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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웅산 수지 영욕의 30년

‘미얀마의 어머니’ 인권 대신 민족 선택한 까닭은?

  • 신승현 미얀마 영문 매거진 ‘MYANKORE’ 편집장, 前 KBS PD cnucontents@hanmail.net

아웅산 수지 영욕의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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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로힝야족 ‘인종청소’ 불구, 군부 두둔하는 이유
    ● 소수민족 분쟁과 70년 내전 명분 쌓은 군사독재
    ● 경제 악화로 되살아난 독재에 대한 향수
    ● 군부와 ‘하나의 피’ 외친 아웅산 장군의 후예 공통분모
    ● ‘라카인 사태’ 인도주의적 해결이 새로운 미래 위한 선결과제
아웅산 수지(Aung San Suu Kyi)가 미얀마에 등장한 지 올해로 꼭 30년이 됐다. 영국에 머물던 그는 1988년 8월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잠시 귀국했다 미얀마 독립 영웅인 아버지 아웅산 장군의 후광 속에 ‘조국의 어머니’로 떠올랐고 국제사회에서 ‘인권과 민주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2010년, 15년의 가택연금에서 벗어나 정치 활동을 재개한 뒤 2012년 보궐선거로 국회의원이 됐다. 2015년 25년 만에 실시된 총선에서는 민족민주동맹(NLD·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을 이끌고 압승을 거뒀다. 이듬해 3월 미얀마에 새 정부가 출범했다. 아웅산 수지의 공식 직함은 국가자문역이지만 대통령 위에 있는 존재(Beyond the President)로 불릴 만큼 영향력이 크다. 

하지만 정부 출범 1년 5개월 만에 그는 인생 최대 시련에 직면했다. 지난해 8월 미얀마 변경 라카인주(州)에서 벌어진 소수민족 로힝야(Rohingya) 소탕작전 탓이다. ‘인권과 민주화의 아이콘’이라는 글로벌 브랜드를 상실했고, 동시에 미얀마의 대외 이미지도 추락했다. 관광객이 줄고 해외투자가 주춤해졌다. 지난해 12월 유엔인권이사회는 로힝야 문제를 종족학살로 규정하고 미얀마 정부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엔인권이사회 47개국 가운데 33개국이 찬성했다. 반대한 나라는 중국, 인도, 러시아뿐이다. 

하지만 미얀마 정부는 인종청소는 로힝야족 반군의 악성 선전에 불과하다면서 민간인 학살과 탄압 의혹을 전면 부인했을 뿐 아니라, 로힝야족의 인권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이양희 유엔미얀마특별인권보고관의 입국마저 거부했다. 또 로힝야족 문제를 취재하던 로이터 기자 2명을 체포한 뒤 가족 면회도 허락하지 않아 국제사회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족 갈등은 제국주의 유산

135개 민족으로 이뤄진 미얀마는 1948년 영국에서 독립한 지 70년이 됐지만 여전히 내전의 총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다. 그 분쟁의 중심에 북부의 꺼친(Kachin)족, 중국 국경의 샨(Shan)족, 태국 국경의 꺼인(Kayin, Karen)족, 방글라데시 국경의 로힝야족이 있다. 

영국은 미얀마를 식민통치하면서 다수민족인 버마족을 차별하고 소수민족을 우대하는 분열 정책을 펼쳤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아웅산 장군이 이끈 버마독립군은 일본과 손을 잡고 영국군과 싸웠고 이때 꺼인족, 꺼친족, 로힝야족 등 소수민족은 영국 편에 섰다. 아웅산 장군은 일본과 협력해 영국군을 축출하는 데 성공했으나 곧 버마의 독립을 승인하지 않으려는 일본의 의도를 간파하고 미얀마를 되찾으려 하는 영국에 ‘협력 메시지’를 보내 일본을 물리쳤다. 

아웅산 장군의 기민한 대응과 전략으로 미얀마는 식민 지배 청산에 성공했지만, 제국주의 전쟁에 이용돼 서로 총부리를 겨누던 버마족과 소수민족 간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버마족은 소수민족을 학살하고 종교 시설물을 파괴하는 것으로 앙갚음했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버마’를 꿈꾸며 버마연방을 실현하고자 했던 아웅산 장군이 1947년 암살됐다. 

이후 미얀마 군대는 독립과 연방 수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정치에 깊숙이 개입했다. 1949년 이래 꺼인족 등 분리독립을 주창하는 소수민족과 내전을 치르면서 군부의 조직력이 구축됐다. 아웅산 장군의 동료이던 네 윈 장군은 18개월간 ‘군사과도임시정부’를 거쳐 쿠데타를 감행했고, 1962년 미얀마에 군사독재정권이 시작됐다. 미얀마 군부는 ‘버마사회주의’를 지향하며 쇄국을 단행했다. 특히 버마연방 수호를 앞세워 소수민족을 탄압하고 추방했다. 소수민족의 무장봉기 진압은 군사독재를 합리화하기 위한 명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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