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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20년 ‘예타’ 천태만상

툭하면 면제, 예산 쪼개 회피, 정치 개입…

  • 최창근 객원기자 caesare21@hanmail.net

시행 20년 ‘예타’ 천태만상

  • ● 1999년 선심성 예산 낭비를 막고자 도입
    ● 총 사업비 500억, 국가재정 지원 300억 이상 사업 대상
    ● 평가자 주관으로 비용·편익 항목 산출과 평가 과정 왜곡 가능
    ● 제도 원숙기에 걸맞은 수정·보완 진행해야
시행 20년 ‘예타’ 천태만상
서울지하철 1호선과 의정부경전철이 교차하는 환승역 회룡역. 이 역의 경전철 쪽 플랫폼은 한산했다. 이용객이 많은 1호선 역 구간과는 대조적이다. 발곡역에서 출발해 탑석역까지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U’자형으로 잇는 경전철을 타고 전 구간을 수차례 왕복했지만 차량 탑승객은 내내 정원의 절반 수준이었다. 탑승객들은 “경전철이 있어 편리하기는 하지만, 인구 40만 명 남짓한 도시에 반드시 필요한지 모르겠다. 기존 버스 노선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하는 반응을 보였다. 

의정부경전철은 2012년 7월 운행을 시작한 후 5년 만인 2017년 5월 파산선고를 받았다. 4년 10개월간 누적 적자가 3600억 원으로, 연간 예산 규모 1조 원인 의정부시 전체 예산의 30%를 웃돈다.


실패한 예타 사업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1월 29일 정부세종청사 기재부 브리핑실에서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정부는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으로 약 24조1000억 원 규모의 23개 사업을 선정했다. [뉴스1]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1월 29일 정부세종청사 기재부 브리핑실에서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정부는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으로 약 24조1000억 원 규모의 23개 사업을 선정했다. [뉴스1]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아라김포여객터미널은 경인아라뱃길의 첫 터미널이다. 3월 2일 찾은 터미널 내부는 주말임에도 한산했다. 한강 결빙기인 12~2월 휴지기를 지나 3월 1일부터 정상 운행에 들어간 경인아라뱃길 정기 여객선은 현대유람선이 운행하는 운항시간 90분 김포-인천 왕복 코스가 유일하다. 매일 오후 1시, 3시 두 차례 출항한다. 7년 전 경인아라뱃길 개통 때는 5개 선사가 운행했지만, 이용객 저조로 4개가 사라졌다. 실제 수로에는 오가는 배가 드물다. 간간이 화물선, 컨테이너선이 지날 뿐이다. 김포터미널과 경인터미널의 일반 화물부두, 컨테이너부두 또한 비어 있다시피 했다. 

경인아라뱃길은 서울 강서구 개화동 한강 유역에서 시작해 경기도 김포를 거쳐 인천시 오류동 서해로 이어지는 길이 18km, 폭 80m, 수심 6.3m의 운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착공해 2012년 5월 개통했다. 총 사업비 2조6700억 원이 투입됐다. 사업 추진 시 한강과 서해를 잇는 물류·관광 대동맥 구실을 기대했다. 그러나 지난해 5월까지 만 6년의 실적은 저조하다. 

연간 여객 수는 예측치의 19.7% 수준인 71만6000명, 같은 기간 화물 처리 실적은 403만 t으로 예측치 4717만 t의 8.5%에 불과하다. 반면 유지·관리 비용은 매년 130억 원이 소요된다. 



지난해 9월 1일, 인천국제공항 KTX 노선이 폐지됐다. 서울역-검암역-인천공항역 구간 KTX 노선은 2014년 4월 개통했다. 매일 편도 기준 22편의 열차가 운행하며 1만409석의 좌석을 공급했다. 그러나 평균 탑승률이 23%로, 좌석의 80% 정도가 빈 채 운행됐다. 이 노선 폐지로 인해 사업비 3000억 원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의정부경전철, 경인아라뱃길, 인천국제공항 KTX 등 겉보기엔 큰 연관성이 없을 듯한 이 사업들을 하나로 꿰뚫는 키워드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다. 예타는 총 사업비 500억 원 이상, 국가재정 지원규모 300억 원 이상인 신규 사업의 예산편성·기금운영계획 수립을 위해 실시하는 사전조사사업을 뜻한다. 김대중 정부 출범 2년 차인 1999년 시행돼 올해로 20년째를 맞는다. 당초 이른바 ‘선심성 사업’으로 인한 예산 낭비를 막고자 도입됐다.


