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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다리 책’ 확장 ‘읽기’ 확산

복각본 시집 출간 바람

  • 장은수 |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곁다리 책’ 확장 ‘읽기’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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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각본 시집 열풍이 거세다. 노래 가사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기 때문일까. 익숙하고도 낯선 책, 복각본의 인기 비결.
‘곁다리 책’  확장 ‘읽기’  확산

복각본으로 출판된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김소월의 ‘진달래꽃’, 백석의 ‘사슴’ 등 옛 시집들.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스무 살 딸이 슬쩍 관심을 보인다. 친구들 사이에 복각본 시집을 소장(‘데려온다’라고 말했다)하고,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에 인증하는 일이 대유행이란다. 딸아이 눈이 반짝거린다. 책상 위에 올려둔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시집들에 연신 보내는 눈길에 ‘득템’ 기운이 감돈다. 내가 글을 다 쓰면, 제 방으로 금세 ‘데려갈’ 듯하다.
이른바 ‘복각본 시집’ 바람이 분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김소월의 ‘진달래꽃’, 백석의 ‘사슴’ 등 옛 시집이 차례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준익 감독의 흑백영화 ‘동주’가 개봉한 이후, 시인 윤동주와 그가 살아간 시대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초판본 시집 소장 열풍은 더욱 뜨겁다.
‘초판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3월 첫째 주 현재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1위다. 시집이 베스트셀러 종합 1위에 오른 것은 기억도 가물가물할 만큼 까마득한 시절 얘기다. ‘자매품’ 격으로 시집 속 시들을 한 편씩 베껴 적으면서 즐기는 ‘필사 시집’도 독자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최첨단 디지털 문명의 시대에 빈티지풍 아날로그 시집들이 독자의 공감을 얻으면서 널리 확산되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판매용 서브 콘텐츠에 감동

미국에서 나온 최신 조사 자료에 따르면, 사람들이 책을 사는 이유는 8가지다. ①지금 즐길 게 필요해서 ②언젠가 나를 즐겁게 해줄 거야 ③내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니까 ④의무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 ⑤사회적 압력을 못 이겨서 ⑥나를 더 똑똑하게 보이게 해주니까 ⑦선물용으로 필요해서 ⑧충동적으로 그냥 사고 싶어서.
복각본 시집 열풍은 어디에 해당할까. 복합적이지만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이 시집들을 둘러싼 독자 반응을 짐작할 수 있다. 뜨겁고, 드넓고, 유쾌하고, 애정이 넘친다. 대개 #진달래꽃, #소와다리, #초판본, #책스타그램 같은 해시태그가 붙어 있어 금세 추적할 수 있다.

“제 詩는 사랑을 받고 있나요? 그때쯤은 獨立을 했을런지요?” 적혀 있는데, 그 글귀를 읽는 순간 울컥! ㅠㅠ 김소월 시인의 시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진정 독립한 게 맞는지는...ㅠㅠ 진달래꽃 초판본 김소월 서류봉투 뜯는 것도 아까웠는데 뜯었더니 엽서도 있어ㅠㅠㅠ

1948 초판본에 증보판 디자인에 원고지.. 감동이다. 판결문까지ㅠㅠ 소장용으로 좋은 구성이다ㅠ 감격스럽다. 한자 공부해서 읽어야지.

#진달래꽃을 선물하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받았다. 서로 공감하며 즐겁게 주고받은 선물에 따뜻해졌다.

감동, 감격, 소장, 선물 같은 말이 눈에 들어온다. 시집에 담긴 시 자체보다 시집을 팔려고 만들어낸 서브 콘텐츠에 감동한다.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을 살리느라 한자를 그대로 노출했기에 한자를 많이 배우지 않은 세대가 읽기엔 아주 어렵다. 시집을 구매하는 이들은 주로 20대 여성이지만, 시를 직접 읽으려면 따로 한자 공부를 해야 할 정도다. 따라서 시를 읽고 즐기려 구입한 게 아니라 시집 자체를 간직하고 선물하려고 구입한다.



‘문구형 도서’ 시대

독자가 책을 사는 목적이 독서나 학습을 위해서가 아니라 소장하고, 선물하고, 과시하고, 장식하기 위해, 또는 사회적 유행에 편승하거나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서인 건 드문 일이 아니다. 출판의 역사를 보면, 오래전부터 출판인들은 책의 이러한 가능성을 내다보고 개척했으며, 기프트북 같은 ‘곁다리 책’들을 통해 사람들을 서점으로 끌어들이고 독서의 영토를 확장해왔다.
그러나 최근 출판계에 부는 곁다리 책 바람은 흔한 일로 지나치기엔 빈도나 밀도가 심상치 않다. 과거에 비해 새로운 시도가 자주 나타나고, 일단 독자의 주목을 받은 후엔 규모가 놀랄 만큼 커지는 추세를 보인다. 책과 문구 사이의 경계에 뿌리를 내리고 책 또는 문구의 새로운 정체성을 시험하는 ‘문구형 도서’ 시대가 열리고 있다. 복각본 시집 열풍은 이 시대의 새로운 총아 중 하나로서 이해할 때 그 의미가 선명해진다.
문구형 도서의 유행을 가져온 첫 번째 징후는 조애너 베스포드의 ‘비밀의 정원’(클, 2014)에서 나타났다. ‘안티-스트레스 컬러링북’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주로 어린이 책에서 시도되던 ‘색칠놀이’를 성인용 도서에 적용했다. 색칠놀이는 전통적으로 ‘액티비티 북(activity book)’ 영역에 속하는 출판의 한 장르로, 특정 주제나 대상에 대한 간략한 내용과 함께 제시된 선 형태의 여백을 색칠해 독자들이 자신만의 책을 만들도록 함으로써 제작의 기쁨을 주는 동시에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을 말한다.
일상의 스트레스를 어떤 일에 대한 몰입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는 의학적 사실에 착안해 ‘비밀의 정원’은 성인들이 극도로 복잡한 형태를 일일이 색칠하면서 스트레스를 줄이도록 기획됐다. 어찌 보면 흔한 기획에 지나지 않던 이 책이 전 세계에서 슈퍼 베스트셀러로 떠오르고, 서점에 ‘컬러링북’이라는 새로운 분류가 생길 정도로 유사한 책이 쏟아져 함께 인기를 끌면서 ‘오늘날 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거대한 논란을 가져왔다.
문구형 도서에 대한 독자의 열광이 컬러링북에서 그쳤다면 이 사태는 해프닝에 그쳤을 것이다. 삶에 지쳐 힐링을 바라는 현대인의 마음이 잠깐 이런 종류의 책을 통해 분출된 것으로 해석하면 그뿐이었다. 그런데 일단 균열이  생기면 걷잡을 수 없는 유리 거울처럼, ‘책의 대지’ 곳곳에서 유사한 분화가 시작된 것이다. ‘낭송’ ‘필사’ ‘기록’과 같은, 책과 이미 결합돼 있던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이 주목을 받으면서 책의 형태를 빌려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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