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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21세기’ 뉴리더 뉴트렌드<3>|문학편

테크노 픽션, 퓨전문학의 첨단작가 그룹

  • 김성곤

테크노 픽션, 퓨전문학의 첨단작가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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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뉴욕주립대에서 시를 강의하고 있는 찰스 번스틴(Charls Burnstin)은 언어시(L=A=N=G=U=A=G=E Poetry) 또는 ‘시학 프로그램(Poetics Program)’의 창시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동료 시인인 수전 하우와 벌이고 있는 이 새로운 시 운동은 각종 이데올로기, 통일성, 그리고 질서와 동화에 대한 강권으로부터 이탈한 자유롭고 독창적인 시를 추구한다. 그래서 번스틴이 말하는 ‘언어시’란 “기존의 형식과 가치관에 순응하지 않는 시, 문학적 직무로부터 자유로운 시”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는 발화되지 않을 소리를 들리게끔 만드는 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번스틴이 추구하는 것은 정치 이데올로기에 과도하게 물들지 아니하되 “삭제하고 배제하기보다는 포용하고 포옹하는 시와 시학, 또는 상충하는 다양한 언어와 스타일을 포함하고 포괄하는 열린 시와 시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역사와 이념이 화자의 중립성을 해치는 것을 경계하며, 시 언어 자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진정한 소수를 배제하는 다양성과 여성적인 것을 통제하려는 남성적 목소리를 경계한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시’는 비정치적이면서도, 동시에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것처럼 보인다.

번스틴에 의하면 시인은 텔레비전 광고 기획자만큼이나 당대의 문화에 대해 긴장하고 있어야만 하며, 시 역시 텔레비전만큼이나 재미있고 예측할 수 없어야만 한다. 그리고 시인은 언어를 통해 보이지 않는 문화적·사회적 억압을 드러내고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추구해야만 한다. 그러나 ‘언어시’ 시인들은 언어의 그런 힘과 완전성을 과신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완벽한 상호교류라는 낙관적인 생각 대신 다양한 무리별로 하나씩 대화하고 경청해 보자고 권유한다. ‘언어’가 다시 한번 시인들의 주요 관심사로 부상하게 된 것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다.

전자매체와 문자매체의 조화-김경욱/김영하

김경욱에게 있어서 영화나 UFO, 록음악은 현실의 반대편에 있는 환상이 아니라 또 다른 리얼리티로 들어가는 ‘문’, 즉 우리가 망각하거나 상실한 채 살고 있는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가 된다. 김경욱의 소설에서 현실과 영화, 또는 리얼리티와 픽션 사이의 이분법적 구분이 철저히 와해되는 것도 사실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다. 예컨대 ‘바그다드 카페에는 커피가 없다’나 ‘베티를 만나러 가다’는 관습적인 소설 양식과 진부한 내러티브를 SF적 상상력과 팝뮤직의 분위기, 영화의 내러티브로 대체하는 데 성공한 신선하고 참신한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집은 무거운 문학적 주제, 진지한 존재론적 고뇌, 삶에 대한 심오한 성찰, 그리고 치열한 작가정신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소설문학의 미래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줄 수 있는 신선한 가능성으로 떠오른다.



김경욱의 주인공들이 영화 스크린 속에서 뛰어나온 사람들 같다면, 김영하의 주인공들은 마치 컴퓨터 인터넷에서 막 뛰어나온 사람들처럼 보인다. 또 김경욱의 내러티브가 영화 기법과 자주 뒤섞이는 반면 김영하의 내러티브는 늘 시각적 멀티미디어적 감각과 혼합된다. 예컨대 ‘바람이 분다’ ‘비상구’ ‘사진관 살인사건’ 같은 작품들에서 김영하는 문자매체와 전자매체 또는 활자문화와 영상문화 사이의 성공적인 대화와 혼합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늘 새로운 감성과 생동하는 언어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 김영하의 작품이 젊은 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러한 신선함 때문일 것이다. 김영하의 작품들은 기법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주제적 측면에서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변화 없는 한국문단에 김영하는 형식과 주제 모두에서 분명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비록 그의 소설들이 충분히 진지하지 못하고 무겁지 않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실 그의 소설은 기성작가들과는 또 다른 시각으로 삶에 대해 성찰·고뇌하고 있기 때문이다.

순수/추리/환상/SF의 퓨전-김민영

천편일률적인 요즘의 팬터지 픽션에 싫증난 독자들에게 김민영의 ‘옥스타칼리스의 아이들’은 신선한 감수성과 새로운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환상세계 속에서만 사건이 벌어지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기존의 환상소설과는 달리 ‘옥스타칼리스의 아이들’에서는 현실과 가상현실 사이의 경계가 와해되고, 사건과 이야기가 두 영역을 넘나들며 서로 긴밀한 연관을 갖고 맞물려 있다. 현실에서 시작된 사건이 어느새 환상 속의 사건으로 이어지면서 리얼리티와 컴퓨터 그래픽 사이의 경계가 해체되는 것이다.

‘옥스타칼리스의 아이들’은 또 추리소설 기법과 컴퓨터 게임을 절묘하게 뒤섞고 있다는 점에서도 단순한 환상소설은 아니다. 백주에 벌어진 살인사건,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한 실마리는 독자들을 컴퓨터 게임 팔란티어 속으로 데리고 간다. 마치 게임 모티프가 늘 등장하는 나보코프의 소설들처럼 김민영의 이 소설도 게임을 통해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비판하고 있다. 더 나아가 김민영은 이 소설에서 미래를 다루는 SF적 상상력을 십분 발휘해 소설의 여러 장르를 혼합한 퓨전문학을 창출해내고 있다.

‘옥스타칼리스의 아이들’을 읽으며 독자들은 또 고급문학과 대중문학, 그리고 순수문학과 하류장르 문학 사이의 경계가 해체되는 것을 느낀다. 김민영의 소설은 그 모든 것에 다 속하는 동시에 아무것에도 속하지 않는 특이한 형태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옥스타칼리스의 아이들’이 돋보이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이 재미있으면서도 무거운 문명비판의 주제를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오직 앞으로만 질주하는 과학기술과 거기에 심취된 사람들에 대한 예리한 비판이자 가상현실이 수반하는 문제점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다. 그러한 작업을 위해 김민영은 가상현실 이론의 대가 스티븐 옥스타칼리스의 저서 ‘실리콘 신기루’와 팬터지 문학의 원조 톨킨에 대한 지식을 자신의 소설에 십분 활용하고 있다. ‘옥스타칼리스의 아이들’은 국내 환상소설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으며 퓨전문학의 한 좋은 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冬

신동아 200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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