동진(金東珍·56) 사장이 카스를 창업한 것은 20년 전인 1983년 4월. 인하대 산업공학과 출신인 김사장은 이른바 ‘인하대 벤처 사단’의 1세대로 꼽힌다. 방위산업체에서 미사일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많은 하이테크 엔지니어들을 접했던 그는 이들과의 교분을 발판 삼아 1980년 중소기업형 플랜트를 수출하는 회사를 창업했지만, 자금 부족으로 1년 반 만에 문을 닫았다. 뒤이어 시작한 모래 판매업도 실패했다.

    두 차례의 사업 실패를 딛고 일어나 세 번째로 창업한 회사가 카스(CAS·Computer Aided System)였다. 당시는 벤처 비즈니스가 막 태동하던 시절로, 카스의 첫 프로젝트는 한국과학기술원과 함께 산업용 로봇을 제작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예상보다 훨씬 많은 돈을 필요로 했다. 3억원의 정책자금까지 지원받아 프로젝트는 힘겹게 성공시켰지만, 수익보다 비용이 더 드는 구조라 사업화는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카스는 전자저울 사업의 기반이 된 핵심 기술을 확보했다. ‘로드셀(load cell)’이 그것이다. 로드셀은 로봇이 산업 현장에서 부품이나 기구를 정확하게 들어올리게 하는 무게 감지 센서로, 0.001g까지 측정할 수 있는 미세한 센서 칩(스트레인 게이지)이 들어 있다. 로드셀을 자체 제조할 수 있는 나라는 10여 개 정도밖에 없다. 카스도 선진국들이 로드셀 기술 이전을 꺼리자 독자 개발에 나섰던 것. 김사장은 로드셀 기술을 이용, 저울을 만들어 팔면 상업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연구에 매달린 끝에 상업용 전자저울을 내놓기에 이른다.

    하지만 애써 만들어놓은 저울은 6개월 동안 단 한 대도 팔려나가지 않았다.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탓이다. 당시 상인들에겐 물건값을 깎아주거나 덤을 준다고 생색을 내면서 무게를 속이는 게 관행적인 장사 수완이었다. 그런데 전자저울은 기계식 저울과 달리 무게를 속일 수가 없으니 상인들이 외면한 것도 당연했다. 상인들은 ‘너무 정확한 저울’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김사장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서울 성동구청 공업계로 찾아갔다. 관할구역에 정육점이 많기 때문. 계량기를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다짜고짜 “우리 저울 좀 팔게 해달라”고 매달렸다. 공무원은 상습적으로 저울을 속여 두 번이나 단속에 걸린 마장동의 한 정육점에 전화를 걸었다. “이번 한번만 봐주겠다. 대신 앞으로는 전자저울을 써라. 안 그러면 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소개받은 정육점에 전자저울을 설치하는 동안 주인은 “이젠 망했다”며 숨 넘어가는 소리를 질러댔다.

    판촉활동=사회개혁운동?

    저울을 판 후 김사장은 정육점으로 매일 출근해 저울을 제대로 쓰는지 감시하면서 손님들의 반응을 지켜봤다. 그 정육점은 몇몇 정육점들과 붙어 있는데, 전자저울을 설치한 후에는 그곳을 지나는 손님 10명 중 8명이 문제의 정육점을 이용했다. 김사장이 그들에게 “왜 이 집에서 고기를 사느냐”고 물어봤더니 “아무래도 전자저울이 정확할 것 같아서”가 답이었다.

    김사장도, 정육점 주인도, 이웃 정육점 주인들도 깜짝 놀랐다. 소비자들도 재래식 저울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흘이 지나자 인근 정육점들도 죄다 카스 저울을 샀다. 김사장은 “전자저울은 결코 정상적인 세일즈 방식으로는 팔 수 없다는 것을 그때 분명히 깨달았다”고 한다.

