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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④

이인용 남작 부부의 ‘소송 전쟁’

친일파 귀족의 백만금 유산이 5년 만에 먼지로 변한 까닭은?

  •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이인용 남작 부부의 ‘소송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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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용 남작 부부의 ‘소송 전쟁’

▲▲‘동아일보’ 1932년 8월13일자에 실린 조중인의 밀서.
▲조중인이 시아버지 이재극 남작에게 써준 자복서. ‘동아일보’ 1932년 11월1일자에 실린 사진이다.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이재극의 귀에 며느리의 추문이 수시로 들려왔다.

“하인 이철돌과 부정한 관계를 맺었다. 또 누구누구하고도 이상하다.”

이재극은 길게 한숨을 쉬고 머리를 흔들었다.

‘참자. 가문을 생각하자.’

이재극은 가을바람같이 우수수 들려오는 풍설과 소문에 눈을 감았다. 그러나 며느리의 행동만은 밤낮으로 감시했다. 며느리가 수상한 거동을 보일 때마다 그는 혼자 속으로 근심을 거듭했다. 과연 조중인은 제3자가 봐도 수상하게 여길 만큼 하인 이철돌을 총애하고 자주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하루는 이재극이 집안일로 며느리를 꾸짖었다. 그날 밤 조중인은 금비녀를 뽑아놓고 후원에 있는 우물에 나아가 자살한다고 난리를 쳤다. 이 일을 본 이재극은 지금까지 참아오던 온갖 분노가 폭발하여 조중인을 본가로 돌려보내려고 결심한다.

이남작은 엄격한 목소리로 며느리를 불렀다. 조부인은 무시무시한 태도로 남작 앞에 앉았다.

“부모의 꾸지람에 반기를 들고 자살을 하려는 일이 자식의 도리더냐?”

이남작의 목소리는 노여움에 떨렸다. 조부인은 머리를 수그린 채 아무 대답을 못했다.

“내가 그 동안 너의 행동이 아름답지 못한 점도 있고 소문도 들리었으나 젊은 때 일이라 참아왔다. 네 소행이 부모의 명령에 반항하는 뜻이 있는 이상 너는 내 집을 떠날 사람이다.”

이 최후의 엄명을 받은 조부인은 흐느껴 울며 용서를 구했다. 며느리가 눈물을 보이자 이남작의 노여움은 눈 녹듯 풀어졌다.

“그러면 이번은 용서할 터이니 서약서를 써 오너라.”

조부인은 시아버지의 용서를 받고 자기 방으로 돌아와 서약서를 썼다.

“이번 한 번만 용서하여주시면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이후에는 내쫓겨도 항거치 않겠습니다.” (‘매일신보’ 1932년 10월25일자)

그후 조중인은 울분을 삭이며 우울한 나날을 보낸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는 시아버지와 친척들의 감시의 눈초리가 따라붙었다. 그는 의식적으로라도 행동을 삼가지 않을 수 없었다. 애매한 하인들에게만 수시로 분풀이를 했다. 그러나 유독 이철돌만은 친절히 대했다.

이 시기 잘생긴 청년 하나가 대궁에 나타난다. 바로 삼등비행사이자 소문난 ‘오입쟁이’ 민성기였다. 그는 이재극의 외손자, 이인용의 조카였다. 민성기는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활약하던 아버지 민정식의 권유로 안창남과 함께 잠깐 동안 중국내전에 참전했다가 서울로 돌아와 어머니가 기거하던 외가에 머물렀다.

외숙모와 생질. 조부인과 민성기는 이러한 친척의 계단을 놓고 수시로 접촉하였다. 히스테리에 신경이 예민하여진 외숙모에게 민성기는 친절한 간호를 베풀어 남모르는 위안을 주었다. 그동안에도 이인용 남작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조부인을 아내로 대하고 접촉하였다. 그러나 건강이 부실한 이인용 남작은 항상 조부인에게 불만과 번민을 안겨주었다. 민성기의 대궁 출입은 날마다 빠지지 않았다. 조부인과의 접촉도 날마다 있었다. 외숙모의 방에서 민성기는 달콤한 감언을 널어놓았다. (‘매일신보’ 1932년 10월25일자)

며느리를 꾸짖은 지 두 달 후, 이재극은 앓고 있던 지병이 악화되어 괴로운 신음을 계속하다가 유언 한마디 없이 세상을 떠난다. 주인을 잃은 대궁은 그 순간부터 커다란 비극에 휩싸인다. 가까운 친척 하나 없는 젊은 주인은 거대한 대궁을 꾸려갈 만큼 기질이 건실치 못했다. 대궁은 키가 부러져나간 배마냥 방향 없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재극 남작이 죽은 후 대궁의 주인은 조부인이 아닐 수 없었다. 이재극 노남작의 뒤를 이을 이인용 남작의 정실부인, 대궁을 호령할 사람은 조부인이 아니고 누구였으랴. 더욱이 이인용 남작이 한 집안을 다스릴 건강을 못 가졌으니, 조부인의 손에 이 집안의 실권은 들어가야 할 형세였다. 엄격한 시부 밑에 모든 울분을 가슴 속에 감추고 적막하게 지내던 조부인은 대궁의 여왕으로 호령을 부리기 시작했다. 조부인은 대궁의 젊은 여왕의 자리에 올라앉게 되자 방만한 성격을 드러내며 돈 아까운 줄 모르고 낭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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