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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에 길을 묻다

충고하고 지적하고 바로잡으라!

제나라 위왕의 ‘소통 리더십’

  • 김영수 | 사학자, 중국 史記 전문가

충고하고 지적하고 바로잡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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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외교 할 것 없이 연일 ‘불통 리더십’이 지면을 달군다.
  • 리더에게 요구되는 많은 자질 중에서도 소통은 맨 윗자리를 차지한다.
  • 불통 리더십에서 소통 리더십으로 거듭나 백성을 편안케 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이끈 역사적 사례를 통해 우리 현실을 성찰해본다.
충고하고 지적하고 바로잡으라!

대오 각성해 제나라의 제2 전성기를 구가한 위왕.

소통을 모르는 통치자와 정권은 예외 없이 사상과 언론을 통제하고 탄압한다. 이로 인해 독재 정권과 권위주의 정권은 늘 유언비어에 시달리고 이를 두려워한다. 이런 정권 아래서 발생하는 유언비어는 학자들이 진단하듯 병적인 것도 아니고 남을 속이려는 수법의 결과물도 아니다. ‘불안하고 애매모호한 상황을 이해하려는 백성들의 은밀하고도 성실한 시도’일 따름이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은 사상·언론 탄압으로 악명이 높았다. 유언비어조차 극단적인 방법으로 통제했다. 그 결과물은 ‘우어기시(偶語棄市)’라는 말로 압축된다. 두 사람이 짝을 지어 속닥거려도 저잣거리에서 공개 처형한다는 악법이었다. 백성의 생활이 어떠했을지 상상하고도 남는다.
‘사기(史記)’에서 이 성어는 두 군데 나타난다. 하나는 이 가혹한 법을 제정한 장본인 진시황의 행적을 수록한 ‘진시황본기’이고, 다른 하나는 이 법을 비롯해 진나라의 가혹한 법들을 폐지해 ‘약법삼장(約法三章)’으로 요약한 한나라 고조 유방의 일대기 ‘고조본기’다. 참으로 공교롭다.    
‘우어기시’라는 극단적 조치는 이사(李斯)의 발상에서 나왔다. 이 조치는 사상 탄압의 일환으로 ‘시(詩)’나 ‘서(書)’에 대해 두 사람 이상이 이야기를 하면 처형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고조본기’에 와서는 ‘모여서 의논하는 사람들은 저잣거리에서 사형을 당했다’는 의미로 확대됐다. 언론 탄압의 범위가 애매하고 포괄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당초 ‘시’나 ‘서’에 대한 논의를 처벌하던 것에서 그저 두 사  람 이상이 모여 수군거리기만 해도 극형에 처하는 것으로 법 적용이 확대된 건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雍蔽之, 國傷也

사상과 언론이 탄압을 받으면 유언비어가 전염병처럼 퍼진다. 궁극적으로 정권마저 감염시켜 쓰러뜨린다. 유언비어는 표면에 드러난 말보다 더 많은 걸 말하고 싶어 하며, 그 은밀함 때문에 더 중요하고 타당할 때도 있다. 그 속에 백성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정권이 유언비어를 두려워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유언비어를 악의적으로 이용하려는 자들이 있다. 백성은 이 점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옹폐지(雍蔽之), 국상야(國傷也)’는 언론이 통제되거나 언로가 막히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점을 함축한 명언이다. 진나라가 그리도 빨리 무너져버린 원인을 따지는 자리에서 사마천이 한나라 초기 정치사상가 가의(賈誼·기원전 200~168)가 진나라의 실정(失政)을 전문적으로 비평한 ‘과진론(過秦論)’이란 글을 빌려 한 말이다.
‘옹(雍)’은 물의 흐름을 막는다는 뜻이고 ‘폐(蔽)’는 차단하고 가린다는 의미다. 요컨대 위의 뜻이 아래로 전달되지 못하고, 아래의 감정은 더욱 위로 전달되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서로 감추고 숨기는 바람에 나라의 혈관이 막힌다. 그다음은 멸망의 길이다. 정보 전달 기능을 상실한 조직이 활력을 잃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분별없는 저질 언론, 확고한 자기 철학과 방향성을 상실한 언론 또한 나라를 망치는 주범이다. 언론이 불통의 통치자에게 어떤 행태를 보이는지 사납게 지켜봐야 할 중요한 이유다.
기원전 379년 전인(田因)은 제(齊)나라 제후이던 아버지를 계승해 새 제후가 됐다. 전인은 오(吳)와 월(越)나라의 뒤를 따라 제후 명칭을 버리고 스스로를 왕으로 불렀으니, 그가 바로 제 위왕(威王)이다. 위왕은 자만에 빠져 매일 가무와 여색에 도취해 조정을 돌보지 않았다. 여기에 부패한 정치의 틈을 노려 한(韓), 위(魏), 노(魯), 조(趙)나라 등이 서로 군대를 일으켜 계속 공격하니 제나라를 지키려는 변방의 장수들은 싸울 투지마저 없어 매번 전투에서 패했다. 적지 않은 국토가 적국의 손에 넘어갔다.
이런 마당에도 위왕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다. 당시 일개 하층 지식인에 불과하던 추기(鄒忌)의 마음은 불타는 듯 초조했다. 그는 나라의 면모를 개변하려면 반드시 위왕의 정신상태를 돌려놔야 하고, 이를 위해선 어떤 방법을 쓰든 위왕을 자극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추기는 사흘 밤낮을 고민한 끝에 한 가지 방책을 생각해냈다.