    “일단 한 업소만 뚫으면 확산효과가 엄청나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기에 그때부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소비자를 자극했다. 종합시장, 정육점, 청과상 등에 저울을 시범 설치해 무료로 사용케 했고, 전직원이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서 ‘(전자저울을 쓰면) 사는 사람, 파는 사람 서로 좋아요’라는 만화 광고와 전단을 뿌렸다. 일부 정육점 주인들은 시퍼런 칼을 흔들어대며 우리를 제지했는데, 상인들 등쌀에 시장으로 못 들어가면 부근의 전철역에서 시민들에게 전단을 나눠줬다. 어찌 보면 단지 저울을 파는 판촉활동이 아니라 투명한 상거래 질서를 확립하자는 일종의 사회개혁운동 같았다.”

    ‘캠페인성 마케팅’은 주효했다. 어느 순간부터 저울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업소의 전자저울 사용 여부가 신용의 바로미터로 인식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할 정도가 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카스는 어렵게 판로를 개척한 지 넉 달 만에 예상치 못한 고비를 맞았다. 저울을 구입한 전국의 소비자들로부터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저울 숫자가 제멋대로 나온다”는 것. 고장난 저울을 수거해 며칠 동안 머리를 싸매다 고장의 원인을 찾아냈다. 습기에 약한 로드셀이 장마철을 지내면서 탈이 난 것이다. 다시 꼬박 사흘 밤을 지샌 끝에 의외로 간단한 해결책을 찾아냈다. 양초를 만드는 데 쓰이는 파라핀을 스트레인 게이지의 망막에 입혔더니 습기가 침투하지 못했던 것.

    그후 카스는 애프터서비스 직원들을 전국으로 풀어 저울을 수리해줬다. 수리 장비는 양초 몇 자루와 헤어 드라이어가 전부. 스트레인 게이지에 양초를 녹여 몇 방울 떨어뜨린 후 헤어 드라이어로 말리면 끝이었다. 고객 앞에서 이렇듯 ‘단순 무식’하게 수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가 뭣해 저울을 슬쩍 시장통 뒷골목으로 들고 가서 고쳐오곤 했다. 애프터서비스는 물론, 저울이 고장나지 않은 가게까지 찾아가 ‘비포어 서비스(Before Service)’ 차원의 예방조치를 취해주자 상인들간에 입소문이 퍼져 카스에 대한 신뢰는 더 두터워졌다.

    그 무렵 서울 경동시장의 한 약재상은 “불량 저울 때문에 6개월 동안 녹용 1kg을 500g 값에 팔았다”며 카스에 1억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겨우 달랜 끝에 700만원을 보상해주고 저울도 새것으로 바꿔줬다. 저울을 갖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대개 저울만큼이나 무게에 민감하다. 저울로 달지 않아도 얼추 무게를 짐작한다. 그 약재상도 저울이 고장난 것을 일찌감치 알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큰 손해를 보지 않았다. 그후 약재상은 “멍청한 저울회사로부터 보상도 받고 새 저울도 얻었다”며 떠들고 다녔다는데, 이 소문이 경동시장에 퍼지면서 상인들은 오히려 카스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됐다고 한다.

    ‘악’과 ‘깡’으로 동유럽·러시아 들어올리다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카스 본사 생산라인과 연구실

    이런 경험을 거울삼아 카스는 사업 초기부터 애프터서비스에 역점을 뒀다. 김사장은 “카스는 애프터서비스를 통해 성장한 기업”이라고 했다. 저울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오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교정(calibration)을 해줘야 한다. 또한 기후 변화, 수분, 먼지 등 외부 환경에도 민감하므로 지속적인 애프터서비스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카스는 하자 발생시 전국 어디라도 24시간 이내에 해결해줄 수 있는 광역 서비스 조직을 일찌감치 갖췄다. AS 요청이 없더라도 정기적으로 업소를 방문해 저울을 점검한다. 이상이 없으면 알코올로 청소라도 해준다. “고객이 미안해서 박카스를 내올 때까지 닦고 또 닦아준다”는 게 원칙이다.

