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호

MB는 안 변해도 세상은 변한다

  • 입력2011-01-20 10: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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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루미는 날마다 미역 감지 않아도 새하얗고, 까마귀는 날마다 먹칠하지 않아도 새까맣다.” 집권여당의 사퇴 촉구란 사상 유례없는 ‘변고’로 청문회도 열리기 전 물러나야 했던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사퇴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장자(莊子)’의 한 구절이라는데 두루미와 까마귀가 누구라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성마른 이들은 대뜸 ‘아니, 전관예우로 한 달에 1억원씩 받아 챙긴 인사가 ‘새하얀 두루미’란 말인가?’라며 핏대를 세울지 모르겠다. 박봉에 매어 사는 서민들은 다시 한 번 억장이 무너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정씨의 항변에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무작정 까마귀로 몰아세울 수도 없다고 본다. 그를 까마귀라고 한다면 대한민국은 ‘까마귀 천지’가 아니겠는가. 출세를 위해서라면, 부자가 될 수 있다면, 언제든 까마귀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을 마음이라면 이미 두루미는 아닐 테니까 말이다.

    정치란 따지고 보면 인간의 욕망(탐욕)을 공평하게 통제하고 공정하게 배분하는 것일 터다. 그러자면 정치력을 행사하는 권력부터 공익에 봉사한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그 첫째가 인사다. 인사가 만사(萬事)라고 하는 이유다. 그런데 ‘MB 인사’는 만사는커녕 망사(亡事)가 된 꼴이다. 2008년 2월, 첫 조각 때는 ‘고소영, 강부자 내각’이라는 세간의 비아냥 속에 3명의 장관 후보자가 땅투기 의혹 등으로 낙마했고, 같은 해 4월에는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내정자가 땅 투기 및 논문표절 의혹으로 물러났다. 2009년 7월에는 검찰총장 후보자가 스폰서 의혹으로 사퇴해야 했고, 2010년 8월에는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지식경제부, 문화체육부 장관 후보자가 각종 비리 의혹에 휩싸여 낙마했다. 인사 실패가 연례행사가 된 셈이다.

    역대 어느 정권이든 정권창출에 공헌했거나 임명권자와의 개인적 연고관계를 기준으로 공직을 충원하는 엽관제와 정실(情實)주의가 그 기능을 하지 않은 적은 없다. 이른바 보은(報恩) 인사와 낙하산 인사, 측근 인사는 늘 있어왔다. 문제는 이명박 정권에서 인사의 사유화(私有化), 정실주의 성격이 유독 강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최근 MBC ‘PD수첩’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 인사 실태를 비교 분석해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에서는 5년간 125개 기관에 185명이 임명된 데 비해, 이명박 정부에서는 3년간 185개 기관에 306명이 임명됐다. 특히 이 정부에서는 민간기업에조차 낙하산 인사가 공공연하게 이뤄졌다. 대표적인 예는 김은혜 전 청와대 대변인이 KT 전무로 간 것. 방송 앵커 출신으로 올해 나이 마흔인 김씨가 거대 통신업체의 전무가 된 것은 개인적 능력 여부를 떠나 상식에 맞지 않는 낙하산 인사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씨는 “사람을 뽑는 것은 회사의 결정”이라고 했다지만 이야말로 지나가던 소가 듣고 웃을 소리가 아닌가.

    자리 나눠 먹기식 인사 논란은 급기야 내부 분란으로까지 표출되는 양상이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선진국민연대’의 공동대표를 지낸 양재헌 국민성공정책진흥회 회장은 신년 하례식에서 “겉으로는 공정사회를 외치고 소통을 이야기하면서 속으로는 안국포럼· 에스라인· 고소영으로 패거리 지어서 동지들끼리조차 소통하지 못했다. 이런 패거리주의로 동지들을 능멸한 박영준 (지식경제부) 차관이 즉시 퇴진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양 회장은 MBC ‘PD수첩’ 인터뷰에서는 “나중에 알아보니까 인재 리스트라고 해서 어디에 갈 사람들 리스트를 작성해 올렸다. 박영준 차관이 거의 다 주도했을 것인데, 박 차관 등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 중심으로 들어가다 보니까 (이명박 정부에서) 소통과 대화가 단절되는 것이다. 박 차관하고 김대식 국민권익위 부위원장이 ‘우리가 이 정권을 만들고 끝까지 이 정권의 성공을 위해서 동지들이 손잡고 무덤까지 같이 가자’고 말해 우리는 정말 그걸 믿었다”고 말했다. 믿었는데 속았다는 배신감의 토로다.



    다른 사조직인 ‘엠비연대’의 김원호 전 고문은 “선진국민연대는 하다못해 전라남도 총무, 사무장 한 사람도 어디 가스안전공사에 상임감사로 가고 연봉 1억 넘는 데 다 갔다. 그런데 우리 엠비연대는 아무도 없다”고 했다. 노골적인 소외감의 표출이다.

