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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독점 인터뷰|제2부 YS 남북회담-국내정치 본격 발언

“차기대통령 적임자 공개 지지하겠다”

YS의 차기대권 구상

  • 대담: 김종심 동아일보 출판국장, 황의봉 신동아 편집장 정리: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차기대통령 적임자 공개 지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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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아'는 4월12일 김영삼전대통령을 상도동 자택에서 인터뷰했다. 대외적으로는 남북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남북정상회담이 합의되고, 내부적으로는 국내정치 질서를 재편하게 될 4·13총선을 바라보는 전임 대통령의 시각과 경험담을 듣기 위해서였다. 김전대통령은 저녁식사를 포함해 5시간여 동안 진행된 특별인터뷰에서 94년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처음 공개되는 몇 가지 중요한 얘기들을 털어놓았다. 또한 김대중 정부 후반기, 특히 차기정권 창출과 관련해 적절한 시기에 자신의 분명한 입장을 밝힐 것임을 시사했다.<편집자> 》
김영삼 전대통령의 정치적 견해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뿌리깊은 경쟁의식과 불신을 최대의 분석틀로 삼아 생산되는 것일까. 김 전대통령은 인터뷰 내내,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미움과 라이벌 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는 속마음을 거의 본능적으로 드러냈다. 그 어떤 논리나 명분 이전에 감정부터가 용납하지 못하는 저 두터운 앙금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김대중 대통령은 거짓말쟁이’라는 말을 자주 하시고 ‘독재자’라는 말도 하셨는데, 앞으로 두 분이 화해할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겁니까?

“나는 야당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건전한 야당이 있어야 그 나라가 잘된다고 생각해요. 인생의 가치 중에서 민주주의가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사실 우리가 대통령 중심제니까 나라가 어려울 때는 국회가 (대통령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36명이나 빼앗아갔어요. 천하에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야당을 파괴한 거예요. 내가 만나본 한나라당 사람들 가운데는 그때 흔들려서 여당으로 갈 것을 약속한 사람도 많았어요. 그런데 내가 불러서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했어요. 만약에 그때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한나라당은 깨졌어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서 깨졌다고 봐요. 나는 그래도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한나라당) 지도부에서는 그걸 알면서도 말을 안해요.

“김대중씨 최대 잘못은 야당 파괴한 것”

나는 김대중씨가 제일 잘못한 문제 중 하나가 야당을 파괴한 거라고 생각해요. 야당 책임자들이 여기 오면 내가 말하는 게 있어요. 민주주의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선거다, 선거를 위해서 야당, 여당, 대통령도 있는데 선거를 부정한 사람은 용서하면 안 된다, 우리가 이승만 박사를 봤고 박정희, 전두환, 다 봤잖느냐, 그러니까 절대 용서하면 안된다, 라고요.



지난번 광명 보궐선거에서 전재희씨가 떨어지고 조세형 씨가 됐는데 몇십억원을 쓰고 관권선거를 해서 겨우 당선이 됐어요. 거기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전부 다 그래요. 그때도 내가 얘기한 게 이것 가지고 싸워야 된다, 이렇게 선거하면 안된다고 했거든요. 선거가 최고의 가치이고 이것 때문에 야당이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내가 야당 시절에 7개월간 국회에 등원 거부한 적이 있어요. 그때 부정선거에 대해서 재선거를 하자고 요구했는데 여당이 안해서 7개월 동안 등원을 하지 않았더니무효라고 해서 반쯤 재선거를 했습니다. 내가 그 얘기를 상기시켰어요. 지금 국회에 들어가고 싶어 죽겠으니까 7개월 (등원 거부) 하라고 하면 너희들은 못할 거다, 하지만 한달만 해보면 김대중이 항복한다, 그렇게 얘기했는데도 안 듣더라고. 소리 한번 지르고 또 그냥 지나가는 거예요. 등원거부를 하면 김대중씨가 아무리 독한 생각을 해도 못 싸웁니다.

얼마 전에 누가 병역비리 관계 조사를 받으러 나간다고 해서 내가 정신이 있냐 없냐고 했어요. 당에 책임있는 사람인데, 내가 못나가게 한 일이 있어요. 이것 때문에 한나라당이 태도를 바꾸고 내 얘기를 하고 나선 것 아닙니까.

하여튼 김대중씨 졸개가 나더러 외국에 가서 살라고 요구했고, 나도 그럴 바에는 김대중은 하야해라, 그런 거예요.”