    그러다 보니 저울을 팔아 남긴 마진보다 AS 비용이 더 커지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영업방침 덕분에 카스는 시장 점유율을 80%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수입 브랜드들은 AS망이 미비해 국내 시장에 뿌리를 내릴 수 없었다. CIS와 폴란드의 경우에서 보듯, 카스는 해외에서도 판매 못지않게 AS에 정성을 쏟아 경쟁력을 높였다. 끈끈한 한국식 고객관리로 ‘섬세한 밀착 서비스’를 처음 접해본 이들 지역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저울은 국제간 거래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상거래의 표준이 되는 저울은 각국 정부가 엄격하게 관리한다. 모델 하나하나마다 정부로부터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인증을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 판매 후 교정작업이 가능하게끔 현지에 서비스 조직 등을 미리 갖춰야 저울을 팔 수 있다. 게다가 나라마다 중력계수가 조금씩 달라 각국의 위도와 경도에 따라 저울을 미세 조정해야 한다.

    영국이 인도를 통치할 때는 400년 역사의 자국 저울회사 ‘에이버리’를 표준으로 삼았고, 일본은 식민지 조선에서 ‘야마도’를 표준 저울로 사용했다. 건국 초기 우리나라 상공부에는 두 개의 국(局)이 있었는데, 하나는 통상국이었고 다른 하나는 저울을 관리하는 계량국이었다. 이렇듯 저울은 통치권과 함께 움직였고, 어느 나라에서나 그런 ‘저울관(觀)’은 지금껏 맥을 잇고 있다.

    카스는 1987년 포르투갈에 처음으로 저울을 수출했다. 그러나 카스와 포르투갈 수입업자 모두 저울 수출입이 그처럼 까다롭다는 사실을 몰랐다. 결국 카스가 수출한 저울은 포르투갈에 저울 수입을 허가하는 법 조항이 없어 1년 동안 창고에서 먼지를 덮어써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첫 수출 관문을 뚫은 카스는 이후 미국의 UL규격 등 각국의 해외 규격을 따내는 데 주력하면서 수출의 길을 열었다.

    김사장은 “지금 우리가 120개국에 저울을 팔고 있다는 것은 120개국의 법과 자존심을 깨뜨렸다는 의미”라며 “저울 수출이 그렇게 험난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다면 해외 시장 개척은 아예 엄두를 내지 않았을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카스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부터 동유럽과 러시아 시장 진출을 모색했다. 이들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화하면 상거래가 활발해져 저울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더구나 사회주의 시절 이들 국가의 관리들은 생필품을 배급하면서 상습적으로 저울 눈금을 속였기 때문에 국민들은 기계식 저울을 믿지 않았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13년간 러시아에서만 200여 개의 국영 저울회사들이 문을 닫은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舊사회주의권 집중 공략

    카스는 1988년 폴란드를 시작으로 이들 지역 시장을 집중 공략했다. 현지 국가경제가 피폐한데다 수입상들의 자금력이 약해 위험부담도 컸다. 선진국 저울업체들이 이 지역 진출을 주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카스는 중소기업으로선 적지 않은 액수의 외상 수출 대금을 떼이는가 하면,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컨테이너를 하적하지 못하고 하릴없이 바다에 띄워놓는 불상사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 가능성을 확신하고 현지 판매 및 서비스 조직을 꾸준히 키워간 덕택에 누구보다 먼저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카스가 러시아에 수출하는 모델은 40여 종. 러시아 표준국으로부터 모델 하나를 인증받는 데 보통 몇 달씩 걸리므로 수출 모델 전부를 정상적으로 인증받으려면 족히 10년은 걸릴 판이었다. 카스는 묘안을 짜냈다. 검사위원 10여 명을 아예 한국으로 초청한 것. 그들이 직접 공장과 연구실, AS센터 등을 돌아다니며 저울이 어떻게 생산되고 관리되는지 확인케 했다. 카스의 열성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검사위원들은 협의를 거쳐 일괄적으로 인증서를 내줬다.

