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호

죄를 저질러 신을 노하게 하지 말라

신화時代의 범죄

  • 이창무│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형사사법학

    입력2012-07-24 1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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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 역사는 곧 범죄의 역사다. 전쟁 테러 학살 쿠데타….
    • 암울한 기억이 모두 범죄와 관련돼 있다. 그럼에도 범죄의 창(窓)을 통해 역사와 문명을 읽으려는 시도는 별로 없었다. 소돔과 고모라, 분서갱유, 십자군전쟁, 마녀사냥, 종교재판, 인클로저 운동, 드레퓌스 사건, 인종 청소, 매카시즘, 마피아, 9·11 테러, 금융위기까지 시대적 위기는 항상 범죄에서 비롯했다.
    • 신화시대부터 21세기까지 일어난 범죄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역사와 문명을 읽어 본다.
    죄를 저질러 신을 노하게 하지 말라

    아킬레우스가 아마존 여왕 펜테실레이아의 목에 창을 겨누고 있다.

    인간은 천지가 만들어진 태초부터 범죄를 저질렀다. 문명은 범죄와 함께 태동했으며 범죄가 남긴 상처를 치유하면서 발전했다.

    신화를 통해 인류 문명의 서막이 펼쳐졌다. 때와 장소는 달라도 문명은 신화에서 출발한다. 신화는 신과 영웅의 이야기다. 범죄는 신화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신과 영웅이 숭배의 대상이 되려면 사악한 존재가 필요하다. 신화가 악의 존재와 이를 처단하는 신과 영웅의 이야기로 가득한 데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 신화의 시대, 지배세력은 항상 불안했다. 법(法)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으며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물리력은 한계가 있었다. 지배자는 신의 섭리를 내세워 사람을 처벌했다.

    “범죄가 많은 것은 신화가 없는 탓”

    신화는 정의가 악을 물리치고, 나쁜 짓 하면 반드시 죗값을 치른다는 주제로 일관된다. 하늘의 심판에서 도망갈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한다. 인간의 불완전함을 강조하면서 신이 가진 무소불위의 권능을 보여준다. 신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해 몸조심, 입조심 하게 하는 것이 신화의 사회적 역할이었다. 실존 분석의 거장 롤로 메이(Rollo May)는 “현대사회에 범죄가 많은 것은 위대한 신화가 없는 탓”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창조신화는 태초 이전 암흑과 혼돈 상태에서 하늘이 열리고 땅이 솟아나면서 광명과 질서가 생겨났다고 설명한다. 구약성서 창세기 1장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적는다.



    미국 애리조나 주 피마 인디언의 전설인 ‘세상의 노래’의 서술은 창세기의 그것과 비슷하다. “태초에는 도처에 흑암, 그러니까 흑암과 물뿐이었더라. 그러다 한 곳에서 흑암이 덩어리지니, 덩어리졌다가 갈라지고, 덩어리졌다가 갈라지고 하니….” 그리스 신화도 세계가 처음 생겨날 때를 설명하면서 다른 신화들과 유사한 광경을 묘사한다. 우주에서 먼저 혼돈의 연못 카오스(Chaos)가 탄생하고 그 다음으로 가이아(Gaea·대지)와 탄탈로스(Tantalos·암흑세계), 에로스(Eros·사랑)가 생겨났다고 그리스 신화는 서술한다. 게르만 신화 역시 태초 이전에는 하늘도 없고 땅도 없으며 바다도 없고 거대한 허무의 심연 긴능가가프(Ginnungagap)만이 있었다고 가르친다. 중국 창조 신화 역시 태초를 하늘과 땅의 구별이 없는 혼돈 상태로 묘사한다.

    신화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설픈 것을 싫어한다. 신이건 사람이건 선한 것과 악한 것의 구분이 확연하다. 선한 것은 칭송해야 하며 악한 것은 벌을 받아야 한다. 인과응보(因果應報)와 권선징악(勸善懲惡)은 거의 모든 신화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다.

    모든 신화에서 잘못에 대한 처벌은 가혹하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는 티탄 신족을 굴복시킨 뒤 그들을 암흑세계의 탄탈로스에게 보내 유폐시킨다. 그곳은 제우스에게 반역한 신을 가두는 감옥이었다. 제우스는 괴물들로 하여금 이 감옥을 감시하게 했다. 티탄신족 중에서도 괴력의 소유자인 아틀라스(Atlas)에게는 세상의 서쪽 끝에 가서 양팔로 하늘을 들게 하는 벌을 내렸다.