국가예산 141조 절감 순기능

2012년 7월 의정부경전철 개통일 운행 모습(왼쪽). 2018년 8월 7일 인천국제공항 내 KTX 매표소에 운행 중단을 알리는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뉴스1]

2012년 7월 의정부경전철 개통일 운행 모습(왼쪽). 2018년 8월 7일 인천국제공항 내 KTX 매표소에 운행 중단을 알리는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뉴스1]

예타 대상은 토목·건축 등 건설공사, 사회간접자본(SOC) 구축, 소프트웨어 개발 등을 망라한다. 주된 목적은 대규모 재정사업 집행의 효율성 제고다. 1999년부터 2017년 12월까지 토목, 건축, 기타재정 사업 등 각 분야에서 총 767건의 예타가 수행됐다. 그 결과 타당성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약 141조 원(42%)의 국가예산을 절감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예타 분석 방법은 경제성 분석, 정책적 분석, 지역균형발전 분석, 종합평가로 나뉜다. 이 중 핵심인 경제성 분석은 비용편익 분석(Cost-Benefit Analysis)을 기본 방법으로 채택한다. 일반적으로 비용 대비 편익(B/C)이 1보다 크면 ‘경제적 타당성’이 있는 사업임을 의미한다. 

정책적 분석은 정책적 일관성, 추진 의지, 사업 추진상의 위험 요인 등 정책 평가 항목을 양적 혹은 질적 평가로 분석한다. 지역균형발전 분석은 지역 간 불균형 시정을 주목적으로 한다. 고용 유발 효과, 지역 경제 파급 효과, 지역 낙후도 개선 등이 평가 요소다. 

마지막 단계인 종합평가는 경제성 분석, 정책적 분석, 지역균형발전 분석 결과를 종합해 사업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다기준분석(Multi-Criteria Analysis)의 일종인 계층화분석(AHP) 기법을 활용해 사업 시행의 적절성을 계량화된 수치로 도출한다. 경제성 분석, 정책적 분석, 지역균형발전 분석 등에 대한 타당성 종합평가 가중치는 예타 조사 연구진과 외부 평가자에 의해 사전에 정해진다. 일반적으로 경제성 분석 40~50%, 정책적 분석 25~35%, 지역균형발전 분석은 20~30%의 비율로 정한다. AHP 분석 결과가 0.5 이상(AHP≥0.5)이면 사업 시행이 바람직한 것을 의미한다. 

예타 주관기관은 기획재정부이고, 실제 평가는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관리센터가 한다. 2018년 국가재정법 개정으로 과학기술분야 사업조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재정투자분석본부가 맡게 됐다. 

문제는 이처럼 ‘과학적 기법에 의한 예산 편성·집행’을 목적으로 예타를 시행하는데도, 현실에서는 목표와 동떨어진 결과가 생긴 경우가 다반사라는 점이다. 의정부경전철, 경인아라뱃길, 인천국제공항 KTX 등은 모두 예타 ‘적격’ 판정을 받았지만 막대한 예산만 낭비한 결과를 초래했다. 수요 예측에 실패해 세금 낭비를 부른 교량, 도로, 철도, 지하철 건설 사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점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비용’과 ‘편익’ 항목 산출과 평가 과정이 평가자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항목을 비용으로, 어떠한 항목을 편익으로 산정할지를 결정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게 문제다. 기본적으로 평가자 주관에 따라 이를 정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16년 발행한 ‘예타 제도의 주요 쟁점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서 “외부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소수의 연구진에 의해 진행되는 평가는 객관성을 저해하거나 평가 결과 왜곡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자도 “예타 조사는 합리성·과학성으로 포장돼 있지만, 얼마든지 비용·편익 조작이 가능한 조사방법”이라고 혹평했다.


