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조윤범의 클래식으로 세상읽기 ⑩

창작의 끝 아닌 시작, 공연 기획 A to Z

  • 조윤범│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yoonbhum@me.com│

창작의 끝 아닌 시작, 공연 기획 A to Z

2/4
관객은 이번 공연이 몇 번째 정기연주회인지 세고 있지 않을뿐더러 크게 관심 없다. 놀랄 만큼 오래된 팀임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더구나 이런 제목은 그들의 다른 정기연주회들과 마찬가지로 관객의 기억에 남지 않는다. 운이 좋으면 이렇게 기억해주는 팬이 있을지 모른다. “예전에 그 단체의 23회인가 24회쯤의 정기연주회는 정말 멋있었어. 무슨 곡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말이야.” 간혹 이런 ‘성의부족’ 제목이 더 유리할 때가 있는데, 공연 단체의 이미지가 크게 작용할 때다. ‘독일 음악의 정취’라는 제목보다 ‘베를린필하모닉의 정기연주회’가 훨씬 많은 관객을 불러 모을 테니까. 하지만 이게 가능하려면 연주단체의 지명도가 아주 높아야 한다.

반대로 뮤지컬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올해도 ‘레미제라블’을 보러 가지만 올해의 캐스팅은 지난해와 다르다. 한 뮤지컬극단의 몇 번째 공연인가보다 ‘레미제라블’이라는 공연 제목에 관심을 갖는다. 이처럼 단체보다 공연을 앞세울 때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공연의 ‘복제’다. 이는 음악회에도 적용된다. 수개월간 준비한 공연을 한 번으로 끝내지 않으면 그 완성도 또한 계속해서 높아진다. 훌륭한 공연은 다른 지방공연장이나 해외로도 판매가 가능하다. 하지만 “당신 단체의 제3회 정기연주회를 여기 와서 해주시겠습니까?” 하고 제의하는 극장주는 없다. 정성 들여 준비한 공연일수록 공연의 성격을 한눈에 알 수 있고 주 관객층의 관심을 자극하는 제목으로 멋지게 상품화해야 한다.

대중음악은 자신이 직접 작곡한 곡이나 그들만을 위해 만들어진 음악으로 공연해야 하는 제약이 있다. 이에 비하면 클래식음악은 연주자에게 수없이 많은 레퍼토리를 제공한다. 또 어느 연주자에게나 공평하다. 수많은 레퍼토리 중에서 어떤 음악들을 골라 어떠한 방식으로 연주하는가가 공연 프로그램의 질과 단체의 이미지를 좌우한다. 연주 프로그램은 그 단체의 색깔을 결정하기 때문에 어떤 곡을 연주하는가는 그들의 옷이나 팀 이름보다도 훨씬 중요하다.

관객 입장에서 상상하라

모든 문화행사에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러닝타임이 있다. 극장용 영화는 2시간 내외이고, 오페라는 3시간, 롤러코스터는 2분도 채 안 된다. 클래식 음악은 어떨까? 연주회장에서의 공연은 1시간30분 이상, 야외음악회는 1시간 이내, 80분짜리 CD에 들어가는 음악의 실제 러닝타임은 60분 내외(대중음악은 40분 내외)다. 작곡가마저 어느 정도 표준시간을 고려한다. 한 악장의 평균 길이는 5분, 전 악장은 25분 내외, 단악장의 곡은 10~15분 내외다. 이러한 데이터는 프로그램을 짜는 틀로 활용된다. 우리가 흔히 보는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짧은 서곡과 난이도와 길이에 큰 부담이 없는 작품으로 1부를 마치고, 2부 메인은 비중 있는 거대한 작품으로 채운다. 오랜 전통을 지닌 이러한 방식의 프로그램은 여러 장단점이 있다. 짧은 첫 곡은 늦게 들어오는 관객들을 배려한 것이고, 부담 없이 감상을 시작하자는 의도가 담겨있다. 어려운 2부 프로그램을 소화하려면 연주자들로서도 난이도가 높지 않은 곡들로 시작하는 것이 편하다. 그런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음악회인가? 조금이라도 공연을 쉽게 치르고 싶어하는 연주자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일부 늦게 오는 관객들을 위한 것인가?(하긴 그들이 VIP일 수도 있다)



전통적인 기승전결 구조를 가진 프로그램의 무조건적인 수용은 다양한 형식의 공연을 접할 관객의 권리를 빼앗는 것이다. 내가 관객이라면 어떤 곡들로 구성된 공연을 바랄까? 이러한 생각이 프로그램을 짜는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에 맞는 연주단체로 훈련되는 것이 도전적인 단체의 모습이다. 연주자에게는 도전이 되고 관객에게는 기쁨이 되는 공연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훌륭한 기획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객석에 앉은 관객의 입장에서 상상해봐야 한다. 어느 부분에서 하품이 나오는지, 어느 부분에서 감상이 부담스러워지는지를 계속해서 확인해 보고 프로그램을 조정해야 한다.

2/4
조윤범│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yoonbhum@me.com│
목록 닫기

창작의 끝 아닌 시작, 공연 기획 A to Z

댓글 창 닫기

2019/06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