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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생리학 포괄 의술 조선 실학자에게도 영향

‘세계의 의사’ 갈레노스

  • 김성수|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조교수 imsskim@snu.ac.kr

해부학·생리학 포괄 의술 조선 실학자에게도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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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생리학 포괄 의술 조선 실학자에게도 영향

페르가몬의 아스클레피온.

서양 고대 의학은 히포크라테스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히포크라테스를 알리고, 여러 분파로 나뉘어 있던 서양 의학계를 통일해 1300년 이상 이어가게 한 이가 갈레노스(130~199)다. 갈레노스가 초석을 놓은 의학 체계는 베살리우스의 해부학과 하비의 혈액순환설 등으로 반박되기 전까지, 인체에 대한 서양의 이해를 대변했다.

갈레노스는 철학에도 해박해 수백 권의 책을 남긴 교양인이었다. 그는 130년 소아시아 반도 북서부에 있는 페르가몬(지금은 ‘베르가마’로 불린다)에서 태어났다. 당시 도시들은 대개 해안에 있었는데, 페르가몬은 해안에서 20여 km 들어간 내륙에 있었다. 농업과 상업이 발달한 덕분에 에우메네스 1세(재위 기원전 263~기원전 214) 때 독립한 이 도시는 에우메네스 2세(재위 기원전 197~기원전 159) 시대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 중 하나가 됐다. 학문이 크게 번성했고, 최전성기에는 에게 해에서부터 카파도키아 지역까지 지배했다. 그러나 기원전 130년경부터 쇠퇴해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게 됐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페르가몬을 유명하게 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페르가몬 도서관으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견줄 정도였다고 한다. 장서가 20여만 권이었다니 놀라운 규모였다. 경쟁을 꺼린 알렉산드리아가 종이의 재료인 파피루스 수출을 금지하기도 했다고 한다. 갈레노스가 태어났을 때 이 도서관은 사라지고 없었지만, 이것으로 상징되던 그리스 문화 전통은 유지되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를 기리는 신전 아스클레피온이다. 기원전 4세기 무렵 세워진 이 신전은 페르가몬의 발전에 따라 명성을 더해가다가 갈레노스가 청소년일 때 루피누스에 의해 새로 단장됐다. 페르가몬의 대지주이며 뛰어난 건축가인 니콘의 아들로 태어난 갈레노스가 의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아스클레피오스에 있었다.

아버지의 교육열 덕분에 철학을 비롯해 문학과 기하, 산수 등 여러 학문을 공부한 갈레노스가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때, 니콘의 꿈에 아스클레피오스가 나타나 ‘아들에게 의학을 가르치라’는 계시를 준 것이다. 아스클레피오스는 페르가몬은 물론 소아시아 전역과 인연이 깊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아스클레피오스의 18세 혹은 19세 직계후손이라고 한다. 이러한 관계는 서양 고대 의학의 성립과 발전 계통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신화에 따르면 아스클레피오스는 ‘치료의 신’ 아폴론의 아들이라고 전해진다. 사랑했던 테살리아의 코로니스가 이스퀴스라는 남성을 사랑해 떠나자 분노한 아폴론은 누나인 아르테미스에게 복수를 요청했다. 아르테미스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된 코로니스는 아폴론의 아이를 가졌다고 밝혔다. 아폴론은 죽어가는 그녀에게서 아이를 꺼냈는데 그가 바로 아스클레피오스였다.

아폴론은 이 아이를 켄타우로스인 케이론에게 데려가 의술을 가르쳐줄 것을 부탁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훌륭한 의사가 됐다. 그는 사람을 죽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도 살려낼 수 있게 됐기에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죽고 만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 아스클레피오스와 그의 두 아들은 실존인물이고 훌륭한 의사였다고 밝혀놓았다. 두 아들 포달레이리오스와 마카온이 트로이 전쟁에 참가해 마카온은 사망하고 포달레이리오스는 고향 그리스로 돌아가지 않고 이오니아 연안에 정착했다는 것.

포달레이리오스의 자손은 크니도스 반도와 코스 섬, 로도스 섬에 살았는데 그 후손에게서 700여 년 후 히포크라테스가 태어났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 의학이 소아시아 반도에 자리 잡는 과정을 보여준다. 히포크라테스의 등장은 신앙과 계시에 의존하는 종교적 치료에서 합리적인 의학적 치료로 옮겨감을 의미한다.

기원전 460년경 그리스의 지배를 받고 있던 코스 섬의 명문 의사 가문에서 태어난 히포크라테스는 여느 귀족 아이들처럼 일반교양과 의학, 수사학 등을 공부했다. 고향에서 진료와 의학교육을 하던 그는 부모가 죽은 후 선조들의 고향인 그리스 북부 내륙의 테살리아로 옮겨가 이곳저곳에서 환자를 보다가 라리사 지방에서 생을 마쳤다.

그는 종교적 치료를 부정하고 자연철학에 근거한 합리적인 의학을 주창했다. ‘히포크라테스 전서’ 중 하나인 ‘신에 기인하는 질병에 관하여’에서 그는 주술사나 신앙으로 치료하는 요법사 등을 강하게 비판한다. 간질과 유사한 증세를 보이는 이를 치료하지 못하는 요법사들이 자신의 부족함은 숨기고 ‘신에 기인하는’ 용어를 이용해 경건함으로 속인다고 지적했다. 이는 질병의 원인을 신에게서 찾는 종교적 질병관에 대한 부정이었다.

그는 질병의 원인이면서 치료의 근거가 되는, 신을 대체하는 그것을 자연에서 찾았다. 건강은 자연과 같이 보편적이며 균형 있게 움직이는 상태라고 이해한 것이다. 그는 인체는 혈액, 점액, 황담액, 흑담액의 4개 체액으로 이뤄져 있다고 봤다. 이 ‘4체액설’은 만물이 공기, 물, 불, 흙의 4원소로 이뤄졌다는 그리스의 철학적 전통을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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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조교수 imsskim@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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