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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의 언론과 현대사 산책②

일제 고등경찰 피살 사건 미스터리

의문의 권총 두 발이 응징한 사이가 시치로의 전력

  • 정진석│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presskr@empal.com│

일제 고등경찰 피살 사건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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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여 년간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을 가혹하게 수사했던 고등경찰 사이가 시치로가 광복을 맞은 서울 한복판에서 살해됐다. 개인사는 거의 알려진 바 없으나 그 이름에 치를 떠는 독립운동가와 지식인이 수두룩할 정도로 일제강점기 그의 악명은 높았다. 당시 그의 죽음을 보도한 ‘경성일보’ ‘대한매일신보’를 중심으로 그의 악행과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되짚어본다.
일제 고등경찰 피살 사건 미스터리

일제강점기 고문 장면과 사이가의 암살을 보도한 ‘경성일보’ 1945년 11월5일자.

사이가 시치로(齋賀七郞)는 일제강점기 경기도 경찰부 고등경찰과 경부(警部)였다. 그는 20년에 걸쳐 수많은 우국 독립운동가와 사상범들을 야만적으로 고문해 악명을 떨쳤던 인물이다. 행정구역상 서울이 경기도에 속했던 시절이므로 서울을 포함한 경기도의 중요 사상관련 사건은 대부분 사이가의 손을 거쳤다. 그의 손에 걸려들어 잔혹한 고문을 당한 언론인, 문화인도 많았다. 그의 고문을 받아본 사람들은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 정도였다.

그러나 ‘고등계 스타’였던 사이가도 일제의 패망과 운명을 함께했다. 광복 후인 1945년 11월2일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저녁 6시30분. 사이가는 서울 원남동 124번지 자택 근처 우체국 건너편 노상에서 권총 두 발을 맞고 단말마와 함께 횡사했다. 생전의 악행에 걸맞은 비참한 최후는 소설의 소재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일본에서 출간된 두 작가의 소설에 사이가의 최후를 묘사한 장면이 나올 정도로 그의 죽음은 극적인 요소를 완벽하게 갖추었다.

추리소설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松本淸張)는 ‘북의 시인 임화’라는 소설에서 사이가의 피살 장면을 묘사했다. 유기수(兪基秀)라는 청년이 임화(林和)에게 종로 한복판에서 사이가가 살해되어 일대 소동이 일어났다고 다급하게 전했다. 임화가 물었다.

“길거리에서 살해됐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별안간 권총소리가 울렸답니다. 그와 동시에 검은 외투를 입은 사나이가 푹 쓰러졌다고 합니다. 쏜 사람은 군중 속으로 도망쳐, 누군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답니다.”

대낮 종로거리에서 피살

“사이가 경부가 틀림없는가?”

“물론이죠.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있으니까요.… 결국은 사이가도 천벌을 받은 것입니다. 살해한 사람은 사이가 때문에 지독히 고생한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마쓰모토 세이초, 김병걸 역, ‘북의 시인 임화’, 미래사, 1987, 66~67쪽)

마쓰모토 세이초는 정확한 자료를 토대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내용 가운데 사실과 다른 점도 적지 않다고 책을 번역한 평론가 김병걸은 지적한다. 역사적인 배경에서 실존 인물들이 소설에 등장하지만 어디까지나 추리소설 기법이 사용된 픽션이므로 사실과 다른 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열렬한 공산주의자였던 임화는 평론가이면서 시인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카프(KAPF)에 가담해 프로시인으로 활동하다가 친일단체 문인보국회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에 따르면 임화는 1934년 5월 경찰서로 불려가서 사이가의 심문을 받았다. 그 과정에 있었던 임화의 비밀을 사이가는 알고 있었다. 임화의 동지들도 확실히 모르는 내용이었다. 사이가의 피살 소식에 임화가 안도한 것은 일제에 전향했던 자신의 친일 행적을 자세히 알고 있던 사람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광복 직전인 1944년 7월 사이가는 반전(反戰)그룹을 일망타진했다. 이 사건은 전 조선의 반전진영에 큰 충격을 주었다.

임화는 광복 후 좌익신문 ‘조선인민보’의 주필로도 활동했다. 1946년 2월에는 조선공산당의 외곽단체 조선문학가동맹의 결성을 주도해 실질적인 지도자로 활약했다. 남로당 기관지 ‘해방일보’의 후신인 ‘노력인민’이 창간(1947년 6월19일)될 때에 임화는 박헌영을 극찬하는 시를 실었다. 1947년 11월 월북하기 전까지는 박헌영, 이강국 노선의 민전(民戰) 기획차장으로 활동했고, 6·25전쟁 때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당시에는 서울에서 발행된 ‘해방일보’에 시 ‘전선에로! 전선에로! 인민의용군은 나아간다’(7월8일)와 ‘서울’(7월24일)을 실었다. 낙동강 전선까지 종군작가로 참여했지만 1953년 8월 북한 최고재판소는 그를 미국 간첩 혐의로 사형을 선고했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은 남로당의 몰락으로 임화가 숙청당하는 비극적 최후에 중점을 두고 있다.

재일교포 작가 김달수(金達壽)의 소설 ‘태백산맥’(1969)에도 사이가의 최후 장면이 나온다. ‘태백산맥’은 조정래의 대하소설과 제목은 같지만 다른 소설이다. 경기도 경찰부 특고과 경부 사이가 고이치로(齊賀庫一郞)가 11월2일 낮, 종로거리에서 누군가가 쏜 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 김달수의 소설 내용이다. 밝은 대낮에 서울에서도 가장 번화한 종로 큰길에서였다. 김달수는 1943년부터 총독부의 일본어 기관지 ‘경성일보’ 기자를 지낸 교포 작가다. 소설에서는 사이가 시치로를 사이가 고이치로로 이름을 약간 바꾸었지만 암살당한 날짜는 정확히 11월2일로 설정하고 있다.

일본 작가 두 사람의 소설에 등장하는 사이가 암살의 공통점은 장소와 시간이다. 많은 사람이 내왕하는 서울 종로거리에서 대낮에 살해되었다는 것이다. 총독부 고등경찰의 상징적 인물 사이가는 어째서 이처럼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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