―일각에서는 김대중대통령에게 정쟁에서 한발 떨어져 국정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당적을 이탈하라는 얘기가 있는데요.

“나는 근본적으로 대통령이 당적을 이탈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그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씩 배워야 합니다. 내가 대통령 후보가 됐을 때 노태우씨가 탈당을 했거든요. 그때 내가 말리느라고 애먹었어요. 그런데 끝내 내 말을 안 듣고 탈당했거든요.

이회창씨가 선거 때 기자회견에서 나보고 탈당하라고 했잖아요. 나는 안 할 생각이었어요. 누가 탈당하라면 탈당하고 말라면 말 성질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 안 하겠다고 독하게 마음먹었지요. 그런데 구미에서 전당대회를 하면서 내 허수아비를 만들어 놓고 욕을 보였다는 거예요. 그랬다는 보고를 받고서 ‘에이 더럽다, 내가 탈당하고 말지’ 싶어서 내 스스로 탈당한 거예요.

이회창씨가 내 욕만 안 했으면 쉽게 당선됐죠. 김대중씨하고 겨우 15만 표 차이로 졌잖아요(당시 김대중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실제 표차는 30만 표였는데, 이후보가 15만 표를 더 받았으면 김후보의 표 15만 표를 끌어오게 돼 당락이 뒤바뀌었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92년 대선에서 내가 김대중씨보다 200만 표를 더 받았으니까, 내 욕 안 했으면 이회창씨는 100% 당선됐죠. 결국 자기가 지는 방법을 강구한 거예요.”

김태정 총장에게 수사 유보 지시

―이총재와 단단히 틀어지게 된 게 DJ비자금 수사 유보조치 때문이었죠?

“이회창씨가 김대중씨 비자금 문제를 조사하라고 했을 때 한나라당 의석이 과반수였잖아요. 진짜 큰 사건이었으니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계속 수사를 요구했죠. 그런데 대통령 선거가 바로 눈 앞에 있지 않았습니까. 김대중씨가 비자금 갖고 있는 걸 내가 다 알았지만 이걸 조사하라고 했으면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을 거예요. 대통령 선거도 없는 거죠. 나도 대통령 임기 못 마쳤을 겁니다. 내가 그때 참 심각하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가 사실상 수사 중단시킨 것 아닙니까. 내가 중단시키지 않으면 누가 중단시키겠어요? 검찰총장? 웃기는 얘기지…. 그런 걸 검찰총장이 제 맘대로 할 수 있어요?”

―혹시 퇴임 후에 김대중 대통령한테 섭섭함을 느낄 때면 그때 비자금 수사 유보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까? 지난 일이지만 ‘확 터뜨려 버려야겠다’고 생각하신 적은 없었나요?

“그런 생각은 안 해요. 그때 내가 수사 유보시킨 건 옳았다고 생각해요. 과거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내가 김대중씨를 좋아하진 않지만, 그때 내 결정은 옳았다고 생각해요.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됐을지 생각해 보세요. 김대중씨가 대통령 안 되는 것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한테 한 마디 했어요. 김태정씨는 내 지시 받고 수사 유보한 겁니다.

내게 나쁜 생각이 있었으면 김대중씨 계좌를 조사할 수도 있었겠죠. 이런 저런 보고를 받아 김대중씨한테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런 걸 일절 안 했습니다. 김대중씨가 북한 갔다온 서경원 의원한테 1만달러 받았다가 문제가 됐죠? 켕기는 게 있으니 도둑 제 발 저린 격이었죠. 김대중씨가 겁이 나서 나한테 전화해 ‘정치 안 하겠다’고 하고는 은퇴성명 내고 영국으로 가버린 거예요. 그리고는 숨어서 엎드리고 있으니까 내가 아무 것도 안 하는 것 같거든. 자기가 여기서 돈 갖고 장난친 게 있는데도 내가 아무 것도 안 하거든. 내가 김대중씨 조사하라고 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김대중씨가 ‘아, 이제 돌아가도 되겠다’ 싶어서 복귀하게 된 거예요. 나는 그 사람을 너무 잘 알아요. 내가 몇번 속기도 했지만….”(참고로 서경원 의원 방북사건이 터진 때는 89년이고 김대중 총재가 정계은퇴하고 영국에 간 대는 93년이다.)

―김종필씨는 재임 초까지만 해도 여권과 내각제를 같이 해보려고 기다린 듯한 인상을 받았는데, 그 쪽에서 한 번도 요청한 적이 없었습니까?