    그들의 주장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헤아리기 어렵다. 그들이 속한 단체나 조직 이름도 금시초문이다. 다만 여러 공직이 공익이 아닌 끼리끼리식 사익 추구의 대상으로 변질됐다고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게 본다면 감사원장 후보자가 낙마하고, 총리 및 장관 후보자들이 인사청문회 벽을 넘지 못한 것은 표면적인 사안일 뿐이다. 문제의 본질은 공직이 사익추구집단에 휘둘리지 않느냐는 데 있다. 이는 세금 내는 국민으로선 정말 참을 수 없는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전의 정권이라고 크게 달랐겠는가? 정권을 잡는다는 것 자체가 그 과실을 나누어 먹는 것이거늘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그럴 거라면 공정사회 얘기는 하지 말았어야 한다. 매달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공정사회 점검회의를 주재한다는 말도 하지 않는 게 낫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이 공정사회의 핵심과제는 아니다. 선진국의 문턱을 단숨에 넘자는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경제성장만으로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대통령 말처럼 성숙한 민주국가가 돼야 한다. 모든 인사 논란의 근본이유도 상식에 반하고 성숙한 민주국가와는 거리가 먼 독단과 아집의 소산이 아닌가. 인사검증시스템을 백날 바꿔봐야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는 노릇이다.

    일기가성(一氣呵成)이라! ‘일을 단숨에 매끄럽게 해낸다’는 뜻을 지닌 4자성어라는데, 청와대가 신년 화두로 내세운 이 말과는 달리 대통령의 행보는 새해 벽두부터 제동이 걸린 모양새다. “서울 G20정상회의를 통해 당당히 세계 속의 대한민국으로 우뚝 섰고, 우리 경제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가장 높은 6%대의 경제성장을 달성했으며, 수출 세계 7위의 무역대국이 되었다”며, 이제 선진국의 문턱을 단숨에 넘어야 한다던 기세도 주춤한 듯하다. 겉모습만이라도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갖춰야 할 감사원장에 비서 출신을 내정하는 무감각하고 무리한 인사가 자초한 결과다. 이 와중에 ‘구제역 쓰나미’가 덮쳤고, 청와대 감찰팀장까지 ‘함바 게이트’에 연루됐으니 50% 안팎이라는 대통령 지지율이 무색하게 됐다. 게다가 그동안 고분고분 말 잘 듣던 여당이 느닷없이 ‘반란’을 일으켰으니 보통 일이 아니다. 당장이야 당에서 꼬리를 내렸다지만 내년 총선에 가까워질수록 표를 의식해야 하는 여당의원들은 청와대 눈치만 보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기야 다수 국민에게는 대통령과 여당의 힘겨루기에서 어느 쪽이 이기고, 어느 쪽이 밀리는지는 관심 밖이다. 선거 없는 해에 정국이 안정된 가운데 나라가 잘되고 국민 각자의 형편도 나아지는 것이 소박한 바람이다. 그러자면 또다시 인사 파동 같은 것은 없기를 원한다. 새삼스레 도덕적 권위까지는 기대할 수 없더라도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인물들이 공직을 맡아 공익을 위해 일해주기를 바란다. 더 이상 두루미니 까마귀니 하는 엉뚱한 소리로 헷갈리게 하고, 화나게 하고, 짜증나게 하는 일이 없기를 요구한다. 일기가성도 좋지만 그에 앞서 백성이 가장 귀중하고 임금은 그보다 덜 중요하다는 ‘민귀군경(民貴君輕)’의 정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이 대통령은 올해 국정의 두 축으로 안보와 경제를 들었다. 북의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한반도 평화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국정과제로 떠올랐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은 절대 다수 국민의 요구다. 경제는 이 정권의 첫 번째 존재 이유다. 그러나 지극히 당연한 과제도 권력이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이루어내기 어렵다. 더구나 지금은 과거 개발독재시대처럼 모든 가치를 희생해서라도 경제만 좋아지면 되는 때가 아니다. 3년 전 다수 유권자는 경제 살리기를 앞세운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다. 그러나 다음 대선에서는 도덕성의 가치를 우선하겠다고 한다.

    최근 복지담론이 시대적 의제로 대두하는 것도 이러한 국민의 의식변화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우리가 복지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수준”이라고 했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복지지출 비중은 OECD 30개 회원국 중 최하위권(29위)이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성장과 효율적 복지의 조화를 모색하는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 야당이 단지 표를 얻기 위해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것이라면 무책임한 포퓰리즘이겠지만, 판에 박힌 듯 복지망국론을 강조하는 것 또한 경직된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빈부 양극화와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문제의 해법과 대안을 찾는 노력은 경제 살리기 못지않게 중요하다. 하지만 이 대통령에게 그런 수준의 소통과 설득의 리더십을 기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대통령의 역할과는 상관없이 복지담론은 곧 한국사회의 핵심의제가 될 것이다. 대통령이 사회의 핵심의제를 주도하지 못한다면 그 또한 레임덕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지 않겠는가.

    MB는 안 변해도 세상은 변한다
    全津雨

    1949년 서울출생

    동아방송 기자

    월간 신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실장·대기자

    現 경원대 초빙교수

    저서: 작품집 ‘하얀 행렬’ ‘서울의 땀’, 칼럼집 ‘역사에 대한 예의’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은 “MB는 안 변한다”고 말했다. 대통령보고 변하라고 하는 것은 이미 처음부터 안 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홍준표 발언’의 무게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의 말이 틀리지 않다면 인식의 지체현상이 빚는 대통령과 여당의 갈등, 여야의 반목, 그리고 빠르게 진화하는 사회와의 부조화로 신묘년 한 해도 ‘단숨에 매끄럽게 해낸다’는 일기가성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비관하거나 낙망할 일은 아니다. 일기가성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닐 테니까. 대통령이 안타깝게 생각한들 부적절한 인물이 국무총리, 감사원장, 장관이 될 수는 없는 세상이 됐으니까. MB는 변하지 않더라도 세상은 변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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