충고하고 지적하고 바로잡으라!

진나라의 멸망 원인으로 소통의 문제를 지적한 가의(왼쪽). ‘우어기시’라는 악법을 발상한 이사.

거문고와 統治의 이치

추기는 의복을 갖춰 입고 왕궁으로 가서 사람을 넣어 왕을 만났다.
“대왕께서 음악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거문고에 대해 나름 연구한 게 있어 찾아뵙게 됐습니다.”
음주가무엔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던 위왕은 추기가 거문고 얘기를 하자 몹시 들떠 좌우 시종들에게 명해 거문고를 추기의 면전에 놓게 했다. 추기는 거문고 줄 위에 손을 얹고는 눈을 감았다. 위왕은 잔뜩 기대에 부푼 표정으로 추기를 바라봤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추기는 줄에 손을 얹은 채 요지부동이었다. 위왕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선생께서 스스로 거문고에 대해 잘 안다고 하여 거문고 타는 솜씨를 감상하려는데 줄만 어루만지니 혹시 거문고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오? 아니면 과인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겝니까?”
추기는 거문고를 한쪽으로 밀어놓고 정색을 하며 말했다.
“신이 잘 안다고 말씀드린 것은 거문고 소리에 관한 이치입니다. 거문고를 타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건 악공(樂公)의 몫이지요. 신이 비록 거문고 소리의 이치를 알고 있다고는 하나 그걸 듣고 왕께서 욕하시면 어쩌나 걱정돼서 이렇게 머뭇거립니다.”
위왕은 다소 언짢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러면 먼저 거문고의 이치에 대해 말해보시오!”라고 했다. 그러자 추기는 이렇게 말했다.
“거문고를 뜻하는 ‘금(琴)’이라는 글자는 ‘금(禁)’자와 통합니다. 즉 음탕하고 사악한 것을 금하고 모든 것을 올바르게 돌려놓는다는 뜻입니다. 태고 때 복희씨(伏羲氏)가 거문고를 만들면서 길이는 석 자 여섯 치 일곱 푼으로 하여 1년 366일을 본떴고, 그 폭은 여섯 치로 육합(六合)을 상징했습니다. 앞이 넓고 뒤가 좁은 것은 귀한 것과 천한 것을 구분하기 위해섭니다. 위가 둥글고 네모난 것은 하늘과 땅을 상징합니다. 줄이 5개인 것은 금(金)·목(木)·수(水)·화(火)·토(土)의 오행을, 큰 줄은 군주를, 작은 줄은 신하를 말합니다. 소리에 완급이 있는 것은 청탁(淸濁)을 표현하고자 함인데, 탁한 소리는 너그럽되 절제가 있으니 이는 임금의 도를 말하고, 청한 소리는 깨끗하나 어지럽지 않으니 이는 신하의 도리를 말합니다. 군신 간에 서로 믿게 되면 정치의 명령이 조화를 이룹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이치가 거문고를 연주하는 이치와 하나 다를 바 없습니다.”
위왕은 추기의 설명에 흥미를 갖긴 했지만 여전히 그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말했다.
“거문고에 대한 선생의 설명은 참으로 좋습니다. 선생께서 이미 거문고의 이치를 깨닫고 있으니 필시 그 음(音)에도 정통하리라 생각하오. 원컨대 선생은 나를 위해 거문고를 한번 타보시기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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