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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여행가

서양 최초의 실크로드 탐험가 오렐 스타인

모래바람 속 동양의 신비 드러낸 2만5000마일 대장정

  •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서양 최초의 실크로드 탐험가 오렐 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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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최초의 실크로드 탐험가 오렐 스타인

탐험 중 측량대 앞에 선 스타인(대영박물관 자료)

어느 정도 학문적 성취를 이룬 스타인은 1887년 말, 증기선 ‘엘렉트라호’를 타고 개통된 지 얼마 안 된 수에즈운하를 통과해 인도로 향했다. 그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인도에 도착해 자리잡은 곳은 라호르. 지금은 파키스탄에 속하나 당시는 영국령 인도 땅이었다. 행정은 물론 전략상으로나 상업상의 중요성이 부각돼 철도 교통의 중심지로 떠오른 라호르에서 그는 교육 관련 일을 보면서 탐험에 필요한 것을 준비했다. 그는 특히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초기 불교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알렉산더 대왕과 현장이 그를 움직였다. 1898년 9월, 그는 자신의 미래를 결정짓게 될 신청서를 작성해 인도 정부에 제출했다. 중국령 투르케스탄에 속하는 호탄(Khotan·和田)과 그 주변의 고대 유적을 탐사하기 위한 탐험 계획서였다. 중국령 투르케스탄이란 지금의 신장(新疆) 위구르 자치구를 말한다. 1899년 2월 그가 쓴 한 서신에는 “중국령 투르케스탄으로 떠나는 고고학 연구여행은 1897년 이래 내가 꿈꾸어오던 것”이라는 구절이 있다.

드디어 실크로드로

인도 정부의 허락이 떨어지고 마음의 준비도 끝나자 6개월의 하기휴가를 신청했다. 처음엔 그도 그 기간 안에 돌아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37세 때인 1900년 5월31일, 스타인은 드디어 실크로드 탐험 길에 올랐다. 그는 그 길에서 현장법사의 발자취를 찾고 싶었다.

당시 실크로드 지역 대부분은 1644년 명(明)을 꺾고 중국대륙을 차지한 청(淸)의 손에 들어간 상태였다. 190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 지역에 대한 청의 지배권이 느슨해졌다.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베이징, 상하이, 난징, 홍콩, 칭다오 등지에서 목을 조여왔기 때문이다. 그러자 투르케스탄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살아온 무슬림이 교역을 장악하고 독립운동과 무장봉기가 일어나는 등 혼란이 그치지 않았다. 그만큼 스타인 일행이 예기치 않은 일에 말려들 위험성이 컸다.



카슈미르의 스리나가르를 출발한 스타인 곁에는 지도 작성과 위치 확인을 도와줄 잠신이라는 측량기사와 라지프트족 출신의 요리사 겸 잡역부 5명, 다수의 인부, 그리고 텐트와 식료품, 도구 등을 운반하는 16필의 조랑말이 있었다.

첫날은 날씨도 쾌적하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일행은 대체로 도보 행군을 할 계획이었다. 달리 마땅한 교통수단도 없었지만 자연과 친해지는 데 그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카슈미르를 지나 표고 3000m 지점에 이르자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인 좁은 평지가 나타났다. 눈이 녹아 생긴 습지의 바닥에는 고산식물이 꽃을 피웠고 띄엄띄엄 오두막집도 보였다. 가면 갈수록 눈길은 더욱 깊어갔다. 적설이 상당했다.

스타인은 맞딱뜨리는 마을마다 들러 그곳 사람들의 행동양식과 사용 언어를 관찰했다. 6월8일에는 3300m가 넘는 고개를 지나 인더스 강 상류를 향해 전진했다. 그때 그는 일기에다 “웅대한 인더스 강의 흐름을 보았다. 북으로는 준봉이 겹겹이 이어져 있다”고 썼다.

그곳에 ‘부즈카시’라고 부르는 부족이 살고 있었는데 마상경기를 즐겼다. 스타인 일행은 거기서 길기트 계곡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오늘날 지도에 보면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북부 국경지대로 그 남쪽에 초기 간다라 문명이 꽃핀 스와트란 곳이 자리잡고 있다.

길기트에선 현지 정부본부에서 내준 쾌적한 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곳은 영국령이던 인도의 최북단 국경초소였다. 그 다음으로 방문한 훈자 마을에서도 스타인은 촌장의 환대를 받았다. 훈자의 중심지구인 발티트 성은 절벽 위에서 위풍당당한 자태를 뽐냈고, 그 아래로 과수원과 정원이 펼쳐졌다. 촌장은 그 한쪽 공터에서 부즈카시 경기를 벌여 스타인 일행을 즐겁게 해줬다. 일행이 떠나려 하자 촌장은 파미르 고원의 지형을 잘 아는 두 명의 안내자와 화물 수송을 도와줄 인부 6명을 붙여주었다.

영국의 최후 방어선 아프가니스탄

스타인 일행은 6월24일, 1마일(1609m) 정도 되는 빙하를 어렵사리 건넜다. 그곳을 지나자 이번에는 거의 수직에 가까운 벼랑이 일행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걸 피하려고 키리크 고개로 향하다가 눈 덮인 험준한 봉우리를 만났다. 스타인은 그곳이 옥서스, 인더스, 야르칸트의 세 강으로 갈라지는 분수령이라고 생각했다. 표고는 4750m.

탐험조사는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조건은 양호했다. 스타인은 측량기사를 대동하고 4800m가 넘는 산 정상으로 올라가 지형을 살폈다. 일행은 초지가 있는 곳에서 이틀을 보냈다. 다음 코스는 ‘세계의 지붕’인 파미르 고원. 그곳에 이르자 일행은 좀처럼 나아가지 못했다. 7월15일자 그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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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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