‘지역균형발전’ 명분 삼아 수시로 예타 면제

송하진 전북도지사(왼쪽 세 번째)와 간부 공무원들이 1월 29일 전북 전주시 전북도청에서 새만금국제공항 건설 확정을 축하하고 있다. [뉴스1]

송하진 전북도지사(왼쪽 세 번째)와 간부 공무원들이 1월 29일 전북 전주시 전북도청에서 새만금국제공항 건설 확정을 축하하고 있다. [뉴스1]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 예타 실시 기준이 총 사업비 500억 원인 점을 고려, 사업 예산을 이에 살짝 못 미치게 편성해 조사를 면제받거나, 대형 사업 예산을 쪼개기 편성하는 것이다. 2012년 준공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 사업이 대표적 사례다. 이 사업은 예타 경제성 평가에서 기준치인 1에 못 미치는 평가를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후 사업비 3억 원을 감액, 497억 원으로 재편성해 조사 자체를 피해가는 ‘꼼수’를 부렸다. 

예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치적 고려’ 혹은 ‘정무적 판단’으로 조사 자체를 면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18년도 예타 운용지침’ 제11조 1항에 명시돼 있는 면제 대상은 △공공 청사, 교정 시설, 초·중등 교육시설 신·증축 사업 △문화재 복원 사업 △국가 안보에 관계되거나 보안을 요하는 국방 산업 △남북교류협력 관련 또는 국가 간 협약이나 조약에 따라 추진하는 사업 등이다. 문제는 제11조 1항 10호다. 이에 따르면 ‘지역균형발전,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 등을 위하여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도 면제 대상이다. 정부나 정치권이 이를 예타 면제의 수단으로 널리 활용하는 게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도 예타를 둘러싼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1월 29일 정부는 24조1000억 원 규모의 예타 면제 사업을 발표했다. ‘국가균형발전’에 방점을 찍고 전국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로부터 총 사업비 68조7000억 원 규모 사업을 신청받았다. 이 중 23개 사업을 선정한 것이다. 예타 면제 사업은 지역별로 고르게 분배했다. 문제는 사업 대부분이 사회간접자본 확충 등 토목·건설 사업에 치중돼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토건 정부’라 몰아붙인 현 정부와 집권여당의 과거 비판을 무색하게 하는 대목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사업 추진 배경으로 “기업과 일자리, 연구개발 투자의 수도권 집중이 지속되고 지역 경제의 활력이 저하되는 등 수도권과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지역 발전을 뒷받침하는 핵심 인프라스트럭처와 전략산업에 대한 국가 차원의 종합적이고 선제적인 투자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예타 면제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지난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발표한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13~2018년 예타 면제 사업은 108건, 총 사업비는 48조3185억 원이었다. 이 중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사업은 10%인 35건, 4조7333억 원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지역균형발전을 명분으로 토목·건축 사업에 편성한 예산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아울러 경제성·효과성을 입증하지 않은 상태로 대규모 재정을 투입해 국가 예산의 효율적 집행을 위해 마련된 예타제도를 정부가 앞장서서 무력화한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지방 공항 대부분이 ‘유령 공항’으로 전락한 상태에서 사업 시행을 결정한 새만금공항 건설사업이 대표 사례다. 재정 전문가들은 “예산 낭비와 국가재정 악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20년 성과와 한계

예타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이 종합할 수 있다. △4대강 사업 등 정권 차원의 대규모 국책사업에 대한 견제 수단 구실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 △주요 분석 기법인 경제적 분석 결과와 정책적 분석 결과가 일치하지 않을 경우 이를 통합해 판단하는 것이 어려우며, 이 과정에서 평가자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 △대상 사업이 대형 건설공사, 정보화사업, 국가연구개발사업에 한정돼 있어 그 외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에 대한 통제 장치로서 한계가 있다. △지역균형발전 등을 명목으로 정부가 조사 면제를 결정할 경우 대응할 수단이 없다. 

올해로 시행 20년을 맞이한 예타는 대규모 국가 예산의 효율적 집행이라는 대전제 달성에 일정 부분 성과를 냈다. 다만 운용 과정에서 크고 작은 허점도 드러냈다. 이제 ‘제도 원숙기’에 접어드는 만큼 예타의 허실(虛實)을 제대로 점검해 ‘혈세 낭비 방지’라는 본래 목적에 충실한 방향으로 제도 개선과 운용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




신동아 2019년 4월호

최창근 객원기자 caesar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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