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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요리솜씨

박계동 전 의원의 토란찜국

나이 사십을 넘겨 좋아하게 된 음식

  • 글·최영재 기자 (cyj@donga.com) /사진·김용해 기자 (sun@donga.com)

박계동 전 의원의 토란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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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란찜국은 한꺼번에 많은 손님을 대접할 때 적당하다. 쌀가루와 들깨가루가 들어가기 때문에 요기도 되고 어지간한 재료가 다 들어 있어 별다른 반찬이 필요없다. 귀한 손님이라면 달리 상을 보아야겠지만 만만한 손님이라면 몇십 명이 들이닥쳐도 그저 이 음식과 밥 반 공기, 김치 하나만 갖다 놓으면 끝이다
박계동 전 의원의 토란찜국
박계동 전 의원의 음식솜씨는 보통이 아니다. 칼질과 불 조절, 재료의 익힘 상태를 재는 눈짓, 간 대중, 음식을 나르며 행주질을 하는 솜씨가 잽싸고 정확하다. 물어보니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민주화 운동을 하던 시절, 수배생활과 감옥생활을 반복하며 음식솜씨를 쌓았다고 한다. 1975∼77년 서울구치소에 있을 때는 오이·양파 고추장 무침으로 유명했고, 수배생활의 은둔지에서는 단골 식사당번이었다. 사실이냐고 되물으니 그때 자신과 같이 도망다녔던 사람들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당시 주특기가 고등어와 갈치조림이었는데 모두들 혀를 내둘렀다는 것이다.

그는 평소에도 요리뿐만 아니라 외동딸의 교복을 다림질할 정도로 가사노동을 한다. 딸아이의 교복을 다리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한다. 그는 정신없이 바쁘던 현역 의원 시절에도 와이셔츠를 직접 다려 입고 다녔다. 그의 생각은 이렇다.

“고위직으로 갈수록 음식 만들기, 설거지, 다림질 같은 가사노동을 직접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정치인라고 이곳저곳 얼굴 많이 내미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많이 만나는 것보다는, 얼마나 사람에게 감동을 주냐가 중요합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토란찜국. 생소한 이 음식은 그의 고향인 경남 산청 지방의 토속 음식이자, 대(代)를 물리는 집안 음식이다. 가을부터 겨울까지 경남 산청에서는 손님이 오면 가마솥에다 토란찜국을 끓인다. 이 음식은 재료 자체가 쇠고기를 빼고는 들깨와 버섯처럼 지리산 자락인 산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추석 무렵부터 나오는 주재료 토란과 토란대는 시골 농가에서 비축해두기 때문에 따로 장을 보지 않고서도 구할 수 있다.

그는 토란찜국을 대할 때 맛도 맛이지만, 유년시절과 고향에 대한 강한 향수를 느낀다고 한다. 어린 시절 그는 고향에 갈 때 서울에서 14∼15시간씩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갔다. 서울에서 삼랑진역까지 8∼9시간, 삼랑진에서 진주까지 3∼4시간씩 걸렸다. 석탄을 때던 증기기관차가 터널을 지날 때면 승객들은 굴뚝 속에 있는 것과 한가지였다. 굴 속에 연기가 가득 차서 얼굴이 그을리는 경우도 많았다. 기차에는 객차뿐만 아니라 화물열차도 달려 있어, 사람이 내리지 않는 역까지 일일이 정차했다. 진주에 도착하면 다시 산청행 버스로 갈아타고 2시간을 가야 했다.

이렇게 고향에 도착하면 거의 녹초가 되는데, 이때 고향집 할머니가 내놓은 음식이 토란찜국이었고, 이 음식을 먹으면 고생 끝이었다.