    ‘악’과 ‘깡’으로 동유럽·러시아 들어올리다

    카스 김동진 사장

    카스는 그저 저울을 팔기만 한 게 아니다. 현지에 트레이닝센터를 만들어 사회주의 시절 저울회사에 근무했던 인력이나 젊은 비즈니스맨들에게 시장경제와 카스 제품에 대한 교육을 실시한 후 카스 라이선스를 주고 CIS와 동유럽 구석구석으로 보내 카스 조직화했다. 고급 인력을 한국으로 초청, 본사에서 기술 및 마케팅 교육을 시킨 다음 창업자금까지 들려 보내 현지에서 비즈니스를 일으키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렇게 심어놓은 방대하고도 촘촘한 조직이 카스의 시장 지배력을 유지시키는 보호벽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CIS와 동유럽, 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 카스 라이선스를 갖고 제품을 판매하거나 관리하는 조직은 5000여 개에 달한다. 카스는 이들 네트워크를 활용해 계측기 분야에서도 글로벌 마케팅을 펼칠 계획이다. ‘카스 갈릴레오’ 사업이 그것인데, 이를 위해 지난해 독립사업부를 출범했다. 수질측정기, 가스측정기, 기상관측기, 물리측정기 등 카탈로그로 1000페이지가 넘는 각종 계측기를 미국, 유럽, 일본 등지에서 ‘카스 갈릴레오’ 브랜드로 아웃소싱해 전세계 시장에 판매하겠다는 것. “카스처럼 방대한 조직으로 왜 저울만 팔고 있나. 다른 장삿거리를 달라”는 현지 딜러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착안한 비즈니스다.

    카스는 지금까지 CIS와 동유럽 시장에서 확고한 지위를 누려왔지만, 이 자리가 언제까지나 안정적일 것이라고 확신하긴 어렵다. 그간 카스의 강점으로 여겨져온 제품력과 가격경쟁력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지적도 나온다.

    위에서 눌리고 밑에서 조인다

    세계 1위의 저울회사인 ‘메틀러 톨레도’(독일·미국 합병회사)나 2위 ‘디지 데라오카’(일본) 등 유명 브랜드들은 이른바 ‘세트 메이커(set maker)’로 방향을 전환했다. 단순한 기능의 저울만 만들어 파는 게 아니라 저울과 저울, 저울과 금전등록기, 저울과 프린터, 저울과 사무실 간의 네트워크 구축에 초점을 맞춰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이에 비해 카스는 다품종 생산을 위한 수직적 라인업을 유지하느라 세트 메이킹 기능이 취약하다는 평가다. 카스 저울의 기능이 여전히 제품 개발 단계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

    제품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려면 R&D를 강화해야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다. 중소기업의 여건상 고급 인력의 요구 수준을 들어주기 어려운 현실이라 애써 키워놓은 엔지니어들이 대기업 등으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카스는 중소기업으로는 드물게 해마다 매출액의 10%(70억원)를 R&D에 투입하지만, 이런 여건 탓에 아웃풋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김중호 카스 CIS법인장은 “R&D를 무작정 본사에만 기대고 있을 수 없다고 판단, 현지 R&D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러시아인들은 사회주의 체제 때 집이며 자동차, 가전제품 수리를 맡길 곳이 마땅찮아 웬만한 것은 직접 고쳐 썼다. 그래서 대개 손재주들이 좋고, 엔지니어링 분야도 발달했다고 한다. 카스 CIS법인의 R&D 인력들은 러시아 기업보다 두 배 정도 높은 연봉을 받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들이 한국 본사의 R&D를 선도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톱 브랜드들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어떤 형태로든 중국에 최소한의 생산 기반을 마련했다. 적절한 시점이라고 판단되면 언제라도 대량 생산에 들어갈 수 있도록 채비를 마쳤다는 것. 저울의 핵심 소재인 로드셀은 누가 만들어도 동일한 기술이 적용되기 때문에 이들은 중국에서 로드셀을 저가에 아웃소싱해 쓴다. 그래서 요즘은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톱 브랜드 저울이 카스 제품보다 싼 값에 팔리기도 한다. 카스로선 위에서 눌리고 밑에서 조이는 형국이다.

    카스도 1996년 중국 상하이에 공장을 냈지만 규모가 작아 생산기지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카스가 오는 5월부터 상하이 공장 증설에 나서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폴란드 토렐사의 루블린 지사장 보르코비츠는 “카스의 품질은 상당히 안정돼 있지만, 이제는 다른 회사 제품들도 그 수준을 거의 따라잡았다. 따라서 앞으로는 결국 가격이 승부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기술력에 기반한 세트 메이커로의 변신과 과감한 아웃소싱에 카스의 미래가 달려 있다.冬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