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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의로운 사회보다 어진 사회가 돼야”

사유하는 지식인의 표상 김우창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의로운 사회보다 어진 사회가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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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책에서 지혜 찾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가
  • ● 정치는 정치 없는 세계 만들기 위해 필요
  • ● 심성, 정신문화 쇠퇴가 걱정
  • ●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당위’
“의로운 사회보다 어진 사회가 돼야”
“나무는 스스로에 금을 긋지 않으니, 그대의 체념의 조형(造形)에서 비로소 사실에 있는 나무가 되리니.”

‘체념의 조형’ 서문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쓴 시의 한 대목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릴케는 창조적 직관의 힘으로 사물시(事物詩)의 진풍경을 펼쳐낸 독일 시인. 사물에 대한 객관적 서술을 통해 관념이 아닌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언어에 조각과 같은 조형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지난해 12월 17일 출간된 ‘체념의 조형’은 김우창(77·고려대 명예교수)의 50년 사유(思惟) 궤적을 엮은 책이다. 문광훈(충북대 교수·독문학)이 편자(編者)로서 은사가 쓴 글 34편을 골라내 엮었다. 김우창은 200자 원고지 320매 분량의 서문을 새로 썼다. 서문엔 ‘전체성의 모험 : 글쓰기의 회로’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사회학자 김호기(연세대 교수)는 김우창에 대해 이렇게 썼다.

“사상가의 독자는 대중과 지식인 둘로 나뉜다. 누구는 대중의 사상가인 반면, 또 누구는 지식인들의 사상가다.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들의 사상가’를 한 사람 꼽으라면 그는 김우창이다. 이른바 ‘진영 논리’가 두드러진 우리 사회에서 김우창은 이채로운 존재다. 그의 문학평론은 민중문학론과 자유주의문학론의 이분법을 거부했고, 그의 사회비평은 보수와 진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민족주의와 세계주의의 이분법 역시 넘어서 있었다. 그가 추구한 것은 ‘심미적 이성’과 이에 기반을 둔 ‘이성적 사회’였다.”

독문학자 문광훈은 ‘이성적 사유의 현대적 가능성’ ‘내면성의 사회적 확산’ ‘반성적 사유의 교향악’을 김우창 인문주의의 열쇳말로 꼽는다.

초로에 접어든 후학들은, 그의 이름 석 자에 ‘진정한 정신주의자’ ‘고독한 이성주의자’라는 수사를 붙인다. 1월 10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50년 넘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사유해온 노(老)사상가를 만났다.

# ‘더불어 있음’을 잃어버린 時代

우리의 모든 지적 활동의 밑에 어려 있는 것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있던 꽃과 나무와 산의 그림자이다. 맨 처음의 감각적인 ‘더불어 있음’에 섞인 이러한 것들은 가장 근원적인 교사로서 우리의 생각과 삶을 지배한다. 또 이 교사들이 가르쳐준 것은 단순히 어린 시절의 꿈이 아니라 세계와 삶에 대한 변함없는 진실이다. (꽃과 고향의 땅, 1977, ‘체념의 조형’에 재수록)

김우창의 인문주의는 사람이 사는 땅과 하늘, 고향의 세계에 버티고 서 있다.

“우리가 쓰는 동(洞)은 동굴, 골짜기, 골 같은 공간을 가리킨다. 우리는 길 위에 살지 않았다. 도로명 주소는 사람의 이름을 숫자로 바꾼 것과 같다. 군사령부에서나 통할 논리다. 이름은 사실의 무게를 지닌다. 동네가 군번 같은 숫자로 바뀐 것이다.”

그는 “동네와 어른이 사라졌다. 되돌아갈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정신적 전통이 깨져버렸다”고 개탄했다.

“제자 하나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10년 동안 이사 안 한 사람 손 들어보라 했더니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사람은 생물학적 존재다. 생물학적 존재는 기반이 튼튼해야 한다. 집 없는 사람, 이사 자주 가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는 비합리적 구조다. 사는 곳이 불안하니 심리적으로도 안정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종로구 평창동에서 30년 넘게 살았다. 지금도 손수 자동차를 운전한다. 10여 년 전 오랫동안 탄 엑셀이 길에서 서버리는 바람에 바꾼 아반떼를 지금껏 탄다.

“우리나라 사람은 유명하려고 노력하는 데 그럴 필요가 없다. 예전에 유명한 것은 동네의 좋은 어른, 충실한 일꾼을 가리켰다. 그것은 의미 있는 유명도다. 막스 베버는 중국에서 역사적·계속적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못한 까닭을 ‘동네 공동체’ ‘씨족 공동체’가 강해 개인적 이득을 추구하는 동기가 적었던 것에서 찾았다. 자본주의 좋아하는 사람은 싫어할 얘기지만…. 우리는 공동체를 파괴함으로써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있었으며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공동체가 무너졌다. 정신적 전통이 깨져버린 곳에서 다시 태어난 나라가 됐다. 겉으로는 서양 비슷하게 근대화됐을지 몰라도 할 일이 많은 곳, 너무나 혼란스러운 나라다.”

#권력과 부의 줄달음길

오늘날 우리의 삶이야말로 병적인 조급함과 헛갈리는 목적으로 특징지어지게 되었다. 세우고 뜯고, 궁리하고 뛰고, 권력과 부의 줄달음길로 내달리는 일은 우리 주변을 현란하게 하고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자신의 마음과 삶에 조급함을 삼투(渗透)하게 한다. 그리하여, 마음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설렘과 불안한 흔들림의 상태에 떨어진다. 이것을 잠시라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끊임없이 자극되는 소비재에 대한 욕망의 만족이다. 흔들리고 있는 마음은 욕망의 온상이 되고, 그것은 시장이 제공하는 상품이나 지위와 멋에 의하여 일시적으로 평화를 찾는 것이다. (고요함에 대하여, 1985, ‘체념의 조형’에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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