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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권태균의 오지기행

농염한 복숭아꽃, 은은한 배꽃 꽃송이 넘나드는 백년 교감

충남 서산 용장리 일대

  • 글·김동률|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사진작가 photocivic@naver.com

농염한 복숭아꽃, 은은한 배꽃 꽃송이 넘나드는 백년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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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염한 복숭아꽃, 은은한 배꽃 꽃송이 넘나드는 백년 교감

개심사 명부전 앞에 핀 겹벚꽃.

개심사로 가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마음을 열어야 할 것 같다. 개심사(開心寺). 마음을 여는 사찰이라는 묘한 이름의 이 절은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장리 상왕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화려한 큰 사찰에 비해 존재감이 작은 절이지만 이름 덕에 한번 들으면 쉬이 잊히지 않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마음을 연다. 개심이라는 말은 변심이라는 부정적인 말과는 달리 특별한 느낌을 준다. 서산 운산면의 용장리, 용현리는 개심사 덕분에 사람들이 뜨문뜨문 찾지만 여전히 깊숙이 숨어 있는 마을이다.

개심사 가는 길목, 차창 밖 운산초등학교 입구에는 동문 운동회를 알리는 포스터가 봄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그랬다. 어디든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면 학교가 있었다. 첩첩산중이나 외딴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하나둘 사람이 떠나면서 작은 학교들은 폐교라는 간단한 말과 함께 사라져간다.

그 많던 사연도 하나둘 빛바래 추억이 되고. 지금의 시골에서는 흑백사진의 기억처럼 폐교가 된 분교들이 유령처럼 남아 마을의 아득한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 운 좋게 명맥을 유지해 동문 운동회를 열고 있는 운산초등학교를 보니 ‘살아남아줘서 장하다’라는 생각이 불쑥 든다.

운동회의 추억

동문 운동회는 문득 유년의 운동회를 떠올리게 한다.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운동회는 연중 최고의 잔칫날이 되곤 했다. 시골 운동회, 김치 국물로 갱지 공책을 얼룩지게 하던 도시락에서 벗어나 모처럼 호사스러운 점심을 먹는 날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살림을 살면서도 어머니는 적어도 삶은 달걀과 사이다 한 병 정도는 기본으로 챙겨주셨다. 푸른 오월의 하늘 아래 만국기는 바람에 펄럭이고 오자미 터뜨리기에, 기마전에, 아 400m 계주는 그 얼마나 손에 땀을 쥐게 했던가.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오월 하늘 멀리 퍼지고 그날의 봄은 더욱 푸르러갔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열리는 요즘 동문 운동회는 어떤가. 성공한 동문들은 검은색 승용차에 저마다 협찬이란 이름 아래 과자며 선물 보따리를 들고 모교를 찾을 것이다. 고향 사람들에게 이 선물을 한아름 안겨드릴 것이다. 하기야 거친 폭력배도 고향 어른들 앞에서는 옷깃을 여미고 순한 양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듯 고향에는 모든 출향 인사를 무장해제시키는 신비한 힘이 있다.

개심사를 떠받치고 있는 형국인 용장리는 예부터 ‘겹사쿠라꽃’으로 유명하다. 겹벚꽃 또는 왕벚꽃이라는 이름이 표준어이기는 하지만 이때만큼은 겹사쿠라꽃이라고 말해야 어울린다. 한때 이 땅에는 겹사쿠라는 말이 유행했다. 주로 정치권에서 사용된 말이지만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이중적인 사람을 두고 겹사쿠라라고 했다. 낮에는 야당, 밤에는 여당이 횡행하던 시절, 겹사쿠라 정치인이란 정가에서 가장 좋지 않은 배신자의 의미로 사용되곤 했다.

농염한 복숭아꽃, 은은한 배꽃 꽃송이 넘나드는 백년 교감

보원사터에 소풍 나온 학생들.

벚꽃 지면 피는 겹벚꽃

그러나 꽃은 다르다. 진달래, 개나리 그리고 같은 집안 식구 격인 보통의 벚꽃이 완전히 질 때쯤이면 겹사쿠라꽃이 피기 시작한다. 홑벚꽃보다 꽃잎의 숫자가 두세 배 많은 이 꽃은 보는 이들을 황홀하게 한다. 꽃잎이 많다보니 마치 카네이션 꽃잎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용장리 일대 겹벚꽃은 이제 피기 시작했다. 서울 여의도 윤중로의 벚꽃은 져버린 지 오래지만 이곳 산기슭 왕벚꽃은 이제사 꽃망울을 터뜨리는 것이다. 인적이 없는 마을은 고요하고 야산에는 붉은 꽃이 가득하다. 내가 살던 꽃피는 산골 고향 모습 그대로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는 물론 산도화, 배꽃, 왕벚꽃이 그 주인공들이다.

그중에서 복숭아꽃은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다. 농염한 붉은 색조는 보는 이에게 상상 이상의 특별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 복숭아꽃은 눈앞에 마주하고 그 색감을 스스로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설명하기가 어려울 만큼 관능적이다. 직접 눈앞에 두지 않고 말로 묘한 느낌을 설명하기란 애당초 무리라는 것이다. 아니 불가능할 것 같다. 그만큼 꽃은 야릇한 지분(脂粉) 냄새를 풍기며 넘치는 색기를 주체하지 못한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도화살을 경계하면서 동구 밖에다 심었고 남녀 간의 정분을 암시하는 온갖 의미와 얘깃거리를 갖다 붙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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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동률|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사진작가 photociv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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