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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여행가

서양 최초의 실크로드 탐험가 오렐 스타인

모래바람 속 동양의 신비 드러낸 2만5000마일 대장정

  •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서양 최초의 실크로드 탐험가 오렐 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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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방에 실크로드를 알린 최초의 탐험가이자 고고학자, 지리학자인 오렐 스타인. 그는 세 차례에 걸친 실크로드 탐험으로 명성과 부, 그리고 동양의 값진 문화재를 얻었다. 중국 둔황에 있던 세계 최고(最古)의 금강경 목판본도 그의 전유물 중 하나다. ‘보물 사냥꾼’ ‘실크로드의 악마’로 악명을 날리기도 했지만, 그는 분명 위대한 탐험가이자, 실크로드의 진정한 문화적 가치를 세계에 알린 전도사였다.
서양 최초의 실크로드 탐험가 오렐 스타인

옛 간다라 땅에 속하는 스와트 지역. 이곳에는 아직도 그 시대에 세워진 스투파(불탑)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인류사에서 본격적인 여행은 대규모 병력과 이들을 지원하는 민간인이 대거 장거리 이동을 감행한 십자군전쟁에서 비롯됐다. ‘호텔(hotel)’ ‘병원(hospital)’ ‘환대(hospitality)’ 같은 용어가 서구사회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그게 첫 번째 여행문화 발전기라면 두 번째 시기는 신대륙을 발견한 직후이고, 세 번째는 19세기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무대로 고고학적 탐사 붐이 일어난 때라 할 수 있다.

여행은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노정이자 위험한 도전이다. 그만큼 거기에는 수많은 위험과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그걸 이겨낼 길은 치밀한 준비와 열정밖에 없다. 열정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힘이다.

헝가리 출신으로 40대 초반에 영국인으로 귀화한 마크 오렐 스타인(Marc Aurel Stein·1862~1943)이 바로 그 열정으로 가득 찬 인물이다. 그는 모두 여덟 차례에 걸쳐 세계를 탐험했다. 그가 다닌 길의 거리는 2만5000마일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가 주로 탐험한 지역은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일대. 그런 까닭에 ‘보물 사냥꾼’ ‘실크로드의 악마’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이 붙었지만 그는 분명 위대한 여행가였다.

스타인은 1862년 11월26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유대인 집안의 늦둥이로 태어났다. 누나는 그보다 스물한 살, 형은 열아홉 살이나 많았다. 덕분에 가족 모두에게서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유대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쉽지 않던 당시 동유럽의 분위기상 그의 집안은 기독교로 개종해 교회를 다녔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는 어린 나이에 외국 유학의 길을 택한다. 이런 배경은 그가 탐험가로 대성하는 원동력이 됐다.

스타인은 소년 시절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더 대왕을 흠모했다. 그에게 영웅 같은 존재인 대왕의 원정길을 그대로 밟아보고 싶은 욕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그때 품은 꿈을 실현하는 데 보냈다. 탐험 과정에서 대왕의 원정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 여러 현장을 확인했고, 80세에 떠난 페르시아 대사막을 가로지르는 생애 최후의 답사 때는 원정군이 피로에 지쳐 붕괴 직전에 이르자 대왕이 페르시아로 퇴각하던 길을 따라 걸었다.

스타인은 열 살 때 독일의 드레스덴으로 건너갔다. 5년 뒤에는 대학을 위해 김나지움(독일의 중등교육기관)에 들어가 동양학을 배웠다. 그런 다음 빈 대학, 라이프치히 대학, 튀빙겐 대학 등을 옮겨다니며 동양학에 매진했다. 여기서 말하는 동양학이란 서아시아·중앙아시아의 역사와 그곳의 고대 언어에 관한 학문을 뜻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스타인은 그리스어, 라틴어, 산스크리트어, 프랑스어, 영어, 페르시아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게 됐다. 21세 때엔 튀빙겐 대학에서 ‘고대 페르시아의 종교철학’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장(玄奬)과 마르코 폴로가 스승

이듬해인 1884년 스타인은 학자의 길을 걷기 위해 헝가리 정부의 장학금을 받아 영국 유학을 떠났다. 대영박물관 근처에 숙소를 잡은 그는 동인도회사로 찾아가 사서인 라인홀트 로스트를 만났다.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 관한 희귀한 자료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곧 오리엔탈 칼리지에 입학했고, 알렉산더 대왕을 깊이 알고자 그리스·로마사에 몰두했다. 이어서 페르시아·인도의 고대 언어와 역사 연구에 진력했다.

그 시절 스타인은 위대한 여행가 두 사람을 마음속의 스승으로 받아들였다. 한 사람은 7세기 중국에 나도는 불경과 교리에 오류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불경이 처음 씌어진 곳으로 들어가 불교의 진수를 몸소 체득하고자 인도를 찾았던 당나라의 고승 현장(玄奬)이다. 현장은 17년(627~643)간 인도에 머물며 방방곡곡을 여행했다. 그의 ‘대당서역기’는 그때의 일을 기록한 여행기로 실크로드를 세상에 처음 알린 정보원이다. 스타인은 이 책을 탐험하는 내내 지니고 다니며 길잡이로 삼았다.

또 한 사람의 스승은 13세기 후반의 베니스 상인 마르코 폴로다. 폴로는 스타인이 꿈에 그리던 실크로드의 거의 모든 코스를 몸소 거쳐간 인물이 아니던가. 스타인은 두 스승을 통해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결론은 고대와 근대, 동양과 서양, 그리고 보편적이고도 국제적인 불교와 국제 교역로인 실크로드를 연결하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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