“그런 요청은 받은 적 없어요. 나는 김종필씨 하고는 인연을 갖고 있어요. 나는 개인적으로 김종필씨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뭐 딱히 그럴 만한 이유도 없고. 하지만 김종필씨가 중앙정보부장 할 때 내가 만일 그 사람의 회유에 넘어갔으면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거예요. 나는 평생 그렇게 살아 왔습니다.”

―97년 대선 때 권영해 안기부장이 북한하고 공작을 했다느니 안 했다느니 시비가 일었습니다. 그걸 막기 위해서 국민회의가 역으로 북한과 내통을 했다는 얘기도 있었고. 당시 실제로 그런 시비가 생길 만한 일이 있었습니까.

“나는 근본적으로 대통령은 절대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청와대 수석들에게도 ‘절대 중립 지켜라, 절대로 움직이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저쪽에서 지레 내 마음을 읽으려 했던 것 같아요. 물론 안기부에서도 사안에 따라 달랐겠지만. 권영해 부장이 직접 뭘 했느냐와 상관없이 안기부는 늘 그럴 수 있는 집단이거든요. 그래서 나는 권부장에게 늘 ‘기합’을 주고 있었어요. 절대로 (선거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했던 겁니다. 나는 꿈에도 그것(안기부의 북풍공작)을 상상하지 못했어요. 아마 밑에 있던 사람들이 공연한 짓을 했던 것 같아요. 한심한 사람들이지.”

“이회창이 내 덕을 얼마나 봤는데…”

―좀 다른 사안입니다만, 국세청이 동원된 모금사건도 자주 언급됐습니다. 그 사건 역시 일부에서 개인적으로 사고를 저질러 일어난 일입니까?

“그래요. 그런 부분들이 있었다고 봐요. 그런 나쁜 놈들이 있었을 겁니다. 정말 나쁜 놈들이지…. 어떻게 국민들이 나라에 낸 세금을 선거자금으로 내놓느냔 말이야.”

―당시 고건 총리의 주례보고에서 맨 먼저 하신 주문이 중립을 지키라는 것이었죠?

“내가 고건씨를 총리에 임명한 것은 그 사람이 행정능력도 뛰어났지만 무엇보다도 호남 출신이었기 때문이에요. ‘밑에 있는 사람들이 잘못하면 선거가 또 지역적으로 흐를테니 가장 중요한 것은 공명정대한 선거로 치르는 것이다, 그게 당신의 임무다’ 하고 고건 총리한테 지시한 거예요. 고건씨가 지금도 우리집에 찾아와요. 내가 고건씨에게 총리를 시킨 것만 봐도 참으로 중립의지가 강했던 거예요.”

―대선에서 중립을 안 지키셨으면 DJ가 당선됐을까요.

“절대로 안 됐죠. 중립을 지켰으니 이회창씨가 내 욕만 안 했어도 이회창씨가 당선됐을 거예요. 나는 그래서 늘 기회라는 건 언제나 오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기회는 일단 놓치면 다시 잡을 수 없어요. 바로 그때가 최상의 기회였어요. 100% 당선되는 거예요. 내 얘기를 뭣하러 합니까? 영남표가 왜 달아났겠어요? 나를 욕한 것 때문이잖아요. 나더러 탈당하라면서 선거 2∼3일 전부터 ‘YS와 DJ가 똑같다’느니 하면서 신문 1면 광고를 내니 영남 유권자들이 ‘어, 이것 봐라?’ 한 것 아닙니까.

―이회창씨가 당선되지 않겠다고 느끼신 게 그때부터였습니까?

“그래요. 내 혜택을 제일 많이 본 사람이 이회창씨 아니요? 감사원장, 국무총리, 당 대표, 대통령 후보… 이런 자리를 다 내가 시켰잖소. 그런 나를 그렇게 대했으니…. 그 사람더러 ‘배은망덕하다’고 한 사람은 박종웅 의원이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다 이회창씨더러 배은망덕하다고 하잖아요”

―지난번에 이회창씨가 상도동을 찾아뵌 것으로 서운한 감정을 씻으셨습니까?

“아침 일찍 와 가지고 다 자기가 저지른 일인데 ‘국난’이라고 그러데. ‘국난을 당했으니 이걸 수습해 주실 분은 김대통령뿐입니다’ 이러더라고.”

―정치 선배로 모시겠다는 뜻이었나요?

“정치 선배가 아니지. 내가 기른 사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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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김종심 동아일보 출판국장, 황의봉 신동아 편집장 정리: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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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대통령 적임자 공개 지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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