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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서울 강남 초등학교 6학년생의 하루

  • 곽희자 자유기고가

서울 강남 초등학교 6학년생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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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다닐 학원을 네다섯 곳 알아봤는데 마음에 쏙 드는 곳이 없네요. 작은 학원은 아이들 관리가 잘 되지만 레벨수업이 안 되고, 큰 학원들은 레벨수업은 그런대로 잘 되지만, 아이들이 많다 보니 관리가 철저하지 못한 것 같고…, 정말 골치 아파 죽겠어요.”

1년 전 겨울방학을 앞두고 6학년 아들을 둔 이웃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그녀는 아들의 중학교 진학준비로 바빴다. 매일이다시피 들어오는 학원 안내 전단을 꼼꼼히 체크하고 학원마다 일일이 탐방하는 그녀의 열의에 나는 혀를 내두르면서도 내심 못마땅했다.

“어차피 중학교 가면 질리도록 공부할 텐데 벌써부터 공부로 애 잡을 일 있어요? 그만 극성 부리고 이번 방학만이라도 맘껏 좀 놀려요. 그 동안 공부를 하면 얼마나 한다고. 그리고 미리 다 배워 가면 중학교 가서 무슨 재미로 공부하겠어요?”

이런 나를 보고 그녀는 “나도 그러고 싶지만 다들 학원에 보내는데 어떻게 우리애만 안 시켜요? 내년에 댁도 닥쳐봐요. 안 시킬 재간이 있나”라며 오히려 세상 물정 모르는 나를 딱히 여기는 눈치다. 당시 우리 큰애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속으로 ‘두고 봐라, 나는 그런 식으로 어리석게 애를 잡진 않는다’며 큰소리 쳤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슬프게도 나는 지금 그때 그 이웃 어머니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아들이 다닐 학원을 찾아 헤매고 있다.



흔들리는 소신

직장생활을 하는 남편과 프리랜서로 글을 쓰는 나에게는 3월이면 중학교에 입학하는 아들과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딸이 있다. 교육에 관한 한 말 많고 탈 많은 강남에 살지만 지금까지 우리 부부는 소신껏 아이들을 길러왔다. 남들이 대여섯 곳씩 학원을 보내며 아이들을 뺑뺑 돌릴 때, 우리는 아이가 하고 싶어하고, 꼭 필요로 할 때만 스스로 학원을 선택해서 다니도록 했다. 학교에서 1년에 두 차례 치르는 수학경시대회를 앞두고 부모가 더 안달복달하며 문제집 펴놓고 아이를 다그치는 것이 이제는 집집마다 흔한 풍경이지만, 경시대회란 평소 실력으로 하는 거라며 느긋하게 내버려 둔 것도 우리 부부의 교육적 소신 때문이다.

물론 처음에는 우리 아이들도 시행착오를 겪었다. 딸아이가 3학년 때 처음으로 학교에서 수학경시가 있었다. 그 동안 학교생활을 성실히 했고 모든 면에서 야무진 딸이라 수학경시도 웬만큼 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시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25문제 중 9문제를 맞아왔다. 자존심 강한 딸도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당장 학원에 보내달라고 졸라댔다.

아이의 상태가 이 정도라면 더 이상 내버려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주위에 다닐 만한 학원을 직접 찾아보라고 했다. 딸아이가 집을 나선 지 30분쯤 지나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여기 수학 학원이 하나 있는데 괜찮은 것 같아요. 나 여기 다닐래요. 선생님 바꿔드릴게요.” 딸아이는 다음날부터 열심히 수학학원을 다녔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껴서인지 다른 아이들보다 30분 일찍 학원에 가서 그날 할 것을 미리 풀고, 집에 와서도 열심히 했다.

3학년 2학기 들어 두 번째 경시대회를 치른 딸은 3개밖에 안 틀렸다며 우수상까지 받아왔다. 상장을 들고 달려온 딸은 이젠 수학이 제일 재미있다며 즐거워했다. 나도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학원에 다녀야만 학교수업을 따라갈 수 있는 우리의 교육현실이 씁쓸하기만 했다. 얼마 후 딸에게 학원은 그만다니라고 했다. 이제부터는 혼자 공부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말도 해주었다.

이렇게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해 갔고 나와 남편은 한 발 떨어져 그들을 지켜보는 식이었다. 이런 훈련 덕분에 두 아이 모두 다음날 학교 준비물은 알아서 챙겨놓고 자고, 실내화를 빠는 일까지 척척했다. 집안일도 불평 없이 도왔고 교우관계도 원만했다. 우리 부부는 이런 교육방법이 옳다고 자부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아들의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나의 소신은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6학년 수학은 건너 뛰어도 돼요”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직전인 11월 중순, 아들 친구의 어머니가 전화를 했다. 그녀는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자신의 아들은 여름방학 때부터 학원에서 중학교 영어와 수학을 배우고 있다, 11월부터 국어와 과학까지 하고 있는데 밤 11시가 넘어야 돌아온다, 매일 학원 숙제도 해야 해서 이번 6학년 수학경시는 준비를 못 하고 있노라며 걱정 아닌 걱정을 했다. 학원에서는 “6학년 수학은 별로 중요한 단원이 없으니 건너뛰어도 문제없다”고 해서 자신도 아들에게 “이번 경시는 포기해도 좋으니 대신 중학교 수학이나 열심히 하라”고 말했다고 했다.

정말 기가 딱 막혔다. 벽돌도 쌓기 전에 지붕을 올려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전화를 받으면서도 나는 그녀의 어리석은 교육관을 비웃으며 나만큼은 그런 부류가 아니라고 은근히 자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자부심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아이는 지금 영어·수학은 중학교 1학년 1학기 과정을 끝내고 막 2학기 과정에 들어갔어요. 다른 애들은 벌써 1학년 과정을 한 번씩 훑었대요. 이렇게 안 하고 중학교에 진학하면 학교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요.”

그 어머니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말도 안 돼, 모두 미리 공부를 해 가니까 선생님이 가르칠 것도 안 가르치는 것이겠지. 미리 배우지 않고 그냥 가봐, 왜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겠어?’

나는 애써 외면하며 더욱 마음을 굳게 다졌다. 여기서 마음이 흔들려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 혼자 잘난 척하다가 아이만 바보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마음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려고 평소 가깝게 지내던 아들 친구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또 한 번 배신감만 맛보았다. 그 동안 자기 아들은 집에서 영어만 시킨다고 하더니 어느새 학원 종합반에 등록해 보내고 있었다.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는 중학교에 가면 어머니들끼리도 경쟁이 벌어져 자식이 학원 다니는 사실도 숨기고 공부하는 내용이나 참고서적도 알려주지 않는다더니 정말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던 학원 전단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시작부터 최고로 키우고 싶은 바람, 어머니의 바람을 충족시켜 주는 000학원’, ‘내신·경시·실력 향상에 꼭 필요한 학원이 왔다’ ‘겨울방학이 승부를 좌우한다’ 전단마다 각종 문구로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우리만 몰랐던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의 겨울방학은 방학이 아니다. 그동안 집에서 그룹을 지어, 혹은 개별적으로 중학교 영어와 수학 정도를 준비하던 학생들도 12월 방학에 들어가면 학원 종합반에 등록, 본격적으로 중학교 공부에 들어간다. 종합반은 국어·영어·수학·과학 네 과목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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