    죄를 저질러 신을 노하게 하지 말라
    신이 만든 정의

    신화의 시대 때 정의는 신들의 전유물이었다. 인간은 신이 만든 정의를 따라야만 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는 법률의 여신 테미스와 결혼해 정의의 여신 디케를 낳는다. 제우스는 디케를 특히 사랑했다. 디케가 인간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하면 제우스는 죄지은 인간을 벌했다. 인도의 베다 신화에는 바루나라고 불리는 사법(司法)의 신이 있다. 바루나의 율법은 준엄했다. 신이나 인간 모두 무조건 따라야 했다.

    악(惡)이 존재하지 않는 신화는 없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사탄(satan)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적으로 대적하다’라는 뜻이다. 사탄은 무너뜨리고 제압해야 하는 악인 것이다. 악은 신에 의한 정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도 존재한다. 악은 신과 영웅에 의해 처단된다.

    선신(善神)과 악신(惡神)의 대결이 거의 모든 신화에 등장한다. 페르시아 신화에서 선신 아후라 마즈다는 광명을 나타낸다. 악신 아할리만은 암흑의 상징이다. 아할리만은 아후라 마즈다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공격한다. 단군신화 역시 선과 악의 논리를 통해 지배 질서를 정당화한다. 천제 환인의 아들 환웅이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땅에 내려와 인간계를 다스릴 때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쑥 한 줌과 마늘 스무 쪽을 주면서 “이것만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인간이 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성질이 못된 호랑이는 며칠 견디지 못하고 동굴 밖으로 뛰쳐나갔다. 참고 견딘 곰은 여자로 변해 잠시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한 환웅과 혼인해 남자 아이를 낳았다. 그가 바로 단군왕검(檀君王儉)이다. 호랑이는 범족의 일환으로 원래부터 문제가 많았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강족(强族)이 말썽을 부리고 고분고분하지 않자 환웅은 계율을 주고 따르도록 서약게 하고 선악을 가려 징벌하고자 했다. 강족 가운데 특히 범족은 잔인하고 탐욕스러워 약탈을 일삼았다. 이에 환웅은 범족을 사해(四海)로 쫓아버렸다. 순종적인 곰족과 사악한 범족으로 구분해 신의 섭리에 순종하지 않는 사악한 무리는 결국 쫓겨난다고 가르친 것이다.

    신으로부터는 도망칠 수 없다

    죄를 저질러 신을 노하게 하지 말라

    영화 ‘트로이의 목마’의 한 장면. 트로이 군중이 목마를 보고 경탄하고 있다.

    범죄에는 벌이 따른다. 범죄를 억제하려면 처벌의 확실성이 필요하다. 형사사법학의 시조로 불리는 체사레 베카리아(Cesare Beccaria)가 1764년 ‘범죄와 처벌에 관하여’란 책에서 가장 강조한 부분도 처벌의 확실성이다. 베카리아의 책은 오늘날 억제이론의 출발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에서 수많은 범죄가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나는 잡히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상 곳곳에 CCTV를 설치하더라도 모든 범죄를 적발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범죄 검거율은 30% 미만이다. 게다가 설사 적발되더라도 법망을 빠져나갈 방법이 없지 않다. 하지만 제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를 가졌더라도 신의 감시와 처벌은 피할 수 없다. 신화가 갖는 강력한 힘이다. 신화의 시대를 산 사람들은 신을 두려워했다. 신으로부터는 도망칠 수 없기 때문이다.

    창세기에서 인간이 저지른 최초의 범죄는 곧바로 하나님에게 적발된다. 하나님을 속이거나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뱀의 사악한 꼬임에 아담과 이브는 너무나 쉽게 넘어갔고 그 대가는 컸다. 뱀이 하나님이 결코 먹어서는 안 된다고 명한 나무 열매를 따먹으라고 이브를 유혹하면서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했다. 인류 최초의 범죄인 절도는 이렇게 저질러졌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 그리고 뱀에게 강력한 벌을 내린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창세기 3: 14)

    이브는 다음과 같은 벌을 받았다.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아담이 받은 벌은 이렇다.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해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세기 3: 16-17)