하지만 박 전의원은 어릴 때는 토란찜국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이 음식에는 파도 마늘도 고춧가루도, 후춧가루도, 참기름도, 설탕도 들어가지 않는다. 조미료라고는 조선간장 하나뿐. 환자 보양식 같은 버섯, 들깨, 배추, 토란 같은 밋밋한 재료들이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어린 그는 맛은 몰랐지만 분위기로 토란찜국을 먹었다. 수십 명의 집안 사람들이 대청마루와 평상에 상을 차리고, 그것도 모자라 마당에 멍석을 깔고 둘러앉아 왁자지껄 이야기꽃을 피우며 토란찜국을 먹던 그 분위기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이 사십을 넘기고부터는 진짜 음식맛에 빠지게 되었다. 이 음식을 먹어보니 실제 그런 것 같았다. 세파를 겪고 산해진미를 다 맛본 뒤 찾게 되는 음식이라면 적당한 표현일까. 맛이 자극적이지 않고, 색깔이 화려하지 않고, 냄새가 향기롭지 않고, 씹히는 맛도 특별나지 않고, 술안주에 어울리지도 않는다.

그저 매일 먹는 흰 쌀밥 같다. 이런 음식은 패스트푸드에 길든 요즘 젊은이와 어린이에게 맞을 것 같지 않다. 걸쭉한 것이 스프 같아 바쁜 직장인의 아침식사라면 가장 적당할 것 같다.

그의 집안에서는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누님이 이 음식을 자주 한다. 만드는 법은 조금 복잡한데, 5인분 기준으로 다음과 같은 재료를 쓴다. 양지나 사태 부위로 쇠고기 200g, 껍질을 벗긴 토란 200g, 토란대(줄기) 100g, 표고버섯과 느타리버섯 200g, 통배추 4분의1쪽(200g), 중간 크기 양파 2개, 물에 불린 흰쌀 5큰술, 들깨가루 7큰술 등이다.

우선 재료를 손질한다. 국거리용 쇠고기는 가로 1cm, 세로 3cm 정도로 썰고, 삶아서 물기가 촉촉한 토란대는 쇠고기와 같은 크기로 썬다. 토란은 깎은 뒤 쌀뜨물 끓인 물에 살짝 데친다. 이렇게 하면 토란의 독이 빠진다는데, 거추장스럽다면 시장에서 껍질 까놓은 것을 사면 된다.

박계동 전 의원의 토란찜국
표고버섯과 느타리버섯은 그냥 손질하면 부스러지니까,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뒤 찬물에 헹구고 꼭 짜서 건진다. 버섯은 데치면 단단해진다. 데친 표고버섯은 길쭉길쭉하게 칼로 썰고, 느타리버섯은 손으로 뜯는다. 양파는 적당한 크기로 썰고, 배추는 씻어서 먹기 좋은 크기로 손으로 뜯는다. 불린 쌀과 들깨가루는 한데 섞어 믹서로 곱게 갈아놓는다.

재료 준비가 끝나면 센불에 조선간장을 붓고 졸이다가 토란대와 쇠고기를 넣고 볶는다. 기름이 들어가면 담백한 맛이 없어지기 때문에, 식용유나 참기름은 넣지 않는다. 적당히 볶이면 물 2.5ℓ(5인분 기준)를 붓고 한소끔 끓인다. 고기가 약간 익으면 버섯과 토란, 양파를 넣고 한소끔 끓인 뒤, 배추를 넣고 다시 끓인다. 이 순간부터가 화룡점정처럼 가장 어렵다. 생배추를 넣고 끓이다가, 불린 쌀가루와 들깨가루를 넣어야 하는데, 배추는 너무 끓여 물러도 안되고, 덜 끓여 줄기가 씹혀서도 곤란하다. 그 적절한 순간을 찾아 쌀들깨가루를 넣어 잠시 끓이다가 불을 끈다.

쌀들깨가루를 넣는 순간부터는 뚜껑을 열고 저어가면서 끓여야 한다. 쌀들깨가루 양이 많거나 불이 세면 바닥에 눌어붙고, 적으면 걸쭉한 맛이 덜하다. 또 뚜껑을 닫아도 걸쭉한 맛이 사라지고 멀건 죽처럼 변한다. 마지막으로 주의할 점 한 가지. 쌀들깨가루를 넣는 순간부터는 끓일 때나 불을 끈 뒤에나, 밥상 위에 올라갈 때까지 뚜껑을 덮으면 안된다. 덮으면 앞서 말한 것처럼 멀건 죽처럼 삭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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