    구약성서 창세기는 곧이어 아담과 이브의 두 아들 카인과 아벨을 거론한다. 카인이 아벨을 죽이자 하나님은 바로 카인의 죄를 적발하고 벌을 내린다.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창세기 4: 11-12)

    창세기는 이렇듯 인간이 죄를 저질러 고통을 겪게 됐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아담과 이브, 카인은 죄의 대가로 고통을 당할 뿐이지만 대부분의 신화에서 인간이 잘못을 저지르면 죽음으로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죄인을 응징한 대홍수

    천벌(天罰)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듯 신화에서 처벌은 하늘의 뜻이다. 따라서 칼이나 몽둥이가 아니라 천지자연을 이용해 범죄자를 응징하는 경우가 많다. 벼락은 여러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천둥이나 벼락의 과학적 성질을 알지 못하는 시절이었기에 벼락은 신의 노여움을 나타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재료였을 것이다. 제우스가 번개를 처벌 수단으로 사용했다면 몽골 신화의 주신(主神) 후헤데이 메르겐은 천둥의 화살을 쐈다. 500개의 머리와 50개의 뿔을 가진 괴물 망가드를 죽일 때 메르겐은 천둥 화살을 쏘면서 피비와 돌 우박을 내리게 했다. 잉카제국 창조 신화의 비라코차 신은 인간이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오히려 신을 공격하자 하늘에서 불꽃을 내려 사람들이 모여 있는 산을 불태웠다. 창세기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역시 불로 도시 전체를 태워버린 사례다. 하나님은 소돔 성읍에 의인이 불과 10명만 있어도 용서하겠다고 했으나 그곳에 사는 의인은 10명이 되지 않았다. 결국 소돔과 고모라는 유황과 불의 비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천재지변은 악한 사람을 응징하는 좋은 도구였다. 세상이 혼탁해져 한두 명이 아닌 전체를 벌줄 필요가 있을 때 등장하는 게 대홍수나 지진 같은 천재지변이다.

    창세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창세기 6:5) 하나님은 대홍수라는 벌을 내리면서도 유일한 의인인 노아에게 재난을 피할 방주의 크기와 제작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준다. 평소 덕을 쌓고 착한 일을 해야만 모든 사람이 죽을 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 역시 인간을 벌하고자 대홍수를 일으켰다. 착한 인간이었던 데우칼리온과 피라는 프로메테우스가 대홍수가 일어날 것이라고 알려준 덕분에 미리 만들어놓은 배에 올라 익사를 면할 수 있었다.

    인도 베다 신화의 대홍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마누라는 사람이 물을 길어왔는데 양동이에 물고기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물고기가 “조만간 대홍수가 나서 세상이 전부 물에 잠길 겁니다. 나를 잘 길러주면 그때 당신을 구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마누는 연못을 만들어 물고기를 키웠다. 물고기가 다 자란 뒤 바다로 돌아가면서 대홍수가 일어날 해를 일러줬다. 그러곤 “배를 준비하면 제가 도우러 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물고기가 말한 그해에 실제로 큰 홍수가 났다. 마누가 준비한 배에 올라타자 물고기가 나타나 배를 히말라야 산맥 쪽으로 인도했다.

    고구려 건국신화에서도 주몽이 하늘의 힘을 빌려 대홍수를 일으킨 적이 있다. 고향 동부여를 떠나 졸본 비류에 도착한 주몽은 비류의 송양(松讓)왕과 만나 누가 진짜 하늘의 자손인지를 겨뤘다. 주몽이 상제의 자손임을 증명하고자 7일 동안 계속 비를 내리게 한 뒤 비류를 홍수에 휩쓸려 떠내려가게 했다. 결국 송양왕은 나라를 주몽에게 넘겨주었다.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대홍수 얘기는 이렇다.

    “먼 옛날 옥황상제가 성질 나쁜 인간을 몰살하고자 대홍수를 일으켰는데 다 죽고 선량한 오누이 두 사람만 살아남았다.”

    신화의 시대에는 이렇듯 인간이 타락하거나 범죄에 물들면 신의 선택을 받은 몇 명만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분노는 범죄가 일어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살인을 흔히 격정의 범죄(crime of passion)라고 하는데 살인은 분노를 참지 못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나 부모를 욕보였다든지, 간통 현장을 목격하는 등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살인과 같은 극단적 범죄로 연결된다. 범죄학자 마빈 울프갱(Marvin Wolfgang)은 전체 살인의 26%가 피해자가 유발한 것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신들의 분노와 질투

    신화에서도 분노와 질투가 살인과 같은 심각한 범죄로 이어지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제우스의 바람기를 상대 여성에 대한 철저한 복수로 응징한다. 세멜레가 제우스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안 헤라는 세멜라를 번개에 타 죽게 만들었다. 헤라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세멜레의 자매인 이노를 미치게 만들어 이노가 자기 아들 멜리케르테스를 삶아서 죽인 후 시체를 바다에 던져버리게 했다. 끔찍한 보복이 아닐 수 없다.

    영웅 탄탈로스의 딸 니오베는 일곱 명의 자식을 낳았다. 자식 자랑에 침 마를 날이 없던 니오베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밖에 낳지 못한 레토 여신보다 자신이 훨씬 자식 복이 많다고 떠벌렸다. 이 얘기를 전해 들은 레토는 화가 치밀어 아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시켜 니오베의 자식을 모두 활로 쏴서 죽여버렸다. 니오베는 너무 슬퍼 아버지 탄탈로스가 사는 소아시아의 시로스 산으로 들어가 돌이 됐다. 돌이 된 뒤에도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트로이 전쟁 역시 복수심에서 출발한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올림포스의 모든 신이 초대받은 연회에 홀로 초대받지 못하자 화가 났다. 에리스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바치는 선물이라며 황금사과를 던졌다.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이 황금사과를 차지하려고 다퉜고, 난처해진 제우스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누가 제일 아름다운지 가려달라고 했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파리스에게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해주면 아시아 전체의 왕이 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전쟁의 여신 아테나는 모든 전투에서 승리하게 해주겠다고 다짐했고, 아프로디테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와 결혼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했고 결국 다른 두 여신의 분노를 샀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헬레네였다. 그런데 헬레네는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동생이자 스파르타의 왕인 메넬라오스와 결혼한 상태였다. 아프로디테는 파리스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헬레네가 파리스의 매력에 빠지게 했다. 사랑에 빠진 둘은 메넬라오스가 크레타 왕 장례식에 간 사이에 스파르타를 떠나 트로이로 향했다. 아내를 잃은 메넬라오스와 그의 형 아가멤논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 트로이를 정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리스 도시국가 전체로 퍼져나갔다. 아가멤논을 총사령관으로 트로이 원정대가 구성됐으며 용맹한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도 원정 대열에 합류했다. 전쟁은 10년을 끌었으나 쉽게 결판이 나지 않았다.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가르쳐준 대로 오디세우스는 속이 빈 거대한 목마를 만들고는 그 안에 자신을 포함한 그리스군 용사들을 숨겼다. 다른 그리스군은 목마를 남겨둔 채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근처 섬에 숨어 대기했다. 그리스군이 전쟁에 지쳐 철수한 것으로 판단한 트로이 사람들은 남겨진 목마를 전리품으로 삼은 뒤 성안으로 들여놓고는 성대한 승전 파티를 열었다. 술에 취해 모두 깊이 잠든 사이 목마에 숨어 있던 그리스 병사들이 빠져나와 성문을 열고 밖에서 대기하던 그리스군을 불러들였다. 트로이 병사들은 모두 처참하게 살해됐고 여자들은 노예로 끌려갔다.

    신을 노하게 하지 말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의 고난도 신들의 분노를 사서 벌어진 일이다. 프로메테우스가 하늘에서 불을 훔쳐와 인간에게 전해주자 제우스는 크게 분노했다. 제우스는 자신을 속이고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프로메테우스의 몸을 쇠사슬로 묶고는 독수리를 불러 매일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 먹게 했다.

    오이디푸스의 기구한 운명도 범죄는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라이오스는 테베에서 피사로 망명해 펠롭스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았다. 라이오스는 펠롭스의 아들 크리시포스의 가정교사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라이오스가 미소년이던 크리시포스에게 동성애 욕망을 느꼈다. 라이오스의 유혹을 받은 크리시포스는 수치심에 시달리다 자살했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라이오스의 행동에 분노한 펠롭스는 라이오스가 앞으로 얻을 사내아이에게 저주를 걸었다. 테베로 돌아와 왕이 된 라이오스는 사내아이가 태어나자 녀석의 양쪽 발꿈치를 황금 핀으로 찌른 다음 목동을 불러 아이를 산중에 내다버리라고 지시했다. 산중에 버려진 오이디푸스는 또 다른 목동에게 발견돼 아이가 없던 폴리보스에게 입양돼 친자식처럼 키워졌다. 아이는 발뒤꿈치가 부어 있어 ‘부은 발’이라는 의미의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코린토스의 왕자가 된 오이디푸스는 어느 날 친구들로부터 자신이 왕의 친자식이 아니란 소리를 듣고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의 신탁에 가서 자신의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물었다. 아폴론은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답해주지 않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태어난 고향을 찾아서는 안 된다. 고향에 가면 친아버지를 죽이고 친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다.”

    아폴론의 말을 들은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고향이라고 믿고 있던 코린토스가 아닌 테베로 향했다. 테베로 가는 길에 수레를 타고 오는 노인을 만났다. 노인이 오이디푸스에게 길을 비키라고 요구하면서 지팡이로 때리려고 했다. 화가 치민 오이디푸스는 노인을 때려죽였다. 이 노인이 오이디푸스의 친아버지 라이오스다. 라이오스가 죽자 왕비 이오카스테의 오빠 크레온이 섭정을 맡았다. 스핑크스로 인한 피해가 끊이지 않을 때인데, 크레온은 누구라도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면 왕비와 결혼시켜 테베의 왕위에 오르게 하겠다고 선포했다. 스핑크스가 “몸은 하나이면서 네 다리, 두 다리, 세 다리가 되는 것은 무엇이냐?”라는 수수께끼를 내자 오이디푸스가 “인간”이라는 정답을 내놓았다. 스핑크스는 수수께끼가 풀린 것에 절망해 스스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크레온은 약속대로 오이디푸스를 이오카스테와 결혼시켰다. 나중에 저간의 사정을 모두 알게 된 이오카스테는 목을 매 자살했다. 오이디푸스는 진실을 보지 못한 자신의 눈을 저주하면서 황금 핀으로 두 눈을 찔렀다. 라이오스의 그릇된 욕망이 빚은 비극이었다.

    신화를 대신한 法

    대부분의 신화에서 천국과 지옥의 개념이 나타난다. 현세에서 선행을 쌓으면 천국에 가고 악한 일을 저지르면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다.

    조로아스터교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의 행동이 기록으로 적혀 있는 재판소로 향한다고 가르친다. 미스라 신이 주심 판사, 슬라오샤 신과 라시느 신이 배석 판사를 맡고 있는 이 재판소는 죽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 행한 모든 행동을 심판한다. 재판이 끝나면 죽은 영혼은 안내인을 따라 내세로 이동한다. 선인의 영혼은 아름다운 처녀의 안내를 받고 악인의 영혼은 노파의 안내를 받아 친바트 다리를 건넌다. 착한 영혼이 건널 때는 다리 폭이 넓어진다. 선인은 다리를 건너 천국으로 들어간다. 악한 영혼이 건널 때는 다리 폭이 좁아진다. 악한 영혼은 결국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 조로아스터교의 지옥에 대한 묘사는 구체적이다. 살아서 만행을 저지른 통치자에게는 50명의 악마가 뱀을 던진다. 사악한 부자는 고문대에 묶여 1000명의 악마에게 짓밟힌다. 남을 속여 돈을 번 장사꾼은 먼지와 재를 센 뒤 그것을 먹어야 한다. 간통을 범한 여자는 악마들이 전신을 잡아당긴다. 고통은 사면 없이 영원히 계속된다.

    신화는 저주와 벌을 보여줌으로써 순종과 복종을 강요한다. 불행은 잘못된 행실의 결과라는 가르침을 받은 인간은 악과 거짓, 불법과 혼란, 부정과 억압을 멀리해야만 했다. 신에 대한 절대적 순종만이 행복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범죄를 저지른 인간이 응징당하는 것을 보면서 신의 위대함과 인간의 나약함을 배워야 했다.

    위대한 신화의 시대가 스러지고 역사가 시작될 때 인간은 신화를 대신할 새로운 장치를 찾아야 했다. 그것은 바로 ‘법(法)’이었다.

    ● 이창무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시립대에서 형사사법학(Criminal Justice)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패러독스 범죄학’(2009) 등 다수가 있다. 현재 한남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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